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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했더니 신이 되었다-28화 (28/760)

28화 각자의 사연 (4)

[그렇겠지.]

유지한이 살인의 경험이 있을 거라 생각해서 물어본 게 절대 아니었다.

몬스터를 죽이는 것과 사람을 죽이는 건 엄연히 다른 문제였다.

유지한이 유리창 너머로 눈을 돌렸다.

나도 따라서 창문을 바라봤다.

창문 너머의 날이 무척 좋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운동장에 내리쬐는 오전의 햇살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그러고 보니.’

학교 다닐 때 제대로 창밖을 본 기억이 없었다.

고개를 숙인 채 나무 책상을 배경으로 공부를 했던 그것밖에 없다.

그렇다고 찐따 뭐, 이런 건 아니고.

나도 친구는 있었거든?

이름은 기억이 안 나긴 하지만.

그때 소환만 안 됐으면 즐겁고 행복한 대학 생활을 즐기고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누가 열심히 공부했겠냐.

유지한의 덕분인지는 몰라도 나 역시 아주 잠깐 회상에 빠졌다.

유지한이 창문에서 내가 앉아 있는 칠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떻게 하면 되는데?”

[사람을 죽이는 것과 몬스터를 죽이는 건 엄연히 달라. 그건 각오해야 해.]

“살인하지 않고 위로 올라갈 방법은?”

[없을걸.]

“그럼 됐어. 각오하고 있었으니까.”

유지한이 주먹을 꽉 쥐었다.

흔들리는 눈동자에서 마치 올 게 왔다는 눈빛을 읽을 수 있었다.

[정말 괜찮겠어?]

내 목소리에 책상에 팔을 괸 유지한이 고개를 숙이며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안 괜찮으면 어쩔 건데?”

[왜 또 신경질이야?]

“신경질이 아니라……. 제길, 안 괜찮아. 안 괜찮은데 그냥 괜찮다고 하고 넘어가.”

마음이 복잡한지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헷갈리고 있어 보였다.

유지한이 주먹을 꽉 쥐며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언젠가 해야 할 일이라는 건 알고 있었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빨라서 당황했을 뿐.”

지한도 로비에 있는 녀석들이 괜히 사람을 죽이는 데 익숙해진 게 아니라는 것 정도는 짐작하고 있는 것 같았다.

[죽은 자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마.]

“…….”

[살아남는 것만 생각해. 살고 싶다면서?]

“알았다고. 잔소리는 이제 됐으니까 빨리 설명이나 해.”

유지한이 더 듣기 싫다며 인상을 찌푸렸다.

나는 진정이 된 지한을 붙잡고 3층에 관해 설명했다.

* * *

이것은 나 유지한의 이야기이다.

[3층으로 이동합니다.]

[암살]

층수 : 3층

수도에 방문할 예정이었던 당신은 용병 길드로부터 또 다른 의뢰를 받습니다. 지역 마스터는 열차에 탑승한 이후 2등 칸의 bar에서 ‘블루 라군’을 시키면 된다고 말합니다.

언제부터 이런 식으로 의뢰를 받았는지 알 수 없다며 투덜거리며, 수도행 열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보상 : 공적치 5,000

눈앞에 있는 상태창을 전부 읽었다.

어둠 속에서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렸다.

정신을 차리며 눈을 떴다.

높은 원형 천장 아래로 햇살이 쏟아져 내렸다.

실외 열차역 한 가운데 서 있었다.

철 덩어리에 가까운 열차가 시끄러운 기적 소리를 냈다.

‘이런 열차역이라고는 말 안 해 줬잖아.’

소테르 신에게 3층에 관한 정보를 들었다.

로비에서 정보를 얻을 수 없는 처지였던 터라 이렇게라도 사정을 들을 수 있다는 게 불행 중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가 알려 준 정보와 실제 층 내부가 완벽히 똑같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설명을 들었다고 해도 눈으로 직접 보는 것과는 다르다.

실제로 그 녀석도 말을 하다가 중간중간 귀찮은 모양인지, 들어가 보면 알 거라는 식으로 건너뛴 이야기들이 종종 있었다.

왜 내가 모시는 신은 이 모양인지 모르겠다.

설마 다른 녀석들이 모시는 신도 정상이 아닌가?

열차라는 말에, 당연히 서울역이나 KTX 같은 거나 무궁화호를 떠올렸다.

‘타임 슬립이라도 한 기분인데.’

박물관에 온 기분이라고 해야 되나?

요즘도 저런 증기 기관차가 달리긴 하나?

열차도 그렇고, 열차역 디자인도 그렇고 전반적으로 19세기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입고 있는 옷도 현대 의상과는 어딘가 많이 달랐다.

신이 존재하고, 탑을 오르는 도전자라는 게 존재하는 세상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옷이 바뀌어 있었다. 갈색 코트에 베레모, 손에는 내 것이 아닌 가방도 있었다.

어울리는 옷차림인지는 모르겠으나 덕분에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붐비는 열차역 한가운데 녹아내릴 수 있었다.

무기가 없었다.

‘어디 갔지?’

다급하게 아이템 창을 열었다.

착용하고 있던 무기나 소지품은 저절로 아이템 창에 들어간 것 같았다.

아이템 창 구석에는 보따리처럼 생긴 물건이 있었다.

[옷가지들]

내가 원래 입고 있었던 옷 같았다.

솔직히 옷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중요한 건 무기였다.

[????의 검]

등급 : 알 수 없음.

????의 검에는 다른 아이템에는 필수적으로 붙어 있는 한 줄 설명도 적혀 있지 않았다.

등급 또한 알 수 없으므로 적혀 있는 굉장히 불친절한 검이었다.

다행히 칼 자체는 무척 잘 들어서, 지금까지는 그냥 그런대로 쓰고 있다.

검이 있는 걸 확인 후 속으로 안심을 했다.

여차하면 최대한 빨리 꺼낼 수 있게 위치를 바꾼 후 아이템 창을 닫았다.

혹시 이런 내 태도를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없지는 않나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가방 말고 손안에 뭔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여러 번 접힌 흔적이 남아 있는 종이쪽지였다.

처음 보는 문자였다.

눈을 깜박이자, 종이에 적힌 글씨가 익숙한 한국어로 바뀌었다.

바르디르 편 K808, 18일 오전 10시 J17.

[플랫폼에 계신 승객에게 안내 말씀을 드립니다. 지금 수도, 바르디르 편 K808 열차가 출발할 예정입니다. 탑승하지 못한 승객은 지금 바로 탑승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거잖아!

급하게 열차 위로 올라왔다.

승무원이 말을 걸었다.

“선생님, 신분증 좀 보여 주시겠습니까?”

“그게……. 잠시만요.”

신분증이라는 말에 살짝 당황했으나, 이내 차분히 들고 있던 가방을 뒤적거렸다.

가방에는 옷가지와 짐들이 들어 있었다.

앞쪽에 있는 주머니에서 검은색 수첩이 떨어졌다.

승무원이 바닥에 떨어진 수첩을 주웠다.

“여기 있네요.”

“아, 하하. 네.”

가방을 품에 안은 채 어색하게 웃었다.

승무원이 수첩 한쪽에 사인한 후 돌려줬다.

“자리는 알고 계시죠?”

“그럼요.”

그가 안쪽으로 들어가면 된다고 손짓을 했다.

좌석 칸으로 들어가기 무섭게 열차가 흔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창문 너머로 열차역이 멀어지고 있는 게 보였다.

‘사람 많아.’

탑 안에서는 몬스터만 봐 왔던 터라 열차 안의 사람들이 익숙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정말 평범한 여행객 같아 보였다.

알고 싶은 게 많았으나 해야 할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 한눈팔지 마. 알려고 하지도 말고.

순간적으로 소테르 신의 말이 떠올랐다.

다른 신이 어떤 식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녀석은 좀 특이하다.

뭐라고 해야 할까?

대화하다 보면 신이 아니라 그냥 인간 같았다.

통화하는 듯한 기분?

비유가 좀 이상하긴 하지만, 대충 그런 느낌이었다.

어쨌든 그에게는 고마워하고 있었다.

소테르 신이라도 없었더라면, 정말 1층에서 그대로 시체가 되었을 테니까 말이다.

J칸은 3등 칸이었다.

길게 이어진 복도를 지나가자 드디어 J칸이 나왔다.

3등 칸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

간신히 J17번 자리를 찾은 후에 자리에 앉았다.

열차가 점점 속도를 냈다.

커다란 초원이 나왔다.

정신이 없었던 탓에 도심을 빠져나가는 걸 못 본 게 살짝 아쉬웠다.

옆으로 남자 두 명이 앉아 있었다.

‘뭔가…….’

2등 칸을 지나올 때는 이상하지 않았던 옷이 3등 칸에 오니 확 눈에 띄었다.

그만큼 3등 칸에 있는 사람들의 옷은 너무 허름했다.

정신 차리자.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자 열차 내부의 분위기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가방을 든 채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객실 칸을 빠져나온 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한참 만에 식당 칸을 찾을 수 있었다.

식당 칸의 입구에는 승무원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의 남자가 서 있었다.

남자의 허리춤에는 총과 함께 진압용 곤봉이 있었다.

누가 봐도 경찰이나 가드 같았다.

서 있는 모양새를 보니 경찰보다는 군인에 조금 더 가까워 보였다.

남자의 허리춤에 있는 총을 슬쩍 바라봤다.

열차도 있는데 총이라고 있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혹시 몰라 아이템 창을 열어 둔 상태로 식당 칸으로 향했다.

남자는 나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 순간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혹시 나를 말하는 건가 싶어 고개를 돌렸다.

“뭐야? 왜 안 된다는 건데? 저 녀석은 들어갔잖아.”

“3등 칸의 배급은 앞으로 두 시간 후입니다. 자리로 돌아가시죠.”

“제길.”

남자가 마지못해 등을 돌렸다.

“쯧, 이래서 미개인은.”

그가 3등 칸으로 물러나는 남자를 보며 혀를 찼다.

나와 남자의 눈이 마주쳤다.

남자가 신경을 쓰지 말라는 듯 들어가라며 안쪽으로 손짓을 했다.

‘뭐지?’

옷차림 때문에 그런가 싶었는데, 의외로 쫓겨난 남자와 나의 옷차림은 별로 차이가 없었다.

오히려 쫓겨난 쪽이 훨씬 더 좋은 옷을 입고 있었다.

‘기준을 알 수가 없네.’

게다가 미개인은 또 뭐야?

이 세계는 대체 어떻게 되어 먹은 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식당 칸에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

3등 칸처럼 붐비거나 불편하다고 느낄 정도는 아니었다.

중앙에 있는 바에 앉았다. 바텐더가 말을 걸었다.

“주문하시겠습니까?”

“블루 라군.”

내가 짧게 대답을 하자, 바텐더가 고개를 끄덕이며 칵테일을 만들었다.

“블루 라군입니다.”

그가 내민 칵테일은 이름 그대로 정말 파란색이었다.

언젠가 옛날에 먹었던 소다 음료수 색과 닮아 있었다.

샴페인 잔의 끝에는 오렌지와 레몬, 체리가 순서대로 이쑤시개 같은 것에 꽂혀 있었다.

이쑤시개는 좀 그런가.

뭔가 이름이 있긴 하겠지.

칵테일을 손에 쥔 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식당 칸은 점심 식사로 한창이었다.

계속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것도 의심을 살 수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조심스럽게 칵테일에 입을 댔다.

확실히 술맛이 났다.

“맛있지 않나? 마시고 있으면 꼭 바다에 온 듯한 기분이 들어서 말일세. 이래 봬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칵테일이지. 아, 나도 같은 거로 하나 주게.”

잔을 내려놓으며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건너편 구석에 앉아 있던 남자였다.

그냥 손님인 줄 알았는데.

깔끔하게 차려입은 중년의 남자가 자연스럽게 내 쪽으로 다가와 앉았다.

“데찬트 소령이네. 여기서는 편하게 데드라고 불러 주게.”

데드라니.

여러모로 재수가 없어 보이는 이름이었다.

내가 아는 그것과는 의미가 다른 건지, 데드가 껄껄 웃으며 블루 라군을 마셨다.

“마스터에게 투덜거렸다고 들었는데, 미안하게 됐네. 얼굴 보기 전까지는 말할 수 없는 이야기라서 말이지.”

그가 내 눈치를 보며 조용히 속삭였다.

딱히 투덜거린 적은 없긴 하지만, 그렇다고 말하니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그래서 부탁이 뭡니까?”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이름을 한 남자와 사이좋게 앉아 술을 마실 생각은 없었다.

내 말에 그가 종이 하나를 슬쩍 내밀었다.

손바닥보다 조금 작은 크기의 종이를 뒤집었다.

두꺼운 종이에는 웬 어린 여자아이의 그림이 있었다.

데드가 테이블 아래로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열차 소리는 물론이거니와 주변의 목소리가 사라졌다.

‘스킬?’

최대한 당황한 티를 내지 않으려 포커페이스를 하는 사이 데드가 말했다.

“리아 안젤리나. 사진 속 인물이 바로 자네가 죽여야 할 인물이네.”

사진 속 인물은 아무리 봐도 어린 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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