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0화 라케시스 (4)
최수현이 가지고 있는 개량된 마력 간섭 탄은 마탄은 물론, 일반 총과 비교해도 그 속도가 느렸다.
내가 그 앞을 가로막고 있는 수십 장의 실드를 향해 하늘과 땅을 가르는 검을 사용했다.
수십 장의 실드가 조각조각이 나 깨져 나가며 그 틈을 채설하가 쏜 탄환이 비집고 들어가 야마타노 오로치의 몸에 박혔다.
나도 자세한 원리는 잘 모르지만, 탄환을 막아 낸 라케시스에게도 영향이 있는 걸 보면 맞혔을 때 메리트는 확실하게 있는 탄환이 분명했다.
크아아아아아!
아니나 다를까, 탄환이 들어가자 산만 한 야마타노 오로치가 마치 물 밖으로 떨어진 미꾸라지처럼 발버둥을 쳤다.
놈의 눈에서 흘러내린 붉은 피는 순식간에 작은 연못이 되어 버릴 정도였다.
엉망이 된 일대에 라케시스는 물론 싸우고 있는 일행들마저 자리를 피해야 할 정도가 되었다.
‘위력 너무 확실하잖아!’
솔직하게 말해서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맞히기까지의 리스크가 너무 크긴 하지만.’
심지어 이런 리스크의 총알이라면 만들기도 쉽지 않을 것이었다.
사방에 떠오른 잔해들을 밟은 나는 허공에서 붕붕거리며 발버둥을 치는 채설하를 가볍게 안았다.
“꺄아악! 아, 감사합니다.”
나에게 안긴 채설하가 별안간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왜 나한테만?
쌍수도를 쥔 진상혁과 서희가 다시 야마타노 오로치 위로 뛰어들었다.
두 사람의 손에 있는 검이 어느 때보다 더 화려하게 빛이 났다.
진상혁이 위에서 떨어지고 있는 나를 흘끔 바라봤다.
─ 네가 뭘 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목적을 달성했으면 좋겠다.
─ 너는 이걸로 정말…….
─ 서희는 살아 있다고 느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건 나 또한 마찬가지였지. 한국에 있는 헌터들이 내 죽음에 대해 뭐라 떠들든지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내가 그런 의미가 있는 죽음이라 받아들였다면 단지 그뿐이지.
─ 미안해.
진상혁은 내 사과에 아무 대답도,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채설하를 안은 채 떨어지고 있는 내 손에 힘이 들어갔다.
진상혁과 서희가 거의 동시에 야마타노 오로치의 핵이 있는 곳으로 뛰어들었다.
“해금(解禁).”
쌍수도는 이순신 장군이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초월급 무기였다.
유지한에게 줬던 불가살이의 검이나 한미래가 가지고 있는 화타의 검도 마찬가지였다.
쌍수도는 적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 힘이 강해지는 효과를 가지고 있는 검이었다.
하지만 검의 힘이 강해진다고 해서 모두가 그 힘을 다룰 수 있는 건 절대 아니었다.
쌍수도에는 그걸 위한 봉인 장치가 되어 있었다.
마력이란 일정 수준을 뛰어넘으면 생명력을 깎아 먹을 수밖에 없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두 사람은 이미 쌍수도를 휘두르느라 너무 많은 마력을 소모한 후였다.
“있잖아, 한국은 어떤 곳이었어?”
“그냥.”
진상혁의 시선이 흥분하는 야마타노 오로치를 피하는 일행들에게 닿았다.
진상혁은 처음에는 서희를 원망했다.
한국에 왔어야 했던 건 서희였어야 했다며. 하지만 지금은 좀 알 것도 같았다.
외국인 구역,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통칭 차별 구역의 한국인 생존자들은 늘 한국에 관해 이야기했다.
죽는 그 순간까지도 고향에 관한 생각을 버리지 못했다.
서희는 열도에 찾아온 한국인 헌터들을 본 순간 깨달았던 거다.
한국 또한 열도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부모님이, 가족들이 그렇게 애타게 찾던 한국에 대한 환상을 깨고 싶지 않았을 거다.
그리고 그건 서희 또한 마찬가지였다.
서희는 한국에 실망하는 자신을 보고 싶지 않았던 것뿐이었다.
“사람 사는 곳이다.”
진상혁은 처음부터 한국이라는 나라 자체에 대해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그렇기에 기대라는 것이 없었다.
진상혁이 쌍수도를 두 손으로 꽉 쥐었다.
라온 길드의 대표가 되고 싶었던 것, 그 이유는 명확했다.
길드 대표가 되어 권력을 쥔다면 다시 한번 열도에 발을 디딜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설령 태어난 곳이 지옥이라 할지라도 진상혁은 한 번 더 열도에 오고 싶었다.
진상혁과 최재형이 모시는 한(恨)의 신.
진상혁이 가지고 있던 한이란, 그저 열도에 와서 서희를 한 번 더 보는 것뿐이었다.
“뭐야, 재미없는 곳이네.”
“그렇지.”
진상혁이 가볍게 웃으며 쌍수도에 마력을 불어 넣었다.
“커흑…….”
검이 무겁다.
검의 안에 담겨 있는 힘과 세월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게 밀려왔다.
진상혁이 야마타노 오로치의 핵을 향해 쌍수도를 휘둘렀다.
쌍수도의 힘을 해금하는 순간 알게 될 거라는 강한결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깨달았다.
“이게…….”
말도 안 되는 힘을 느낀 라케시스가 다급하게 방향을 틀어 진상혁과 서희를 노렸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저건 정말로 위험해 보였다.
라케시스의 주변에 생겨난 빛의 광선들이 둘을 향해 날아갔다.
“초월기 3형. 무(無)의 경계.”
두 사람을 향해 날아가던 빛의 광선들이 일그러지더니 궤도가 멋대로 어긋났다.
최수현이 쏘았던 마력 간섭 탄의 효과는 전부 저지했다.
실수인 줄 알았는데, 실수가 아니었다.
“초월기라고?”
초월자들에게는 고유 스킬이나 다름없는 초월기가 존재한다.
가장 먼저 습득하게 되는 초월 모드라는 건, 결코 이유 없이 존재하는 게 아니었다.
보통의 헌터라면 초월 모드를 사용하고 난 이후에야 제대로 된 초월기를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라케시스는 이하린과 싸우는 내내 이하린이 초월 모드를 사용하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아니지. 잘못 생각했어.’
마법을 사용하는 각성자들은 평범한 각성자보다 적게는 수배, 많게는 수십 배의 마력을 가지고 있었다.
마탄이나 적은 무기 등 적당한 마력으로도 최대의 효율을 끌어낼 수 있는 것들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순수한 마력을 변형한 공격은 비효율의 극치였다.
아무리 뛰어난 마법사라고 해도 이하린처럼 거대한 광역기를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난사할 수는 없었다.
그래. 이하린은 마치 마력에 제한이 없는 사람 같았다.
앞을 가로막는 이하린에 라케시스의 표정이 급속도로 구겨졌다.
“네놈의 마력.”
“어머, 똑똑한 줄 알았는데 눈치가 없네. 그렇게 인상 찌푸리면 안 그래도 못생긴 얼굴이 더 못생겨지잖아? 뭐, 나는 주름 같은 거 없으니까 괜찮지만.”
노골적인 도발을 무시한 라케시스가 다시 빛의 광선을 날렸다. 그러나 어느 기점을 중심으로 공격들이 멋대로 왜곡되며 사라졌다.
“미르의 샘.”
대마법사 이하린의 초월기는 그리 대단한 게 아니었다.
절대 사라지지 않는 마력.
“쉽게 설명하자면 마력 무한?”
뭐, 진짜 완벽한 무한은 아니긴 하지만. 그걸 일일이 설명해 줘야 할 의무는 없었다.
진상혁과 서희를 노리던 라케시스는 아무리 공격해도 공격이 닿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재빨리 방향을 바꿨다.
유지한과 은영 누나의 공격을 피한 라케시스가 이하린의 앞에 나타나 주먹을 꽉 쥐었다.
“너 내가 우습나 봐?”
이하린의 스태프의 머리 위에 달려 있던 보석이 별안간 분리되었다.
윗부분을 날려 버린 채 긴 봉의 형태가 되자 이하린이 봉을 틀어 라케시스의 주먹을 막아 냈다.
봉을 한 번 더 틀어 균형을 무너트린 이하린이 라케시스의 몸을 향해 발을 크게 휘둘렀다.
마법사를 쓰러트리는 가장 쉬운 방법은 마법사의 집중을 흐트러트리게 하는 것.
즉, 마법사 본인을 공격하면 된다. 그러나 근접전에서 부딪힌 이하린에게는 조금의 빈틈도 보이지 않았다.
그사이 야마타노 오로치의 핵에 도달한 진상혁이 쌍수도를 휘둘렀다.
“삼척서천산하동색(三尺誓天 山河動色).”
삼 척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천하가 떨고.
검을 쥐고 있는 것만으로도 벅찬 힘이었다.
진상혁이 다시금 쌍수도를 치켜들었다. 그 옆으로 서희가 나타났다.
“후회해? 이 순간을.”
“그럴 리가.”
어차피 한번 죽었다고 생각했던 몸이었다.
이제 와서 죽음 같은 걸 두려워할 리가 없었다.
“일휘소탕 혈염산하(一揮掃蕩 血染山河).”
한 번 휘둘러 쓸어 버리니 피로 강산을 물들인다.
두 사람의 검이 마치 처음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그 힘이 서로 엉켰다.
한국은 천국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곳에 있었던 시간이 재미가 없었냐고 물어본다면 그건 아니었다.
다른 의미로 치열하게 경쟁을 했던 만큼 돌이켜 봤을 때 즐거웠던 것도 없었다.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너는 어떻지? 최재형.’
아니지.
최재형이 아닌가.
솔직히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야마타노 오로치와 함께 두 사람의 몸이 거대한 빛에 휘말렸다.
* * *
쌍수도가 야마타노 오로치의 핵을 베어 냄과 동시에 나는 아래로 내려왔다.
뭔가가 단단히 잘못되고 있다는 걸 깨달았던 최재형이 힘의 충돌이 일어나고 있는 쪽으로 달려가려 하고 있었다.
“젠장! 저게 무슨…… 부대표님!”
“이미 늦었다고 했잖아!”
그나마 지면에 있던 최수현이 급하게 그런 최재형을 붙잡았다.
“진상…… 부대표님…… 지금이라도…….”
“이미 늦었어.”
내가 앞으로 다가오자 최재형이 비틀거리며 다가와 내 멱살을 붙잡았다.
“왜…… 씨발, 왜! 왜 안 말렸어! 너…….”
“말렸어.”
“나를, 나를 부르지 그랬냐고! 더, 더 제대로 말렸어야 할 거 아니야! 도대체 왜…….”
“네가 말린다고 뭐가 달라져?”
그 자리에 내가 아닌 최재형이 있었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을 것이었다. 그리고 진상혁도 그걸 원하지 않을 게 틀림없었다.
“그러니까, 내가…… 내가 있었다면…… 그 인간은 제멋대로에 속을 알 수 없는 놈이긴 해도 그래도…….”
“알아.”
“네가…….”
“너만큼은 아닐지라도 안다고. 그러니까…… 발버둥이든 뭐든 나중에 해.”
앞으로 다가간 나는 주먹으로 최재형의 복부를 가격해 기절시켰다.
평소의 최재형이라면 이런 주먹에 기절을 할 리가 없지만,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지쳐 있는 상태였다.
“저기, 저는 수현 오빠가 시키는 대로 총을 쏘긴 했는데……. 재형 씨는 진상혁 부대표와 같은 길드 출신인데…….”
“최재형을 부탁할게.”
나는 채설하를 지나쳐 앞으로 걸어 나갔다.
야마타노 오로치가 완전히 숨을 끊자 완성이 되어 가던 고유 결계가 다시 무너지고 있었다.
* * *
열도 상공에 있는 비행기 내부.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지.”
마력 핵을 발사하기 직전 위드그라실의 마력이 약해지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이하린 본인의 말이니 틀린 말은 아니었을 거다.
박시우가 같이 날아갈 거냐는 이하린의 제안을 거절한 건 단순히 이하린이 싫어서만은 아니었다.
이하린이 귀찮은 것도 거절한 여러 이유 중에 하나긴 하지만.
열도에 도착하기 전까지 최소한의 시간을 벌고 싶어서였다.
위드그라실의 소멸, 그리고 야마타노 오로치의 부활.
야마타노 오로치가 다급하게 고유 결계를 만들기 시작했을 때는 정말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다.
한국에서도 보일 정도로 거대한 빛의 기둥과 함께 야마타노 오로치가 소멸했다.
반쯤 완성된 결계가 유리 깨지듯 갈라지며 무너져 내렸다.
겉으로 보기에는 지원이 오기 전에 야마타노 오로치를 쓰러트렸으니 잘된 거라고 할 수 있지만, 박시우의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뭔가가 계속해서 마음에 걸렸다.
“뛰어내린다.”
“예? 진짜 뛰어내리실 겁니까? 대표님?”
최근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김강우는 헌터 출신 국회의원이라는 이유만으로 여기까지 끌려오고 말았다.
의자에서 일어난 박시우가 당황하는 김강우를 보며 말했다.
“너도 갈 거니 벨트 풀어.”
“아니, 저 그래도 배지 달았는데 여기서 낙하는 좀…….”
천장에 손을 짚은 박시우가 ‘그래서 어쩌라고?’ 하는 표정으로 김강우를 내려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