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9화 넌 내가 죽인다 (2)
쓰레기라고?
한 팀당 하나의 환수를 처리하기로 한 약속을 어긴 건 다름 아닌 사토였다.
그런 주제에 가장 약한 환수 하나 똑바로 처리하지 못하고 있으니 민폐도 이런 민폐가 없었다.
뒤로 물러난 사토가 근처에 있는 환수를 죽인 후 나를 노려봤다.
킬킬.
노려보면 어쩔 건데?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도 쓰지 않은 채 팝콘을 계속 먹었다.
아래를 내려다보던 김다솜이 소울 테이커를 내려놓았다.
“제 목적은 미래 언니를 구하는 거지, 환수를 쓰러트리는 건 아니거든요. 게다가 한결 씨가 손을 대지 않는다고 한다면 저도 손대지 않겠어요.”
“하아, 마음대로 해라.”
아래쪽으로 마탄을 쏜 사토가 마음대로 하라며 중얼거렸다.
사방에서 마탄이 쏟아지자 궁기의 어깻죽지가 꿈틀거리더니 양옆으로 커다란 날개가 나타났다.
녀석이 날개를 펄럭이자 날카로운 깃털들이 사방으로 날아갔다.
서아현이 다가오는 깃털을 보며 손을 뻗었다.
파아아앗.
눈앞에 만들어진 커다란 정육각형의 실드가 날아온 깃털을 막아 냈다.
크아아아악.
온몸에 상처를 입은 궁기가 날개를 펄럭이며 위로 날아올랐다.
“제길, 위로 도망치다니! 비겁하다!”
비행 스킬이 없는 사토가 머리 위로 일본도를 붕붕 휘두르며 짜증을 냈다.
검 끝을 살짝 내린 사토가 위쪽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날아간 참격이 궁기에게 닿긴 했으나 아무래도 거리가 멀어 정확도나 위력이 떨어졌다.
“으윽……. 뭐, 저런 괴물이…….”
“벤터스에서 지원 온 랭커가 쓰러트리지 못하면 답이 없는 거 아니야?”
“샹그릴라 놈들은 대체 왜 이런 데로 숨어들어서…….”
“그보다 저쪽은 이미 도올을 쓰러트리고 온 거 아니야? 도올이 궁기보다 강하다고 들었는데.”
“아까 엄청난 폭발이 있었잖아. 으윽…….”
사토가 궁기를 향해 계속해서 시간을 끌자 유저들 사이에서 불만이 늘어나고 있었다.
미끼나 다름없었던 우리가 누구보다도 빠르게 사흉을 쓰러트리고 나타났으니 무리도 아니었다.
궁기는 위쪽으로 날아오르긴 했으나 높이 날지는 못했다.
강철같은 깃털의 무게를 생각하면 저 정도 날아오른 것도 충분히 대단했다.
내 옆에서 팝콘을 빼앗아 먹던 서아현이 말을 걸었다.
“그나저나요. 한결 씨는 미래 언니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지 않아요?”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인데, 너 유지한의 위치를 알 수 있는 아이템은 있다면서 한미래의 위치는 몰라?”
“음. 그게요. 이거 보실래요?”
김다솜이 아이템 창에서 꺼낸 건 검은 보석이었다.
마력을 불어 넣자 보석의 위쪽으로 빛이 올라왔다.
“길잡이 보석이라는 건데요. 한 쌍이 되는 걸 가지고 있으면 서로의 위치를 알려 주는 아이템이에요. 원래라면 이런 식으로 방향을 알려 주는데…….”
위로 향하던 빛이 별안간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빙글빙글 맴돌았다.
“왜인지 10구역에 들어 온 이후부터 계속 이러더라구요.”
“아. 그럼 도올은?”
“지나가다 만난 거예요. 그냥 가려고 그랬는데 영 성가시게 굴어서요. 어쨌든 한결 씨라면 미래 언니의 위치를 알지 않나요? 지한 오빠도 매번 마력탐지인지 하는 사기 스킬 사용하고 다니던데.”
김다솜은 서아현과 노아가 듣고 있어서 말을 아끼고 있었다.
김다솜의 말은 유지한이 하는 걸 내가 못할 리가 없지 않냐는 식의 이야기였다.
‘마력 탐지가 개사기 스킬이긴 하지.’
대놓고 저렇게 말할 줄은 몰랐지만,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사용하고 있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일단 뭔가 착각하고 있는 거 같은데 아무리 나라고 해도 9구역 전체를 다 커버할 수는 없어.”
“…….”
“왜 그것도 못 하는 거야? 하는 표정으로 바라보지 마! 상처받으니까!”
초월기를 사용하고, 각성 상태가 되면 못 할 것까지는 없지만 그러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컸다.
“게다가 나 역시 비슷해.”
“비슷하다구요?”
“그래, 샹그릴라는 집단이잖아? 그럼 못 해도 우리 혹은 그 이상의 유저들이 모여 있을 텐데 한미래의 마력은커녕 아무런 마력도 느껴지지 않는단 말이지?”
길잡이 보석이 길을 잃어버린 채 맴도는 상태와 비슷했다.
“누군가 샹그릴라를 숨겨 주고 있는 걸까요?”
서아현의 말에 나는 그럴 가능성이 크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래를 향해 쉴 틈 없이 깃털을 날리던 궁기가 마침내 아래로 내려왔다.
“어이어이, 이 몸은 이 순간을 기다렸다고!”
저 말투 진짜 적응 안 되네.
건물 잔해를 밟고 위로 올라간 사토가 일본도를 뽑아 휘둘렀다.
궁기의 주변으로 정사각형 모양의 큐브가 나타났다.
아래로 내려온 사토가 검을 내리긋자 사각 없는 검격이 궁기를 덮쳤다.
온몸에 상처가 난 궁기가 비명을 지르며 괴로워했다.
사토의 초월기는 충분히 공격적이었으나 궁기를 한 방에 쓰러트릴 정도의 위력은 나오지 않았다.
검은 피를 뚝뚝 흘린 궁기가 입을 크게 벌렸다.
“훗, 내 실력은 역시 녹슬지 않았…… 무…… 무슨!”
뒤쪽에서 느껴지는 거대한 마력에 사토가 흠칫 놀랐다.
이 거리에서 궁기의 입에서 나온 공격을 맞는다면 아무리 사토라 해도 치명상을 피하기는 힘들었다.
상황을 지켜 보고 있던 서아현이 끼어들려 하자, 나는 서아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한결 씨?”
“내버려 둬.”
“그래도 죽게 내버려 둘 수는…….”
“그런 게 아냐.”
콰아아앙.
내가 말을 하기 무섭게 사토와 궁기 사이로 커다란 대검이 벽을 뚫고 날아왔다.
날아간 대검은 상처가 가득한 궁기의 목 근처를 관통했다.
목에 대검이 박히자, 사토를 노리던 궁기의 스킬이 틀어졌다.
“으윽……! 감히 뒤를 노리다니!”
환수에게 뒤고 앞이고 어디 있겠냐마는.
저 녀석이 지금 살아남은 두 개의 엔터 중 하나에서 꽤 높은 위치에 있는 유저라는 거지?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혹시 실력이 좋아서 된 게 아니라 그냥 오래 살아남아서 된 거 아냐?
도철을 쓰러트리고 나타난 하세영이 탑처럼 쌓여 있는 철근 위에서 뛰어내렸다.
‘쟤는 진짜…….’
세상에 누가 급하다고 해서 대검을 저렇게 무식하게 던져?
진상혁도 대검을 사용하는 유저였지만, 진상혁과 하세영은 대검을 쓰는 방식부터 스타일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하세영이 위로 손을 뻗자 궁기의 목을 관통했던 대검이 흔들리더니 쑥 하고 빠져나왔다.
하세영은 머리 위로 날아온 대검을 손에 쥐었다.
콰앙.
대검을 지면으로 내리찍은 하세영이 주변에 있는 유저들을 훑어봤다.
“검은 연기가 올라와서 설마 싶었는데 정말이지 민폐가 따로 없군요.”
“죽을 수는 없지 않은가! 죽을 수는!”
“혼돈을 상대해야 하는 자경단 유저들까지 끌어들인 당신이 할 말은 아닌 거 같은데 말이에요. 그리고……. 저 여자는 왜 여기 있는 거죠?”
하세영이 한 손으로 대검을 어깨에 살짝 걸치며 김다솜을 노려봤다.
얼마나 강한 살기를 내뿜는지 주변의 유저들이 잔뜩 긴장할 정도였다.
“아, 미안. 방해할 마음은 없었어.”
“방해할 마음이 없으면 그냥 꺼져 주시는 건 어떤가요? 아니지, 그 폭발은 당신 짓 같은데. 도올을 쓰러트린 건가요?”
“그 털 뭉치가 계속 나를 방해했잖아. 어차피 쓰러트리려 했던 거 아니었어? 이쯤 되면 방해가 아니라 도와준 거 같은데 말야.”
“용건이 뭐죠?”
피투성이가 된 궁기가 남아 있는 힘을 이용해 하세영을 향해 발을 내리찍었다.
대검을 옆으로 든 하세영이 궁기의 앞발을 막아 냈다.
궁기가 하세영을 찍어 누르기 위해 힘을 가했으나, 하세영은 꿈적도 하지 않았다.
얼마나 힘이 센 건지 감이 오지 않을 정도였다.
“샹그릴라에 잡혀 있는 유저 말이야. 나랑 개인적으로 아주 친한 사이거든.”
“신의인지 하는 유저요?”
“맞아. 미래 언니만 확보하면 볼일은 없어.”
“하아, 마음대로 하세요.”
치고받고 싸울 줄 알았던 내 예상과 다르게 하세영과 김다솜은 꽤 차분해 보였다.
고개를 돌린 하세영이 두 손으로 대검을 귀며 궁기를 밀어냈다.
뒤로 살짝 물러난 하세영이 마지막 발악을 하는 궁기를 향해 대검을 휘둘렀다.
엄청난 힘으로 궁기의 꼬리와 다리가 잘려 나갔다.
쓰러진 궁기가 이를 갈며 하세영을 찾았으나 하세영은 보이지 않았다.
위쪽으로 뛰어오른 하세영이 대검을 아래로 내렸다.
대검 끝으로 마법진이 생겨나더니 거대한 붉은 대검이 궁기의 몸을 관통했다.
콰아아앙.
대검이 궁기의 몸을 관통하며 그 여파에 사방으로 잔해가 튀었다.
“콜록……, 윽. 진짜 여기서는 못 싸워 먹겠네.”
실외긴 실외인데 스킬 한번 사용할 때마다 먼지며 건물 잔해들이 사방으로 튀어 난리도 아니었다.
먼지가 가시자 죽어 있는 궁기가 있었다.
“크흠. 내가 다 한 거나 마찬가지다!”
“한결 씨, 저놈은 대체 여기 왜 있는 거예요?”
“내 말이 그 말이다. 어휴.”
달리 더 무슨 말을 하겠니.
“거기, 영화 상영은 이제 끝이니까 팝콘 그만 드시고 내려오시죠?”
하세영이 우리를 향해 손가락을 까닥였다.
궁기도 죽었겠다 더는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나는 아래로 가볍게 뛰어내렸다.
“그나저나 이 멤버는 혼돈을 쓰러트리려는 팀도 포함이 되어 있는 거죠?”
하세영이 혼돈 팀의 리더를 담당하고 있는 사내를 흘끔 바라봤다.
초월자가 없는 대신 혼돈과 싸우는 팀은 다른 팀에 비해 유저 수가 세 배 이상 많았다.
그 유저들이 전부 궁기 하나를 상대하느라 애를 쓰고 있었다니, 낭비도 이런 낭비가 없었다.
“윽, 그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혼돈을 제외한 나머지 사흉들을 전부 쓰러트렸다는 거지! 이 인원이라면 마지막 남은 사흉을 처리하는 건 일도 아니다!”
“한심하긴. 우리가 사흉을 쓰러트리러 이곳에 온 게 아니…… 아니잖…….”
말을 흐린 하세영이 대검을 꽉 쥐며 주변을 경계했다.
하세영뿐만이 아니었다.
뭔가 위화감을 느낀 김다솜 또한 소울 테이커를 꺼냈다.
“기분 탓인가?”
“아뇨. 분명 살기였어요.”
“뭐? 살기? 대체 어디란 말인가? 이 몸이 눈치채지 못했을 살기가 있을 리가…….”
푸욱.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사토의 배를 뚫고 검은 손 하나가 튀어나왔다.
“쿨럭…… 대체 어디서…… 이 새끼가!”
사토가 재빨리 뒤로 검을 휘두르자 손이 몸을 빠져나갔다.
“사토 씨!”
사토가 피를 흘리며 쓰러지자 놀란 서아현이 달려갔다.
사람의 크기와 비슷한 검은 그림자가 그런 서아현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세영이 서아연과 그림자 사이를 갈라놓듯 대검을 내리찍었다.
그림자가 뒤로 물러나자 이번에는 김다솜의 소울 테이커가 날아왔다.
바닥에 박힌 소울 테이커에서 전기가 흐르며 그림자를 쫓았다.
지면이 전부 전기로 흐르게 되자, 검은 그림자가 기어코 뒤로 물러났다.
뒤쪽에 있던 나는 검은 그림자를 향해 하늘검을 휘둘렀다.
녀석이 손을 뻗어 하늘검을 막아 냈다.
발을 크게 휘둘러 검을 빼낸 나는 낙영비화검(落英飛花劍)의 초식을 밟았다.
빠르게 날아간 꽃잎들이 그림자의 몸을 뒤덮었다.
이쪽을 보던 녀석이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 순간.
찰나의 순간에 놈의 모습이 사라지며 내 뒤에서 나타났다.
몸을 숙여 백 텀블링을 한 후 유성참(流星斬)을 사용했다.
하늘검의 검 끝이 검은 그림자의 어깨를 베고 지나갔다.
“너, 어떻게 방금 그걸 피한 거지?”
녀석이 어깨에 난 상처를 흘끔 보더니 고개를 들었다.
“그건 내가 묻고 싶은데.”
“…….”
“방금 뭐 한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