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9화 백면금모구미호 (5)
다리 앞을 지키고 있는 무사가 나와 유지한의 앞을 가로막았다.
“숲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데.”
“지금 말이오?”
“들어가지 말라는 지령은 없었을 텐데?”
유지한의 반박에 무사들이 곤란하다는 듯 저들끼리 눈치를 주고받았다.
“보통 아야카시가 출연하면 저주받은 숲에 들어가려 하지 않소. 다들 들어가길 꺼리는데, 무슨 용무로 들어가시려는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소.”
“백면금모…… 으읍…… 야!”
내가 유지한의 입을 틀어막은 후 앞으로 나갔다.
이 미친놈이.
50년 가까이 아무도 죽이지 못한 구미호를 잡기 위해 들어간다고 하면.
─ 아, 그러시군요, 구미호를 잡으러 오셨다구요? 부디 편하게 들어가시죠.
……하고 보내 주겠냔 말이다.
유지한을 밀어낸 내가 다시 무사 앞에 섰다.
“볼일이 있어.”
“그 용건을 말씀해 주시오. 다이토성에서 음양사가 오면 하루면 처리가 될 거요. 하루도 못 기다릴 정도로 바쁘게 저주받은 숲에 가야 할 이유가 무엇이 있단 말이오?”
“이봐, 걸레짝. 이건 시간 끌기다.”
“나도 알아.”
오비타가 쌍수도의 위치를 알고 있고, 도쿄성에서는 신주쿠성의 재앙이 우리가 한 짓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유지한이 알아낸 정보에 의하면 지금은 아야카시가 나타날 철이 아니라고 했다.
대부분의 헌터들은 신주쿠성의 재앙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추측하고 있지만, 아무리 봐도 이건 그 재앙과는 연관이 없어 보였다.
나는 마에하라에게 받은 통행증을 내밀었다.
성주의 인장이 찍혀 있는 걸 본 무사가 깜짝 놀랐다.
“이, 이걸 어찌…….”
“이제 들여보내 주지?”
“신분을 증명할 다른 수단은 없소?”
“이것들 다 죽여 버릴까.”
뒤에 있던 유지한이 아무것도 없는 허리에 손을 올리며 중얼거렸다.
그 말을 들은 무사들이 또다시 경계했다.
마에하라가 이것만 보여 주면 된다고 했는데 웬 신분증?
내가 불편한 표정을 짓자 꽤 직급이 있어 보이는 사내가 말했다.
“마에하라 성주님을 의심하는 게 아니라 조금 확실히 하고 싶을 뿐이오.”
그는 해야 할 일을 하는 사람일 뿐이었다.
단지 그냥 넘어가도 될 일을 과하게 정석대로 처리를 하는 게 우리로서는 불편할 뿐이었다.
“역시 그냥 죽…….”
“신분증, 이거면 되나?”
내가 품 안에서 이가류(伊賀), 닌자의 금으로 된 명패를 꺼냈다.
그걸 본 무사가 흠칫 놀랐다.
“이가…….”
“쉿. 될 수 있으면 정체를 밝히고 싶지 않거든.”
내가 마치 도쿄성에서 비밀 임부라도 부여받고 온 사람처럼 무사의 입단속을 시켰다.
도쿄성 최고의 닌자 집단인 이가류의 신분증과 마에하라 성주의 인장이 찍힌 출입증까지 보여 줬다.
‘여기까지 했는데도 안 비켜 준다면.’
그럼 유지한의 말대로 소란을 일으키는 수밖에 없었다.
“불쾌하실 텐데 흔쾌히 보여 주셔서 고맙소. 방금 건 못 본 척할 테니 지나가시오.”
다행히 남자는 그저 어디에나 있을 법한 자기 일에 성실한 사내였다.
허락을 받은 나와 유지한은 스미다강으로 향하는 다리 위로 올라갔다.
강 너머에서는 벌써 스산한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보통은 저주받은 숲에서 검은 이끼를 담은 유리병을 랜턴 대신 사용하지만, 유지한에게는 포롱이가 있었다.
열도 전체가 밤에 잠겨 있어서 그런진 몰라도 보면 볼수록 포롱이가 유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 그거 어디서 구한 거냐?”
저층의 이은희가 가지고 있었던 걸 보면 그렇게 구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혹시라도 빼앗을 생각이라면 꿈 깨는 게 좋을 거다.”
내가 포롱이에게 다가가 손을 뻗었다. 그러자 손끝이 전기에 닿은 듯 저릿한 느낌이 났다.
몽글몽글하던 녀석이 별안간 휙 날아 유지한의 머리 위로 올라갔다.
대충 살아 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차별당하니까 왠지 기분이 나쁘네.
“제길, 줘도 안 가져!”
상처받은 내가 툴툴거리며 저주받은 숲 안으로 들어갔다.
저주받은 숲은 리에카와 함께 가 본 적이 있어 놀랍진 않았지만, 이건 그것과는 다른 음기였다.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 건데, 어떻게 정화를 하고 지나가겠다는 거야?”
아야카시가 성가신 이유는 녀석이 나타나면 안 그래도 길을 찾기 힘든 저주받은 숲의 구조를 엉망으로 바꿔 버린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왔던 길로 되돌아가게 하는 등, 숲 전체에 귀찮은 환각들을 건다고 했다.
숲 너머에 사는 백면금모구미호에게 향하는 길을 찾기 위해서는 아야카시를 쓰러트려야만 했다.
‘설마 이걸 여기서 다시 보게 될 줄이야.’
마에하라가 백면금모구미호를 잡으러 간다고 나와 유지한에게 건넨 건 다름 아닌 ‘나침반’이었다.
해당 나침반은 엄밀하게 말하자면 백면금모구미호에게 좌표가 찍혀 있는 게 아니라 구미호의 집 근처에 있는 살생석에 찍혀 있는 좌표였다.
이 나침반은 보통 백면금모구미호의 살생석이 있는 곳에 가지 않기 위해 사용하는데, 거꾸로 우리는 구미호를 잡으러 가기 위해 사용하고 있었다.
아야카시 덕분에 나침반이 제 방향을 가리키지 않고 이리저리 돌고 있었다.
나무들은 독특한 형태로 뻗어 있었으며, 지면에서는 크고 작은 나무뿌리들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안쪽에서는 검은 악마의 형상이 보였으며, 백면금모구미호가 소환한 몬스터들의 발소리가 들렸다.
검은 악마와 눈이 마주친 내가 하늘검을 뽑아 풍아(風牙)를 사용했다.
검은 악마의 몸이 갈기갈기 찢겨 나가며 근처에 있는 나뭇가지들이 바람에 의해 사방에 흩날렸다.
나무 기둥이 갈라지더니 녀석들이 나를 보고 씨익 웃었다.
얘들은 왜 나만 보면 이러는 거야? 기분 나쁘게?
짜증이 난 내가 바닥에서 발을 떼며 낙영비화검(落英飛花劍)의 초식을 밟았다.
검을 휘두를 때마다 저주받은 숲의 나무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잘려 나갔다.
반경에 있는 나무들을 싹 쓸어 버린 내가 만족스럽게 손을 털며 검을 집어넣었다.
“후, 시원하네.”
“최근 들어서.”
“응?’
“왜 소테르 신이 네놈을 선택했는지 알 것도 같다.”
거참.
이 몸에 있는 영혼이 곧 소테르 신인데 저런 말을 들으니까 기분이 정말 묘했다.
그러고 보니 이 전에 육백산 전투에서 최수현에게 나무 좀 그만 부수라고, 산림청 장관이 게거품 물겠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열도에 산림청 장관이 있다면 이걸 보고 게거품을 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없겠지만?
‘그런데 저주받은 나무니까 베어 버려도 되는 거 아닌가?’
참으로 어려운 문제였다.
무너진 나무 틈 사이로 하얀 연기가 올라왔다.
연기가 서로 뭉치기 시작하더니 점점 까만색으로 변했다.
나는 사방에서 생겨나기 시작하는 크고 작은 덩어리들을 가만히 응시했다.
“아야카시가……. 구울이었어?”
따지고 보면 구울도 실체를 잃어버린 괴물이고, 아야카시도 몸이 없는 죽은 자의 영혼 덩어리이니 따지고 보면 그놈이 그놈이었다.
‘마의 기운이라고 하는 건.’
녀석들이 원한을 품은 구울이기 때문이라는 뜻이었다.
내 중얼거림에 유지한이 흥미롭다는 듯 말했다.
“구울을 알고 있는 모양이군.”
“알 수도 있는 거잖아.”
“보통은 잘 모를 텐데.”
“그보다 너 진짜 저것들 정화할 수 있긴 해?”
“믿어라.”
믿으라니.
세상에서 가장 믿지 못할 놈에게서 나올 만한 말이 아니었다.
다가오는 구울들을 보며 하늘검을 뽑았다.
유지한이 성큼성큼 구울들에게로 다가갔다.
천마검이든 불가살이의 검을 꺼낼 줄 알았던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유지한은 여전히 검을 손에 쥐고 있지 않았다.
나는 유지한에게 다가오는 구울들을 유심히 관찰했다.
유지한이 뭘 하려 하든, 여차하면 내가 나서야 했다.
유지한이 아이템 창에서 뭔가를 꺼냈다.
“야, 너 그거…… 설마…….”
유지한의 손에 있는 아이템은 아무리 봐도 ‘초월의 별’이었다.
유지한이 내 쪽을 보며 가볍게 어깨를 들썩였다.
“네놈은 모르는 게 뭐냐? 이쯤 되면 수상할 지경이군.”
“내 기준에는 그걸 가지고 있는 네가 더 수상해!”
“이건 초월의 별이 아니다.”
“그러면?”
“모조품, 거짓의 별이지. 육신환을 만들어 재낀 놈이 만든 거다.”
교묘하게 회피를 한 탓인지 금기에 영향을 받진 않은 것으로 보였다.
유지한은 내가 그 녀석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어 가능한 대화였다.
‘육신환이 한미래의 작품이었다니.’
예상하긴 했지만, 유지한에게 확신에 가까운 말을 들으니 조금 당황스러웠다.
유지한이 거짓의 별을 부쉈다.
‘저 검은…….’
거짓의 별, 육신환. 그리고…….
화타의 검.
유지한의 손에 있는 것은 가짜이긴 해도 한미래가 가지고 있는 ‘화타의 검’이었다.
눈앞에 있는 신살자 유지한은 미래의 유지한이었다.
‘그러고 보니 저 녀석. 화타의 검 탐내긴 했었지.’
초월의 별로 화타의 검을 뽑은 걸 보고 배 아파했던 유지한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 오래된 것 같지도 않은데 무척 먼 과거 같은 느낌이 돌았다.
유지한이 검을 쥐며 자세를 잡았다.
구울들이 유지한에게 달려들었고, 화타의 검의 검날이 검푸르게 빛났다.
검 끝에서 물방울들이 뚝뚝 떨어졌다.
가볍게 뛰어오른 유지한이 화타의 검을 구울들을 향해 휘둘렀다.
화타의 검이 움직일 때마다 정화의 물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그것은 내가 본 낙영비화검(落英飛花劍)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검법이었다.
정화의 물에 닿은 구울들이 빠르게 소멸했다.
“야, 걸레짝! 뭘 넋 놓고 있어? 빨리빨리 움직여야 할 거 아니야!”
“어……. 그래. 너 이런 것도 할 줄 아는구나. 대단하다.”
“국어책 읽냐?”
“시끄러워.”
난 방금 아주 조금 감동이었다고.
내 감동을 돌려 달란 말이다.
화타의 검을 내려놓은 유지한이 바닥으로 피를 뱉어 냈다.
“너 괜찮냐?”
“됐으니까 빨리 움직이기나 하자고.”
유지한이 내 말을 무시한 채 고개를 돌렸다.
나는 화타의 검을 쥐고 있는 유지한을 손을 확인했다.
그럼 그렇지.
암흑파괴신의 힘을 사용하는 자가 정화의 힘이라니!
내가 말하고도 좀 그렇긴 한데.
야른그레이프로 상처를 가리고 있을 뿐, 유지한은 누가 봐도 말도 안 되는 짓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이 녀석의 몸에는 해의 저주까지 남아 있었다.
티가 잘 안 나서 그렇지, 무리하는 건 내가 아니라 유지한이 더 선수였다.
“너 할 수 있겠냐?”
“그러니까 꾸물거리지 말고 빨리 움직이자고 했잖아! 구울 놈들 숨어 있어서 짜증 난다고.”
“흐음.”
나는 엉망이 된 숲을 바라봤다.
구울은 내가 숲을 부수고 난 이후에야 모습을 드러냈다.
“야, 내가 아주 좋은 생각이 있어.”
“좋은 생각이 아니기만……. 나쁘지 않은 거 같군.”
“그치?”
내 가방에서 나온 수류탄을 본 유지한이 좋은 생각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일이 있을 줄 알고 최재형에게도 많이 받아 뒀지.
근데 얘랑 이런 일로 마음이 맞으니까 기분이 좀 이상한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