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7화 드라이어드 (4)
송은영의 살기에 안주혜가 움찔거렸다.
근육질의 신인류들이 안주혜와 송은영을 포위하듯 다가왔다.
비록 실패작이라고 할지라도 녀석들은 무척이나 강했다.
송은영의 시선이 계속해서 꽃봉오리를 흘끔거렸다.
까르륵거리는 소리가 잔상처럼 귓가에 남았다.
“뭐……. 일단 한번 해 보는 수밖에.”
마력을 머금은 안주혜의 단검이 붉게 빛났다.
콰아아앙.
안주혜와 송은영의 머리 위로 커다란 주먹이 떨어졌다.
두 사람이 동시에 위쪽으로 피했다.
송은영과 안주혜가 서로를 흘끔 바라봤다.
송은영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몸을 빙글 돌린 안주혜가 왼쪽에 있는 신인류를 향해 단검을 휘둘렀다.
우선은 얼굴, 목, 어깨, 점점 내려가며 심장 부근에까지 닿았다.
그사이 송은영이 발을 크게 휘둘러 다른 신인류의 공격을 막아 냈다.
커다란 주먹이 송은영의 발길질을 막아 냈다.
다른 주먹이 다가오자 송은영이 녀석의 두꺼운 손목을 붙잡은 후 몸을 위로 차올렸다.
다시 한번 머리 위로 발을 휘두르자 발끝에서 나온 불꽃이 신인류의 시야를 방해했다.
타앗.
손을 놓은 송은영이 백 텀블링을 했다.
안주혜의 단검이 다른 신인류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 놨다.
“크아아아, 으악!”
벌어진 상처 부위에서 검붉은 진액이 뚝뚝 떨어졌다.
놈이 발버둥을 치자 상처가 빠른 속도로 아물었다.
바닥으로 내려온 송은영이 놈의 주먹을 피한 후 가까이 접근했다.
푸욱.
송은영이 회복 중인 놈의 가슴에 손을 집어넣었다.
“야, 너…… 미쳤…….”
그 모습을 본 안주혜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송은영이 손을 빼내자 살점이 뜯겨 나가는 소리가 났다.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송은영의 손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덩어리가 들려 있었다.
눈에 핏발을 세운 신인류가 머리 위로 주먹을 들었다.
으드득.
송은영이 손에 힘을 주자 손안에서 살점이 터져 나가며 피들이 사방에 흩날렸다.
송은영의 머리 위에 있던 신인류의 손이 아래로 축 처지더니 몸이 옆으로 ‘쿵’ 하고 쓰러졌다.
투둑.
손을 놓자 찌그러진 심장의 살점이 발아래로 떨어졌다.
단검을 꽉 쥔 안주혜가 입술 끝을 살짝 깨물었다.
“너……. 진짜 미, 미쳤구나?”
검으로 심장을 찌르는 것도 아니고, 심장에 손을 넣어서 터트릴 생각을 하다니 제정신이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짓이었다.
“가야 할 길이 멀어.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잖아.”
송은영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놈의 피부는 무척이나 튼튼했다. 안주혜가 어느 정도 베어 놓지 않았더라면 송은영의 주먹이 놈의 살을 뚫고 들어가는 것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송은영이 손에 묻은 피를 털어 내며 말했다.
“도와줘.”
“그래.”
한 마리가 쓰러지자, 다른 신인류들이 분노하듯 달려들었다.
흉측하게 생긴 주먹이 안주혜의 얼굴로 다가왔다.
손가락 마디에는 뾰족한 가시마저 나 있었다.
몸을 살짝 띄운 안주혜가 다가오는 주먹을 발판 삼아 뛰어올랐다.
한편.
최재형과 채설하는 다른 무리의 신인류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목소리가 닿지 않을 거라 판단한 송은영이 보천석을 사용해 최재형에게 말을 걸었다.
─ 심장을 꿰뚫어. 저 녀석들 인간이야.
“어. 보천석이…… 제길.”
최재형이 주머니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방패가 거의 깨져 가려 하고 있었다.
─ 난 도와줄 수 없어. 믿을게.
그 말을 남긴 송은영이 안주혜가 베어 놓은 신인류를 향해 주먹을 내뻗었다.
쿵쿵.
신인류들이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엄청난 속도의 진동이 느껴졌다.
채설하가 방패 너머로 마력 간섭 탄을 쏘았다.
신인류의 몸이 조금 둔해졌으나 딱 그뿐이었다.
마력 간섭 탄은 어디까지나 마력에 간섭하는 것일 뿐, 알 훈 같은 특수한 개체가 아니라면 치명적인 대미지를 입히기 힘들었다.
채설하의 마력 간섭 탄이 위력을 발휘하려면 거기에 맞는 대미지를 입힐 만한 헌터가 있어야 했다.
최재형은 방어에 특화된 헌터지, 공격형 헌터는 아니었다.
결정적으로 신인류들의 마력은 무척이나 이질적이었다.
마력 회로를 전부 뒤틀어 버려도 금방 재생하니 도리가 없었다.
함부로 쏘아 대 봤자 의미가 없다고 판단한 채설하가 떨리는 손으로 총을 꽉 쥐었다.
“어, 어……. 어떻게 해요?”
안주혜와 송은영은 강화한 신인류들을 상대하는 법을 익힌 모양이었다.
두 사람이 신인류를 쓰러트리고 지원을 올 때까지 버티는 것도 방법이라면 방법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때까지 버틸 수 있다면 말이다.
콰아앙.
신인류의 주먹이 최재형의 방패를 다시 강타했다.
검을 쥔 채 방패를 소환했던 최재형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며 지면이 살짝 가라앉았다.
최재형은 송은영과 안주혜를 흘끔 바라봤다.
두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에이토의 몸에 빙의한 카즈코와 정초아 또한 위쪽에 있는 뱀을 상대로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었다.
채설하는 그렇다 쳐도 최재형 또한 초월자였다.
마음에 드는 초월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초월자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싸움의 목소리에 최재형이 눈을 질끔 감았다.
* * *
수년 전.
똑똑.
비교적 젊은 시절의 강문국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불렀다고 들었는데.”
“응. 생각보다 빨리 왔네.”
“마침 회의가 길어져서 지루했던 참이라.”
“좋은 타이밍에 부른 모양이군.”
“그래서? 무슨 일인데?”
라온 길드에 들어가기 전, 강문국은 헌터 협회의 관리국에서 일하고 있었다.
의자에서 일어난 박진우가 강문국에게 태블릿PC를 내밀었다.
태블릿PC의 잠금을 해제하자 현장 사진들이 여럿 나왔다.
“홍대 인근인 것 같은데.”
“맞아. 어젯밤에 홍대 인근에서 생긴 던전 브레이크였지. 큰 피해는 없지.”
“그건 다행이군. 그래서?”
태블릿을 돌려준 강문국이 팔짱을 낀 채 박진우를 바라봤다.
고층의 통유리를 통해 건너편 건물의 불빛이 넘어 들어왔다.
박진우는 협회장이었다.
헌터의 시대에서 협회장이 가지는 위치와 지위는 상상을 초월했다.
던전 브레이크는 서울에서만 일주일에 서너 건도 넘게 일어난다.
3시간도 채 되지 않아 끝나 버린 C급 던전 브레이크와 관련된 일을 박진우가 일일이 알아야 할 필요는 없었다.
박진우가 당시 홍대에 있었던 게 아닌 이상, 뭔가 있다는 뜻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이 시간에 강문국이 불러 나올 이유조차 없었다.
강문국은 박진우가 보여 준 태블릿PC 속 사진을 떠올렸다.
특별히 눈에 띄는 게 없는 평범한 현장 사진이었다.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기 두 시간 전 즈음에, 홍익 지구대 경찰이 신고를 받고 현장에 나갔어. 무슨 소란 신고였나? 독특한 의상을 입고, 여기가 어디냐고 물어보고 다녔다더군.”
박진우가 다시 태블릿을 강문국에게 내밀었다.
조용히 태블릿을 넘겨받은 강문국이 이번에는 사진을 아래로 내렸다.
사진을 본 강문국이 중얼거렸다.
“확실히 독특한 옷이긴 하네. 문제가 되는 건 없지만.”
단순히 옷을 저렇게 입었다는 이유가 심각한 사안이 될 수는 없었다.
강문국은 여전히 박진우가 자신을 부른 이유에 대해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면서, 마포 지구대 일부가 무너졌다.”
강문국이 다시 태블릿의 사진을 넘겨봤다.
지구대 외벽이 폭탄이 터진 것처럼 무너져 있었다.
C급 몬스터 중에 지구대의 외벽을 폭파할 만한 몬스터가 있던가?
“아, 그거 헌터가 한 거야.”
“제정신이 아닌 헌터군.”
“최수현인데.”
“이런.”
강문국이 쯧, 하고 혀를 찼다.
관리국 특성상 헌터에 관한 정보에는 빠삭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 들어 최수현이라는 이름만 몇 번을 듣는지 알 수가 없었다.
심지어 그중 절반 이상은 최수현이 벌인 기행과 사건·사고와 관련된 일이었다.
무엇보다 그 최수현이라는 자는, 박진우의 동생인 박시우와 친구였다.
박진우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경찰서 파괴는 그렇다 치고. 그 과정에서 아까 말한 청년이 경찰서에서 나와 한 헌터에게 자신이 다른 세계에서 왔다느니 하고 떠들었던 모양이더라고.”
“그런 말을 믿는 거 아니겠지?”
전 세계가 이 지경 이 꼴이었다.
자신이 신이 내린 사자라느니, 이세계에서 온 존재라느니, 세계를 구원할 거라느니 하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떠드는 사기꾼과 관심종자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
심지어 사진 속의 청년은 누가 봐도 10대 초중반의 학생이었다.
특히 대상이 한창 반항기 때의 청소년이라면 자신이 마왕이라고 말하고 다닐 법도 했다.
박진우는 강문국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진심이냐?”
“최수현의 말에 의하면 경찰은 청년에 대해 어떤 정보도 얻지 못했대.”
나이가 애매하니 지문도 등록되어 있지 않았다.
“그 소년이 최수현의 팀에 있는 헌터에게 도와 달라며 주고 간 보석이 하나 있는데. 그거 진품이래.”
“뭐?”
“최소 300억짜리 다이아.”
“그러니까…….”
박진우의 말을 전부 들은 강문국이 머릿속을 정리했다.
박진우가 다시 의자에 앉은 채 강문국을 올려다봤다.
“지금 협회 마포지부에 있대. 한번 만나 봐. 만약 정말 거짓말을 그럴싸하게 하는 학생이라면 부모님을 찾아서 혼내 주면 되는 거고, 진짜라면 좋은 거고.”
“이세계의 인간을 본 적이 있나? 네 역사를 통틀어서.”
강문국은 박진우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계승자.
박진우가 누구보다도 빠른 속도로 올 마스터 초월자가 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남들이 보면 해프닝에 지나지 않을 일에 박진우가 저렇게 말한다는 건 필시 뭔가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없는데?”
“…….”
나름 기대했던 강문국이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박진우가 걱정하지 말라는 듯 사람 좋게 웃으며 허공으로 손을 휘휘 저었다.
“말했잖아. 좋은 게 좋은 거라니까.”
“그냥 잔심부름이 아닌가.”
“흐음.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해. 다른 차원은 존재한다.”
“…….”
“난 1세대 헌터가 초대 계승자라고 말한 적은 한 번도 없어.”
박진우의 말에 강문국의 등 뒤로 소름이 돋았다.
1세대란, 최초의 각성자들을 말했다.
박진우의 말대로라면 박진우의 계승은 각성자가 생기기 이전부터 이뤄지고 있었다는 걸 의미했다.
“뭐가 뭔지 모르겠군.”
“이해하지 마. 이해하려 한다 해서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이해할 수 없으므로, 이해하지 못하는 일들이 벌어지기 때문에 세계인 거다. 네가 모든 걸 이해했다면 자네는 이미 인간과 신의 영역을 뛰어넘은 존재가 되어 있어야 해.”
박진우의 말에 강문국이 마지못해 수긍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 박진우가 시키는 대로 그 이상한 청년을 만나러 가 보는 수밖에 없었다.
“언제 갈 거야?”
“지금 바로 가지.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회의를 듣고 있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 말이다.”
강문국이 등을 돌린 채 조용히 협회장실을 나왔다.
* * *
한국 헌터 마포지부.
강문국의 등장에 마포지부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강문국은 최대한 조용히 방문하고 싶다고 말했지만, 이미 강문국이 온다는 소문은 전부 퍼진 후였다.
감찰과 강문국.
혹시라도 건수를 잡힐까 걱정한 지부장이 직접 나와 강문국을 맞이했다.
강문국은 작은 방 안으로 들어갔다. 철제 테이블과 의자 앞에 한 청년이 앉아 있었다.
복장이 좀 독특할 뿐, 생긴 건 평범하게 생긴 한국인이었다.
강문국이 한숨을 쉬며 의자에 앉았다.
“이름이?”
“크레아토르 제8황자 키흘렌이다.”
“……어. 그러냐. 네 얘기 좀 해 봐.”
강문국이 어이가 없다는 듯 팔짱을 끼며 다리를 꼰 채 소년을 바라봤다.
이 중2병 청년이 하는지 들어나 보자는 심정으로 시작한 이야기였지만.
이야기는 아침이 되어서야 간신히 마무리되었다.
그것이 최재형이 이 세계에 머물게 된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