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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속 구원자가 되었다-90화 (90/135)

90화 위치 헌트 (3)

스트롬블라드 가문은 뿌리 깊은 무골 집안이고, 따라서 그런 집안마다 하나씩은 들고 있는 가문의 비전도 당연히 존재한다.

[스킬: 심안心眼(고급)

대상의 모든 공격을 간파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간단한 문구로 설명된 스킬이, 바로 파에톤의 최종 티어 스킬 중 하나다.

뭐, 말로만 들어서는 이게 무슨 의미가 있냐 싶긴 한데.

게임 안에서 이게 발휘하는 효과는 사실상 간단하게 무적기에 공격력 버프기를 섞어 놓은 취급이다.

시스템 취급이 그렇거든.

적의 공격에 타이밍을 완벽하게 맞춰 카운터를 먹이면 다양한 이득과 함께 데미지는 더 많이 들어가고, 이쪽에 들어오는 데미지는 0으로 취급해 주는 등 다양한 이득이 있다.

그리고 ‘모든 공격을 간파한다’라는 효과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후려갈기기만 해도 공격이 죄다 카운터로 들어간다는 뜻이라서.

초심자 배려로 설계된 둥글둥글한 캐릭터답게 솔로잉에 극단적으로 특화된 버프를 들고 있는 느낌이지.

그리고 그런 단순무식한 효과답게.

이런 상황에서 발휘되는 위력은 가히 절대적이다.

[그래서, 그거랑 코가 꿰인다는 것은 무슨 상관이 있는 거지?]

‘이거 쟤네 가문의 비전이라고.’

가문의 비전이라고 한다면, 외부인이 알 수 없으니까 비전인 것이 당연하다.

그만큼 중요한 지식이기도 하고.

이 기술의 정체가 뭔지 파에톤이 알게 된다면 당연히 내 뒷배경을 추궁당하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고.

현재 상황과 얽힌 당사자들의 특성을 고려하면, 당연히 ‘입막음’까지 들어오는 것이 자연스럽다.

[입막음?]

‘원래대로는 간편하게 그냥 죽이는 게 있겠지만…….’

다짜고짜 그렇게 하기엔, 지금 내 가치가 너무 높다.

전 세계에 얼굴이 팔린 유명 인사에 실적까지 빵빵하니까.

그럼 효율성을 고려했을 때 최선책은.

[아예 가문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이군. 그러면 그런 것을 알고 있을 만한 당위성이 생기니까.]

이해가 항상 빠르다니까.

그리고 가문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방법 중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것은…….

[…결혼?]

슬프게도 그렇다.

그러니까, 아마 이거 쓰면 현재 가주인 비요른이 파에톤이랑 날 엮겠다고 날뛰는 것이 기정사실이지만.

당장 급하니까 어쩔 수 없지.

일단 스킬 자체도 대단히 강력한 효과니까 내가 써먹기에도 좋고, 지금 이걸 보여 주는 것만으로 저 녀석의 성장 한계가 뚫릴 것이다.

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심안을 발동시켰다.

* * *

파에톤 스트롬블라드는 가장 낮은 등급의 헌터였을 때부터 싸움터를 전전하며 흑성 랭크까지 올라온 사람이다.

그런 행동의 근간에는 명문가에서 자라며 익힌 이론을 체화하기 위함도 있었지만, 무인으로서의 자신을 스스로 만들고 싶었던 의도가 더 컸었지.

그래서, 오진환 씨 근처로 붉은색 마력이 올라오자마자.

그녀는 급박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얼빠진 모습으로 그걸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그렇게나 실전을 전전하면서 찾아내고 싶었던, 이상적으로 그리던 ‘정답’이 바로 저기에 있었으니까.

“…….”

대단하다고 느끼기 이전에, 고혹적이다.

머리에서 현상을 분석하기 이전에 그간 전투를 하면서 쌓아 올린 본능이 먼저 반응한다.

저기에 닿기 위한 최적의 ‘형태'를, 고정된 이미지로 추출한다.

‘…어라?’

그리고 그 형태가 어쩐지 대단히 익숙하다는 감상이 머릿속을 두들기는 와중에, 그녀가 쥐고 있는 대검에서 느닷없이 변화가 일어났다.

“우왓.”

대검을 뒤덮고 있던 붉은색 기운이 검 전체를 집어삼키며, 이내 형태가 자기 마음대로 변하기 시작한다.

처음 이 무기를 받았을 때처럼 시커먼 검은색으로.

하지만 파에톤은 본능적으로 뭔가가 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일단 그때는 자루가 이렇게 금색이 아니었거든.’

피식 웃으며 가볍게 뇌까려 보았지만.

지금 검면 전체를 타고 흐르는 이 검은색이 위험할 정도로 매끄러운 광채를 발하고 있다는 점이 그녀를 긴장케 했다.

“야.”

“우왓!”

이번엔 진짜로 깜짝 놀랐다.

어느 순간 지척까지 다가온 오진환 씨가 그녀에게 느닷없이 말을 건 것이다.

바로 앞에서 쉬카펠과 치열한 힘겨루기가 한창인데, 이런 여유를 부릴 수 있다니.

‘…생각해 보면 지금 이 무기 변화도 이 사람 덕분 아닌가?’

그간 그렇게 고생을 해도 꿈쩍을 하지 않던 것이 오진환 씨를 한번 보자마자 한방에 뚫렸었지.

“그거 변했지?”

그리고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무기를 가리키는 것을 보니 그런 결과도 예상하였던 모양이고.

…볼 때마다 대체 뭐 하는 사람인가 싶긴 하다.

“변하긴 했는데…….”

“좋아.”

그렇게 말하면서 그녀의 어깨에 손을 툭 올려놓는다.

“그럼 네가 마무리하자.”

“…뭐?”

“그거 한 번만 쓰면 상황이 다 정리가 될 거거든.”

“아니, 갑자기 무슨…….”

4개 종족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있음에도 아직 저 쉬카펠이라는 마법사는 그럭저럭 쌩쌩해 보였다.

그런데 여기에 그녀가 겨우 한 합을 휘두른다고 달라질 게 뭐란 말인가.

그런 생각을 떠올리고 있었지만.

“내 말 믿어.”

오진환 씨가 씩 웃으면서 다시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너 지금 엄청나게 세니까. 보통 인간은 너랑 상종도 하기 싫을 만큼 셀걸.”

“…….”

굳이 그런 비유를 들어야 할까 싶긴 했지만.

아무튼 이 남자가 자신에게 강한 기대감을 표출하는 것 자체가 그녀로서는 기분이 좋은 일이었다.

“…좋아. 오진환 씨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한번 해보지, 뭐.”

“그래.”

“아, 하지만 이거 방금 변한 거라 아직 익숙하지가 않은데.”

그리고 그렇게 말하자마자, 오진환 씨가 그녀를 와락 껴안았다.

“……?”

잠깐 몸이 굳고.

“……!”

얼굴이 확 달아오르고.

이어서 대체 뭐 하는 짓이냐고 기성을 올리기 전에.

등 뒤에 뭔가 찰칵, 붙는 느낌이 들었다.

“걱정하지 마.”

그렇게 말하며 엄지를 들어 주는 오진환 씨를 보는 것과 동시에.

“내 경험상, 너는 일단 던져 놓으면 어떻게든 되거든.”

몸 전체가 튕겨 나가듯이 앞쪽으로 발사되었다.

“……!”

저 남자가 자신에게 전투기나 사용할 수준의 추진기를 붙였다는 사실을 머리로 어렴풋이 깨달을 즈음, 그녀는 이미 쉬카펠의 지척까지 도달해 있었다.

“…….”

놀란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쉬카펠과 시선이 마주치고, 그녀의 지팡이 끝에서 다시 마력이 끓어올랐다.

이쯤 되면, 오진환 씨를 욕하고 뭐고 하기 전에 본능적으로 해야 할 일이 있기 마련이다.

“…나중에 복수할 거야, 오진환 씨-!”

파에톤이 그렇게 외치며 검을 아래로 내리꽂았다.

그리고.

하늘이 무너져 내렸다.

“…읏!”

척 봐도 심상치 않은 검격에 쉬카펠이 눈을 크게 뜨면서 마력을 순환시켰다.

지금까지 만들어 낸 역장 중 가장 두꺼운 것이 두어 개가 순식간에 근처에 생겨나고.

양쪽에 충돌로 인한 환한 빛이 주변을 휩쓸었다.

* * *

그래서.

그 결과 펼쳐진 게 이거다.

“…….”

“…….”

방금 전에 전장 전체를 휩쓸던 키건의 화살을 수도 없이 보았음에도, 주변에서 피어오르는 정적이 현재 상황을 잘 말해 준다.

뭐, 그도 그럴 게.

그 많은 인원이 죽도록 패는 와중에도 끈질기게 버티던 쉬카펠이, 결국 파에톤의 한 방에 바닥에 처박혀서 꿈틀대고 있었으니까.

마력을 자아내지도 않고 순수한 완력으로 아래로 검을 휘두르기만 했는데.

어둠 방벽을 뚫고, 이 녀석의 방어 술식까지 뚫고, 제법 타격을 입었다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움직이던 녀석에게 한 방에 치명상을 입힌 것이다.

‘기가 막혔지…….’

윤겨울의 최종 티어 무기가 태양을 떨어트리는 무기라면.

이 녀석의 무기는 월드 이터.

거창한 이름답게 말도 안 되는 효과를 이것저것 도배한 무기다.

앞으로 깨어날 능력이야 이것저것 남아있지만, 당장 방금 보여 준 ‘방어 관통 판정’만 해도 쉬카펠을 순식간에 떡으로 만들어 놓을 정도니까.

“…잠깐만, 뭐야 이거?”

자기가 해 놓고도 결과를 믿을 수 없어 멍하니 있는 파에톤의 어깨를 다시 한번 툭툭 두들겨 준다.

그거 봐.

너 지금 뒤지게 세다니까.

“그래서.”

뭐, 아무튼 그건 그거고.

제정신도 못 차리는 쉬카펠에게 다가간다.

여기까지 몰아붙였으면 이 녀석이 나한테 했던 ‘약속’을 진행해도 될 것 같거든.

“여왕님, 예전에 맡겨 둔 건?”

그동안 모든 전투에서 뒤로 쏙 빠져 오들오들 떨고 있던 엘프 여왕님에게 말을 건다.

그 말에 흠칫한 여왕님이 나를 쳐다보았다.

“…어, 그걸 여기서 쓰게? 진짜로?”

“그럼 쓸 거니까 맡아 달라 그랬죠.”

“역시 제정신이 아니라고는 생각했지만…….”

자꾸 쓸데없는 소리가 들리지만, 모조리 무시하며 여왕님에게서 그걸 낚아채 온다.

그리고 그걸 본 파에톤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걸 어디에 쓰려고?”

뜨악하다 못해 반쯤 경멸이 느껴지는 눈치였다.

이해 못 할 것은 없는 게.

느닷없이 ‘목줄’을 꺼내 든다면, 누구나 그런 반응을 보일 것이다.

“어디에 쓰긴.”

그런 건 당연한 것 아닌가.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쉬카펠에게 다가가서 목줄을 채운다.

찰칵, 하고 경쾌한 소리와 함께 채워지는 것이 사이즈도 딱 맞는 것 같았다.

“…….”

“…….”

주변에서 기묘한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는 녀석들이 하나둘씩 늘고 있었다.

“…이봐, 인간들은 저런 취향이 보편적인가?”

장로님,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분명히 말하는데, 이건 절대 엄한 의미가 아니다.

이 녀석이 내게 이전에 한 약속 자체가 이런 내용이라고.

이기는 쪽이 다른 쪽을 ‘노예’로 만들기.

[…다시 들어도 어처구니가 없지만 말일세.]

그러게나 말이다.

나도 이프리트를 잡은 뒤에 이 녀석이 직접 찾아와서 이런 소리를 했을 때는 미친 줄 알았다고.

“야, 일어나.”

하지만 내 입으로 말해 봐야 전혀 효과가 없을 것 같으니, 정신을 잃은 쉬카펠의 볼을 툭툭 두들긴다.

네가 직접 말을 해 줘야 나한테 쏟아지는 이 불편한 분위기가 좀 사그라지지 않겠냐.

“응…….”

그리고 부스스 눈을 뜬 쉬카펠이, 고개를 들어 주변을 쓱쓱 둘러보았다.

자연스럽게 자신의 목에 채워진 목줄부터 발견한 모양이지만.

“어.”

녀석이 멍한 목소리로 자신에 목에 채워진 목줄을 만져 보았다.

뭐, 애초에 본인이 나한테 전달한 물건이니까 못 알아볼 리가 없다.

만약 자신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이걸 채우게 만든다면 그때부턴 충실하게 노예가 되겠다고 약조했었지.

혹시라도 다른 마음을 먹으면 곧바로 죽여야 하니까, 내심 긴장한 상태로 녀석을 바라본다.

녀석이 멍하니 계속 목줄을 만지작거리더니, 이내 주변을 쓱쓱 둘러본다.

몇 분에 걸쳐 표정에 주변 상황을 인지하는 기색이 스쳐 지나간다.

아, 내가 졌구나.

그리고 이 남자가 약속대로 나한테 이걸 채웠구나.

그러더니 갑자기 해야 할 말을 떠올렸다는 듯이 입을 연다.

“어, 나 명패는?”

“…뭐?”

“나 이제부터 노예잖아. 그럼 당연히 당신 거라고 증명하는 명패라도 달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니야?”

“…….”

…약속은 충실히 지킬 모양이다.

하도 담담하게 이런 말을 내뱉고 있는 것을 보니 나도 조금 혼란스럽지만.

적어도 뭔가 수치스러워하거나 분하다는 반응을 보일 줄 알았는데, 마치 선물이라도 받은 것처럼 싱글거리면서 목줄을 만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든다.

“…….”

뭐.

일단 당장 큰 문제가 일어날 기미는 없군.

만약 이 녀석이 정말로 자신의 약속을 충실히 지킬지는 앞으로 조금 천천히 두고 봐야 하고, 진짜 무슨 생각일지도 파헤쳐 봐야겠지만.

저 목줄은 차고 있는 것만으로도 내가 이 녀석에 대한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게 해 주는 물건이다.

실제로 엘프 여왕님에게 맡긴 이유도 그 기능에 대한 검토를 위해서였고, 틀림없이 한번 찬 이상 쉬카펠 정도 되는 녀석이라도 자력으로는 절대 못 벗는다고 판정이 끝났지.

그리고 만약 이 녀석을 정말 내 마음대로 부릴 수 있다면.

‘진짜로, 할 수 있지.’

3만 시간을 갈아 넣으면서도 그 편린조차 볼 수 없었던 ‘해피 엔딩’에.

틀림없이 도달할 수 있다.

“그래서, 첫 번째 명령은 뭐야?”

“…뭐?”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있자니, 쉬카펠이 쾌활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나, 지금 당신 ‘소유’가 돼서 엄청 기쁘거든. 앞으로도 계속 같이 있을 수 있으니까. 첫 명령은 진짜 뭐라도 해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

“응? 아무거나 말해 봐. 지금 이 자리에서 발이라도 핥을까?”

“…….”

아니.

왠지, 뭔가 이거.

진의를 의심하느니 어쩌느니 하기 이전에.

이 녀석, 노예가 되었다는 사실에 엄청 ‘행복한’ 모습인데.

진짜로 발이라도 핥을 것처럼 눈을 반짝이며 다가오는 쉬카펠에게서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는 사이, 주변에서 다시 황당하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안하네. 역시 내가 다른 종족이라서 그런가. 인간들의 풍습은 참으로 이해하기…….”

“아뇨, 장로님. 저건 둘 다 변태라서 그런 거예요.”

그러니까.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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