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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속 구원자가 되었다-125화 (125/135)

125화 근원 (3)

밟아야 하는 과정은 간단하다.

흉갑에 연결되어 있는 완갑 두 파츠에 모두 마력을 흘려보낸다.

그리고 그렇게 이어진 마력 패스를 따라 내 팔에 새겨져 있는 인장과 똑같은 문양이 수호자의 무구 전체에 떠오른다.

여기까지만 해도 이미 ‘받아들일’ 준비는 완료된 거지.

“…단어가 쓸데없이 의미심장하네만.”

그렇게 투덜거린 수호령님이 금세 내 쪽으로 접근해서 품에 풀썩 안긴다.

그리고 그 상태 그대로, 이 사람을 번쩍 들어 올린다.

마치 연인끼리 포옹하는 것 같은 자세에 수호령님의 얼굴에 떨떠름한 기색이 전면으로 걸려 있었다.

음.

예전에 아무 사람도 없는 곳에서 연습할 때도 부끄러워서 죽으려고 하더니, 지금은 비록 로키 한 명이나마 관객이 있는 상태다.

솔직히 나도 아예 안 쪽팔린 건 아니고 말이지.

그러니까 분위기를 풀기 위해 적당한 농담이라도 해 보자.

“수호령님.”

“뭔가.”

“다음번 합체 전까지 살 좀 빼자.”

“…….”

좋은 분위기 환기였다.

수호령님의 얼굴에 피어오르는 살기 어린 표정은 일단 무시한다.

-!

그리고, 곧바로 수호령님의 전신에 환한 빛무리가 깃들었다.

이어서 마치 그 빛무리에 녹아드는 것처럼 이 사람의 몸을 이루고 있는 형체가 흐물흐물 무너진다.

순수한 에너지 형태처럼 변한 수호령님이 곧바로 인장을 발하고 있는 무구에 스며들고, 이어서 폭발적인 마력을 펌핑해 내기 시작한다.

글쎄.

게임 고인물 입장에서 이런저런 버프기는 많이 써 봤는데 말이야.

그중에서도 수호자의 무구 3개를 모음으로써 얻은 이 새로운 [기술]은, 도저히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그거야.

나같이 스펙만 따지면 초인으로서 어중간하기 짝이 없는 놈도 실시간으로 반신에 가깝게 만들어 주는 기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 몸을 따라 맥동하며 흐르는 마력의 기운이 그야말로 심상치 않다.

따지고 보면 지금도 한 대 제대로 맞으면 죽는 인간인 건 변함없지만, 그럼에도 온몸에 넘쳐흐르는 기운이 거의 전능감에 가까운 기분을 느끼게 한다.

[그렇다고 방심은 금물이네. 가장 방심하기 쉬운 상태가 그런 기분이 들 때니.]

음.

머릿속에 웅웅 울리는 수호령님의 말을 듣고 있으니 그런 생각도 그냥 한 번에 날아간다.

[…무슨 의미인가?]

뭐라고 해야 되나.

몸을 얻은 상태보다 영혼 상태로 내 뒤에 붙어 있는 걸 본 기간이 압도적으로 길었잖아, 당신.

[그렇지.]

그래서, 이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나 예전에 대충 스치면 죽는 상태였을 때가 새록새록 기억난다는 거지.

아, 옛날이여.

[…….]

세상 쓸데없는 소리를 한다는 수호령님의 반응에 피식 웃으며, 눈앞에 꿈틀거리는 거대한 육편 덩어리를 노려본다.

자기 혼자서 계속해서 분열하고 파괴되고 또 재생성하는 모습이 그로테스크하기 짝이 없다.

그러니까, 신속하게 저런 비참한 일은 그만두게 하도록 하자.

심안 발동.

스킬의 효과로 눈앞에 있는 물체의 약점이 훤히 눈에 들어온다.

“…미치고 환장할 수준이긴 하네.”

맷집으로만 따지면 지금까지 두들겨 온 보스 캐릭터들과 비교해도 그걸 아득히 상회하는 수준이다.

약점이 보인다고는 해도, 수십가지 지점을 한 번에 파괴해야 유효할 것 같다는 결론이 혀를 내두르게 만든다.

하지만.

“할 수 있지?”

[할 수 있네.]

어디를 어떻게 때리면 무슨 결과가 나올지 예언처럼 머릿속으로 계산이 완료된다.

수호령님을 몸 안에 들이는 것은 단순히 신체 능력뿐만이 아니라 두뇌가 하나 더 있는 것 같은 수준의 복합적인 사고 능력을 추가로 쥐여 준다.

-!

그리고.

이성은 없는 것 같지만 적의에는 민감하게 반응한 모양인지.

육편 덩어리가 주변으로 자신의 몸체 일부를 부풀리기 시작했다.

“야, 위험해!”

위층에서 지켜보고 있던 로키가 식겁하여 외치는 것이 들려왔다.

뭐, 이것저것 많이 맞아 본 녀석인 만큼.

지금 저게 내포하고 있는 위험성에 대해서도 순식간에 눈치챈 모습이다.

실제로도 내가 느끼기에도 게임이었으면 저건 즉사급 위력을 자랑하는 공격이다.

저기에 먹혀서 저 덩어리의 일부가 되는 결말만 그려지지만.

“…….”

머리가 굴러간다.

나 스스로도 적응이 안 되는 속도로.

시간의 흐름이 느껴질 정도로 신경이 가속되고, 머릿속에 흐르는 사고의 격류도 덩달아 빨라지지만.

그것 이상으로 전신에 들어 찬 에너지가 몸을 먼저 움직이게 한다.

태어나서 처음이네.

생각이 몸을 못 따라 가는 거.

그리고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가 그런 생각을 할 만큼의 효과를 보이는 기술이니만큼.

그 효과는 절대적이다.

발. 다리. 허리. 어깨. 팔.

순차적으로 마력을 통과시키면서 주먹 끄트머리에서 폭발시킨다.

몸을 따라서 마치 마그마라도 분출되는 것 같은 기세로 막대한 에너지가 뿜어져 나간다.

그리고.

오래되고 버려진 연구소에.

성스럽다고 표현해도 될 만한 섬광이 자리했다.

* * *

“…와우.”

그래서.

솔직히 나도 일격에 처리할 거라고 말하기는 했는데 말이야.

“이건 좀 너무하지 않나…….”

그냥 주먹질을 한 건데.

그 주먹으로 친 것도 아니고 그냥 그런 동작으로 마력을 발산시킨 것뿐인데.

전방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그야말로 깨끗하게 ‘지워져’ 있었다.

그냥 파괴되었다, 부서져 있었다. 그 수준이 아니라.

마치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처럼 휑한 공간만이 그쪽에 있을 뿐이다.

“…….”

위층에서 할 말을 잃은 로키가 멍하니 이쪽을 내려다보는 게 느껴진다.

“…뭐야 그거? 방금 너 뭐 한 거야?”

“주먹질했잖아.”

“이건 방사능만 없다 뿐이지 전술핵이라도 터진 수준인데…….”

과장이 심하다… 라고 말해 주고 싶지만.

솔직히 지금 내가 한 짓을 보면 나도 적응이 잘 안 되거든.

“너 대머리 되는 것 아니야?”

“…뭐?”

“아니, 펀치 한 방으로 이런 짓거리 할 수 있는 놈은 대머리라도 되야 할 것 같아서.”

“…….”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뭐, 그나저나.

게임 안에서도 등장하지 않던 기술이고, 실전에서 써먹는 것도 처음이라 처음엔 어떻게 되려나 싶었는데.

한번 써 보니까 그래도.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

그사이에 수호자의 무구 바깥으로 빠져나와 있던 수호령님이 팔짱을 끼고 나를 노려보았다.

의미심장한 침묵을 이쪽으로 잔뜩 보내고 있지만, 피식 웃으면서 내버려 둔다.

인간아.

솔직히 머릿속으로 연결되어 있으니 아예 눈치 못 채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한테는 입 다물고 있어줬으면 좋겠다.

그래야 멋이 살잖아?

“그래서, 자.”

아래층까지 내려온 로키에게, 존재하던 모든 것이 완벽하게 지워진 풍경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을 손가락으로 가리켜 준다.

아까와 비교하면 주먹 크기로 쪼그라든 육편 덩어리의 조각이 아직도 살아서 맥동하고 있었다.

와, 그걸 얻어맞고도 살아남긴 하네.

솔직히 때리면서 이것도 안 남으면 어떻게 할까 걱정하긴 했는데.

“…뭐 어쩌라고?”

로키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내가 집어 올린 육편 덩어리의 조각을 바라보았다.

어허.

어쩌라고라니.

이거 얻겠다고 아까 전에 그 고생을 한 건데.

“어쩌긴.”

씩 웃으며 말해 준다.

“먹어야지.”

“…….”

천 마디 만 마디 욕설을 표정으로만 쏟아 내고 있는 로키에게, 이걸 먹으면 일어날 일들을 장황하게 설명해 준다.

이래저래 말은 길었지만.

결론은 다음과 같다.

“니가 이거 안 먹으면 세상이 망해.”

“…비약 한번 심하네, 이 새끼…….”

그렇게 말은 하고 있지만, 이 녀석도 결국에는 어느 정도 넘어온 느낌이다.

세상 살기 싫다는 표정으로 그걸 받아 드는 로키를 보며, 나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글쎄.”

옆에서 보고 있던 수호령님이 피식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그대도 조심하지 않으면 저런 고깃덩어리가 될 수도 있다 생각하네만.”

“…무슨 뜻이야?”

“몇 등분으로 쪼개질 수도 있다는 거지. 주변에 있는 이성들한테.”

“…….”

섬뜩한 소리 좀 그만해라.

* * *

그래서.

아무튼 수호자의 무구를 쓰면서 느낀 점은.

생각보다 기초 체력을 단련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

물론 지금까지 딱히 몸 쓰는 일 가지고 어려움을 겪은 적은 없었지만, 내가 미리 알고 있는 상황에서 알고 있는 적을 정해진 공략법으로 상대하는 것과 완전히 새로운 상황에서 적을 마주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지금까지는 아주 잘해 왔고, 최종 스테이지까지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면서 끌고 왔지만.

여기서 다 엎어져 버리면 말짱 꽝이니까.

아침부터 평소에는 절대 안 하던 운동을 하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다.

“헥… 케에엑…….”

그리고 시체와 인간의 중간 기로쯤에 서 있는 내 모습을 보고, 옆에서 페이스 메이커 역할로 같이 뛰어 주던 윤겨울이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평소 훈련 코스의 절반 왔는데…….”

참고로 이 녀석은 이게 ‘몸풀기’라는 폭언을 아무렇지도 않게 입에 담은 참이다.

뭔가 목소리에서 전해지는 기색도 나를 한심하다거나 깔보려는 모습이 아니라, 진짜로 이 정도 운동에도 사람이 이 정도로 맛이 갈 수 있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당황한 모습이고.

“…히, 힘들면 내가 부축해 줄게.”

그렇게 말하며 내 겨드랑이 안쪽으로 몸을 꼬물꼬물 밀어 넣으려는 것이 무슨 의도인지는 눈에 훤히 보이지만.

이 녀석, 최근에는 의도적으로 밀접 접촉을 늘리려는 느낌이란 말이지.

“괜, 찮아… 그런 식으로, 도와주면, 늘, 체력도 안 늘어…….”

숨넘어가기 직전인 상태로도 어떻게든 거절하자, 녀석의 얼굴에 아쉽다는 표정이 대놓고 떠올랐다.

…이젠 이 녀석도 그렇고, 다른 녀석들도 그렇고.

감추려는 시도도 아예 안 한다.

“그런데, 갑자기 체력 훈련은 왜 하는 거야?”

“사람이 운동하는 게 특별한 일은 아닌데.”

“응, 너한테는 특별한 일 같은데. 맨날 뒤에 앉아서 이래라저래라 지시하는 거 좋아하는 음흉한 사람이잖아, 너.”

“…….”

못 하는 말이 없네.

피식 웃으며 대답을 회피하고 있자니, 윤겨울이 팔짱을 끼고 말없이 이쪽을 바라보았다.

“있잖아.”

“응?”

“너 뭔가 우리한테 숨기고 있지?”

“…….”

순간적으로 가슴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글쎄.

표정 관리나 다른 건 전부 완벽했을 텐데.

“뭐, 간단한 거지.”

옆에서 말없이 내 운동 루틴을 따라오고 있던 수호령님이 한마디 거들었다.

“하루 종일 그대만 보고 있으니까. 아주 간단한 차이점도 금방 알아차리는 거라네.”

“…아니거든요.”

“어허, 이 남자가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고 몰래 살금살금 아침에 나오는 걸 귀신같이 따라붙은 처자가 그런 말을 해도 설득력이 안 생긴다네.”

“…당신, 원래 그렇게 말 많은 사람이었어요?”

윤겨울이 툴툴거리는 사이, 균열이 생길 뻔한 표정을 간신히 재정비한다.

위험한데.

이 녀석도 그렇고, 다른 녀석들도 그렇고.

최근 들어서는 거리감이 너무 가까워졌다.

“…….”

이래서는 마지막에 힘들 텐데.

“…딱히 감추는 것 없어.”

그래서, 그냥.

그런 말만 남겨두고 다시 몸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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