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어느 오래된 마법사의 이야기 (3)
마탑에 들어온 카디엠은 금방 최고위 마법사가 되었다.
“북부 전선에 유미르가 투입되었다고 하더군.”
“그 거인의 시체 말인가? 세상에 어느 누가 거인의 심장을 마력석으로 만들어 낼 생각을 한단 말인가?”
“술식을 봐도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태반이었네. 카디엠 덕분에 제국의 마법은 대륙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만……. 호문클루스도 그렇고, 거인의 심장도 그렇고 소름이 돋는군.”
“우리 마탑이 언제 이렇게 대우를 받아 본 적이 있나? 최근에는 황제도 엘든 마탑주의 말 한마디에 아무 말도 못 한다던데.”
“흥, 대마법사 카디엠에게 기생할 뿐인 마탑주가 아닌가. 카디엠 님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마탑주가 될 수 있다는 거야, 다 아는 사실 아닌가?”
카디엠을 둘러싼 소문들이 마탑 내부는 물론이거니와 바깥으로 퍼져 나갔다.
수많은 마도 병기가 양산이 되었음에도 전쟁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제국의 수상한 움직임에 대해 두려워한 소국들이 반제국 동맹을 만들며 전쟁은 또 다른 국면을 맞이했다.
“……이게, 이게 아니다! 이게 아니란 말이다!”
카디엠이 책상 위에 놓인 종이들을 거칠게 치워 냈다.
카디엠은 진리를 찾는다는 명목 아래에 수많은 연구를 진행해 왔다.
마탑에는 스승 크리스테인의 젊은 시절의 자료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그의 연구는 대부분 스승인 크리스테인이 남겨 놓은 연구의 뒤를 잇는 것들이었다.
호문클루스도, 거인의 심장도, 다중 폭격 마도 병기도, 무인 비공정 시설도 전부 크리스테인이 남겨 놓은 자료들이었다.
스승의 모든 연구는 전부 해결했다.
단 하나만 제외하면 말이다.
진리.
그것은 세상이 만들어진 이치와 모든 법.
누구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문제에 대한 것이었다.
“아아, 하하하하하하! 제길! 나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는 것인가…….”
어느 날, 평소처럼 카디엠에게 식사를 가져다주러 마법사가 방으로 찾아왔다.
“카디엠 님?”
“…….”
“카디엠 님, 카디엠 님이 사, 사라지셨다!”
자신의 스승인 크리스테인이 그랬던 것처럼 카디엠 또한 어느 날 자취를 감췄다.
* * *
서부 대륙을 지배하고 있던 제국은 불과 5년 사이 중부 대륙의 절반을 집어삼킨 대제국이 되었다.
이제 대륙은 국가와 국가가 아닌, 제국 대 국가의 전쟁으로 바뀌었다.
분쟁 지역의 위치가 바뀌면서 기존 제국의 지역은 평화를 되찾았다.
모든 게 대마법사 카디엠의 공이었다.
“그거 들었어? 대마법사 카디엠이 사라졌대.”
“실종이라고 하던데?”
“살해당했다는 소문도 있더군.”
“제길, 조금만 더 하면 대륙 통일을 할 수 있었을 텐데…….”
제국 사람들에게 카디엠은 제국을 대제국으로 만들어 준 위대한 영웅이었다.
마탑을 나온 카디엠은 정처 없이 돌아다녔다.
수도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활기찼던 도시의 분위기는 사라졌다.
콰아아아앙.
짐수레를 맨몸으로 끌고 있던 청년이 쓰러졌다.
짐수레에 있던 짐들이 쏟아졌다.
레이스와 보석이 잔뜩 박힌 옷을 입은 남자가 다급하게 뛰어왔다.
“이, 이게! 얼마짜리인 줄 아는 거냐!”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쓰레기 같은 하급 시민 놈이! 먹여 주고 재워 줬더니 감히 이런 짓을 해?”
그가 청년에게 쉴 새 없이 채찍을 휘둘렀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남자의 살이 채찍에 의해 파여 나갔다.
웅크린 청년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괴로워했다.
보다 못한 카디엠이 다가갔다.
“뭐 하는 짓입니까?”
“보면 모르쇼? 어리석은 하급 시민이 실수를 저질렀으니 벌을 받아야지. 흥, 에르타니엘의 찌꺼기 같은 놈 같으니라고.”
“아무리 그래도 대낮에 채찍질은 너무한 처사 같습니다. 제대로 먹지도 못한 것 같아 보이는데…….”
“내 걸 내가 마음대로 하겠다는데 무슨 상관입니까?”
“내 것?”
“그는 제 노예입니다. 그러는 그쪽은 대체 뭐 하는 자이길래 쓸데없는 일에 끼어드는 겁니까?”
그가 카디엠이 입고 있는 후드를 위아래로 훑었다.
머뭇거리던 카디엠이 말했다.
“그냥 지나가던 마법사요.”
“마, 마법사라면……. 혹시 제국 출신의 마법사십니까?”
“그렇소. 그게 무슨 문제라도 있…….”
“아이고! 마법사 나으리. 제가 몰라봬서 죄송합니다. 이런 미천한 일에 신경을 쓰게 만들다니. 에잉, 쯧. 뭐 하냐? 이놈을 어서 데려가라.”
그의 손짓에 주변에 있는 사내들이 의식을 잃고 쓰러진 남자의 몸을 들어 올렸다.
“자, 잠깐…….”
“걱정하지 마십쇼. 마법사님이 우려하시지 않도록 잘 치료해 드리겠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인데.”
“그런데 마법사님은 이런 변방의 마을까지 어인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혹시 마탑에서는 북부의 괴물들을 처리할 방도가 있다거나…… 아니지, 이러지 말고 어딘가로 들어가시지요. 제가 크게 한턱내겠습니다. 마법사님을 이런 길거리에서 모시게 할 수는 없죠.”
제국의 마법사라는 말 한마디에 그의 태도가 바뀌었다.
남자는 카디엠을 극진히 대접했다.
마을과 마을 규모를 오가는 평범한 상인이었던 그는 제국이 연이은 승리를 거둠과 동시에 대상단의 상단주가 되었다.
다 먹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음식을 앞에 두고 그는 연신 포도주만을 들이키며 제국 마법과 카디엠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당신은 진리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진리요? 크흐, 역시 제국의 마법사답게 질문도 수준이 있으시군요. 그런데 흐음, 진리라. 솔직히 생각해 본 적이 없군요. 제 기준으로 말씀을 드리자면 진리란 돈입니다.”
“돈이라고?”
“예. 그럼요. 돈이 있으면 할 수 없는 것 따위는 없습니다. 당신네 마법사들이 굶지 않고 연구를 계속할 수 있는 이유도 돈 때문 아닙니까? 아, 딱히 마법사님들의 연구를 비하하려는 의도는 아니지만. 돈이 없으면 연구고 뭐고 없다 이 말입니다. 솔직하게 말해서. 그러니 세상의 진리는 돈 아니겠습니까?”
제국의 상인인 남자는 세상의 진리를 ‘돈’이라고 말했다.
다음 날, 길을 떠나려는 카디엠에게 상인은 많은 돈을 주었다.
카디엠은 북부로 향했다.
유미르를 투입했음에도 북부에서는 전쟁이 종식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마력석으로 심장을 부여받은 거인 유미르에 의해 매일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갔다.
“으아아아악!”
“알브헴 왕국의 저주가 제국에 향할 것이다!!”
“죽어라!”
그것은 생과 사가 오가는 전쟁이라고 하기보다는 일방적인 학살에 가까웠다.
자아를 잃은 거인들은 제국군의 명령대로 수많은 사람의 몸을 짓밟았다.
거인의 발밑에서 부모를 잃은 작은 아이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카디엠은 잊고 있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스승을 만나기 전, 카디엠이 카디엠이기 이전의 기억이었다.
[멈춰라.]
카디엠이 손을 뻗자 거인들의 움직임이 일제히 멈췄다.
“무, 무슨 일이야?”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마법 부대! 지금 장난해?”
“아뇨, 저…… 저희가 한 짓이 아닌…… 으아아악! 거인들이 미쳐 나, 날뛰고 있습니다!”
카디엠이 지시를 하자 거인들이 왕국군이 아닌 제국군을 공격했다.
그런 카디엠에게 붉은 머리띠를 찬 남자들이 다가왔다.
그들은 제국에 반대하는 반란군이었다.
“너는 누구냐!”
“그저 지나가던 마법사입니다.”
“마법사라고? 제국의 개가 여기서 뭘 하는 거냐!”
“제국과는 상관없습니다.”
“개소리하지 마라! 저 거인들이 보이지 않는 것이냐! 제국의 카디엠이라는 악마 같은 마법사가 거인을 부활시켰다고 했다! 저 거인 때문에 얼마나 많은 피가 흘렀는지 알고 있느냐?!”
“저 거인은 지금 제국군을 공격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건……. 나도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만…….”
“저는 제국의 마법사가 아닙니다. 그저……. 떠돌이 마법사인…… 카, 카일입니다.”
마탑에서 반평생을 바쳤던 카디엠은, 카일이 되어 반란군과 함께했다.
도무지 사람이 살 수 있는 공간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동굴에는 부상을 입은 반란군들이 모여 있었다.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 거인에게 당한 상처네.”
“제가 잠시 봐도 되겠습니까?”
“상관은 없지만…… 쓸데없는 짓은 말게.”
카디엠은 죽어 가는 자를 향해 치유 마법을 사용했다.
본디 마법이란 귀한 것이다.
그중 치유 마법사는 제국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희귀했다.
마탑에서 수많은 연구를 진행해 왔던 카디엠이 사용하지 못하는 마법 같은 건 없다.
현대의 제국 마법이라는 것 자체가 전부 카디엠이 만들어 낸 이론을 기초에 두고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믿을 수 없군. 여, 여기서 기다리게!”
상처가 나은 걸 본 남자는 급하게 어딘가로 들어갔다.
잠시 후, 반란군의 우두머리라고 추정되는 사내가 나왔다.
제국에 멸망한 왕국의 왕족 출신인 그는 끈질기게 제국에 저항하고 있었다.
카디엠은 남자와 함께하기로 했다.
카디엠의 합류로 인해 지역 규모에 지나지 않았던 반란군의 규모가 커지기 시작했다.
제국에 불만을 느끼고 있던 숨어 있던 자들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합류했다.
반란군을 도우며.
카디엠이라는 이름은 반란군에게는 악마로, 카일이라는 이름은 성자라 불렀다.
카일은 반란군의 수장이 된 자에게 진리에 관해 물었다.
“진리 말입니까? 전쟁이 끝나고, 왕국이 평화를 되찾는 것이야말로 진리가 아닐까요?”
남자에게 있어 모든 걸 빼앗아 간 제국은 악이나 다름없었다.
마탑을 나온 그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진리란 무엇인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문헌을 보고, 연구해도 나오지 않았다.
카디엠이라는 존재는 달라지지 않는다.
그런데 카디엠을, 카일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너무나 달랐다.
누군가에게는 제국이야말로 지상 낙원이었으며, 누군가에게 제국은 악마들의 땅 그 자체였다.
상인에게는 돈이, 반란군에게는 왕국의 부활이, 제국군에게는 제국 통일이, 병사에게는 가족과 행복할 수 있는 삶이야말로 곧 진리였다.
반란군이 반제국 연합과 손을 잡으면서 대륙의 2/3를 차지했던 제국은 빠른 속도로 무너졌다.
카디엠은 황제의 앞에 섰다.
스승인 크리스테인이 죽고, 아무것도 모른 채 끌려왔던 그 당시의 카디엠이 아니었다.
그러나 달라진 게 있었다.
카디엠은 그때의 카디엠이었으나, 황제는 그때의 황제가 아니었다.
거듭된 전쟁, 넘쳐나는 부를 감당하지 못한 자들은 귀족과 손을 잡고 더 많은 권력을 탐했다.
눈앞에 있는 황제는 10살도 채 되지 않은 뚱뚱한 아이였다.
아이의 뒤로 늙은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카디엠이 첫 번째로 만났던 상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