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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했더니 신이 되었다-245화 (245/760)

245화 한 놈만 걸려라 (4)

2라운드가 종료되고, 우리는 다시 이동되었다.

[10분 후, 최종 라운드가 시작됩니다.]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하늘 위에 정육각형의 바닥들이 연속을 이루어 떠 있었다.

그 밑으로 똑같은 면들이 여러 개 떠 있었다.

살아남은 헌터는 레드팀과 블루팀 헌터들로 200명 정도였다.

육각형 너머에는 결계가 처져 있어서 반대편으로 넘어갈 수는 없었다.

내 옆으로는 바로 최수현이 서 있었다.

다행히 목소리는 차단이 되지 않는 것 같아 보였다.

최수현이 입 안에 고인 피를 뱉어 냈다.

은영 누나의 주먹에 맞은 최수현의 뺨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망할, 진심으로 때리기냐고.”

“괜찮아요?”

“안 괜찮아. 그보다, 초아는…….”

“죽진 않았을 거예요.”

은영 누나는 한두 번 초아를 죽여 본 게 아닌 것 같았다.

탈락자가 된 헌터는 소멸을 할 뿐, 죽지는 않는다.

다음 게임이 시작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부활한다.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초아가 배신자라는 건 무슨 소리지?”

“저는 초아 씨가 배신을 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거야 당연한 거지!”

최수현이 말 같지 않은 소리 하지 말라며 소리를 버럭 질렀다.

나는 그런 최수현을 진정시킨 후 말했다.

“아마도 배신자는 초아 씨가 아닐 수도 있어요.”

“뭔 소리야? 송은영은 초아가 배신자라고 그랬잖아.”

“초아 씨의 신이요.”

“초아의 신이 배신했다고?”

“배신한 건지 아닌 건지까지는 모르겠지만요.”

이건 섣불리 단정을 지을 수 없었다.

은영 누나가 게임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내가 기억을 되찾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무슨 기억이 어떻게 사라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회차를 거듭할수록 기억이 사라지고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총 쏴요.”

은영 누나는 자신이 초아를 죽였을 때마다 최수현은 총을 쏘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닌 척하면서 최수현이 은영 누나를 신경 쓰고 있다는 건 나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예외였다.

“은영 누나한테요. 웬만하면 죽일 각오로 덤벼요.”

내 말에 최수현이 손에 있는 총을 꽉 쥐었다.

최수현에게는 정말 미안한 말이지만, 지금의 은영 누나는 최수현이 기억하고 있는 은영 누나와 달랐다.

여기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주먹질에서는 최수현이 은영 누나보다 강했는지 몰라도 지금은 아니었다.

2라운드 당시 최수현은 은영 누나에게 제대로 된 반격도 하지 못한 채 얻어맞았다.

“총을 사용하지 않으면 다음번엔 은영 누나에게 정말 맞아 죽을걸요.”

“그렇다고 죽일 각오로 싸우라는 건 좀…….”

“은영 누나는 이미 초아 씨를 죽였잖아요.”

“걔도 원해서 죽인 건 아닐 거 아니잖아. 이야기하면…….”

“불가능해요.”

나는 은영 누나가 서 있는 곳을 바라봤다.

은영 누나라고 과연 우리를 설득하려 하지 않았을까?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이건 반복되는 비디오 게임과 똑같았다.

게임 속 ‘캐릭터’는 모든 상황이 처음이지만, 캐릭터를 움직이는 사람은 달랐다.

죽음을 거듭하고, 회차를 반복할수록 가장 효율적인 방식을 선택하게 된다.

지금의 은영 누나가 딱 그 상태였다.

“죽을 각오를 해도 은영 누나를 이길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데요.”

“송은영이 제대로 헌터가 된 건 몇 년도 안 됐어.”

“하지만 형은 은영 누나에게 수십 번도 넘게 죽었겠죠.”

아무리 강한 보스라고 해도 패턴 그 자체가 공개되어 버리면 그다음부터는 의미가 없었다.

객관적으로 최수현은 초월한 은영 누나보다 강할지 몰라도, 지금의 은영 누나는 누구보다도 최수현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알았어.”

최수현이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순순히 노력해 보겠다고 했다.

“너는 어떻게 할 건데?”

“저는 일단 상대를 해야 할 녀석이 따로 있는 것 같네요.”

은영 누나의 반대편에는 천마검을 쥔 유지한이 서 있었다.

유지한은 2라운드에서 나를 이용해 은영 누나에게 한 방 먹이려다가 실패했다.

은영 누나는 그 횟수가 다섯 번이라고 말했다.

‘이것만 다섯 번인 거겠지.’

유지한의 성격상 매 턴 어떻게든 은영 누나의 뒤통수를 치려고 했을 게 틀림없었다.

다행히 이번 회차의 유지한은 나에게 호의적이었고, 그 말은 정보를 더 얻을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회차를 거듭할수록 남아 있는 헌터의 수가 줄어들잖아.”

“그렇죠?”

“최후의 승자가 되면 어떻게 되는 거냐?”

“……글쎄요.”

아직 3라운드의 설명이 나오기도 전이지만, 나도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송은영은 내가……. 죽이는 건 모르겠고, 일단 맞은 만큼은 때려 줘야겠다.”

나와 최수현의 대화가 끝나기 무섭게 상태창이 나타났다.

[결승전]

- 최후의 1인이 되시오.

- 바닥에는 제한 시간이 있습니다.

- 외부로 떨어지거나, 마지막 바닥 아래로 떨어지면 탈락합니다.

- 비행 스킬은 사용할 수 없습니다.

- 단, 한 칸에 3명이 있으면 바닥이 바로 소멸합니다.

- 생존자 : 201명.

무척이나 단순한 결승전이었다.

헌터들 사이를 막고 있던 붉은 장벽들이 사라졌다.

육각형마다 발 밑으로 숫자가 생겨났다.

내 밑에 있는 숫자는 60이었고, 초가 흐를 때마다 숫자가 줄어들었다.

“망할! 이런 거였냐!”

“2초 만에 떨어지는 게 어디 있어!”

숫자는 무작위로, 어떤 헌터는 시작하자마자 바닥이 사라지며 아래로 떨어졌다.

“먼저 간다.”

60초였던 나와 다르게 최수현의 바닥은 제한 시간이 10초밖에 되지 않았다.

바닥의 타이머는 헌터가 발을 디뎌야만 작동을 한다.

2초가 남았을 즈음 최수현이 조금 떨어진 육각형으로 점멸을 사용하며 이동했다.

최수현은 고민도 하지 않은 채 은영 누나를 향해 마탄을 쏘았다.

나는 마력 탐지를 이용해 유지한의 위치를 찾았다.

‘이 새끼가?’

옆 칸으로 옮긴 나는 아래 칸을 내려다봤다.

대부분의 헌터가 떨어지지 않기 위해 애를 쓰는 데 비해 유지한은 시작하자마자 아래로 내려갔다.

은영 누나의 불꽃과 유지한의 마탄이 허공에서 부딪히며 터져 나갔다.

‘하여튼 잔머리는 좋아.’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건 불가능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위에 있는 사람은 반드시 아래로 내려와야만 했다.

모두가 위에서 최대한 오래 버티려고 할 때, 유지한은 아래로 내려가 곧 내려올 다른 유저들의 길목을 끊어 놓는 전략을 선택한 것이었다.

“형! 은영 누나를 부탁할게요!”

유지한이 혼자 생각한 건지, 은영 누나가 알려 준 건지까지는 몰라도 나는 유지한과 할 이야기가 남아 있었다.

내가 구멍이 뚫린 아래로 뛰어내렸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발밑으로 40이라는 숫자가 생겨났다.

“야! 유지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서 있던 유지한이 나를 흘끔 바라봤다.

나는 육각형 하나를 뛰어넘으며 유지한에게 다가갔다.

유지한이 나를 향해 천마검을 휘둘렀다.

뒤로 물러난 내가 하마터면 아래로 떨어질 뻔했다.

“이야기 좀 하자니까! 다짜고짜 검부터 휘두르네. 이건 은영 누나가 알려 준 방법이야?”

간신히 균형을 붙잡은 내가 다시 유지한을 향해 하늘검을 휘둘렀다.

유지한이 내 공격을 피하며 건너편으로 넘어갔다.

점점 흐려지는 바닥에 나 역시 재빨리 옆 칸으로 넘어갔다.

‘와, 이거 빡세네.’

밑으로 여러 층이 더 남아 있긴 해도, 무턱대고 아래로 내려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시간 초도 신경을 써야 하고, 싸움이 길어질수록 발을 디딜 수 있는 공간이 좁아지는 최악의 지형을 가지고 있었다.

“게임의 룰을 보지 못했나?”

“봤어.”

“최후의 1인.”

유지한이 은영 누나와 최수현이 싸우고 있는 위를 바라봤다.

헌터들의 수가 많은 탓에 위층은 빠른 속도로 구멍이 숭숭 뚫리고 있었다.

유지한이 있는 육각형 위에서 권대근이 떨어졌다.

“으윽, 벌써 떨어지다니……. 어? 너는…… 잠깐…….”

“꺼져.”

유지한이 올라온 권대근의 몸을 뻥 하고 발로 차 버렸다.

“야이 개새끼야아!”

아래로 떨어진 권대근이 씩씩거리며 유지한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나는 옆 칸으로 이동하며 유지한을 향해 말을 걸었다.

“처음부터, 은영 누나도 나도 상관없었던 거냐?”

“상황을 지켜봤을 뿐이다. 최후의 일인을 뽑는 거라고 한다면 협력을 할 필요는 없지.”

“은영 누나는 전에도 네가 나에게 초아 씨가 배신자라는 사실을 흘린 적이 있다고 말했어.”

“그래서?”

“네가 이렇게 행동할 거라고 예상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거야.”

“그 여자가 나를 믿지 않고 있다는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내가 너에게 그 정보를 흘리지 않았어도, 나는 그 여자와 한 팀이 될 마음 따위는 없었다.”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고!!”

내가 다시 옆 칸으로 자리를 옮기며 검을 붕붕 휘둘렀다.

헌터들이 하나씩 두 번째 칸으로 떨어지기 시작하자 유지한은 한 칸 더 아래로 뛰어내렸다.

쟤는 진짜 겁도 없구나.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던 나는 유지한을 따라 3번째 층으로 내려갔다.

내가 유지한을 따라오자 유지한이 천마검을 휘두르며 나를 쫓아냈다.

“꺼져! 걸레짝! 가만, 내가 널 왜 걸레짝이라 부르는 거지?”

“봐 봐, 자기도 기억력 오락가락하는 주제에.”

발판이 많이 남아 있는 걸 확인한 나는 유지한을 향해 천룡무상검법(天龍無上劍法)의 초식을 밟았다.

몸을 돌린 유지한이 내 검법을 막아 냈다.

“손을 잡자는 거냐?”

“변수가 필요해. 은영 누나가 생각하지 못하는 변수가.”

“그게 나랑 너랑 손을 잡는 거라고? 그것 또한 이미 경험한 거라면 어떻게 할 거지?”

“그건…….”

유지한이 나를 향해 낙영비화검(落英飛花劍)의 초식을 밟았다.

검푸른 검기가 넘실거리며 나에게 넘어왔다.

발밑이 사라지는 타이밍에 맞춰 유지한이 천마검을 휘둘렀다.

나는 간신히 유지한의 공격을 막아 내며 뒤로 물러났다.

조금 전까지 서 있던 발밑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유지한이 머리 위로 검을 휘둘렀다.

옆 칸에서 넘어온 헌터가 유지한을 향해 무기를 휘둘렀다.

최종전까지 살아남은 헌터라 그런지 확실히 실력이 있었다.

나는 헌터와 싸우고 있는 유지한을 향해 말을 걸었다.

“너 나랑 손잡고 싶은 마음이 드냐?”

“뭐라고?”

“그러니까! 손잡고 싶은 기분이 들긴 하냐고!”

“네놈이랑 손잡을 바에는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그거야!”

내가 검을 쥔 채 다른 손으로 손가락을 튕기자, 유지한이 뭐 이런 미친놈이 다 있냐는 듯 나를 바라봤다.

유지한이 헌터의 가슴에 검을 찔러 넣은 검을 빼낸 후 아래로 떨어트렸다.

“너는 나와 손을 잡을 바에는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할 정도로 나를 싫어하잖아. 그러니까 은영 누나는 우리 둘이 사이좋게 손을 잡을 일 따위는 없다고 생각할 거야.”

“진심이라면 네놈의 뇌 구조가 상당히 의심되는군.”

“회차를 거듭할수록 기억을 잃어버리고 있잖아.”

“그러니까 더 잊어버리기 전에 빨리…….”

“너는 관심법을 사용할 수 있어, 그리고 이 세계 헌터가 아니야.”

“뭐, 라고?”

“네가 날 싫어하는 이유는……. 내가, 소테르 신의…….”

잠깐만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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