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7화 배틀 로얄 (1)
모의전인지 하는 곳에서 환수를 쓰러트리고 압도적으로 1등을 한 나는 배틀 로얄의 참가 티켓과 하늘검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 과정이 완전히 수월했냐고 한다면 그런 건 아녔다.
모의전이 끝난 후 감옥 같은 곳으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관리인이 나를 찾아왔다.
“루인이 누구지?”
“난데? 왜?”
“예의가 없군. 뭐, 됐다. 따라와라.”
나는 어깨를 살짝 들썩이며 관리인을 따라 계단 위로 올라갔다.
가는 길에 본 콜로세움의 지하는 내 생각보다 훨씬 넓었다.
“어이, 그거 들었어? 3구역에서 환수를 쓰러트린 녀석이 있대.”
“새끼 환수가 아니고? 환수를?”
“그래, 그것도 기본 무기로 일방적으로 죽였다더군.”
“과장도 심하네. 그런 게 가능한 놈이 왜 콜로세움의 검투사로 있는 거야?”
“아 좀! 더 들어 봐. 그런데 그 녀석이 환수를 죽이니까 생존 포인트가 올랐다는 거야. 마지막에는 만점이 넘었다는데.”
“에이, 환수 레이스에서 만점이 넘는 게 가, 가능한가?”
불과 하루도 채 되지 않아 3구역에서 일어난 일은 콜로세움 지하 전체에 소문이 쫙 퍼졌다.
“저 녀석인 것 같은데?”
“저놈이라고? 생각보다 볼품없게 생겼는데. 환수고 뭐고 전부 과장 아니야?”
“뭐라고! 한판 뜰까?”
철창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내가 주먹을 들자 사람들이 우르르 뒤로 물러났다.
보다 못한 관리자가 나를 뜯어말렸다.
“소란을 일으키지 마라.”
“알았다고, 알았어. 그보다 어디로 데려가는지 알려나 달라고. 아니, 그리고 우승하면 무기 준다면서 왜 안 줘!”
마음이 급해서 그런지, 나는 상당히 예민해진 상태였다.
뭐가 됐든 이 빌어먹을 빚을 갚고 밖으로 나가 상황을 파악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성격이 나쁘군.”
“내가 성격 나쁜 데 보태 준 거 있어? 그 검 안 돌려주면 진짜 여기 다 부숴 버릴 줄 알아. 너 그 검이 어떤 검인 줄 알아? 어?”
하늘검을 경품으로 내건 것만 해도 이 녀석들은 이미 사형감이었다.
내 짜증에 그가 마지못해 말했다.
“하아, 검은 줄 거다. 여기로 들어가라.”
관리자와 함께 도착한 곳은 감옥을 벗어난 복도 끝에 있는 방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평범하게 테이블과 소파가 놓여 있는 대기실 같은 공간이 나타났다.
가죽 소파 앞에는 다리를 꼰 여자 하나가 입에 뭔가를 물며 아이템을 이용해 통화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건 무조건 되는 주식이라니까! 빚 같은 건 금방 갚을 수 있어. 아, 몰라 끊어.”
어디서 많이 봤나 했더니 3구역에서 내 사회를 봐주었던 GM하롱하롱이라는 여자였다.
사회라고 해도 딱히 뭘 한 것 같지는 않았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왜 있는 거지 싶은 느낌?
그녀가 입에 물고 있던 흰 막대기를 부러트려 쓰레기통에 버린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머, 안녕하세요. 루나 씨? 여성스러운 이름이네요.”
“루인이라고! 이름 정도는 똑바로 기억해!”
“아, 죄송해요. 제가 요즘 정신이 없어서. 아, 저는 지난번에 뵀죠? GM. 하롱하롱이라고 해요. 실명은 김지민인데. 편하게 지민이라고 불러요.”
“어, 그래.”
김지민은 지난번에 봤을 때 못지않게 화려하게 꾸미고 나타났다.
김지민이 고개를 까닥이자 같이 온 관리자가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갔다.
“갑자기 불러서 당황하셨을 것 같은데, 죄송해요. 지난번 모의전은 정말 잘 봤어요. 그리고 이건 우승 상품이에요.”
김지민이 소파 한쪽에 있던 하늘검을 나에게 건넸다.
“원래는 바로 드렸어야 했는데, 제가 직접 전해 드리고 싶어서 따로 달라고 했어요.”
“뭐?”
“어라? 혹시 안 되는 거였나요?”
“아니, 그게……. 아오, 됐다.”
김지민이라는 여자의 꿍꿍이는 알 수 없지만, 하늘검이 돌아온 탓인지 크게 화가 나거나 하지는 않았다.
“저 관리자에게 당신에 대해 대충 들었어요. 당신 경계 구역에서 발견된 사람이라면서요? 그 검도 원래 당신 거였다고 하던데…….”
“대충 맞아. 경계 구역이라는 데가 어떤 곳인지는 모르지만.”
“사실 그 검 경매에 넘어갈 뻔했거든요. 그런데 아무리 해도 검을 뽑을 수가 없어서, 결국 콜로세움의 경품으로 내려오고 만 거예요. 그래도 주인의 손에 들어갔으니 운이 좋네요.”
김지민의 말을 들은 내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빌어먹을? 경매라고?
감히 내 검을 경매에 넘길 뻔해?
경매장에 폭탄이나 마력 수류탄이라도 던져 놔야 정신을 차린단 말인가.
그런데 검을 뽑을 수 없다니 무슨 말이지?
노덴스에게 하늘검을 받은 이후, 나는 한 번도 그런 말을 듣거나 경험한 적이 없었다.
애당초 검집에 있는 검이 안 뽑히지 않는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나는 김지민의 말을 들으며 하늘검의 검을 검집에서 뽑아냈다.
뽑아…….
뽑아냈…….
“안 뽑혀!”
설마 싶어 잡아당기기도 하고 별의별 짓을 했으나 하늘검은 검집에서 뽑힐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마지막에는 참다못한 내가 검집을 쥔 채 바닥으로 검을 내리쳤다.
쿠우우우웅.
얼마나 강하게 내리친 건지 지진이 난 것처럼 지하가 흔들렸다.
“왜! 안 되는 거야! 왜!!”
내가 검을 뽑기 위해 발버둥을 치자, 옆에서 보고 있던 김지민도 다소 당황한 듯 눈을 껌벅였다.
“당신 그, 그 검 주인 맞죠?
“당연하지! 내 검이야! 내 거라고! 후.”
나는 하늘검을 빼는 걸 포기한 채 허리춤에 대충 걸친 후 자리에 앉았다.
“그래서 나한테 무슨 일인데?”
“아, 맞아. 당신 혹시 나랑 방송하지 않을래요?”
“뭐? 갑자기 방송? 무슨 소리야?”
“당신 탑의 하층에서 올라온 자 맞죠?”
“사정이 있긴 하지만 대충 그래.”
내 대답에 김지민이 그럴 줄 알았다며 손바닥을 마주쳤다.
이미 이재운도 알고 있는 사실이니 숨길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저는 하층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정말 드물게 경계 구역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되는 하층 사람들이 있다고 들었어요.”
“질문 하나 해도 돼?”
“편하게 하세요. 이렇게 보여도 동업자에게는 친절한 편이거든요.”
“아니, 난 동업할 거라고 말한 적 없는데. 어쨌든 너 방금 하층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른다고 했잖아. 하층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말 몰라?”
이재운도 마찬가지로 30층이나 하층 로비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어 보였다.
내 말을 듣고 그저 하층에서 올라온 자구나 하고 추측만 하는 게 눈에 훤히 보였다.
“아마 그럴 거예요.”
“아마?”
“저는 벽을 넘은 자는 몇 번인가 봤어요. 하지만 그 누구에게 물어봐도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무슨 경험을 했는지 말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금제(禁制)겠네.”
“그렇게 추측만 하고 있을 뿐이에요. 어쨌든 중요한 건 하층에서 무슨 일이 있었냐가 아닌,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느냐 아니겠어요?”
김지민의 말에도 일리는 있었다.
김지민이 테이블에 놓여 있는 쿠키를 집어 먹으며 말했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당신 빚이 꽤 많은 걸로 알고 있는데, 제가 갚아 드릴게요.”
“대신 방송인지 뭔지를 하자?”
“이 빌어먹을 세계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딱 3가지예요. 랭킹전을 뛰어서 위로 올라가든가, 저처럼 게임 마스터나 관리자가 돼서 활동을 하든가, 그것도 아니면 당신들처럼 검투사나 노예로서 살아남든가. 이것 말고는 선택지가 없어요.”
“흐음.”
“하지만 랭킹전을 뛰려면 공적치가 필요해요.”
“공적치가 0이 된 녀석은 괴물로 변한다던데. 검투사는 예외인 거야?”
이재운은 괴물로 변하는 걸 극도로 두려워했다.
다소 기초적일 수도 있는 내 질문에 김지민은 꽤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다.
“검투사는 0이 아닌 마이너스잖아요. 콜로세움 측은 언제든 당신들의 목숨을 쥐고 있다는 걸 잊지 마세요.”
이재운의 말에 의하면 중층에는 무수히 많은 랭킹전이 일어나고 있고, 그걸 다시 방송하고 송출하는 거로 공적치를 버는 유저층이 존재한다고 했다.
“근데 그런 방송할 거면 내가 해도 되잖아.”
“안타깝게도 게임 마스터 자격이 없는 자는 랭킹전을 송출하거나 올릴 수 없어요. 참고로 게임 마스터 수료에는 공적치가 꽤 많이 든답니다.”
“얼마 드는데?”
“천만 정도?”
“집어치워! 이런 양아치 같은 놈들을 봤나! 내가 거지 같은 아이템 상점이 나왔을 때부터 알아봤어. 그럼 너랑 방송하면 뭐가 좋은데?”
“당신의 영상은 돈이 돼요. 누군가가 당신의 영상이 마음에 든다면 공적치를 후원할 수도 있는 거죠. 혹은 조회 수 단위로 공적치를 얻을 수도 있구요.”
“당연히 너와 나눠야겠지?”
내 질문에 김지민은 당연한 일이라며 어깨를 살짝 들썩였다.
“비율은? 당연히 그냥 해 주진 않을 거 아니야.”
“팔 대 이 어때요?”
김지민의 제안에 나는 제법 귀가 솔깃했다. 그러나 그것도 아주 잠시뿐이었다.
“야, 설마 내가 이십퍼는 아니겠지?”
이재운에게 콜로세움 측이 떼 가는 비율을 들었을 때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김지민이 펌이 진하게 된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제법 거만한 투로 말했다.
“어머, 당연히 제가 팔십 퍼센트고, 당신이 이십 퍼센트죠.”
“꺼져.”
“다, 당신이 뭘 몰라서 그러는데 하이튜브의 세계는 새, 생각보다 냉정하답니다. 하루에도 수백, 수천 개의 영상이 올라와요. 저는 전직 아이돌로서 5만 명의 구독자를 확보한 채널에 1급 게임 마스터 자격도 가,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구요. 저 같은 인재를 고용하는데 당연히 그 정도는 가져가야죠.”
“필요 없어! 야! 너 영상 찍는다며! 싸움은 내가 다하고 공적치는 네가 다 벌겠다고? 날로 먹어도 적당히 먹어야지! 에라이, 난 갈란다!”
반으로 나눈다고 해도 화가 나는데 팔이나 가져가겠다고?
우주 먼지만도 못한 비양심 같으니라고.
안 그래도 하늘검이 안 뽑히는 것 때문에 짜증 나 죽겠는데, 방송이니 뭐니 하는 것에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등을 돌리자 김지민이 재빨리 말했다.
“그, 그럼 특별히 칠 대 삼으로.”
“간다고.”
“육 대 사.”
“잡상인 안 받아.”
내가 기어코 문고리에 손을 대자 김지민이 따라 일어나 손을 펼쳤다.
“절반! 이, 이 이상은 양보 못 해요!”
“내가 오는 길에 생각해 봤는데, 저번에 한 모의전 벌써 소문이 다 났더라고? 그렇게 몇 번만 뛰면 나 꽤 유명인이 될 거 같지 않냐?”
“그, 그건…….”
“게임 마스터라는 게 너만 있는 것도 아닌 모양이고, 검투사인 거랑 방송이랑 아무 상관이 없는 듯싶으니까. 다른 녀석을 구해도 될 거 같지 않냐?”
몸을 돌린 내가 다소 거만한 눈빛으로 김지민을 내려다봤다.
“육 대 사. 내가 육이고, 그쪽이 사야.”
“그, 저는 오만 구독자나 보유하고 있고, 전직 아이돌이고, 1급 게임 마스터인데 그쪽은 아무것도 없잖아요!”
“아이돌인 게 뭐가 중요하냐고! 됐어, 싫으면 말아.”
“안 돼애애! 알았어요. 육 대 사. 할게요. 하면 되잖아요. 나 이번 달까지 빚 다 못 갚으면 정말 큰 일이란 말이에요! 전직 아이돌인 내가 왜 검투사 같은 걸 해야 하냐구요! 정유연이 자기도 하층민 하나랑 방송 시작한다고 얼마나 자랑을 해 대던지! 나쁜 년! 내가 걔 때문에 갬블에 손대서 인생 망하게 생겼는데 하층민이랑 방송해? 조져 버릴 거야, 반드시 죽여 버릴 거야!”
궁지에 몰린 김지민이 되지도 않는 TMI를 했다.
정말 알고 싶지 않았는데, 솔직히 좀 불쌍해졌다.
“너도 빚 있냐?”
“끅, 흐윽, 네.”
“얼만데?”
내 말에 김지민이 손가락 다섯 개를 펼쳤다.
“오백?”
“오, 오천이요. 헤헤.”
이게 지금, 웃음이 나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