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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속 구원자가 되었다-132화 (132/135)

132화 외로운 길 (5)

엔진음.

심연의 존재 안쪽까지 파고드니, 그야말로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심지어 다른 녀석이 숨 쉬는 것조차 천둥처럼 들릴 정도니 오죽할까.

“…진짜 아무 것도 없네.”

키건이 그렇게 중얼거리며 조종석 바깥의 창문을 바라보았다.

녀석 말대로, 안쪽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 암실에 들어오더라도 이 정도로 깜깜하지는 않겠지.

“예전에 쉬카펠 요새에 쳐들어갈 때 있잖아. 그 근처에 깜깐한 것들로 가득 차 있던 것 기억해?”

“그랬었지?”

“이 녀석 내부가 통째로 그거야.”

그 말을 들은 로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질문했다.

“그런데 그거, 차원의 틈새니 뭐니 하지 않았어? 어떻게 생물체 내부가 그런 걸로 이루어져 있을 수 있는데?”

타당한 질문이지만.

간단하고 무시무시한 답변으로 설명이 가능했다.

“차원을 여러 개 통째로 먹어 치웠으니까.”

“…….”

괜히 물어봤다는 표정으로 입을 다무는 로키를 보고, 피식 웃으면서 창밖을 내다본다.

예전에도 설명했던 사실이지만, 차원의 틈새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다.

과학 법칙이 적용되지 않으니 중력도 없고, 빛도 없으며, 산소도 없고…….

하여간 맨몸으로 뛰쳐나갔다가는 어떤 방법으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위험한 공간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가장 먼저 챙겨 온 산소통부터 주변에 돌린다.

다른 건 몰라도 이게 없으면 활동도 아예 안 될 테니까.

“…대장? 이거 2시간분밖에 없는데?”

산소통을 받아든 키건이 그렇게 말하자, 제대로 본 거라며 고개를 끄덕여 준다.

“그거면 충분해.”

“…뭐?”

“그 안으로 끝나.”

그 시간 이상으로 시간을 끌 이유도 없고.

그렇게 말하며 사용법을 몰라 허둥거리고 있는 니샤의 입에 호흡기를 채워 준다.

“…어떻게 하려고? 그 정도로 짧은 기간 안에 이 커다란 걸 해치우겠다니.”

“가장 간단한 것부터 시작하자.”

“간단한 것?”

“손님맞이지.”

-!

-!!!!!!!

그렇게 말을 끝내는 것과 동시에, 주변에서 험악한 괴성이 들려왔다.

아까 전에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던 검은색 덩어리들이 훨씬 진한 색으로 뭉쳐져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제대로 된 형체는 없었지만 뿜어져 나오는 적의만큼은 몸속에 있는 피 전체가 얼어붙는 느낌이 들 정도로 흉흉했다.

‘…좆같네.’

보자마자 PTSD가 올라올 것 같다.

최종 보스전도 최종 보스전인데, 최종 보스전 직전에 펼쳐지는 이 특수 스테이지에서의 전투도 나로서는 그야말로 토악질이 올라올 만큼 안 좋은 기억 투성이인 스테이지다.

어떻게든 어떻게든 다른 캐릭터들을 살려서 여기까지 데리고 와도, 지금 달려드는 저놈들의 스펙은 진짜 미친 수준이거든.

여러 차원을 통째로 먹어 치웠다는 설정에 걸맞게 거의 모든 공격에 강력한 저항을 가지고 있고, 생명력도 끈질기며, 그런 주제에 이쪽에는 항상 즉사급의 공격을 날려 댄다.

최종 보스로 넘어가기도 전에 이쪽에서 고배를 마신 게 몇 번인지 셀 수도 없을 정도지.

원작 기준이라면 아마 지금 지상에서 분투하고 있을 윤겨울과 파에톤까지 이 자리에 있었더라도 저것과 전투했다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말이야.’

그건 ‘내가’ 이쪽 세계에 본격적으로 개입하기 전의 이야기고.

지금은 입장이 좀 다르거든.

일단 내 존재는 걸러 놓고서라도.

내가 피와 땀을 퍼부어서 키워 낸 주인공 캐릭터들도, 원작 기준으로 보면 말도 안 되는 성장을 이뤄 낸 상태다.

“키건.”

내 말을 듣자마자 눈치껏 옆에 놓인 수트 케이스를 집어 든 키건이 만면을 사용해 씩 웃었다.

이전에 현자의 돌을 써서 만든 활에 새로운 케이스를 씌우고, 장로가 개발한 각인을 통째로 박아 넣은 물건이다.

당연히 쉬카펠의 요새에서 쐈던 때보다 훨씬 위력이 향상된 상태다.

당장 활을 챙기고 기체 위쪽으로 올라가는 키건의 얼굴에 걸려 있는 미소가 그걸 증명한다.

“하긴, 대장이 마지막이라고까지 했는데…….”

키건이 마력을 투사한다.

윤겨울의 마력 회로는 정갈하고 반듯한 느낌이고, 파에톤의 마력 회로는 투박하고 난폭한 느낌이면.

이 녀석의 마력 회로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날카롭다.

최종 성장에 도달한 궁수의 마력은 세계관 안에서 흔히 물에 비유된다.

검사가 뭐든지 두 동강 낼 수 있다면, 궁수는 어디에든지 스며들어서 관통할 수 있으니까.

-…….

기화되어서 피어오르듯이 마력이 주변으로 번져 나간다.

얼어붙을 것 같이 싸늘한 마력이 이내 화살의 모양을 갖추더니 이내 활 끝에 걸린다.

“…그래도 아예 활약도 못 하고 퇴장하면 너무 슬프잖아.”

그런 말과 함께, 녀석이 활 시위를 놓았다.

“…미친 씨팔.”

나도 모르게 보자마자 욕설이 새어 나왔다.

아무리 원작 기준 최종 성장은 한참 전에 찍어 놓았고, 그 이상으로 스펙을 부풀려 줄 장비도 챙겨 줬다지만.

이건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

섬광이 공간을 찢어 놓았다.

분명히 이 녀석이 손에 붙잡고 시위를 당길 때까지는 화살의 형태를 취하고 있던 마력이, 활 바깥으로 벗어나자마자 포격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무언가로 변화한다.

각인에 담긴 회로를 통과하며 성질이 변한 마력이 이쪽으로 달려오던 검은색 덩어리들을 휩쓸었다.

이거 말이야.

솔직히 이미 화살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궤변 아닌가.

쉬카펠과 싸울 때도 거의 공성 병기에 준하는 수준의 위력을 보여 주긴 했지만, 이건 거의 휴대용 전략 병기라고 해도 믿을 만한 위력이다.

그리고 그런 평가가 부끄럽지 않게, 그 일격만으로 이쪽으로 달려들던 검은색 덩어리들의 숫자가 줄어든 것이 육안으로도 확인 가능할 정도였다.

‘대부분의 공격에 면역이라고는 하지만…….’

이 녀석들 전용으로 내가 짜 맞춰 온 ‘속성’에 대해서는 예외다.

말하자면 내가 사용하는 수호자의 무구에서 따온 열화 카피판이라고 해도 좋겠지만, 그럼에도 이 녀석들을 상대하는 데에 발휘하는 효과는 대단히 뛰어나다.

실제로 아무리 살벌한 위력으로 날아간 화살이라고 해도, 중간에 여러 갈래로 꺾여서 녀석들을 타격했음에도 한 발에 한 놈씩은 무조건 죽어 나가는 모습이었으니까.

---!!!!!!

하지만, 그럼에도 저쪽의 기세는 꺾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키건이 쏟아 낸 공격 이상의 물량으로 분열하며 계속해서 달려든다.

전방위로 보이는 모든 곳에서 득달같이 접근하는 모습은 소름 끼치는 걸 넘어서 정신을 아득하게 만들 수준이다.

“어라, 큰일인데.”

키건이 그렇게 말하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뭐.

궁수라는 직업 특성상, 한 번 전부 쏟아붓고 나면 다음 번 공격까지 조금 틈이 생기니까.

이 녀석이 말한 것처럼 지금이 최대 위기인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녀석이 전혀 위기감을 못 느끼는 이유가 있거든.

“…미네르바.”

[언제든지요, 니샤.]

검은색 덩어리들이 내뿜는 괴성 속에서도 똑똑히 들리는 목소리가 조용하게 울려 퍼졌다.

이윽고 일행이 타고 있는 기체 전부를 감싸는 흰색 방벽이 만들어진다.

글쎄.

게임 안에서 표기되는 니샤의 직업은 틀림없이 마녀일 텐데.

방벽에서 풍겨오고 있는 은은하고 포근한 느낌은 전혀 사악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이 녀석이 영국에서 잠시나마 성녀라고 불렸던 것이 타당한 별명으로 느껴질 정도니까.

[헤, 이런 일도 꽤 오랜만이네. 안 그래, 후배?]

[…선배님께는 뭐든 그렇지 않습니까?]

미네르바 외의 다른 성기사 두 명의 목소리도 이어서 들리고, 또 다른 영기 둘이 이미 생성된 방벽 뒤에 붙어서 더욱 보강된다.

추가적으로 이전에 얻었던 원혼의 영기까지 붙고 나자.

귀가 찢어질 것 같은 괴성을 내뿜고 있는 검은색 덩어리들이 기체에 도달했다.

하지만.

“…시끄러워.”

니샤가 한번 더 읊조린다.

“스승님 앞에선, 정숙.”

그리고.

실제로 그 말이 이루어졌다.

----!!!

---!

--

-“…….”

‘갈려 나간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냥 부딪히기만 해도 이쪽을 손쉽게 짜부라트릴 수 있는 검은색 덩어리들이.

니샤의 방벽 위에 부딪히는 것과 동시에 소멸해 간다.

원작 게임 안에서 나를 그토록이나 괴롭혔던 것에 비하면 허무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쉽게 분쇄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와, 아니.

내가 컨트롤할 땐 아군이 쟤네한테 계란으로 바위 치는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저쪽이 강철 벽에 달려드는 유리조각들 같은 느낌이다.

상황이 완전히 역전됐군.

“호흡 좋았고.”

그리고 니샤가 그렇게 시간을 벌어 준 사이, 시위에 또 다른 화살을 매긴 키건이 다시 활을 들어 올렸다.

다시 한번, 섬광으로 이루어진 포격이 전방위를 휩쓸었다.

한 발 쏠 때마다 한 방향이 휩쓸려 나가고, 재장전하는 시간은 니샤의 결계가 벌어 주고, 다시 한 발 쏴서 다른 방향을 정리하고.

차원을 통째로 위협할 수 있는 미증유의 위협이, 고작 두 명의 콤비 플레이에 통째로 지워지고 있었다.

‘…내가 잘 키우긴 했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옆에서 수호령님의 시선이 느껴진다.

팔짱을 끼고 조용히 이쪽을 쳐다보고 있는 모습이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잔뜩 쌓여 있는 모양새다.

‘우리는 아무 것도 안 해도 되는 건가?’

뭐 그런 뜻이겠지.

윤겨울도 그렇고, 파에톤도 그렇고, 키건과 니샤도 그렇고.

내가 이 스테이지가 시작하기 전에 ‘나는 아무것도 안 할 거다’라고 선언한 게 충실히 이루어지는 것이 대단히 불만스러운 모습이었지만.

진짜로 우리는 아무 것도 안 할 거다.

아니.

아무 것도 안 해야만 한다.

그래야지 이 뒤쪽에서 활동할 수 있으니까.

“…….”

심연의 존재는 이 비틀릴 만큼 비틀린 지랄 맞은 망겜에서도 최고의 망겜 수치를 갱신할 만큼 사기적인 놈이다.

지금까지 내가 준비해 온 것들도, 분명히 그 녀석한테는 통하지 않을 확률이 높지.

“…….”

하지만.

오히려 그런 놈이기 때문에, 별다른 준비를 하지 않아도 반드시 먹히는 것이 있다.

내가 손에 쥐고 있는 것은 아주 작은 비수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먹힌다.

아주 작기 때문에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찔릴 테고.

그 날에 발라져 있는 극독에도 대처하지 못할 테니까.

“…그렇다면야.”

그렇게 중얼거린 수호령님이 이내 고개를 돌리고 눈을 감았다.

어디 한번 생각한대로 끝까지 밀고 나가 보란 뜻이겠지.

“뭔데 갑자기 혼잣말이야?”

그렇게 중얼거리는 로키에게 산소통 하나를 던져 준다.

“…엥? 이건 뭐야?”

“여벌 산소통이잖아. 보면 모르냐.”

“아니, 그러니까 그걸 나한테 왜 주냐고.”

“필요하니까 주지.”

로키가 눈살을 찌푸렸다.

“2시간만에 끝난다며?”

“아, 그건 쟤네들 얘기.”

그렇게 말하며 아직도 열심히 전투에 매진 중인 키건과 니샤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우리는 연장전 뛰러 가야지.”

“…뭐?”

그렇게 말하는 로키의 허리를 한쪽 팔로 감싼다. 지금은 소녀의 체형이라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나머지 팔에는 수호령님을 장착.

“…사람을 장비처럼 말하지 말게나.”

그렇게 투덜거리는 목소리와 로키의 의아한 신음을 들으며, 키건과 니샤가 잔뜩 청소해 준 덕분에 훤하게 뚫린 아래쪽을 바라본다.

잘 보인다.

‘심장부’가.

엔딩까지 남은 단 한 걸음이.

“좋아.”

그 말만 남기고.

의문에 이어 경악을 흘리는 키건과 니샤의 표정을 시야 바깥으로 흘리면서.

난 아래로 뛰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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