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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했더니 신이 되었다-325화 (325/760)

325화 꿈도 희망도 없는 미래 (6)

한번 휘둘렀을 뿐인데 나무 일부가 잘려 나갔다.

동시에 현기증이 확 몰려왔다.

‘이거…….’

자연스럽게 후드를 눌러쓴 내가 아래에서 나무뿌리들을 상대하고 있는 유지한을 흘끔 바라봤다.

생각보다 마력의 소모가 장난이 아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유지한에게 육신환을 달라고 할 걸 그랬다. 괜히 마에하라에게 줬나?

‘웬만하면 대강림은 피해야 한다.’

언제까지 숨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녔다.

나는 천천히 자세를 바로잡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검법 중에서 검 두 자루로 사용해도 무리가 없는 건 낙영비화검(落英飛花劍)뿐이었다.

[또……. 네놈들이냐! 도대체 얼마나 방해를 할 셈이냐!]

“너를 죽일 때까지.”

[한낱 초월자 주제에 신인 이 몸을 죽일 수 있을 거로 생각하는가?]

히가시 신은 창세의 나무를 통해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당연하지.”

[진리의 신 같은 허접한 신과 나를 똑같이 취급하지 마라. 어리석은 자여.]

“그거야 부딪혀 봐야 아는 거지.”

[오만한 신에 그 신도로군. 아니, 너는…….]

몸을 틀며 쌍수도를 크게 휘둘렀다.

나무에 달라붙어 있던 거대한 오니 한 마리의 머리가 잘려 나가며 아래로 떨어졌다.

“기다려라. 내가 갈 테니까.”

녀석들은 도쿄성에 있다.

이것만 처리하면 도쿄성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일본이 망했건, 열도가 소멸하든 알 바 아녔다.

이건 애국심 같은 게 아니다. 응당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뿐이었다.

검을 움직이며 호선을 그렸다.

푸른 하늘 아래로 빛을 머금은 꽃잎들이 사방에 흩날렸다.

검의 움직임이 조금 더 빨라졌다.

비록 마력 탐지는 사용하지 않고 있지만, 쌍수도에서는 희미하게나마 검을 사용했던 자의 마력이 느껴졌다.

“사라져라!”

[네놈은, 나를 이길 수 없을…….]

듣고 싶지 않았다.

이길 수 없다고? 그런 건 부딪히기 전까지 모르는 일이었다.

나는 나가야만 한다. 라케시스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베리타스 신에게 내 의지를 전한 순간부터 멈출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설령 그 미래가 아무도 환영하지 않는 미래라고 해도 상관없다.’

내가 그렇게 하기로 마음을 먹었으니까. 정말 순수하게 그게 다였다.

창천의 구름으로 인해 생긴 하늘이 사방을 뒤덮었고, 쌍수도가 만들어 낸 낙영비화검(落英飛花劍)의 꽃잎들이 나무를 거침없이 베어 냈다.

“아직이다!”

초식이 끝난 나는 곧바로 자세를 틀었다.

대강림 상태가 아니라 그런지 확실히 몸에 부담이 왔다.

‘버틸 수 있다.’

남아 있는 마력을 끌어모은 후 쌍수도를 이용해 하늘과 땅을 가르는 검을 사용했다.

쌍수도가 지나간 자리의 위로 하늘이 생겨나며 벽 일부가 무너졌다.

“아…… 이것이…… 하늘…….”

생명력이 얼마 남지 않은 백면금모구미호가 눈물을 흘렸다.

아라카와강에 있는 벽뿐만이 아니었다.

임시로 세워진 스미다강의 벽 또한 무너졌다.

나는 비틀거리며 아래로 내려왔다.

“그 검으로…… 나를, 죽여 줄 수 있겠느냐?”

쌍수도 한 자루를 뽑은 내가 앞으로 걸어갔다.

“나는 미련이 없다. 다만, 나무의 양분이 되고 싶지 않다.”

쌍수도의 검날이 빛나며 백면금모구미호의 몸을 베어 냈다.

쓰러진 구미호의 몸이 천천히 사라졌다.

아라카와강 너머의 공간이 일렁거렸다.

열도 자체가 창세의 나무의 힘으로 유지시키고 있었다.

벽이 없다면 열도는 진작 가라앉았어야 했다.

벽 안의 세상은 세계의 전부가 아니었다.

신주쿠와는 다르다.

이번에는 열도를 지키고 있는 외벽이 완전히 무너졌다.

“이제 시작이다. 너도 알고 있겠지?”

“그 정도는 각오했어.”

야마토와 창세의 나무는 어떻게든 균열을 막으려 노력하겠지만, 결국은 시간 싸움이었다.

아라카와강의 벽을 넘어트린 건 모래시계를 뒤집은 것과 같았다.

나는 유지한에게 손을 내밀었다.

“뭐?”

“육신환 내놔.”

“나한테 맡겨 놨냐? 돌아가서 쥐방울한테 치료받아. 아, 치료는 아닌가……. 어쨌든.”

“못 걸을 것 같다고.”

대강림을 사용했으면 이 정도는 아니었겠지만, 진심이었다.

누군가 툭 하고 건드리면 당장이라도 엎드려 잘 자신이 있었다.

“약골.”

“죽여 버리……. 그 전에 내가 죽겠구나.”

솔직히 그냥 돌아가도 된다.

단지 은영 누나의 잔소리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은영 누나를 더는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유지한이 마지못해 나에게 육신환을 집어 던졌다.

육신환을 욱여넣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변이 일어났다.

* * *

다이토성은 갑자기 스미다강을 중심으로 나타난 벽에 정신이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벽 너머에서 하늘을 봤다는 소문이 빠르게 퍼졌다.

“뭐, 네 짓일 줄은 알았는데…….”

최수현은 채설하와 함께 총을 점검하고 있었다.

“은영 누나는?”

“혹시 몰라서 칠복파에 붙어 있는 중.”

복도 너머로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거칠게 문을 열고 나타난 건 마에하라 아츠미네였다.

“당신! 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죠?”

“오, 드디어 왔네.”

“태연하게 있을 때가 아니라구요! 제가 지금 얼마나 급하게 온 줄 아세요?”

“백면금모구미호는 처리했어.”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얘기 좀 하자.”

나는 들어오라며 마에하라를 향해 손을 까닥였다.

마에하라와 같이 있던 리에카도 함께 들어왔다.

“어차피 그쪽도 알아야 할 것 같으니까.”

스미다강에 생겨난 벽 때문에 마에하라와 헌터들은 아라카와강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했다.

나는 쌍수도와 관련된 이야기를 제외하고, 아라카와강에서 있었던 일과 신주쿠의 일들을 상세하게 말했다.

“그건 소문이 아니었나요?”

가장 먼저 반응을 한 사람은 리에카였다.

현재 열도에서는 위대한 벽이 창세의 나무일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글쎄, 그건 저 쪽에게 물어봐. 쟤는 성주잖아.”

“저도 처음에는 소문인 줄 알았어요. 하지만 정말이더군요. 그렇게 되면 도대체 열도는 현재 어떤 상태인 것인지……. 상상하고 싶지 않아서 외면한 것도 있어요.”

“열도의 수명은 진작 다했어.”

“잠깐만요! 그럼 창세의 나무가 사라지면…….”

“가라앉을걸, 아마도.”

옆에서 듣고 있던 최수현이 라이플을 어깨에 걸치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최수현의 말대로였다.

“칠복파의 목적은 창세의 나무를 쓰러트리고 열도를 되찾는 거예요. 만약 열도의 수명이 다했고, 창세의 나무가 죽으면 열도가 가라앉는다고 하면……. 저희는 대체 무엇을 위해 싸우는 거죠?”

열도의 정체를 알고 있었던 건 히가시 신의 신도 중, 도쿄성에 거주하는 일부 신도들밖에 없었다.

리에카와 마에하라는 다소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그건 너희들의 리더가 말해 주겠지.”

내 말에 마에하라가 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문이 열리며 히메인 에이토와 유우지가 들어왔다.

“열도의 수명은 진작 다한 게 맞아.”

“히메! 그럼 대체 칠복파는…….”

“열도의 미래를 위해서.”

“창세의 나무가 사라지면 저희들의 땅이, 열도가 사라질 수 있어요. 그럼에도 미래를 위해서라는 말을 하시는 건가요?”

“그럼 이대로 나무를 내버려 둬야 해? 마에하라도 보고를 받았을 텐데? 한결 씨가 무너트린 아라카와강 너머의 상황을.”

“예. 조금씩 공간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고 하더군요. 벽을 부쉈다고 해서 그런 일이…….”

“그게 앞으로 열도에서 일어날 일이야. 한결 씨는 그저 도화선에 불을 붙인 것에 지나지 않아. 아무도 터트리길 원하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터질 일이었지.”

“야마토가 수십 년 전부터 반도 정벌을 외치고 있었던 건 그런 이유였겠군요.”

에이토가 정확하게 맞혔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마에하라가 허무하다는 듯 이마에 손을 올리며 웃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열도에 미래는 없었다.

열도는 처음부터 꿈도 희망도 없는 세계였다.

“열도에 미래는 있어.”

“도대체 어디에 미래가 있다는 거죠? 창세의 나무가 사라지면 열도가 가라앉아요. 그런 세계에 대체…… 무슨 미래가 있는 거냐구요! 이럴 거면…….”

마에하라가 나와 최수현을 흘끔 바라봤다.

차라리 반도를 침략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건 안 봐도 뻔했다.

나는 마에하라를 탓할 마음은 없었다.

“열도를 이 지경으로 만든 게 누구지?”

“그러니까 그 나무가……. 우리는 나무 없이는 살아갈 수 없었던 거네요.”

마에하라가 괴로워하며 머리를 싸맸다.

“마에하라, 벽 밖의 세상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 있어?”

“저는 열도 밖으로 나가 보지 않아서 몰라요. 제가 열도를 나간다면 모를까…….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있어. 고립된 건 밖이 아니라 우리야. 벽을 부수면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어.”

“열도의 수명은 얼마 남지 않았다면서요. 창세의 나무가 사라지면 열도는 사라질 텐데요?”

에이토의 눈치를 본 유우지가 마에하라에의 말에 끼어들었다.

“마에라하 성주, 생명이라면 있습니다.”

“어디에 말이죠?”

“이 열도 전체에요. 창세의 나무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커졌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나무는 열도의 생명으로 탄생한 괴물입니다.”

“그 괴물이 지금 열도를 지탱하고 있죠.”

“히메는 나무를 정화시킬 수 있습니다.”

“뭐, 라구요?”

창세의 나무를 정화할 수 있다는 말에 마에하라와 리에카가 깜짝 놀랐다.

유우지가 에이토의 눈치를 살폈다.

에이토가 말해도 좋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에하라 성주. 두 사람은 처음부터 칠복파였던 건 아닌 거로 압니다.”

“맞아요.”

“저도 그렇죠.”

“칠복파의 히메인 카즈노리 님에게는 일본 천황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힘을 이용하면 저주받은 나무의 생명을 정화시킬 수 있습니다.”

창세의 나무의 힘을 정화해 원래의 것으로 되돌린다면 열도는 소멸하지 않을지도 몰랐다.

그것이 에이토가 말하는 열도의 희망이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정말 좋겠네요.”

“내가 그렇게 만들 거야. 이번에야말로.”

에이토가 주먹을 꽉 쥐며 각오를 다졌다.

“만약에 지금이라도 그만두겠다면…….”

“저보고 야마토에 붙으라구요? 그야 차라리 현실을 받아들이고 반도에 창세의 나무를 옮겨 버리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

“그럼 결국 열도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거죠? 결말은 똑같은 거 아닌가요? 정말 꿈도 희망도 없는 미래가 아닐 수 없네요.”

마에하라가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한숨을 쉬었다.

마에하라의 말대로였다.

야마토 녀석들이 타카아마하(신들의 땅)라 불리는 한반도에 창세의 나무를 옮겨 심으면, 열도의 역할은 다 한다.

야마토 헌터들은 그것을 영광스러운 죽음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일반인들은 아녔다.

그들에게 반도 정벌은 그저 개죽음에 가까웠다.

“저는……. 이만 나가 볼게요. 일이 바빠서요. 아, 한 시간 뒤에 다들 모여 주세요. 슬슬 회의해야 할 것 같으니까요.”

“알겠어.”

“난 잠시 볼일이 있어서.”

“앗, 저도 같이 가요!”

고개를 살짝 숙인 채설하가 최수현의 뒤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리에카와 마에하라가 나간 방 안에는 정적이 맴돌았다.

“마에하라에게 거짓말을 했네.”

“무슨 말이야?”

“모르는 척하는 거야? 아니면 각오가 되어 있다는 거야?”

“히메에게…….”

“창세의 나무를 정화한다고? 설령 그게 황족들이 대대로 가지고 온 능력이었다고 쳐. 너 무조건 죽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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