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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했더니 신이 되었다-444화 (444/760)

444화 각성 (4)

익숙하지 않은 노덴스의 마력이 미친 듯이 몸 안으로 스며들며 온몸의 마력 회로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으으윽…… 아윽…….”

쉽지 않을 거라 예상하긴 했으나, 내 생각보다 훨씬 벅찼다.

나는 하늘검의 검집을 허공에 꽂은 채 한쪽 무릎을 꿇었다.

[이봐, 괜찮나? 나를 죽이기도 전에 네가 먼저 죽는 건 아닌지 모르겠군.]

“그럴 리가 없…… 쿨럭…….”

나는 끝내 피를 한 움큼 쏟아 냈다.

온몸의 힘이 쭉 빠지는 것 같은 느낌과 함께 의식이 끊겼다.

* * *

차성진을 중심으로 한 마력의 소용돌이는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마력의 폭풍은 데일이 만든 고유 결계 내부를 완전히 집어삼켰다.

고유 결계 내부가 차성진이 만들어 낸 무거운 마력에 휩싸였다.

‘이 마력은…….’

처음 차성진이 세계의 끝을 건드렸을 때만 해도 단순히 모시는 신의 힘을 빌려 왔다고만 생각했다.

공간을 가르고 파괴하는 힘이라고 해도 결국은 한낱 초월자의 힘에 지나지 않았다.

피투성이가 된 차성진이 바닥에 손을 짚으며 천천히 일어났다.

차성진이 손을 뻗자 시야를 가리던 마력의 안개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흩어져 있던 마력을 가지고 왔을 뿐인 일이었다.

느리게 움직이던 손이 허공을 살짝 스쳐 지나갔다.

마치 유리가 깨지듯 차원이 갈라졌다.

아무리 힘이 약해졌다고 해도 데일은 오랫동안 차원을 유지해 온 이탈자였다.

그런 데일의 고유 결계가 차성진의 고유 결계에 밀려 버린 것이었다.

[이 풍경은, 믿을 수가 없군.]

끝이 없이 푸른 하늘, 그 경계 위에 데일과 차성진이 있었다.

그런데 왜일까?

[너는 누구지?]

데일은 무서울 정도로 차성진의 분위기가 바뀌었다는 걸 느꼈다.

그 전의 차성진은 신이긴 했으나 위엄이 느껴지는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데일의 앞에 서 있는 차성진은 달랐다.

차성진이 천천히 고개를 들며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손이 많이 가는 녀석이라니까.”

[너는, 누구지? 정말 그 신이 맞나?]

“맞아.”

[하지만……. 너, 아니…… 당신은…….]

차성진을 내려다본 데일은 말을 잇지 못했다.

모든 차원에는 그걸 관리하는 자가 있었다.

당연히 ‘시련의 탑’이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안타깝게도.”

입 안에 고여 있는 피를 퉤, 하고 뱉어 낸 차성진이 몸을 살짝 틀었다.

요정의 원석으로 인해 차성진은 힘을 얻었다.

하지만 갑자기 들이닥친 과한 힘에 과열이 되듯 의식이 끊겼다.

그 틈을 미래의 차성진이 잠시 차지한 것뿐이었다.

“길게 이야기할 시간은 없을 것 같다.”

차성진이 허리춤에 있는 하늘검에 손을 올렸다.

여태껏 한 번도 뽑히지 않았던 하늘검이 아무렇지 않게 뽑혀 나왔다.

바다와 같이 푸른 검.

세상 모든 것을 담고 있는 것만 같은 검신이었다.

차성진의 발밑에 있던 푸른 하늘이 점점 붉게 물들더니 순식간에 밤하늘로 바뀌었다.

생전 본 적 없는 별들의 향연을 본 데일은 죽음이 눈앞까지 다가왔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고 말았다.

“쉬어라.”

세상을 가르는 거대한 검의 끝이 데일의 몸에 닿았다.

‘아아, 드디어 편하게 죽을 수 있어……’

무섭기는커녕 오히려 이 순간을 맞이한 것에 감동할 정도였다.

데일의 눈가에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하늘검을 완전히 내리그은 차성진이 검을 도로 집어넣으며 중얼거렸다.

“약속은 지킬 거다.”

원시의 환수를 쓰러트린 차성진의 몸이 힘없이 픽 쓰러졌다.

[‘진리의 눈’을 획득하였습니다.]

[초월기 ‘두 번째 하늘’을 획득하였습니다.]

[‘차원의 검’을 획득하였습니다.]

* * *

제8 구역의 어딘가.

“거기 조심 좀 해!”

“여기 좀 도와주세요!”

“레빈, 여긴 내가 맡을 테니까 너는 저쪽 환자를 부탁해!”

“아, 알겠습니다!”

“손 비는 사람 있으면 꾸물거리지 말고 움직여!”

여기저기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로 정신이 없었다.

온몸이 욱신거리며 머리가 어지러웠다.

“허윽…….”

천천히 숨을 내쉬며 정신을 차렸다.

가장 먼저 보이는 건 금이 간 채로 무너져 있는 천장이었다.

낮은 침대에 누워 있던 나는 멍하니 앉아 눈을 깜박였다.

나는 지끈거리는 이마를 꾹꾹 눌렀다.

‘분명……. 요정의 원석을 사용한 후에……. 아니, 그 녀석이?’

요정의 원석을 사용하고, 몰아치는 힘을 이기지 못한 나는 끝내 의식을 잃었다.

그 후에 차원의 주인이라 불리는 녀석이 내 몸에 멋대로 빙의했다.

‘잠깐만.’

뭔가 이상한데?

나는 11층에서도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내 몸에 빙의한 놈이 무슨 짓을 했는지 기억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녀석이 내 몸을 움직인 것, 데일에게 꺼낸 말들이 마치 내가 한 것처럼 선명하게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말투나 행동을 볼 때 11층에서 내 몸을 빌렸던 그 녀석이 틀림없었다.

‘대체 어디서 보고 있었던 거지? 이런 게 가능한가? 그게 아니라면…….’

나는 이런 경우가 가능한 케이스를 딱 하나 알고 있었다.

‘녀석이 정말 미래의 나라면…….’

가장 먼저 드는 건 다름 아닌 이은희에 관한 생각이었다.

다른 유저와 다르게 이은희는 여전히 자신의 신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고 했다.

힌트라고 한다면 이은희가 사용하는 활을 물어다 준(?) 슬라임 정도가 다였다.

그 슬라임이 설마…….

‘나라고?’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아니지 않나.

토끼 인형에 빙의한 거로도 부족해 미래에 슬라임이 되고 싶지는 않은데.

나는 습관처럼 상태창을 열었다.

다른 건 모르겠고 스킬들이 대거 추가되어 있다는 건 확인할 수 있었다.

스킬창을 옆으로 치운 나는 뒤늦게 주변을 둘러봤다.

무너진 건물에 임시로 침대를 놓고 있었는데, 여기저기 부상을 입은 유저들이 누워 있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여기가 완전히 다른 세계는 아닐 거라 확신했다.

그때 사람들 사이를 분주하게 뛰어다니던 여자 하나가 나에게 다가왔다.

“아! 일어나셨어요?”

“너는?”

“저는 서아현이라고 하는데……. 아니, 참! 그게 아니라! 얼마나 걱정했는 줄 아세요?”

“처음 듣는 이름인데. 네가 나를 왜 걱정해?”

침대에서 일어난 나는 몸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컨디션이 좋은 건 아니지만, 크게 상처를 입은 곳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 그거야! 치유사로서 부상자를 걱정하는 건 당연한걸요! 게다가 당신을 데려온 사람은 저인걸요.”

“……네가 나를 데리고 왔다고?”

“네. 엄청나게 중상이었는데……. 신의(信義)님이 도와주시지 않았다면 아마 죽었을지도 몰라요.”

“신의님은 또 누구야. 뭐, 어쨌든……. 여기 중층부 맞지?”

“네. 맞아요.”

“그럼 병원인 건가? 병원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뭔가 많이 엉성한 게 병원이라고 하기보다는 야전 병원에 가까웠다.

내가 말을 흐리자 서아현이 뒤쪽을 둘러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많이 엉망이죠? 원래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최근 몇 개월 사이에 환수가 너무 많이 나타나서 말이에요. 벌써 몇 개 병원이 당했는지 몰라요.”

“잠깐만, 환수라고?”

“네. 왜 그러세요?”

“중층부라고 하지 않았어? 왜 경계 구역도 아닌 곳에 환수가 날뛰는 거야?”

“아. 그게……. 경계 구역이 무너진 지는 좀 되지 않았어요?”

경계 구역이 무너졌다니…….

‘데일이 죽으면서 환수들이 쏟아질 거라 예상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한복판에 던져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얼마나 됐는데?”

“한 삼 년 정도요.”

“서아현! 떠들 시간 있으면 이쪽 와서 도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크게 다친 유저를 치료하고 있던 사내가 서아현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넵! 금방 가요! 아, 저기 상처는 괜찮아 보이니까 가 보셔도 되긴 하는데요! 당신 엄청 엄청 크게 다쳤거든요? 그러니까 무리하지는 마세요!”

“아. 그래.”

사내가 서아현에게 빨리 오라며 재촉했다.

자세히 보니 여긴 야전 병원도 아니고, 그냥 무너진 건물의 로비를 이용해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반쯤 부서진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내가 고개를 돌리기 무섭게 벽이 무너지며 환수 한 마리가 나타났다.

콰아아앙.

“빌어먹을! 경비를 선 유저들은 어디 간 거야!”

“부상이 심하지 않은 유저가 있다면 막아 주세요!”

회복이 끝났거나 다른 사정으로 방문한 유저들이 무기를 꺼내며 안으로 들어오려는 환수를 경계했다.

커다란 머리에 커다란 촉수를 달고 있는 녀석은 문어와도 같아 보였다.

녀석의 몸에 난 눈이 갈라지더니 내부를 정신없이 훑어봤다.

커다란 촉수 하나가 정면을 막고 있는 유저를 향해 날아갔다.

방패로 촉수를 막아 보려 시도했으나 힘을 이기지 못한 유저가 방패와 함께 뒤로 날아갔다.

“젠장, 저 녀석 중형이야.”

“최대한 버텨!”

나는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는 유저들을 무시한 채 터벅터벅 앞으로 걸어갔다.

“어이, 거기 너 뭐 하는 거야?”

남자 하나가 내 어깨를 향해 손을 뻗었으나 내가 남자를 지나쳐 가는 속도가 더 빨랐다.

“뭐야? 저 녀석?”

“냅둬, 죽고 싶은가 보지.”

“그치만 무기를 가지고 있긴 한데.”

“허세 아냐?”

투덜거리는 유저들을 뒤로한 나는 하늘검의 손잡이로 손을 올렸다.

안쪽으로 기어들어 온 여러 개의 촉수들이 뾰족한 형태로 변하더니 일제히 나를 향해 날아왔다.

나는 하늘검을 한 손으로 뽑아 크게 휘둘렀다.

파아아앗.

나에게 날아온 촉수들이 후두둑 잘려 아래로 떨어졌다.

“이거지!”

마력을 머금은 하늘검의 검신이 점점 푸르게 빛났다.

겉으로 봤을 때 크게 달라진 건 없으나 위력에서 엄청난 차이가 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잘려 나간 단면에서 촉수가 다시 자라고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촉수가 전부 자랄 틈을 줄 생각은 없었다.

가볍게 뛰어오른 내가 하늘검을 녀석의 몸에 난 눈알에 찔러 넣었다.

검을 빼내자 놈이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을 쳤다.

아직 재생하지 않은 촉수와 남아 있는 촉수들이 일제히 나에게 덤벼들었다.

나는 허공에 발을 살짝 디뎠다.

이제 초월기를 굳이 사용하지 않더라도 공중전을 하는 게 가능해졌다.

낙영비화검(落英飛花劍)의 초식을 밟자 얇은 칼날들이 꽃처럼 떨어지며 환수를 덮쳤다.

검을 내려놓자 온몸이 갈기갈기 찢겨 나간 환수가 피를 쏟아 내며 쓰러졌다.

나는 마력을 이용해 하늘검에 묻은 피를 날려 버린 후 검을 집어넣었다.

‘막 깨어나서 그런가? 좀 뻐근한 것 같기도 하고.’

서아현은 내가 부상을 입은 채 발견이 되었다고 했다.

치료하고 막 깨어났다고 생각한다면 몸 상태가 이런 것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됐다.

“세, 세상에……. 중형 환수를 일격에 쓰러트리다니.”

“랭커인가? 처음 보는 녀석인데.”

“그보다 랭커가 왜 여기에 있는 거야?”

부상을 치료해 준 대가로 환수를 쓰러트렸으니 보상은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았다.

‘일단 중층부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부터 파악해야겠지.’

나는 나를 두고 수군거리는 유저들을 반쯤 무시한 채 임시 치료소를 나가려 했다.

그때 나에게 서아현이 다가왔다.

“잠깐! 아현아!”

“저기! 당신. 어, 엄청나게 강하시네요.”

“어. 왜?”

내가 용건이 있냐며 서아현을 내려다봤다.

주변의 눈치를 본 서아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처음 만났는데 이런 말 실례일 수도 있겠지만 그게……. 저희를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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