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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속 구원자가 되었다-103화 (103/135)

103화 거래

협회의 게이트 관측 부서는 기본적으로 항상 바쁜 집단이지만, 지금은 특히나 더 분주했다.

조금 더 눈치가 빠른 사람들이라면 단순히 바쁜 게 아니라 그 기저에 얼어붙은 공포심도 함께 섞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겠지만.

“예상되는 피해 상황은요?”

김태화, 일명 ‘실장’이 떴는데도 거기에 신경 쓰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만 봐도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평소대로라면 친히 행차하시는 것만으로도 주변 사람들이 알아서 설설 기게 할 정도로 권력의 핵심에 있는 인물인데도, 직원들은 당장 거기에 신경 쓸 겨를도 없는 모양이었다.

“…추산이 불가능합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게이트 형태예요.”

긴장된 목소리로 돌아오는 대답을 들으며, 김태화 역시 딱딱한 동작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심지어 EX급 게이트가 열렸을 때도 어떻게든 필요한 데이터를 뽑아오던 인간들이 이런 대답을 돌려줄 정도면 얼마나 규격 외의 사태인지 전달이 되는 느낌이다.

“근처에 대처할 수 있는 인력은… 아닙니다. 이런 종류의 일은 저희가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되겠죠.”

그렇게 중얼거린 김태화가 품 안에서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

감히 자신이 이분한테 마음대로 연락해도 되는지에 대한 죄책감은 항상 느끼고 있다.

그런데도 이런 종류의 돌발 상황에서는 이 사람이 아니면 해결할 사람도 없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오진환 헌터님께 연락하시는 겁니까? 확실히 그분이라면…….”

그 사람의 이름이 언급되자마자 희망감이 생기는 것 같은 주변의 모습이 그런 허탈감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었지만.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

“이분도 사람입니다. 저희가 할 일을 언제까지고 이렇게 부탁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혹시라도 오진환 헌터님이 한계에 부딪히시거나 하면 어떻게 하려고 그렇게 대책이 없으십니까?”

애초에 자신들의 존재 의의는 어떻게든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있는 것이다.

무슨 일이 터질 때마다 이런 식으로 도움을 청하는 것이 하는 일의 전부라면 대체 본인들이 있어야 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그렇게 생각은 들지만, 당장 자신들에게 힘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결국 김태화는 한숨을 푹 내쉬면서 전화기를 들었다.

“예, 오진환 헌터님.”

그리고 그 이름이 언급되자마자 주변을 분주하게 돌아다니던 인원들의 시선이 확 집중되는 것이 느껴졌다.

애초에 이 사람이 나서면 무조건 상황이 반전될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 같은 눈빛들.

글쎄, 그러니까.

이 사람이 대단한 거랑 별개로, 본인들이 왜 여기에 있는지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는 한심함이 더욱 심해졌다.

김태화는 다시 터져 나오려는 한숨을 집어넣으면서 말을 이어갔다.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연락을 드린 것은…….”

[사막 쪽에 게이트 때문이죠?]

“…….”

그리고 이 사람의 정보력에 할 말을 잃는 것은, 지금까지 몇 번을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현상이었다.

“아, 네. 그 건에 관해서 혹시…….”

[아, 그거 방금 제가 처리했어요.]

“…예?”

[제가 방금 혼자 처리했다고요. 사후 처리랑 표본 채취해야 하니까 그쪽 관련해서 사람 몇 명만 보내 주세요.]

“…….”

[네, 그럼 일단 용건은 더 없는 거로 알고 끊겠습니다. 당장은 저도 할 일이 있어서.]

할 말을 잃은 김태화가 멍하니 끊어진 전화기를 붙잡고 있자니, 근처에 있던 인원 중 하나가 급하게 다가와 질문했다.

“뭐, 뭐라십니까?”

“…아니, 그게.”

아마 얼이 빠진 그의 상태를 보고 안 좋은 소식이라도 들은 것이라고 지레짐작한 것이겠지만.

이내 김태화가 설명한 내용을 들은 그 인원도 그와 비슷한 상태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실장님, 조금 전에 저희한테 그분이 한계라도 오면 어떻게 할 거냐고 말씀하셨습니다만…….”

“…….”

“그분한테 도대체 한계란 게 있기는 합니까?”

우리가 그 사람한테 기대를 거는 게 어쩔 수가 없다는 어투였지만.

이번에는 아까와 달리 김태화조차 뭐라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 * *

음.

어쩐지 전화를 받는 김태화 씨의 목소리가 이상하게 안 좋던데.

다음에 만날 때는 선물이라도 하나 들고 가는 것이 좋겠다.

[순수한 의미에서의 선물은 아니겠지…….]

내가 그쪽을 키운다고 해서 그쪽이 안 좋아지는 것도 아닌데, 순수한 의미고 자시고가 어디에 있나.

그렇게 생각하며 조금 전에 치운 어둠의 사도를 내려다본다.

이전에 발카서스를 치웠을 때 입수한 것 같은 검은색 혼이 공중에 떠서 꿈틀거리고 있다.

“이거, 수호령님한테는 익숙한 물건이지?”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 건가.]

“이제 와서 서로 눈 가리고 아웅 하지는 말자.”

[뭐라?]

“수호령님, 솔직히 말해서 나한테 계속 붙어 있는 목적이 있었을 것 아니야?”

그렇잖아.

목적 없이 남을 도와주는 녀석들은 없다.

지금 나한테 붙어 있는 협회도, 용종도, 엘프들도, 그리고 심지어는 다른 주인공 캐릭터들도.

직접적으로 자신들에게 피해가 올 것 같은 ‘사태’를 해결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대안이 나라는 것에 대한 암묵적인 합의에 도달했기 때문에 나한테 협력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봤을 때는, 이 사람도 커다란 틀에서는 거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거, 아무리 봐도 이것들 잡는 데에 특화된 것 같은데.”

쉬카펠은 ‘순리대로 돌린다’라고 두루뭉술하게 표현하기는 했지만, 솔직히 이런 물건이 어떤 경위로 만들어졌는지를 따라간다면 아주 간단한 결론이 나온다.

그냥 대‘심연’ 최종 병기로 제작됐다는 게 가장 합리적인 추론이지.

그런 면에서.

생전에 그런 목적으로 제작된 물건을 썼다는 인간이 이 ‘심연의 조각’에 익숙하지 않을 리가 없다.

질리도록 봤을 것이고, 질리도록 활용해 봤겠지.

“그렇다면 이걸 어떻게 정화해서 어떻게 써먹는지도 이미 알고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애초에 인장 보유자였잖아, 당신.

이미 이것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쉬카펠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인장과 심연은 떼려야 떼어 놓을 수 없는 관계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건가.]

알면서.

이 사람은 내 머릿속을 마음대로 읽을 수 있다.

다만 나름대로 신사적인 면을 발휘해서 내가 이 사람에게 ‘보여 줘도 상관없다’라고 생각하는 것만 취사선택해서 읽고 있기는 하지만.

적어도 지금만큼은 내가 말하지 않은 부분까지 훤히 꿰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

“알려 주기 싫어하는 건 나도 아는데, 수호령님.”

그렇게 중얼거리며 심연의 조각을 집어 들어 미리 준비해 온 마력 용기에 집어넣는다.

“그쪽 과거를 나도 슬슬 좀 알아야 한다 이거지.”

‘심연’을 정화해서 써먹는 것 자체는 게임 안에서도 가능하긴 하지만.

그건 딱 한 번 이벤트성으로 제시되는 연출성 기능에 가깝다.

내가 원하는 것은 그 방법을 알아내서 주도적으로 내 능력으로 써먹는 것이고.

그리고 수호령님은 이미 그 방법을 알고 있을 가능성이 크며, 그 이야기를 들으려면 결국 이 사람이 생전에 뭐였는지로 이야기가 빠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난 당신이 직접 말해 줬으면 좋겠어.”

더미 데이터로 취급되는 수호자 직업답게, 이 사람은 게임 지식만으로는 알 수 없는 공백투성이의 존재다.

그렇다면 결국 본인의 입으로 들을 수밖에 없는 문제고.

[…….]

지금까지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이 사람의 의사를 존중해서 내버려 두던 내가 이렇게까지 직접적으로 찌르고 들어오는 이유는 이 사람도 알고 있겠지.

이제 시간이 얼마 없다.

[조금만 유예를 주겠나.]

지금도 말은 그렇게 꺼냈지만.

앞으로 어떻게 굴러갈지는 나도, 이 사람도 이미 알고 있다.

* * *

비록 한 가지 물건에 깃든 지박령이라지만, 수호령 정도로 오래 묵게 된다면 물건에서 조금 멀리 떨어져 돌아다니는 것도 가능하다.

실제로 지금도 오진환에게서 한참 떨어져 공중을 거니는 중이었으니까.

이전에도 심심해지거나 생각을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으면 종종 하던 행위였고, 지금의 경우는 후자에 해당했다.

[…과거라.]

자신으로서도 한참을 고민하게 할 화제다.

지금까지 그 남자 곁에 붙어서 지켜본 덕분에 그 능력과 사상에 대해서는 알고 있고, 덕분에 앞으로 닥쳐올 사태를 해결하려면 오진환 말고는 대안이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자신이 예전에 ‘무엇’이었는지 알려 주는 것은 또 별개의 문제다.

[…해야겠지.]

하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다.

다만 시기는 조금 늦추고 싶을 뿐.

그렇게 생각하면서 둥둥 떠다니고 있자니.

누군가가 자신을 휙 낚아채는 것이 느껴졌다.

[……!]

수호령이 알기에 자신을 이런 식으로 다룰 수 있는 인간은 주변에서 한 명밖에 없다.

고개를 들어 올리자, 아니나 다를까 영능력자 소녀가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웬만해서는 몸에서 떼어 놓지 않는 갑옷도 지금은 벗어 둔 상태였다.

“잡았어.”

그리고 그 소녀 혼자만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데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근처에 있는 것은 그로서도 익숙한 면면들이다.

그 취향 고약한 마법사에, 오진환과 친분이 깊은 여검사 두 명.

그리고 그 여자들이 자신을 똑바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 역시 금방 알 수 있었다.

“이게 그… 오진환 옆에 항상 붙어 다니는 영혼이라 그거지? 생각보다 귀엽게 생겼는데?”

윤겨울이 수호령을 콕콕 찌르면서 그렇게 말했다. 귀여운 애완동물이라도 발견한 말투였다.

아마 대단히 강력한 영능력자인 니샤가 무슨 수를 써서 모두에게 자신을 보이게 만든 것이 틀림없었다.

[…이게 무슨 짓인가?]

보기야 여러 번 보았지만, 이런 식으로 대면하는 것은 처음이라 의도하는 바를 전혀 모르겠다.

“아, 다른 게 아니고.”

쉬카펠이 씩 웃으면서 수호령을 쳐다보았다.

둥글게 휘어 있는 눈매가 상당히 위험해 보였다.

“우리가 오진환한테 뭔가를 할 계획인데, 거기에 당신도 좀 협력해 줬으면 좋을 것 같아서.”

[…협력?]

그리고 쉬카펠이 계획을 설명했다.

[…….]

할 말을 잃어버린 수호령이 시선을 휙 돌려 파에톤을 쳐다보았다.

그나마 이 자리에 있는 사람 중에서는 가장 상식적인 사람일 것 같아서 그쪽으로 SOS 사인을 보낸 것이지만, 귀까지 빨개진 상태로 말없이 시선을 돌리는 것을 보니 이쪽도 이미 넘어간 상태인 것이 틀림없었다.

그제야 수호령은 니샤가 왜 갑옷을 벗고 있는 상태인지 깨달았다.

미네르바는 이런 짓을 허락할 리가 없었을 테니까.

[…뒷감당은 어떻게 하려고 그러나?]

“그건 걱정 안 해 줘도 괜찮아.”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쉬카펠을 보니 뭔가 수가 있는 것은 확실했지만.

수호령으로서는 온전히 협력을 부탁한다고 확언할 수가 없는 내용이었다.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가기 전까지는.

[…그거 말일세.]

“응?”

단박에 거절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고분고분한 태도로 입을 여는 수호령의 모습에 모두의 눈이 동그래졌다.

이어서 흘러나온 말에는 그런 표정이 더욱 심화하였다.

[제대로 성공한다면, 그 남자가 옛날에 뭐 하던 인간인지도 알 수 있겠지. 그렇지 않나?]

자신이 머릿속으로 파고들 수도 있겠지만, 그건 자신으로서도 꺼려지는 방법이다.

그럼 확실한 방법은 그 남자의 입에서 직접 듣는 것이다.

자신의 과거와 그 남자의 과거.

수호령이 생각하기에는 꽤 공정한 거래였다.

“그… 렇겠지?”

[그럼 됐네. 나도 협력하지.]

“…….”

모두가 침묵에 빠질 정도로 빠른 결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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