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선택의 기로 (3)
관심법이라니!
놀라 하는 나와 다르게 유지한은 담담했다.
유지한이 다시 검을 내 가슴을 향해 겨눴다.
“관심법이 통하지 않는다면 직접 물어보면 될 뿐이다. 방금 전 왜 신언을 사용하지 않았지?”
다시 유지한의 질문 세례가 이어졌다.
나는 이전에 유지한과 맺은 맹세의 언약을 이용해 유지한을 두들겨 팬 적이 있다.
탑을 빠져나왔으니 뭔가 많이 알고 있을 것 같다는 건 충분히 예상 범위에 포함이 되어 있었다.
내가 대답을 하지 않자 유지한의 검이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너 뭔가 오해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내가 소테르 신도 아니고 신언을 사용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그러니까 이상하다는 거지.”
“뭐?”
“그 여자를 죽이려 할 때도 소테르 신은 반응하지 않았다. 그런데 너를 죽이려 했을 때 그놈은 신언을 사용했다. 신전에 있는 핵을 부술 때도 마찬가지였고. 네놈이 제 발로 걸어 들어온 이상 죽기 직전까지 몰아붙이면 반드시 신언을 사용할 줄 알았다.”
이 자식.
그래서 갑자기 공격을 바꾼 거네.
다소 다혈질 기질이 있긴 하지만 유지한은 기본적으로 똑똑한 편이었다.
‘그때는 정말 급해서 사용하긴 했는데…….’
내가 유지한이라고 해도 의심을 할 여지는 충분했다.
아씨, 이걸 뭐라고 둘러대지?
“그런 네가 평범한 신도라고? 거짓말도 적당히 해야 넘어가 주든지 하지. 멍청한 놈.”
와.
얘한테 들으니까 왜 이렇게 열 받지?
“다시 한번 묻지, 넌 소테르 신과 무슨 관계지?”
질문에서 확신할 수 있었다.
유지한은 내가 소테르 신 그 자체일 거라는 생각까지는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당연한 거겠지만.’
나 같은 케이스가 흔할 리는 없지 않은가.
뭐가 됐든 다행이었다.
“수호자야.”
“네가, 그 망할 신의 수호자라고?”
“그래.”
망할 신이라니 너무하네.
“너 같은 멍청이가 수호자라니, 녀석도 보는 눈이 많이 죽었군.”
“이 새끼가…….”
“뭐?”
“그보다 너 소테르 신과 이상한 언약 맺은 거 있다면서?”
“사기당한 거다.”
사기라니.
지가 좋아서 수정했으면서!
벽에 박힌 검을 뽑은 유지한이 몸을 돌렸다.
유지한의 검에 의해 신전에 남아 있던 몬스터가 두 동강이 났다.
유지한에게 소테르 신과 맺은 맹세의 언약이 존재하는 이상, 나는 유지한을 죽일 수 없다.
그 대가로 유지한은 소테르 신의 명령에 직접적인 거부를 할 수 없었다.
“내 신이 너에게 제안을 하나 하고 싶어 해.”
“들을 가치도 없군.”
“네가 무슨 목적으로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더 이상 신도들을 죽이려 드는 건 곤란해.”
나는 소테르 신의 말을 직접 전하는 것처럼 말했다.
“신도도 몇 없는 주제에 뻔뻔하기는.”
유지한의 불만에 나는 남의 일인 양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들썩였다.
“맹세의 언약을 수정해 주겠다고 하는데.”
“뭐라고?”
유지한이 한숨을 쉬며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쓸어 넘겼다.
관심법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난 이후라 그런지 나를 탐색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미안한데 얼굴에 철판 까는 거 하나만큼은 자신이 있어서 알아보기 쉽지 않을 거다.
“네가 알 바는 아니다.”
“그런 거 같긴 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보는데?”
“뭘?”
“제안 말야.”
“내가 널 죽이지 않았던 건 소테르 신과 맺었던 맹세의 언약 때문이다. 만약 맹세의 언약을 수정한다면, 나는 가장 먼저 널 죽일 거다. 너에게 좋은 게 아닐 텐데?”
“날 걱정해 주는 거야?”
“걱정이 아니라 사실을 말하는 거다. 네 머리는 돌이냐?”
이 새끼가.
제길, 계속 그러면 앞으로 초월자 유지한이 아니라 흑화한 유지한이라고 불러 줄 테다.
후, 진정하자.
“너 바깥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고는 있어?”
“베리타스 신인가 하는 놈이 깽판을 놓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안다. 짜증이 나긴 하지만,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지.”
베리타스 신의 신전에 한 달이 넘게 갇혀 있음에도 유지한은 베리타스 신에 대해 별다른 감정이 없어 보였다.
“그럼 신전에 계속 갇혀 있을 생각이야?”
“미쳤냐?”
유지한이 끔찍하다며 인상을 구겼다.
“분명히 말하지만, 놈이 세계를 멸망시키든 말든 내가 녀석이랑 싸울 이유는 없다.”
“그렇게 냉정하게 굴 것까지는 없잖아.”
매정하다 못해 냉기가 흘러나오는 대답이었다.
세계를 구해 달라거나 거창한 부탁을 하는 건 아니지만.
유지한의 태도로 보아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베리타스 신을 쓰러트리는 데 협조하면 언약을 수정해 줄 수 있어. 원한이 없다고 말해도 한 달 넘게 갇혀 있었는데 화 정도는 나잖아.”
“상대가 누군지는 알고 하는 말이겠지? 반푼이라고 해도 놈은 신이다. 그렇게 쉽게 상대할 수 있는 녀석이 아냐.”
“그러니까 도와 달라는 거잖아.”
“그 녀석이 그렇게까지 할 만한 가치가 있는 놈인가?”
“그건 말할 수 없어. 다만, 녀석은 반드시 여기서 막아야 해.”
칠성신이 왜 베리타스 신의 신도였던 유채영을 건드려, 금기를 어기게 했는지 알 것도 같았다.
놈들은 이 게임에서 뭔가를 숨기고 있다.
그리고 베리타스 신은 그들이 숨기고 있는 것에 대해 근접할 가능성이 높은 존재였다.
베리타스 신은 금기를 어긴 대가로 진실을 알았다.
금기를 어겨 버린 순간, 이미 판에서는 벗어난 존재가 되어 버렸으니 더 이상의 위협은 존재하지 않았다.
베리타스 신이 금기를 어긴 순간, 놈들의 목적은 달성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 정도로는 대답이 안 돼. 소테르 신의 의견이 아니라 네 의견이 필요하다.”
유지한은 끝까지 소테르 신의 의견이 아닌 강한결로서의 의견을 물어봤다.
“그럼 물어보겠는데, 만약 맹세의 언약이 유지된다고 해도 너 나랑 은영 누나를 건드릴 생각이 없냐?”
“소테르 신의 신도는 한 명도 남아 있어서는 안 된다. 방법이 없다면 다른 수를 생각하는 수밖에.”
“봐, 결국 죽일 거잖아. 뭘 복잡하게 말하고 있어? 베리타스 신을 쓰러트리고 덤비든지 말든지 니 마음대로 해. 이제 와서 챙겨 주는 척해 봤자 그게 더 수상하거든?”
“그 말 후회하지 마라.”
베리타스 신을 쓰러트리기 위해서, 그리고 그로스를 막기 위해서는 유지한의 힘이 필요했다.
나와 유지한이 거의 동시에 같은 곳을 바라봤다.
아무것도 없는 검은 공간이었으나, 분명히 달랐다.
베리타스 신의 차원이 무너지고 있었다.
베리타스 신은 가장 큰 변수가 되는 나와 유지한을 쫓아내려 하고 있었다.
차원의 미아가 되면, 원래 세계로 돌아올 수 있을지 장담을 할 수가 없었다.
등을 돌린 유지한이 바닥에 떨어진 하늘검을 던졌다.
허공을 한 바퀴 돈 하늘검이 바로 앞에서 바닥에 꽂혔다.
검을 뽑으려 하자 유지한이 말을 걸었다.
“지금 해라.”
“뭘?”
“맹세의 언약의 수정.”
“나가면 바로 해 줄게.”
신전이 무너지고 있는 게 느껴졌다.
지금은 신전을 빠져나가는 게 먼저였다.
유지한과 실랑이를 할 시간이 없었다.
지한이 만족하지 못한다는 듯 검을 꽉 붙잡았다.
“내가 널 어떻게 믿지?”
“제길.”
나에 대한 유지한의 신뢰도는 거의 마이너스였다.
변명할 시간도, 말싸움을 할 틈도 없었다.
[소테르 신이 유지한에게 맹세의 언약을 제안합니다.]
[맹세의 언약이 시작됩니다.]
[주체 : 소테르]
맹세의 언약은 영혼의 계약이었다.
계약을 수정하거나, 변경하는 건 불가능하다.
맹세의 언약을 수정하려면, 또 새로운 계약을 맺어서 그 위에 덮어씌우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유지한의 이름으로 여기 이 자리에서 소테르 신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아도 됨을 재확인한다. 동의하는가?”
[동의한다.]
[맹세의 언약이 실행되었습니다.]
유지한에게 맹세의 실이 생겨났다.
맹세의 실은 맹세의 언약을 맺었을 때나 혹은 언약을 어겼을 때 볼 수 있었다.
지한의 주변에는 나와 맹세의 언약을 맺어 생긴 실을 제외하고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실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유지한 또한 자신의 주변을 맴도는 실을 볼 수 있었다.
실을 바라보고 있는 유지한의 표정이 한순간 복잡하게 바뀌는 장면을 엿볼 수 있었다.
이렇게 많은 맹세의 실을 달고 다니는 사람은 살다 살다 처음 본다.
눈앞에 있는 유지한은 미래의, 내가 아직 모르는 경험을 한 존재였다.
대체 무슨 짓을 하면 저렇게 될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
유지한을 둘러싸고 있던 실들이 점점 희미해졌다.
맹세의 실을 귀찮다는 듯 치워 낸 유지한이 검을 뽑으라는 듯 고개를 까닥였다.
하늘검을 뽑았다.
베리타스 신을 죽이고 난 이후에 맹세의 언약을 덧씌워 줄 생각이었다.
유지한이 나를 믿지 못하는 만큼, 나 역시 초월자 유지한에 대한 신뢰가 없었다.
내가 초월자 유지한의 말을 들어준 이유는 탑에 있는 유지한이 신경 쓰였기 때문이었다.
“약속은 지키지.”
“말이라도 고맙다 야.”
“동맹은 이번만이다.”
“나도 안다고.”
더 말해 봤자 의미는 없다.
남아 있는 공간을 보며 하늘검을 꽉 쥐었다.
[‘강림’을 시도합니다.]
익숙한 힘이 몸을 감쌌다.
“너…….”
약해지는 포롱이의 빛 너머로 보이는 유지한의 표정이 복잡하게 변했다.
좁아지는 신전 일부를 향해 하늘검을 휘둘렀다.
[그, 힘…… 역시, 네놈은 역시!]
당황하는 베리타스 신을 무시했다.
이만하면 눈치를 챌 만도 하지 않냐?
검이 닿은 곳의 공간이 요동쳤다.
베리타스 신은 신전을 유지할 만한 힘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갈라진 틈 사이로 빛이 흘러나왔다.
나와 유지한이 약속이라도 한 듯 빛을 향해 뛰어들었다.
파아앗.
고유 결계의 일부가 갈라지며 원래의 세계로 돌아왔다.
요동치는 바람과 붕 뜬 몸에 설마 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거대한 괴물의 모습을 하고 있는 베리타스 신과 공중에 떠 있는 나.
나랑 같이 나온 유지한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소통방 정보가 없습니다.]
아, 맞다. 소통방 날아갔지.
그새 적응이 됐던 터라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사용을 하고 있었다.
베리타스 신이 있는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일그러진 공간에서 수십 개의 가시가 날아왔다.
[변수, 누구냐, 대체?]
허공에서 몸을 돌리며 날아오는 공격들을 쳐 냈다.
검을 휘두를 때마다 베리타스 신의 공격이 흩날리듯 부서졌다.
지면으로 떨어지기 전 한 방 먹이려고 자세를 잡았다.
그때.
콰아아아앙.
진상혁이 만들어 낸 철의 기사의 검이 나와 베리타스 신의 사이를 막았다.
공격의 방향을 봤을 때 일부러 한 것 같지는 않은데.
“이쪽으로 휘두르지 말라고!”
소통방이 끊기니 더럽게 불편하다.
내 목소리를 듣지 못한 진상혁이 검을 휘둘렀다.
하늘에서 푸른 벼락이 떨어지며 그 여파로 몸이 멀리 날아갔다.
바닥으로 풍아를 사용해 간신히 착지했다.
콰아앙.
공격의 여파로 바닥에 흙먼지가 일었다.
그림 일부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모든 게 느리게 보였다.
그곳에는.
유채영과 베리타스 신이 만들어 낸 분신체가 서 있었으며.
“은영 씨! 정신 차려요!! 은영 씨!!”
다량의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은영 누나와 최재형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