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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했더니 신이 되었다-226화 (226/760)

226화 잊혀진 세계의 군주 (2)

시련의 탑.

이것은 시련을 겪는 유저에게 던지는 또 다른 질문이기도 했다.

당신이 원한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세계를 존속시키는 것도 가능하며, 동시에 파괴하는 것도 가능했다.

‘왜냐하면…….’

이 세계는 처음부터 유지한의, 한미래의, 서유라의 세계이기 때문이었다.

이지스가 유지한에게 손을 내밀었다.

“너에겐 세계의 주인이 될 자격이 있다.”

이지스가 느끼는 이 세계는 부조리와 불합리함의 끝판왕이었다.

태어났을 때 모든 것이 결정된다.

첫 시작부터 잘못된 단추를 바꿔 끼는 것은 불가능했다.

세 사람은 외부인이었다.

이지스를 선택했을 경우, 이 세계가 어떻게 바뀔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게 옳은가?’

저 녀석이라고 해서 똑같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유지한은 이미 한번 똑같은 경험을 했다.

“한미래, 서유라. 나를 믿나?”

“흥, 어차피 자기 마음대로 행동할 거면서. 그런 건 왜 물어보는 건데?”

“나는 믿어.”

한미래가 퉁퉁 부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불가살이의 검을 쥔 유지한이 차원의 조각 앞으로 다가갔다.

“지금 뭘 하려는 거지? 제정신이냐!”

“야! 너 미쳤어? 뭐 하는 짓이야!”

당황한 에르엘과 이지스가 소리를 지르며 뛰어오자 한미래와 서유라가 앞을 막았다.

몸을 살짝 튼 유지한이 이지스를 향해 말을 걸었다.

“너 정말 해방이 목적이냐?”

“…….”

“혼란을 틈타 또 다른 황제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니고?”

“내가 만드는 세계는 이전의 세계와는 다를 거다.”

“안 믿어.

유지한이 이를 꽉 깨물었다.

이지스는 또 다른 독재자가 될 테고, 그럼 다시 해방군을 자처하는 누군가가 그 자리를 빼앗으려 들 것이었다.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유지한이 느끼는 건 그런 세계에 대한 분노였다.

차원의 조각이 정말 유저의 의지를 대변하는 물건이라면.

유지한의 불가살이의 검이 검게 빛나며 차원의 조각을 향했다.

“내가 이 세계를 부순다!”

어차피 반복될 재앙의 세계라면 부숴 버리는 게 훨씬 나았다.

유지한의 불가살이의 검이 차원의 조각에 닿았다.

유저의 의지를 대변하는 차원의 조각이 일렁거리며 금이 갔다.

갈라지기 시작한 균열이 점점 더 커졌다.

차원의 조각에 금이 가면 갈수록 세계가 진동했다.

차원의 조각이 완전히 무너지는가 싶던 그때.

가장 순수한 차원의 조각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기운들이 흘러나왔다.

콰아앙.

“뭐, 무슨…….”

“유지한!”

불가살이의 검과 함께 튕겨져 나온 유지한의 몸이 허공에 붕 떴다.

뛰어오른 서유라가 유지한이 놓친 검과 유지한의 몸을 붙잡은 후 아래로 내려왔다.

비틀거리며 일어난 유지한이 엉망이 되어 있는 차원의 조각을 바라봤다.

[??의 ???으로 인해 ??의 클리어에 ??했습니다.]

[(경고) 세계점(世界點)이 침식될 경우 선의 이야기에도 영향을 받습니다.]

[침식 진행도 : 77%]

“이건 또 무슨…….”

상태창을 전부 파악할 틈도 없이 유지한은 한미래를 찾았다.

한미래는 화타의 검을 쥔 채 이지스와 에르엘을 막고 있었다.

“한미래! 그 자식에게서 물러나!”

“무슨 말…….”

유지한의 말에 한미래가 재빨리 화타의 검을 뽑았다.

이지스의 몸이 기괴하게 뒤틀리며 입 안에서 튀어나온 손이 한미래의 얼굴을 향했다.

몸을 뒤로 내뺀 한미래가 반사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날카로운 손톱이 뺨과 목 근처를 할퀴고 지나갔다.

“으아악! 이게 뭐야!”

유지한이 말해 주지 않았더라면, 그 순간 검이 손에 없었더라면 한미래의 머리는 짐승 같은 손에 붙잡혀 터져 나갔을 것이었다.

흉측하게 생긴 손이 한미래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바닥에 손을 짚은 한미래가 백 텀블링을 하며 몸을 한 번 더 뒤로 내뺐다.

유지한과 서유라가 간신히 한미래에게 다가갔다.

“야, 저…… 저게 뭐야? 너 차원의 조각으로 이 세계를 없애 버리려고 했던 거 아니야?”

“그랬는데. 아무래도 문제가 생긴 모양이다.”

“무슨 문제?”

“상태창을 봐라.”

“상태창? 아무 문제도 없는데?”

한미래가 이해할 수 없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지한이 설마 하며 서유라를 바라봤다.

“상태창이 왜?”

“아무래도 이건 내 문제 같아 보이는군.”

유지한은 두 사람에게 상태창에서 나온 내용을 공유했다.

“침식? 세계점? 그게 뭔 말인데?”

“세상에…….”

유지한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서유라와 달리 한미래는 입을 크게 벌렸다.

초월자인 한미래는 서유라와 달리 어느 정도 ‘시련의 탑’과 초월의 개념을 이해하고 있었다.

유지한이 차원의 조각을 부수려 했던 건 세계에 대한 분노 때문에만은 아니었다.

황제를 상대했을 때 느꼈던 정체 모를 불안감도 유지한이 차원의 조각을 부수려 했던 것에 한몫했다.

유저를 대상으로 하는 황제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건 곧 이 세계의 중심인 차원의 조각이 침식을 당했다는 걸 의미했다.

“으아, 으아아악!”

“끄윽…… 으으윽!”

갈라진 차원의 조각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물들이 뚝뚝 떨어졌다.

세계에 영향을 받는 자들이 비명을 지르며 괴로워했다.

“어…… 째서…….”

피 눈물을 흘리는 이지스가 유지한을 바라봤다.

이지스의 몸이 완전히 터져 나가며 피투성이가 된 괴물이 튀어나왔다.

한미래가 차분하게 검을 쥐고 있는 유지한의 옆으로 다가갔다.

“너 설마 일이 이렇게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던 건 아니지?”

“황제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건 짐작했지만, 이건 몰랐다.”

“…….”

“진짜라고!”

유지한은 최근 들어서 자신의 신뢰도가 이상할 정도로 낮은 것에 짜증이 났다.

여기저기서 비명과 함께 살이 터져 나가는 소리가 났다.

터져 나간 시체들 사이에서 정체 모를 괴물들이 나타났다.

괴물의 모습은 다양했다.

사람의 모습을 한 것도 있으며, 동물, 몬스터의 모습을 한 것도 있었다.

특징이 있다면 그들에게는 빛이 존재하지 않았다.

피부를 쳐다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빨려 들어갈 것 같았다.

그것은 마치.

“그림자 같군.”

유지한은 귀찮으니 괴물들을 그림자라고 칭하기로 했다.

파랬던 하늘이 검게 물들며, 붉은 태양이 세상을 비췄다.

그 모습이 종말의 한 장면을 보는 것만 같았다.

[왕의 권능이 발동합니다.]

[왕의 권능으로 인해 ‘마력 탐지’ 스킬이 극대화됩니다.]

마력 탐지 스킬을 강화한 유지한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림자도 그림자였지만, 공간의 이곳저곳이 쉴 새 없이 일렁거리고 있었다.

“윽.”

차마 쳐다볼 수 없었던 유지한이 고개를 숙이며 눈을 살짝 감았다.

누군가 눈에 페인트를 뿌려 놓은 것처럼 세상이 얼룩덜룩하게 보였다.

크게 심호흡을 한 유지한이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봤다.

검은 얼룩이 있던 공간이 갈라지더니 그 안으로 뭔가가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가장 먼저 균열에서 튀어나온 괴물을 발견한 서유라가 인상을 찌푸렸다.

“지렁이 극혐인데.”

아틀락 나챠와 싸울 때, 서유라는 렝의 거미의 유충에게 호되게 당한 적이 있었다.

균열을 뚫고 나온 그것의 끝에는 커다란 눈이 달려 있었다.

눈 밑에 있는 작은 입이 벌어지더니 뭔가를 집어삼켰다.

녀석의 입은 오물거리고 있었으나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유지한은 얼마 가지 않아 지렁이같이 생긴 놈이 먹고 있는 것의 정체를 눈치챘다.

“공간이다.”

“뭐, 뭐라고?”

“저 지렁이는 공간을 먹고 있는 거다.”

지렁이가 지나간 자리의 공간이 검게 물들었고, 갈라진 균열이 더욱 커졌다.

균열에서 나온 또 다른 괴물이 세 사람을 내려다봤으며, 그림자들이 덤벼들었다.

서유라가 바닥을 향해 주먹을 내리꽂았다.

세 사람을 중심으로 커다란 장벽이 만들어졌다.

서유라가 만든 암석들이 빠르게 무너졌다.

무너진 암석 틈을 타고 냉기가 퍼져 나갔다.

사방에서 피어난 천년빙화(千年氷花)가 깨지며 그림자들을 향해 날아갔다.

다소 위력이 떨어진 얼음꽃들이 그림자들을 공격했으나 모든 그림자를 막아 내기란 역부족이었다.

유지한이 다가오는 그림자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이런, 미친!”

허공을 베는 듯한 감각에 당황한 유지한이 급하게 뒤로 물러났다.

뾰족하게 변한 그림자의 손이 유지한의 어깨와 무릎을 찌르고 지나갔다.

유지한이 한미래의 빙화가 박혀 있는 그림자를 흘끔 바라봤다.

고통을 느낄 틈도 없이 유지한은 그림자를 향해 달빛 베기를 사용했다.

그림자의 몸이 검을 통과하더니 고통을 느낀 모양인지 녀석이 뒤로 물러났다.

“이 녀석들, 물리 공격은 안 통한다!”

“뭐? 왜 이렇게 상대하기 힘들어!”

물리 공격 위주인 서유라가 주먹을 뒤로 내빼며 유지한의 뒤로 숨었다.

상처를 입은 그림자들이 뒤로 물러나더니 이내 거대한 덩어리로 바뀌었다.

거대한 애벌레에 의해 사라진 공간 사이로 더 심각한 괴물들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갈라진 균열 사이로 붉은빛이 나타났다.

이대로 가면 죽는다.

자신뿐만 아니라 한미래와 서유라의 목숨 또한 장담할 수 없었다.

─ 나는 소테르 신이 아니야. 하지만 어디서든지 너희를 지켜보고 있어.

소테르 신과 연락이 되지 않았을 때, 유지한은 자신을 지존검제라고 말했던 정체불명의 신을 대신 만난 적이 있었다.

소테르 신과 똑같은 스킬을 사용하면서.

소테르 신과는 다르다고 한 그.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대화하는 내내 정체를 알 수 없는 슬픔이 느껴지는 어딘가 불쌍해 보이는 신이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유지한이 떠올린 건 소테르 신이 아니었다.

유지한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불가살이의 검을 꽉 쥐며 소리를 질렀다.

“보고 있지만 말고 나와서 좀 도와 달라고! 개새끼야!”

머리 위에 있던 붉은 빛이 새 사람을 집어삼켰다.

거대한 폭발음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소리를 집어삼킨 것만 같았다.

“쿨럭……!”

정신을 차린 유지한이 가장 먼저 눈을 떴다.

투명한 바다에 빠진 것 같이 세상이 푸르게 보였다.

발이 닿지 않았으며 몸이 붕 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물?’

그런 것치고는 숨을 쉴 수 있으며, 물이 입 안으로 들어오는 느낌도 없었다.

유지한은 주먹을 꽉 쥐며 상태를 확인했다.

물에 닿은 부분들의 상처가 낫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유지한을 감싸고 있는 물은 한미래가 만들어 낸 ‘치유의 물’과 비슷했다.

동시에 훨씬 더 순도가 높고 짙었다.

유지한이 헤엄을 쳐 물속에 둥둥 떠 있는 불가살이의 검을 집었다.

검을 쥐기 무섭게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난장판이네.]

“너……!!”

유지한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다름 아닌 붉은 슬라임이었다.

이은희는 1층에서 슬라임을 구해 주고 활을 받았다고 말했다.

11층에서 다시 만났을 때, 페일리아 공작은 슬라임을 향해 ‘사서’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유지한이 알고 있는 사서(司書)는 도서관을 관리하는 사람 말고는 없었다.

시련의 탑에는 수많은 세계점과 유저의 이야기들이 존재했다.

만약 누군가의 이야기가 책으로 남아 존재한다면 그것을 모아 놓은 곳을 도서관에 비유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

“지존검제.”

[…….]

“네가 초코송이의 신이냐?”

[초코송이의 신이라고 하니까 이상하게 들리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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