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화 밤의 여왕 (5)
“으아아아악!”
“살려 줘…… 살려, 살려 줘! 으아아아악! 끄으윽!”
보통 좀비가 된 유저들은 죽으면 자신이 처음 죽었던 장소에서 부활한다.
좀비가 된 이후 죽은 장소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러나 아틀락 나챠의 먹이가 된 유저들은 거대한 동공에서 부활을 거듭했다.
“저 녀석들은 이 근처에서 죽은 녀석들인가?”
[내 생각은 좀 달라.]
“무슨 말이지?”
나는 막 부활한 유저들이 있는 방향을 손가락질했다.
그중에는 서유라도 포함이 되어 있었다.
서유라가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가 죽은 곳은 여기가 아니었다.
서유라는 아틀락 나챠의 동공에서 부활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건 아틀락 나챠의 패시브 스킬 같아.]
“죽으면 근처에서 부활하는 게?”
[그래, 녀석은 밤의 여왕이잖아.]
로비에서 밤이란, 죽은 자들인 좀비가 돌아다니는 시간이었다.
밤이나 죽은 자들과 관련된 패시브 스킬이 있을 확률이 높았다.
[다른 유저들이 학을 떼는 이유도 저것 때문이겠지.]
죽으면 무슨 꼴을 당할지 안다는 게, 단순히 한 번의 잔인한 죽음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그래도 그렇지, 좀 이상한데.’
기둥을 차지하고 있는 클론들은 부정한 자 압호스에게서 태어난 개체였다.
저번 왕 게임의 생존자였던 이은희와 김다솜은 밤의 여왕, 아틀락 나챠에 대해 알고 있었다.
저번 회차에서 압호스에게서 아틀락 나챠가 태어나는 거야 있을 수 있다. 그런데 그게 이번 회차에서 똑같이 일어났다는 건 좀 의심해 볼 여지가 있었다.
결정적으로 두 눈으로 직접 본 아틀락 나챠는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위험해 보였다.
압호스의 열화판에게서 태어난 단순한 클론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사라지질 않았다.
[유지한.]
“왜?”
[지금이라도 그만하자고 말하면 그만할 거냐?]
“돌아갈 수는 있고?”
유지한이 아이템 창에서 검을 꺼낸 후 아래로 시선을 옮겼다.
아틀락 나챠의 주변에는 수백, 수천 개의 실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실의 굵기가 사람의 손목만 해서 저걸 실이라고 불러야 할지 의심이 될 정도였다.
그 거미줄의 가운데에 밤의 여왕 아틀락 나챠가 있었다.
10m는 족히 넘어 보이는 크기에 거대한 몸통을 뚫고 수많은 다리가 나와 있었다.
다리의 형태는 제각각이었는데, 어떤 것은 집게발이었고, 어떤 것은 검은 비늘에 둘러싸여 있었다.
또 어떤 다리는 지렁이처럼 흐늘거렸다.
흡사 모든 생물과 몬스터의 다리를 모아 놓은 것만 같았다.
아틀락 나챠의 피부는 검붉었으며, 이마에는 수십 개의 붉은 눈동자들이 왕관처럼 박혀 있었다.
검을 쥔 지한의 손이 잠시 흔들렸다.
“지금 돌아가도 박승환은 못 이긴다. 그럴 바에는 여기서 죽는 게 나아.”
“너, 너 안 죽는다고 했잖아!”
“말이 그렇다는 거잖아.”
지한이 쓸데없는 토를 달지 말라며 한미래의 말을 잘랐다.
[그래. 네 생각이 그렇다면야.]
“넌 꼭 이럴 때는 반대하지 않는군.”
[반대하지 않는 게 아니라 네 의견을 존중하는 것뿐이야, 원래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잖아.]
“내가 네 자식은 아닌데. 너 같은 게 부모라면 난 진작 가출 청소년이 되었겠군.”
와, 내가 얼마나 잘해 줬는데!
이러니 부모들 마음이 타들어 가는 거야!
너 같은 놈 때문에!
[그냥 내 신조야.]
아마 유지한이 아니라 은영 누나나 최수현이 가겠다고 해도 나는 말리지 않았을 게 분명했다.
초월자 유지한이 나와 틀어졌다고 해도, 지금 내 눈앞에 있는 필멸자 유지한은 틀림없는 내 신도였다.
나는 안다.
신도에게 신은 최후의 보루 같은 존재다.
자신이 모시던 신에게마저 거부를 당하는 건 존재 가치 자체를 부정당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내가 믿어 주지 않으면 누가 믿어 줘. 그리고 너 그렇게 쉽게 죽을 놈 아니잖아.]
“빈말하지 마라.”
유지한이 코웃음을 쳤으나, 쥐고 있던 검의 떨림이 멈춘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솔직하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남는 건 참 어려운 일이었다.
유지한과 한미래는 상황을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다.
부활한 유저들은 아틀락 나챠의 주변에 있는 렝의 거미에게 붙잡혔다.
스스스스.
“으아아아아악! 사, 살려 줘!”
“끄으으윽…….”
“괴물, 죽어…… 으아아!”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포기하고 무한한 죽음과 고통을 받아들인 유저도 있는가 하면, 죽을힘을 다해 발버둥을 치는 유저도 있었다.
아틀락 나챠는 산채로 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끄집어내 먹은 후, 몸통을 한입에 집어삼켰다.
열 몇 명의 유저들을 먹은 아틀락 나챠의 거대한 몸통이 부르르 떨렸다.
아틀락 나챠의 몸 아래에서 핏덩이 같은 알이 뚝뚝 떨어졌다.
렝의 거미들은 그 알을 한쪽으로 잘 옮겨 놓았다.
“하, 저걸 어떻게 잡냐.”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던 유지한이 결국 푸념에 섞인 중얼거림을 내뱉었다.
저런 소리 자주 하는 녀석이 아닌데, 오죽했으면 저럴까 싶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게 유지한은 근접전에 특화된 유저였다.
이은희나 김다솜이 있다면 장거리에서 폭격에 가까운 딜을 넣는 게 가능했다.
두 사람이 적당히 어그로를 끈 사이, 지한이 아틀락 나챠에게 접근을 하면 된다.
유지한이 한미래를 보며 혀를 찼다.
“쓸모없는 놈.”
“뭐라고? 나, 나라고 여기 오고 싶어서 오, 온 줄 알아?”
한미래가 벽에 기대며 숨을 골랐다.
“괴물이라는 마, 말은 들었지만 저건 괴물 이상이잖아.”
“크긴 하지.”
“저게 그냥 크, 크긴 하지? 하고 넘어갈 문제야?”
“시끄러워.”
유지한의 말에 한미래는 혹시라도 소리가 들릴까, 재빠르게 입을 틀어막았다.
쿠우우우웅.
상황을 보고 있을 무렵 아틀락 나챠가 몸을 움직였다.
느릿느릿 움직인 녀석이 쿵, 하며 바닥에 완전히 주저앉았다.
아틀락 나챠의 커다란 입이 벌어졌다.
“뭐 하는 거지?”
“뭐긴 뭐야, 하품하는 거지. 졸리는가 본데? 왜? 못 믿겠어? 하품 맞다니까?”
잠시 후, 한미래의 말대로 아틀락 나챠의 눈들이 반쯤 감기기 시작했다.
30분 정도가 지나니 아틀락 나챠의 모든 눈이 완전히 감겼다.
“운이 좋군.”
식사 후 피곤해서 잠이 든 건 지극히 당연한 생리 현상이었다.
“운이 좋긴 무슨, 어차피 죽여야 할 놈인데. 너 저놈 한 번에 보낼 수 있어?”
“없지.”
“봐 봐.”
한 방에 죽이지 못한다면 어차피 아틀락 나챠는 깨어난다.
잠이 들어 있든 말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유지한이 한미래의 말을 무시한 채 아래쪽을 손가락질했다.
“그런데 저건 뭐지?”
아틀락 나챠의 주변에는 커다란 덩어리 몇 개가 있었다.
덩어리에는 크고 작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렝의 거미들은 아틀락 나챠가 낳은 핏덩이를 닦은 후, 그걸 그대로 구멍에 끼워 넣었다.
몇몇 렝의 거미들은 거미줄에 붙잡힌 유저를 덩어리 위에 있는 커다란 구멍으로 집어넣었다.
유저들이 내보내 달라며 발버둥을 쳤다. 잠시 후, 구멍 안에 있던 유충들이 나와 유저들을 산 채로 뜯어 먹기 시작했다.
“으윽. 진짜 토할 것 같아.”
한미래가 등을 돌리며 메슥거리는 속을 달랬다.
“방향이 정해졌군.”
[그런 것 같네.]
“뭐? 무슨 방향?”
“네 말대로 아틀락 나챠와 싸우려면 어차피 놈을 깨워야 한다. 그렇다면 그 전에 줄일 수 있는 전력을 줄여야겠지.”
아틀락 나챠 하나만으로도 성가신데, 그 주변에는 수많은 렝의 거미들과 유충들이 있었다.
이 상태로 싸움을 시작한다면 아틀락 나챠에게 닿기도 전에 유충과 렝의 거미들에게 죽을 가능성이 컸다.
아틀락 나챠의 유충의 집은 총 5개였다.
“내가 3개, 네가 2개다.”
“뭐, 뭐? 나도 해야 해?”
“놀러 왔냐?”
“그런 건 아니지만……. 너라면 모를까, 나는 저렇게 큰 걸 자를 만한 힘이 없어.”
한미래는 뉴비였다.
한미래의 의술의……. 그렇군.
“딱히 너보고 하라고 한 적은 없다.”
“그 말은…….”
한미래가 유지한의 의도를 눈치챘다.
한미래의 손에 있는 반지가 윙윙거렸다.
잠시 후, 나에게 의술의 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에잉, 쯧. 망할 놈 같으니라고. 어쩌다 저런 망나니 같은 걸 신도로 뒀는지 모르겠군.]
[이봐, 면전에 대고 남의 신도 욕하지 말라고. 너 대체 정체가 뭐야?]
신명을 안다고 해서 그 신의 모든 걸 알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베리타스 신이 과거에 마법사였다는 사실도 그와 직접 부딪혀 보기 전까지 몰랐으니 말이다.
[지금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 않소.]
[그건 그렇지. 그래서 할 거야? 안 할 거야?]
[내 신도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주제에 뻔뻔하기 그지없구려. 선택지가 없다는 걸 알고 있소이다. 협력하도록 하지. 나 역시 벌써 금쪽같은 신도를 잃고 싶진 않으니 말일세.]
의술의 신과의 대화가 무사히 끝나자 한미래가 입을 열었다.
“알았어. 노력해 볼게. 나도 네 말대로 놀러 온 게 아니니까.”
유지한이 아래를 보며 한미래와 유충의 집을 털 계획을 세웠다.
계획은 간단했다.
먼저 내려간 유지한이 중간 거리에 있는 집을 처리하며 어그로를 끈 틈을 타, 한미래가 멀리 있는 유충의 집을 처리한다.
이후 유지한이 아틀락 나챠와 가장 근접해 있는 마지막 집을 턴 후, 사냥에 나서기로 했다.
“살아서 보지.”
“아, 알았어.”
지한이 내 몸에 연결된 끈을 앞으로 꽉 멘 후 아래로 뛰어내렸다.
내려다보는 것 이상으로 동공의 높이는 상당히 높았다.
지한의 앞으로 복잡하게 엉킨 실들이 나타났다.
지한이 허공에 얽혀 있는 실들을 잘라 냈다.
실이 잘려 나가며 아틀락 나챠를 건드리긴 했으나 큰 움직임은 없었다.
타앗.
지한이 바닥에 발을 디뎠다.
스스스스.
주변을 돌아다니던 렝의 거미들이 지한에게 다가왔다.
지한을 부활한 사용자 중 하나로 착각한 것 같았다.
지한이 웅웅거리는 검을 두 손으로 꽉 쥐었다.
검은 마치 지금부터 지한이 싸움을 시작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스스스스스.
렝의 거미 한 마리가 목을 향해 발을 움직였다.
뒤쪽으로 검을 휘두른 지한이 뛰어올랐다.
렝의 거미의 뒤를 잡은 지한이 검을 크게 움직였다.
렝의 거미 한 마리가 반으로 잘려 나가며 쓰러졌다.
지한은 다가오는 렝의 거미들을 죽이며 첫 번째 유충의 집으로 달려갔다.
“죽어!”
지한의 천룡무상검법(天龍無上劍法)이 유충의 집을 갈기갈기 찢어 놓았다.
“꺄아악! 으윽! 아아악! 살려 주…….”
촤아악.
서유라의 허벅지를 파먹던 유충이 반으로 잘려 나가며 쓰러졌다.
“으윽, 너! 유지한! 네, 네가 왜 여기에 있어!”
정신을 차린 서유라가 유지한을 보고 깜짝 놀랐다.
지한은 그런 서유라를 무시한 채 유충의 집 가운데에 섰다.
구멍들 사이에서 유충들이 하나둘씩 얼굴을 내밀었다.
지한이 머리 위로 검을 높이 치켜들었다.
지한의 검이 지나갈 때마다 유충들이 낙엽처럼 잘려 나가며 떨어졌다.
콰아아앙.
멀리 떨어진 곳에서 또 다른 소리가 났다.
의술의 신의 힘을 빌린 한미래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증거였다.
스스스.
유충의 집에 들어온 렝의 거미들이 뒤로 돌아봤다.
지한이 검으로 아직 새끼인 유충의 몸을 찔렀다.
키아아아아악!
끄아아악!
죽지 않을 정도로 난도질을 당한 새끼 유충의 입에서 차마 듣기 힘든 괴성이 나왔다.
그 소리에 렝의 거미들이 분노하며 지한에게 달려들었다.
“야, 너…… 대체 무슨…….”
“꺼져. 너한테 볼 일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