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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했더니 신이 되었다-72화 (72/760)

72화 쟁탈전 (1)

제로섬 게임이 끝난 후, 헌터들이 한군데로 모였다.

임시 베이스캠프가 될 장소였다.

다만 분위기가 좋지는 않았다.

한데 모여 있는 라온 길드 헌터들은 금방이라도 이쪽을 향해 칼을 뽑을 것처럼 살기를 뿜어 댔다.

정호일이 얼굴을 붉히며 씩씩거렸다.

“편법이다. 이건 반칙이란 말이다!”

“어디가 반칙인데?”

“그건……. 마력 수류탄은 반칙이지 않냐! 자기 손으로 잡아야지!”

정호일의 말도 안 되는 핑곗거리에 헛웃음이 나왔다.

마력 수류탄이 수류탄이긴 하지만, 마력을 주입하지 않으면 그냥 돌멩이랑 다를 게 없었다.

엄연히 내 마력으로 헐거룡들을 죽인 거다.

“수류탄이 뭐 어때서? 편법이었으면 시스템이 카운트 안 했겠지. 그리고 그러면 뭐? 마도 병기 쓰는 놈들은 다 편법에 사기꾼 새끼들이냐?”

내 말에 마총을 들고 있던 몇몇 헌터들이 흠칫 놀랐다.

왜? 맞는 말이잖아.

“그, 그런 건 아닌데…….”

“말 같지도 않은 소모전은 여기까지만 해. 그보다, 반칙이면 뭐 어때?”

“뭐, 뭐라고?”

“제로섬 게임의 룰은 던전에 들어오고 24시간 이내, 헐거룡을 가장 많이 잡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잖아? 어디에도 반칙하지 말라라느니, 수류탄을 던지지 말라느니 하는 말은 없었잖아?”

“하지만! 너는 대량의 수류탄을 챙겨 왔다! 처음부터 이럴 계획으로 던전 밖에서 가지고 온 거 아닌가?”

“증거 있냐?”

“뭐라고?”

“그러니까, 증거 있냐고.”

내 배짱 장사에 정호일이 주먹을 꽉 쥐었다.

“그만해라.”

보다 못한 한종호가 말을 잘랐다.

체계가 잘 잡혀 있는 길드의 특성상, 나에게 트집을 잡던 정호일은 한종호의 말에 재빨리 입을 다물었다.

표정은 여전히 불만이 가득해 보이지만.

‘억지도 적당히 해야지.’

내 인내심도 그리 긴 편은 아니었다.

거기서 한마디만 더 했다면 나 역시 가만히 있지는 않았을 거다.

이해가 안 된다면 실력 행사를 하는 수밖에.

다행히 떽떽거리는 정호일에 비해 한종호는 꽤 멀쩡해 보였다.

한종호가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룰은 룰이다. 네 말을 따르도록 하지. 어디까지나 던전 원정이 끝날 때까지지만.”

“잘 부탁해. 리더 같은 거 체질도 아니고, 딱히 하고 싶지도 않았지만.”

“하하, 그거참 곤란한 자리를 맡아서 부담되겠군.”

“그치? 벌써 어깨가 무겁거든. 그러니까 잘 따라와 줬으면 좋겠네.”

나와 한종호가 서로의 손을 꽉 붙잡았다.

악수를 마친 후 아리아 길드 헌터들을 둘러봤다.

전부터 계속 등이 따가워서.

“넌 또 왜 불만인데?”

“흥, 딱히 불만 같은 거 없어. 헐거룡의 집에 관한 이야기는 그렇다 쳐도 마력 수류탄은 너무하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팀킬도 적당히 해야지, 과하면 트롤인 거 몰라?”

정호일인지 하는 놈이라면 모를까, 나름 같은 길드 소속인 주서혜에게까지 저런 말을 듣고 싶지는 않았다.

“세상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걸 그렇게 무식하게 던지는 놈이 어디 있어?”

“뭐? 수류탄이 무식하게 던지라고 수류탄이지. 그럼 뭐가 수류탄인데?”

정호일은 몰라도, 왜 주서혜가 게거품을 무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자 가만히 듣고 있던 한성철을 포함해 다른 헌터들의 표정이 구겨졌다.

왜 저래?

강현승이 내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속삭였다.

“너 마력 수류탄이 한 개에 얼만 줄 알고 하는 소리지?”

“모르는데? 개당 한 10만 원 하지 않을까?”

“그렇게 싸면 나도 던지고 다녔다! 싼 건 300만 원부터 비싼 건 천만 원까지 해.”

사실 마력 수류탄은 화력은 좋으나, 가성비가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었다.

B급 헌터 중에서 일회용 수류탄 한 방에 천만 원 단위를 태울 수 있는 녀석은 많지 않았다.

다들 내 수류탄이 어디서 났는지 눈치를 채고 있는 것 같았다.

“그중에 ACKO사 제품은 명품 중에서 명품이야. 한 개에 천만 원이라고 말한 게 ACKO의 제품.”

“ACKO?”

“네가 던진 수류탄.”

강현승이 설마 모르고 던진 건 아닐 거라며 내심 불안한 기색을 비쳤다.

아, 미안.

아무것도 모르고 신나게 던졌는데.

“아, 이거?”

몇 개 남아서 주머니에 쟁여 뒀던 수류탄을 꺼냈다.

던질 때는 몰랐는데 확실히 한쪽에 조그맣게 ‘ACKO’라는 로고가 박혀 있었다.

한 30개 정도 던졌으니까.

대충 3억 정도가 허공에서 터졌다.

이쯤 되면 폭탄으로 몬스터를 잡는 게 아니라 돈으로 몬스터를 후려친 수준이었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돈 지랄은 맞네.

기가 막혀 하는 헌터들을 본 나는 어떻게든 이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애썼다.

“자자, 수류탄 얘기는 끝. 이게 1억짜리든 100억짜리든 결과만 좋으면 되는 거잖아. 안 그래?”

아무도 내 말에 공감해 주지 않았다.

망할 자본주의.

세상은 돈이 다가 아냐!

* * *

우려했던 것과는 다르게 라온 길드 헌터들은 내 지휘에 순순히 따라왔다.

불만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으나, 라온 길드 팀의 대표나 다름없는 한종호가 조용히 내 지시에 따르는 탓에 대놓고 불만을 밖으로 표출하는 어리석은 놈은 없었다.

제로섬 게임으로 헐거룡들을 많이 죽였음에도 불구하고 헐거룡들은 여전히 던전 곳곳에 남아 있었다.

“하, 이놈의 지렁이 새끼들.”

“징글징글하다.”

“왜 이렇게 많아?”

박시우의 말대로 던전은 헐거룡이 지배한 거나 다름없었다.

집을 털어서 나온 놈들은 빙산의 일각이었다.

며칠 내내 발밑을 기어 다니는 헐거룡들만 죽이고 있으니 지긋지긋해하는 것도 이해는 됐다.

다른 헌터들이 열심히 싸우고 있을 때, 나는 나무 위에 올라가 칼로리바를 먹고 있었다.

‘음, 이건 딸기 맛이네.’

전 세계적으로 던전이 우후죽순 생겨나다 보니, 비상식량과 관련된 산업도 급속도로 성장을 했다.

최근 들어서 칼로리바에 맛이 들여서 다양한 종류를 먹어 보며 실험을 하고 있었다.

헐거룡을 전부 처리한 민성택이 나무 아래로 다가왔다.

“놀고만 있지 말고 좀 시늉이라도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내가 왜?”

마지막 남은 초코에몽을 먹으며, 다리를 흔들자 민성택이 뒤쪽을 좀 보라며 눈치를 줬다.

내 눈을 직접 마주치는 놈은 없었으나, 다들 내가 놀고 있는 게 영 아니꼬운 모양이었다.

나는 일부러 들으라는 듯 큰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고, 누가 잘못 들으면 내가 놀다 온 줄 알겠네! 혼자 힘들게 서쪽에 있는 몬스터들 전부 정리하고 왔는데 밥도 못 먹게 하고! 억울해서 돌아가시겠네!”

“정말 다 끝낸 거냐?”

고개를 위로 든 민성택이 믿을 수 없다며 눈을 크게 떴다.

오늘 아침, 각자 지역을 배분할 때 헐거룡들이 가장 많은 서쪽은 혼자 처리하겠다고 한 후 다녀온 참이었다.

‘노가다쯤은 껌이지.’

같은 몬스터를 반복적으로 죽이다 보면 약점을 발견하게 되는 건 당연했다.

거기에 집행자의 검의 ‘특정 집단’에는 동일 몬스터도 포함이 된다.

사실은 집 같은 거 안 털어도, 던전에 들어온 순간 마음먹고 헐거룡 사냥을 했으면 1위쯤이야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치고 가면 재미가 없잖아. 재미가.’

원래 게임이란 승패가 뒤집히는 역전승이 가장 짜릿한 법이 아닌가.

농담은 이 정도로 하고.

어차피 헐거룡의 집은 이르든 빠르든 털어야 했으므로 겸사겸사 처리한 것뿐이었다.

칼로리바를 전부 먹은 후 나무에서 내려왔다.

“당연하지, 날 뭐로 보고. 정 꼬우면 직접 가서 사체라도 확인하라지.”

내가 이쪽을 힐끔힐끔 보고 있는 헌터들을 쳐다보자 그들이 안쪽에 있는 헐거룡을 핑계로 자리를 피했다.

“대단하군. 네 성장 속도는 정말 믿을 수가 없다. 혹시 신에게 뭔가 특혜라도 받는 건가?”

아리아 길드에는 다양한 신을 모시는 헌터들이 있었다.

사실 메이저 신을 모시는 헌터들 못지않게, 유명하지 않은 신을 모시는 헌터의 비중도 꽤 있는 편이다.

신도 수가 많은 메이저 신이라고 해서 무조건 다 좋은 건 아니었다.

신도 수가 적다는 건 바꿔 말하면 내부 경쟁자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뜻이니까.

‘그것도 어느 신이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잘은 모르지만, 박시우도 그런 케이스라고 알고 있었다.

민성택에게 그런 사연을 일일이 설명해 줘야 할 이유는 없었다.

“얼추 비슷해.”

적당히 대화를 끊은 후, 던전을 빠르게 훑어봤다.

며칠 동안 대대적으로 헐거룡을 사냥한 탓인지 확실히 수가 줄어든 게 보였다.

‘슬슬 움직일 때가 됐을 텐데.’

저녁이 다 되자 임시로 만들어진 베이스캠프로 헌터들이 속속들이 돌아왔다.

천막 안에는 나를 포함해 6명의 헌터들이 앉아 있었다.

나는 다른 헌터들에게 보스가 없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했다.

다들 제로섬 게임을 위해 던전에 들어오자마자 던전을 이 잡듯 뒤지고 다녔던 탓에 내 의견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코카트리스는 농장을 벗어나는 몬스터도 아닐뿐더러, 며칠 내내 화광쥐가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보스 없는 던전은 주로 아래 등급에서나 일어나는 일인 줄 알았는데. 그건 그렇다 치고, 그럼 선발대들은 어떻게 실패한 거지?”

“아마도, 린트부름 때문이겠지.”

다리를 꼬며 대화를 듣고 있던 주서혜가 끼어들었다.

아리아 길드끼리 미팅을 할 때, 박시우는 린트부름에 관해 꽤 꼼꼼하게 언급을 했다.

“린트부름? 녀석은 논외 아닌가?”

A급 던전쯤 되면 여러 가지 변수들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코카트리스의 농장은 같은 난이도의 던전 중에서는 비교적 통제가 잘 되는 편이었다.

요점은 다른 지하 감옥들처럼 던전에 있는 몬스터를 전부 처리할 필요 없이도 던전을 클리어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보상이라 불리는 퀘스트는 필수가 아니며, 목적을 달성하면 출구 게이트가 열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거야 평상시에나 그런 거지. 지금은 클리어 목적도 알 수가 없는 상황이잖아.”

“놈은 동굴에서 잘 나오지 않는 거로 알고 있는데…….”

코카트리스의 농장을 클리어하는 헌터들은 대부분 린트부름을 무시한 채 공략을 진행한다.

동굴에서 서식하는 녀석은 굳이 먼저 공격을 하지 않는 이상 싸울 일이 별로 없다.

던전을 클리어하는 데 녀석을 쓰러트리는 게 필수적이지도 않았다.

표현하자면 말하자면 서브 보스 같은 느낌인데.

그 서브 보스가 보스랑 거의 동급이라고 보면 된다.

서로의 영역을 존중해 주며 살아가던 순간, 어느 한 놈이 없어졌다면.

“가능성이 없진 않겠군.”

모든 대화를 들은 한종호가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리더는 난데 왜 네가 가운데서 그럴싸한 척을 하고 있는 거야?

첫 번째 원정은 단순한 실패.

두 번째 원정은 내부 분열로 인해 보스가 사념체로 변하며 실패.

세 번째는 코카트리스가 사라진 자리를 린트부름이 대체하면서 대처를 하지 못해 실패.

세 번째 원정에서 팀을 꾸릴 때 박시우도 설마 코카트리스가 없어졌을 거라는 걸 계산하지 못한 게 패착 요인인 셈이었다.

“내일부터 린트부름이 있을 법한 동굴을 수색하지.”

그러니까 리더는 나인데 왜 네가 폼 잡고 그러세요.

이미 멋대로 판단을 내린 한종호의 말을 잘랐다.

“아니, 헐거룡 사냥은 계속할 거야.”

“린트부름이 문제라는 걸 알았으니 그놈을 먼저 찾아내는 게 맞지 않나?”

“선발대가 왜 실패했는데? 린트부름이랑 싸우던 중에 헐거룡이 전부 튀어나와서 망한 거잖아.”

헐거룡들은 한 마리 한 마리 놓고 본다면 그렇게 강력한 몬스터는 아니지만, 뭉치면 무척 성가시다.

린트부름과 싸우고 있는 도중, 발밑에 있는 헐거룡들이 몰려온다면 그야말로 난장판이 따로 없다.

며칠 동안 헐거룡의 씨를 말린 건 전부 린트부름 공략을 위한 행동이었다.

“너 이 자식! 감히 한 팀장님의 의견에…….”

“그만. 지금 팀의 리더는 저놈이다. 그래서 어쩌자는 거지?”

“린트부름 사냥은 할 거야. 딱히 안 한다고 말 한 적은 없어. 다만 기습당하는 건 취미가 아니거든.”

우리가 몬스터를 사냥하는 사냥꾼이지, 사냥감은 아니지 않은가.

“그 말은?”

“녀석을 지정 포인트까지 유인한다. 그러면 사냥이 좀 더 쉬워지겠지?”

“말이야 좋지, 놈이 의도대로 움직일 것 같나?”

린트부름은 대형 몬스터였다.

만반의 준비를 해 놓고 몬스터를 처리할 수 있다면 헌터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으나, 그게 그렇게 말처럼 쉽지는 않았다.

특별한 메리트가 있지 않은 이상 녀석을 유인하면서 생기는 피해를 감안하면 그 자리에서 전투하는 게 훨씬 이득이라는 뜻이었다.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여기서는 한발 물러나기로 했다.

“좋아, 피해 없이 놈을 유인할 방법이 있다면? 불만은 없는 거지?”

“그런 효율 좋은 방법이 있다면의 이야기지만…….”

천막 안의 헌터들이 서로의 얼굴을 보며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다.

이것들 속고만 살았나?

“방법이라는 것부터 들어 보지.”

나는 별거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뭐, 몬스터도 배는 고픈 법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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