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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했더니 신이 되었다-229화 (229/760)

229화 경쟁전 (1)

나는 이미 박진우와 진실게임을 통해 박진우의 진심을 들은 적이 있었다.

‘질문의 의도가 저게 아니었던 것 같은데.’

내가 궁금했던 건 박진우가 표면적으로 지리산에 있는 ‘사람 먹는 던전’의 의뢰를 가장해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지, 박진우의 최종 목표가 아니었다.

“너 진짜 세계 정복에 진심이구나.”

물론, 엄밀하게 말하자면 박진우가 말하는 세계 정복이란 게 전 세계에 한국의 태극기를 꼽아 버리겠다(?) 같은 게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박진우의 ‘세계 정복’이란 결국 자신의 신을 1위에 올려놓겠다는 뜻이었다.

뭐가 됐든 한국 헌터가 1위가 되면 한국이 세계를 지배한다고 말할 수 있었다.

나는 황당한 얼굴로 회의실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박시우는 박진우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현실을 부정했다.

이상할 정도로 박진우를 잘 따르는 최수현은 의외로 저 말이 진심인가?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은영 누나는 박진우의 말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입을 뻐끔거리자 박진우가 내 생각을 읽은 것처럼 말했다.

“장난치는 걸로 보여?”

“반쯤은.”

그나마 말을 하는 대상이 박진우니까 절반만 믿어 준 것이었다.

보통 평범한 사람이 세계 정복이 목적이라고 말한다면 미친놈 취급을 하며 웃고 넘어간다.

“난 진심이다. 던전이 생기기 전과 후를 비교했을 때 세계 질서가 얼마나 바뀌었다고 생각하지?”

테이블에 손을 올린 박진우가 주먹을 꽉 쥐었다.

퍼스트 게이트가 일어나기 전에도 미국은 강대국이었으며, 중국은 여전히 인구수 1위를 차지하는 인구 대국이자 세계 경제 2위 국가였다.

러시아, 유럽 연합 등.

강대국만 놓고 본다면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퍼스트 게이트는 그런 강대국들의 질서를 확고하게 해 주는 계기가 되었지.”

문명사회와 현대적 인프라, 자본이 받쳐주는 나라들은 초창기 퍼스트 게이트 당시 가장 먼저 움직였으며 발 빠르게 대처했다.

그에 비해 소위 말하는 개발 도상국이나 후진국들은 그 무엇에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던전과 몬스터라는 게 정부가 만들어 낸 거짓말이라고 믿다가 괴멸을 한 국가도 있으며, 던전 게이트를 숭배하다가 던전 브레이크로 인해 몰살당한 곳도 있었다.

던전 게이트가 일어나기 전 생긴 부와 격차는 던전이 생겨난 이후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던전은 어디에서나 나타났고, 어디에나 존재했지만, 어느 국가에서 어떻게 나타나느냐에는 차이가 있었다.

한국은 그 가운데 정말 운이 좋은 케이스였다.

‘하긴 원래부터 IT 강국이기도 했고, 게임이나 최신 정보에는 민감한 편이었으니까.’

초창기 몇몇 헌터들이 던전에 과몰입해 문제가 되긴 했지만, 각성자들은 던전이 생겼다 하면 신이 나서 전국 방방곡곡 가리지 않고 우르르 뛰어가 던전이란 던전을 전부 공략해 버렸다.

난도가 높거나 위험한 던전의 경우에는 자기네들끼리 정규 공대를 만들어 진입하는 것도 흔하게 일어났다.

현실이 게임처럼 변했다면, 게임에서 사용하던 구조를 그대로 가져와도 괜찮겠지! 하고 시작한 게 지금의 한국형 길드였고 협회였다.

당장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한 옆 나라 일본만 해도 ‘일본’이라는 이름 대신 ‘열도’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한국이 달라진 건 뭐지? 살아남은 것? 그게 무슨 대수지?”

“…….”

“퍼스트 게이트 이전에도 한국은 분단국가였고, 지금도 분단국가다. 일본이 괴멸하고 열도라 불리게 되었지만, 섬나라 놈들은 여전히 한국을 노리고 있지.”

박진우의 말은 현시대의 한국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분명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내가 송도에 창세의 나무를 발견한 건 2년 전이다. 그 당시에도 이미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지.”

이해는 한다.

박진우는 대를 이어 온 계승자지만, 차원의 균열을 막을 방법은 없었다.

“더 기가 막힌 건 그놈들이 내가 발견하기 한참 전부터 그 짓거리를 해 왔다는 거다.”

창세의 나무는 생명을 먹고 자라는 나무였다.

던전 브레이크로 인해 생겨난 몬스터를 옮기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인간이 가장 쉽게 다를 수 있는 생명은 같은 인간이었다.

창세의 나무가 죽은 이들의 분비물로 꽃을 만들기 시작한 건 비교적 최근일 수도 있었다.

뭐가 됐든 나무가 그만큼 자라기 위해서는 많은 생명이 필요했다.

그 나무는 수많은 사람의 무덤과 똑같았다.

자신들을 괴멸로 몰아간 ‘창세의 나무’를 이용해 한국을 지배하겠다는 목적의식을 가지고 수많은 사람을 죽인 것이었다.

‘음침한 놈들인 건 알고 있었는데.’

박진우가 반 협회 파인 전혜인 의원을 밀어준 건, 전혜인을 통해 협회 내부에 있는 적들을 처리하기 위함이었다.

나는 아주 잠깐 궁금해졌다.

세계를 정복하겠다 까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을 바꾸고 싶다는 저 의지는 정말 박진우 개인의 의지일까? 아니면 박진우의 이전에 거쳐 간 헌터들의 의지일까?

뭐가 됐든 유일하게 외국에서 간섭할 수 있는 도시였던 송도가 무너지고, 전혜인이 대통령이 된 지금 한국에서 박진우를 건드릴 수 있는 건 없었다.

“물론 2할은 농담이긴 하지만, 적어도 한국을 우습게 보는 것들에게 한 방 먹여 주긴 해야겠지.”

“그 말은?”

“최근 열도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

일본이 괴멸했다고 해도 일본이라는 나라를 유지하는 정부가 무너졌을 뿐, 일본에 있는 사람들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물론, 창세의 나무로 인해 전성기 시절보다 인구가 많이 줄었다는 이야기는 있었다.

내가 만난 놈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을 ‘야마토’ 출신이라고 칭했다.

“심상치 않다는 게 무슨 뜻이야?”

“내부에 있는 정보원의 말로는 뭔가 큰일을 준비한다더군. 창세의 나무 프로젝트는 막았지만, 열도는 여전히 한국을 노리고 있다. 아니, 그 녀석들의 큰일이 한국과 관련이 없다고 해도 나는 강도가 내 이웃이 되는 걸 원하지는 않는다.”

박진우의 살기에 회의실의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당황한 은영 누나가 딸꾹질을 하자, 박진우가 급하게 살기를 거두며 영업용 미소를 지었다.

박진우의 말대로라면 공식적으로 말하지만 않았을 뿐, 이건 일본에 대한 선전 포고나 다름없었다.

박진우는 전혜인을 대통령으로 당선시키고, 송도를 결딴냄으로 인해 국내 정권은 물론, 협회에서 오랫동안 관습이라는 이름 아래에 행해진 악습들을 전부 폐기했다.

이로써 한국은 박진우의 손아귀에 떨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박진우의 행동은 박시우가 아리아 길드를 한 번에 정리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국내 정리, 다음에는 일본. 그다음에는 북한인가.’

아마 그 과정에서 중국과의 충돌이 있을 가능성이 컸다.

그것도 넘어갈 수 있다고 치자. 만약 모든 게 박시우의 의도대로 됐을 때의 일이 남아 있었다.

“너 칠성신이랑 싸울 생각이야?”

“각오는 하고 있다.”

“저기, 나 뭔가 들어서는 안 될 말을 들은 것 같은데 집에 가도 될까?”

담담한 최수현이나 박시우와 달리 은영 누나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난 헌터가 되고 싶었지, 세계 정복을 하고 싶었던 건 아닌데.”

“누나. 그게 그거야.”

“어딜 봐서 그게 그거야! 스케일이 다르잖아. 스케일이. 나한테는 열도만 해도 너무 큰 일이란 말야.”

“하하, 지금 당장 일어날 일은 아니니까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어.”

“미래에 일어날 일이라고 한다면 그게 더 큰 걱정이네요.”

“뭐, 열도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사람 먹는 던전을 조사하고 난 다음에 하도록 하지. 이쪽도 정보를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거든.”

박진우가 적당히 선을 그으며 이야기를 종료했다.

* * *

지리산 국립공원 인근 리조트.

우리는 박시우가 잡아 준 스위트룸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거실로 나오니 잠옷 차림의 은영 누나가 서 있었다.

은영 누나가 굳게 닫혀 있는 암막 커튼을 노려봤다.

“누나 뭐 해?”

내가 묻기 무섭게 누나가 두 손으로 커튼을 거칠게 걷었다.

차르륵 소리와 함께 커튼이 옆으로 펼쳐지며 창문 너머의 풍경이 드러났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비가 지리산의 풍경을 가렸으며 동시에 번쩍하고 번개가 쳤다. 커튼을 두 손으로 붙잡은 은영 누나가 나와 반대편 방에서 하품하며 기어 나오는 최수현을 번갈아 바라봤다.

“우리 내일 가면 안 될까?”

“…….”

“오, 날씨 한번 더럽게 좋네.”

“야! 이게 날씨가 좋은 거야? 좋은 거냐고! 하필이면 날을 잡아도 이렇게 잡고 난리야.”

최수현이 핸드폰을 꺼내 기상청을 확인했다.

핸드폰을 훔쳐보니 종일 비 소식이 있었다.

“뭐……. 그래도 출발할 때는 조금 그치겠지.”

최수현의 위로에 은영 누나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리조트 로비에 있는 식당에서 조식을 먹고 밖으로 나온 세 사람은 할 말을 잃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본 최수현이 중얼거렸다.

“음, 오늘이 지구 멸망의 날인가?”

비가 줄어들기는커녕 더욱 거세게 내리고 있었다.

“내일…….”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 마라. 송은영.”

“최악!”

은영 누나가 신경질을 내며 등을 돌렸다.

은영 누나의 몸이 뒤에 있던 사람과 부딪혔다.

“아, 죄송…… 어라? 초아 씨.”

“송은영. 똑바로 좀 보고 다니…… 누구라고?”

초아라는 말에 최수현이 리조트 밖에서 안으로 몸을 틀었다.

청바지에 흰 셔츠를 입은 초아가 손을 흔들었다.

초아가 리조트에 도착한 건 어제 새벽 즈음이었다.

“여기는 무슨 일이세요?”

“저도 지리산 조사에 합류하기로 했어요.”

“망할, 박시우. 이걸 어제 새벽에 통보했네.”

최수현이 핸드폰에 쌓여 있는 톡을 보며 짜증을 냈다.

“어머, 수현이는 내가 끼는 게 불만이야?”

“그럴 리가요.”

최수현이 뒷짐을 지며 고개를 흔들었다. 최수현은 헌터들 사이에서도 안하무인으로 유명한 편인데, 이상할 정도로 초아에게는 고분고분했다.

당장에 다른 헌터와 달리 존댓말을 쓰는 것만 해도 그랬다.

‘사연이 있겠지.’

만약 내가 알 필요성이 있는 사연이라면 언젠가 알게 될 테고, 그게 아니라면 굳이 캐물을 필요는 없었다.

“참, 시우가 아침에 비가 많이 올 거라면서 우비도 챙겨 줬어요.”

초아가 어깨에 메고 있는 에코백에서 주섬주섬 우비를 꺼냈다.

쿠우웅.

해맑은 표정으로 우비를 꺼내기 무섭게 천둥소리가 리조트 전체에 울려 퍼지며 아주 잠깐 불이 나갔다가 돌아왔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우비를 쓰고 지리산 인근을 탐색하기로 했다.

리조트를 나오기 무섭게 우비 위로 쉴 새 없이 굵은 빗물이 떨어졌다.

“앞이 안 보여.”

“투덜거리지 마!”

“소풍 온 것 같아서 기분이 좋네요.”

이 멤버로 잘할 수 있을까 진지하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협회로부터 전달받은 좌표 근처에 가까워지기 시작할 때 즈음 나는 마력 탐지 스킬을 넓게 사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노골적으로 수상한 공간의 일렁거림이 느껴졌다.

‘음?’

이건 던전이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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