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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속 구원자가 되었다-89화 (89/135)

89화 위치 헌트 (2)

“꽤 괜찮은 사수가 있는 건 알겠는데 말이야.”

쉬카펠이 빙글빙글 웃으며 말을 꺼내 놓았다.

“그래서야 나를 여기까지 꺼내 놓은 이유는 안 되는 것 같은데?”

그 말에는 방금 그런 무지막지한 위력을 선보인 키건의 공격으로도 자신에게 해를 입힐 수 없다는 자신감이 깃들어 있었다.

뭐, 조금 전에도 드러난 사실이지만.

이 녀석은 스테이지 전체에 펼쳐진 ‘어둠’을 벗겨 내지 않으면 반 무적 상태다.

본성 안에서 받는 온갖 능력치 강화는 그나마 바깥으로 끌어낸 덕분에 없지만, 기본적으로 ‘모든 피해 불침’이라는 지랄 같은 방어기 성능은 그대로다.

실제로 내가 조금 전에 밀어 넣은 공격에 상처 하나 안 입기도 했고 말이지.

“…….”

근데, 그 공격은 따지고 보면 그냥 ‘실험’을 위해 쳐 본 거고.

필요한 정보는 이미 그걸 통해 확인한 상태다.

“맞는 말이야.”

쉬카펠의 말에 수긍해 준다.

“아직은.”

그리고 다음 순간.

한 줄기 섬광이 쉬카펠을 관통했다.

‘마력’이 아닌 그냥 일반적인 화살. 다만 속도는 초음속을 넘나드는 무시무시한 빠르기다.

그리고 그 끄트머리에 달린 것은, 내가 조금 전에 근처에 잔뜩 배급해 준 탈리스만이다.

일시적으로 어둠을 쫓아내는 효과가 있는 그것 말이지.

쉭, 하는 소리와 함께 쉬카펠 근처에 있던 어둠의 방벽이 갈라지고, 그 위로 화살이 날아들며.

곧바로 그 뒤에 정화자의 의지 효과를 받은 대붕괴가 작렬한다.

“……!”

아까 전에 성역화로 어둠의 방벽을 가르고 이 공격을 밀어 넣었을 때, 이 녀석은 스스로 만들어 낸 ‘방어 술식’으로 내 공격을 막았거든.

요컨대.

저 어둠의 방벽은 모든 피해 불침 효과를 가지고 있지만, 반대로 한 번에 하나의 공격밖에 막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방벽을 관통하는 공격과 거기에 이어지는 후속타를 타이밍 좋게 때려 넣는다면.

아무리 지랄 같은 버프를 두르고 있어도, 공략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

쉬카펠이 멍한 표정으로 자신의 로브를 내려다보았다.

작긴 하지만.

상처가 나 있었다.

수백 년을 초월자에 준하듯 군림하던 녀석에게, 패배라는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말했지, 임마.”

씩 웃으며 말한다.

조금 전에는 이 녀석의 부하를 상대하느라 이런 식의 연계기가 사실상 불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멀리서 폭격에 가까운 화력을 투사할 수 있는 사수가 있는 상태라면.

이쪽은 핵심 인력을 고스란히 이 녀석을 패는 데 집중시킬 수 있다.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여기까지 끌고 오는데 오래도 걸렸다.

익숙한 상황이지.

보스가 있고, 보스를 잡을 수단이 있으며, 그 통제권도 내가 쥐고 있다.

그러면 결과도 명확하지.

쉬카펠의 HP가 부디 넉넉하길 바란다.

이제부터 뒤지게 처맞을 거니까.

* * *

객관적으로 보면,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수십, 수백 년을 걸쳐 완성한 자신의 ‘컬렉션’이 망가지고 있었다.

어디에 내놔도 경외의 대상이 될 법한 자신의 최고 걸작들이, 적의 ‘화살’ 하나하나에 한 무더기씩 쓸려 나간다.

그리고 그렇게 적의 발을 묶어 줄 수단이 없어진다면, 그녀가 고스란히 적에게 노출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하.”

물론, 딱히 저런 것들이 없다고 해서 그녀가 약한 마법사는 아니다.

아니.

저 수많은 그녀의 수집품과 비교하더라도, 오히려 그녀 혼자를 ‘본대’라고 부르는 것이 맞겠지.

-!

연산도, 영창도 없이 손을 살짝 휘젓자마자 다중으로 식이 작성되었다.

심연에서 기어 올라온 것 같은 꿈틀거리는 어둠이 구의 형태로 여러 개 뭉쳐진다.

그것들 하나하나는 보통 술자가 흉내라도 내려고 했다가는 그대로 뇌가 튀겨져도 이상하지 않을 최고위 저주들이다.

쉬카펠. 다차원 순례자. 수백 년에 걸쳐 마도를 탐구한 마녀.

하물며 여긴 그녀가 그 오랜 세월을 거쳐 구축해 온 그녀만의 요새고, 따라서 그녀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한 환경이다.

그 결과 지금 만들어 낸 술식은, 하나하나가 재앙이라고 불러도 부끄럽지 않은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어림도 없다!”

용의 장로가 내지른 호통과 함께 그 저주들에 반발하여 항마降魔의 술식이 순식간에 수십 개 빚어진다.

그녀로서도 감탄을 흘릴 만큼 세련되고 복잡한 수식들이다.

과연, 술식의 대가들이라고 불리는 용족다운 역량이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모자라다.

-!

술식끼리 충돌하자마자, 그녀의 저주가 그것들을 먹어 치우며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농축된 악의로 빚어진 저주들은 상대방의 어떤 공격도 불허하며, 스치기만 해도 대상을 지옥에 떨어트릴 것들이니까.

하지만 마치 그렇게 질 것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것처럼, 용족이 망설임 없이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그 자리를 채우듯이 튀어나오는 것은 갑옷 안에 있는 영능력자다.

“…그만.”

낮게 읊조리듯 말하는 것과 동시에, 저주에 깃든 사념이 깨끗하게 정화된다.

그대로 그녀의 저주를 받아 냈다간 아무리 그런 쪽에 특화된 영능력자도 성치 못했겠지만, 용의 장로의 술식에 어느 정도 약화가 된 덕분에 가능한 짓이겠지.

그리고 그것이 쉬카펠에게 못 견딜 정도의 즐거움을 선사했다.

“하하-!”

억누르지 못한 웃음이 성대를 간질였다.

정확한 계산이다.

용의 장로가 펼친 술식의 종류와 개수, 그것에 의해 자신의 저주가 약화한 정도. 그리고 그 변곡점에 정확하게 끼어든 저 영능력자의 배치까지.

물 흐르듯, 빈틈 하나 새는 곳 없이.

전부 의도에 맞게 배치된 것이다.

그것도 단 한 명의 인간에 의해.

“당신, 당신 진짜 최고라고-!”

백마 탄 왕자님을 만난 공주의 심정이 이러할까.

쉬카펠은 미친 듯이 쿵쾅거리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그렇게 소리 질렀다.

사실 그녀에게 물리적인 심장이랄 것은 존재하지 않았으니, 순전히 심리적인 착각이겠지만.

저 남자를 향해 깃드는 이 혼탁할 정도의 감정은 진짜다.

“오진환! 아무래도 나 당신을 사랑하는 것 같아!”

“그거 병인데. 정신과 예약해 줄까?”

정작 그런 말을 들은 대상은 심드렁한 대답만을 돌려줬지만.

이어지는 반격은 그런 태도에 걸맞지 않게 면도날처럼 날카로웠다.

설국의 전사가 던진 탈리스만에 그녀의 근처에 있던 어둠이 벗겨지고, 그 틈새를 향해 안대를 찬 여검사의 공격이 이어지며, 후속타로 속성이 부여된 오진환의 공격기까지 이어진다.

이번에도, 그녀에게 상처가 늘어난다.

하지만 쉬카펠의 입가에는 도리어 미소가 지어졌다.

‘효율적이야…….’

자신도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가장 정답에 가까운 선택지만을 내밀고 있지만.

이 남자가 지휘하는 세력의 ‘효율’은 항상 그녀의 선택지를 뛰어넘는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단 한 번이라도, 그녀의 선택지가 이긴다면 상대방은 곧바로 파멸할 것이다. 그 정도로 힘의 격차가 난다.

하지만.

저 남자는, 지금까지 한 번도 그녀에게 수 싸움에서 진 적이 없다.

내리는 결정 하나하나가, 이래서 이런 사람들을 미리 준비해 뒀구나! 하고 바로 납득이 될 만큼 정교하다.

용종, 엘프, 설국, 그리고 협회까지.

오로지 이 순간만을 위해 안배해 온 것처럼.

그리고 그 사실마저 그녀를 더욱 흥분시켰다.

그녀를 꺾기 위해 이 정도로 준비해 왔다는 게 고마울 지경이다.

‘그렇다면…….’

온몸에 새겨진 마력 각인으로 아직까진 멀쩡하지만,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계속해서 누적되는 데미지가 늘어난다.

이렇게 가다가는, 틀림없이 지겠지.

“……!”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전신에 통제할 수 없는 열기가 휘몰아쳤다.

숨이 가빠진다.

좋아. 더, 더 많이.

좀 더.

‘좀 더 나를… 끌어내려 봐.’

그러니까, 그녀도 최선을 다해서 저 남자 앞에서 빛나야 할 것이다.

저 남자가 자신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도록, 얼마나 가치 있는 인간을 지금 몰아붙이는 중인지 알 수 있도록.

이어서.

능히 천지를 개벽시키고, 기적을 일으키며, 대해를 증발시킬 만한 마력이 그녀의 지팡이 앞에서 끓어올랐다.

“……이런 미친!”

근처에서 그런 경악에 찬 비명이 새어 나오는 것과 동시에, 특대급 술식이 그 일대를 휩쓸었다.

마치 폭탄이 터지듯 치솟아 오른 검은색 가시가 그 주변 전부를 집어삼킨 것이다.

본래대로라면 일거에 도시 하나를 멸망시키고도 남을 술식을 한곳에 압축해 때려 넣은 공격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거, 곱게 좀 죽으시지 그래!”

대체 그런 술식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창을 잡고 있는 설국의 전사가 한 명이 공중으로 치솟아 올랐다.

창끝에 매달려 있는 것은 예의 그 탈리스만이다.

다시, 일격.

그리고 뒤따라오는 후속타들.

이번에도 완벽하게 그녀의 공격이 파훼당한 것이다.

“…아, 하.”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말이 안 되는 일이다.

그녀가 만들어 낸 이 군단과 저 세력은 숫자 차이부터 역량 차이까지 명백하다.

힘 대 힘으로 맞붙으면 상식적으로 누구나 그녀의 압승을 예상할 것이다.

하지만.

그 거대한 간극은, 단 한 명의 인간에 의해 메꿔지고 있었다.

“하, 핫.”

단 한 명이.

이 정도로 많은 숫자가 모인 전장의 흐름을 혼자서 간파하고 조종하는 단 한 명이.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을 현실로 만들어 내고 있다.

“아핫, 아하하하-!”

무너진다.

수백 년을 걸쳐 쌓아온 그녀의 위업이, 그 세월에 비하면 한 줌도 되지 않을 기간 만에 뭉친 세력에게.

전부 다 무너져 내리기 일보 직전이다.

“나, 이제 당신 없이는 못 살아!”

하지만, 전혀 상관없었다.

지금 그녀는.

그간 쌓아 올린 것을 전부 다 합친 것보다, 훨씬 가치 있는 ‘한 명’을 찾았으니까.

“앞으로도 책임져야 해!”

“옛 성현들이 말씀하시길.”

오진환이 피식 웃으면서 답했다.

“미친 사람한테는 매가 약이라고 했다.”

다시 한번, 그녀가 막을 수 없는 합격기가 날아들었다.

* * *

그래서.

이렇게 몰아붙이고 있는 것은 좋은데 말이야.

‘…결정타가 모자라겠네.’

그렇게 생각하며 파에톤 쪽을 흘끔 바라본다.

사실 이 녀석까지 갈 것도 없이 그냥 다른 사람들 선에서 끝났으면 좋았을 텐데.

이 정도까지 준비해 와서 밀어붙이고 있는데도 마지막 일선은 도저히 넘어가지 못하는 상태다.

‘그럼 어쩔 수 없지.’

사실 저 녀석의 무기가 ‘재형성’까지 가는 것은 가능한 한 미루고 싶었던 일이다.

왜냐하면 그거를 하려면 나도 좀 귀찮은 일을 해야 하거든.

하지만, 뭐.

지금 당장 뾰족한 수가 없으면 별수 없지.

포인트 상점으로 들어가 휙휙 스크롤을 아래로 내린다.

이런 식으로 기술을 구매하는 건 오랜만인 것 같은데.

“…….”

그리고 파에톤의 기술 중 ‘최종 티어’에 안착해 있는 기술에 눈을 맞춘다.

아마 저 녀석의 무기가 재형성이 아직 안 된 건 제대로 된 ‘이미지’가 아직 잡혀 있지 않아서인데.

이건 그 맥을 뚫어 주는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런데, 귀찮은 일이라니? 그대가 기피할 정도면 보통 일이 아닐 텐데.]

그렇게 말하는 수호령님의 목소리에 한숨을 푹 내쉰다.

‘아니, 그렇게 막 심각한 건 아니고.’

그렇게 생각하며 파에톤 쪽을 바라본다.

‘아마 쟤한테 강제로 코가 꿰일 수도 있는 문제라서.’

[…뭐라?]

황망한 기색으로 날아오는 수호령님의 말을 들으며, 스킬 구매 버튼을 누른다.

뭐.

슬슬 마무리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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