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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했더니 신이 되었다-501화 (501/760)

501화 그 스승에 그 제자 (1)

[유현우도 아니잖아.]

저건 유현우의 기억과 감정이 있는 또 다른 누군가일 뿐이었다.

[남 말할 처지?]

[그런 건 아니지만…….]

나는 사서의 말에 한순간 말문이 턱하고 막혔다.

저 녀석은 나이면서 왜 저렇게 뼈를 찌르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건지 모르겠다.

[나니까 가능한 거야.]

[남이 아니니까 막말을 한다 이런 거냐고.]

[말했잖아. 가끔 후회한다고.]

[난 너처럼 하지 말라고 충고라도 하는 거냐?]

[하고 싶은 대로 해.]

[…….]

[바꿀 필요 없어. 그건 네 역할도 아니고.]

내 역할이 아니라고?

이해가 되지 않는 이야기였으나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했냐고 물어보지는 않았다.

저 녀석은 나니까, 어쩌면 미래의 유지한이 그렇듯 때가 되면 알게 될 거라 믿었다.

그리고 그게 사서가 원하는 것이기도 했다.

“……야. 야! 멍청한 슬라임!”

“멍청한 슬라임이라고 하지 말라고.”

“멍청한 표정으로 멍하니 있지 말라고. 안 그래도 멍청한 게 더 멍청해 보이니까.”

이 자식 진짜.

멍청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해야 만족하는 거야?

초월자 유지한은 왕 게임 당시 토끼 인형에 빙의된 나를 만났다.

그래서인지 나를 대하는 데 있어서 큰 거부감은 없어 보였다.

망할 토끼 인형에서 멍청한 슬라임이라고 칭호가 바뀐 것만 빼면 말이다.

“그보다 진짜야?”

“거짓말은 안 해. 그럴 이유도 없고.”

유현우가 탑에 있다는 것.

그것은 바꿔 말하자면 유현우가 죽었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유지한이 주먹을 꽉 쥐며 이를 악물었다.

“망할 형.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고.”

유지한의 형인 유현우는 탑에 들어오기 전 이미 형사 일을 하고 있었다.

동생이 처참하게 살해당했다는 걸 알면 그야 나라도 눈이 뒤집힐 거다.

지금으로서는 유지한이 죽고 난 이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까지는 알 수 없었다.

“안 믿어.”

“내가…….”

“네놈이 나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을 거라는 거 정도는 안다. 하지만 안 믿어. 형이 탑에 있다는 건 내가 직접 판단할 거다.”

“그걸로 네 마음이 편해진다면야.”

신살자 유지한도 결국은 유현우의 얼굴을 보지 않은 채 원래 세계로 돌아갔다.

신살자 유지한이 유현우를 피한 건 지극히 의도적인 행위였다.

“그러니까 내보내 달라고!”

“뭘?”

“뭐가 뭐야! 여기서 내보내라고 했잖아! 멍청한 슬라임!”

“여기서 나가면 어떻게 할 건데?”

“그야…….”

“형을 만나게? 참고로 유현우는 중층부에서 상당한 거물이야. 아니, 사실상의 일인자라고 할 수 있지.”

차원이 무너지는 것만 임시로 간신히 막았을 뿐, 중층부에는 여전히 많은 환수가 남아 있었다.

김다솜의 전의가 꺾인 이상 사화 엔터는 명실상부한 중층부의 지배자였다.

그리고 유현우는 그 사화 엔터의 대표다.

“지금의 너는 중층부에 나가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극단적으로 이야기해 줄까? 너, 서유라보다 약할걸.”

“내가 그 여자보다 약할 리가 있겠냐고.”

“정말 그렇게 생각해? 그럼 싸워 보지 그래?”

나는 불가살이의 검의 끝을 지면에 툭툭 건드렸다.

검을 타고 땅 아래로 스며든 마력이 다시 유지한과 나를 감싸고 있는 새장에 들어갔다.

새장이 빛나기 시작하더니 주변의 풍경이 바뀌었다.

“새장은 또 어디 간 거야?”

“새장 안이야.”

“여기가?”

유지한이 서 있는 곳은 넓은 초원의 한복판이었다.

“환상을 보여 주는 장막. 그게 거기 설치한 거대한 새장의 정체야. 그리고…….”

내가 손가락을 살짝 튕기자 유지한의 눈앞에 서유라가 나타났다.

유지한이 서유라를 가만히 바라봤다.

“이게 서유라라고?”

“왜?”

“분위기가 달라진 거 같은데…….”

“머리가 많이 길긴 했지.”

하층에서 본 서유라의 머리카락은 남성과 비교해도 될 정도로 짧았다.

반면 중층의 서유라는 어깨보다 조금 위까지 오는 단발머리였다.

“이건 네 기억을 토대로 만들어진 장막. 즉, 환상이야.”

“사라진 2년에 대한 걸 말하는 거냐?”

“그래.”

“기억이 없다는 건 기분이 좋은 경험은 아니군.”

“안타깝게도 네 기억을 지운 건 내가 아니야. 녀석의 말에 의하면 그러한 약속이었다고 해.”

“쓸데없는 짓을 했군. 그보다 왜 그런 짓을 한 거지?”

“그러니까 그 빙의의 대가가…….”

“난 빙의를 원한다고 말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아, 그쪽이 문제였던 거야?

사실 문제가 있다고 하면 초월자 유지한이 아닌 신살자 유지한 쪽이었다.

녀석은 해의 저주 때문에 많이 약해져 있었던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런 유지한을 기절시킨 건 나니까…….

‘어, 내 잘못이잖아?’

아니, 근데 뭐만 하면 다 내 잘못이야?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건 정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어찌할 건데? 일어나 버린 일.

그리고 내가 말을 하지 않으면 초월자 유지한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다.

[못됐어.]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 몰라?]

[그러니까 그 유지한이 널 죽이려고 했던 거라는 생각은 안 해?]

[안 해! 그때 나는 정말 억울했다고!]

그 시절의 나는 유지한이 탑 밖에 있을 거라는 생각도 못 했다.

게다가 지금의 유지한과 다르게 나는 탑 안의 유지한에게 제법 잘해 주고 있었다.

설마 해서 드는 생각인데.

[유지한이 찾고 있는 죽이고 싶은 소테르 신이 내가 아니라 너 아니야?]

[…….]

[야, 왜 무시해? 이 자식이……!]

주변에서 마력이 느껴지지 않는 걸 봐서 사서는 도망간 게 틀림없어 보였다.

자기 좋을 대로 떠들고 도망치다니!

역시 그럴 줄 알았다.

“어쨌든 이미 일어난 일이야. 장소는 좀 다르긴 하지만, 여긴 너와 내가 만났던 층과 층 사이와 비슷하다고 보면 돼.”

“그 말은 방해가 들어올 리가 없다는 뜻이겠군.”

“그래. 아까도 말했다시피 지금의 너는 약해. 네가 자기의 힘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내 말에 유지한이 엉망진창이 된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비록 회귀는 아니지만, 한순간이라도 과거로 돌아온다면 바꾸고 싶은 것 정도는 존재한다.

신살자 유지한에게 그것은 힘이었다.

과거 자신의 몸에 빙의한 신살자 유지한이 얼마나 검을 휘둘러 댔을지는 안 봐도 뻔했다.

“육 개월. 방해를 받지 않는 공간이라고 해서 완전한 공간이라는 뜻은 절대 아니야. 게다가 시간이 기다려 주는 것도 아니니까. 그러니 아무리 길게 잡아도 널 숨겨 줄 수 있는 시간은 육 개월이 한계야.”

하층을 올라오고, 초월자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미안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거였다.

하층에서 중층으로 넘어온 유저들이 귀족이라며 대우를 받는 건 사실이긴 하지만, 그들이 무조건 절대적으로 강한 건 아니었다.

적어도 중층부와 상층은 지금의 유지한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난 형을 만나러 갈 거다. ……솔직히 네가 말한 유현우가 정말 형인지도 모르겠지만.”

“의심하는 건 마음대로 해.”

“나한테 그런 이야기를 해 놓고 얌전히 6개월 동안 처박혀서 검만 휘두르라고? 그럴 거면 차라리 나중에 말을 하든가!”

아, 그럴 걸 그랬나?

나는 유지한이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

[…….]

어디선가 굉장히 못 미더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시선이 느껴졌다.

이미 늦어 버린 거 어쩔 수 없잖아.

“어차피 알아야 하는 진실이라면 빨리 알고 현실을 직시하는 게 나아.”

“내가 얌전히 여기 있을 거 같아?”

“당연히 아니지.”

나는 유지한에 대한 기대라고는 조금도 없는 인간이었다.

유지한은 아마 유현우에 대한 것을 말하지 않았다고 해도 여기서 나가려고 했을 인간이었다.

내가 번거로움을 고수하면서 ‘환상을 보여 주는 장막’을 설치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뭐, 정확하게는 사서에게 빌린 거긴 하지만 말이다.

“이해는 일치해.”

“뭐라고?”

“나는 너를 강하게 만들기 위해 여기에 가둬 둬야 하고, 너는 여기서 나가서 중층으로 가고 싶어 하지.”

“그게 뭐?”

“네가 여길 나갈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강해지면 돼.”

초월자 유지한을 중층으로 내보내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그가 신살자 유지한에 비해 약하기 때문이었다.

강하면 된다, 강하면.

신살자 유지한이였다면 검이 없어도 환상을 보여 주는 장막 따위는 어렵지 않게 걷어 냈을 거다.

“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널 여기 붙잡아 놓을 거고. 너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환상을 보여 주는 장막을 걷어 내면 돼.”

“장막을 걷어 내면…….”

“장막을 걷으면 중층부에 돌려보내 주겠다고 약속하지.”

유지한은 장막을 걷는 것과 이 공간이 별개라는 걸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그 부분은 어떻게든 할 수 있으니 문제가 없었다.

내 제안에 유지한이 잠시 고민을 하더니 눈앞에 있는 서유라를 흘끔 바라봤다.

“내가 서유라보다 약할 거라고?”

“그래.”

“하, 어이가 없네. 그보다 이거, 환상 아니냐?”

“맞아. 너와 내 기억을 토대로 만든 환상이지.”

“진짜도 아닌 가짜에 질 거 같냐? 무시하는 것도 정도가 있군. 멍청한 슬라임 놈, 슬라임이 되더니 뇌까지 슬라임이 됐냐?”

이 새끼가?

초월자 유지한을 대할 때마다 신살자 유지한이 얼마나 인간이었는지 알 거 같았다.

하긴, 지금의 유지한이 자신감 넘치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녀석은 하층부의 최정점이나 마찬가지였던 박승환을 이겼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박승환은 중층부의 기준으로 봤을 때 세 자릿수에나 간신히 들 법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넌 분명 나에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고 말했지?”

“맞아.”

“그렇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여길 나가 주지.”

“그러든가.”

유지한이 여길 나가고 싶어 하는 이유는 당연히 유현우에 대한 걸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동기 부여가 됐으니까 나쁘지 않은 거 같은데?’

나는 한숨을 쉬는 거 같은 사서를 무시했다.

가긴 무슨.

녀석이 간다는 말은 믿지 않는다.

“단 한 번. 한 번이라도 좋으니 나에게 상처를 입히면 인정해 주지.”

“슬라임 주제에.”

“그런 생각은 안 해 봤냐? 네가 나를 슬라임으로 보고 있는 것 또한 내가 만든 환상일 수도 있다는 생각 말야.”

원해서 슬라임이 된 건 아니긴 하지만, 유지한에게 넘어야 할 산은 상당히 많았다.

“나에게 상처를 입히려면 일단 슬라임처럼 보이는 이 스킬부터 없애야 할걸? 그 전에 서유라겠지만.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지만 너에게 선택지는 없어.”

나는 불가살이의 검 끝을 유지한 쪽으로 겨눴다.

‘어울려 주는 건 한 번.’

라케시스와 싸우기 위해서라도 나는 초월자 유지한을 어느 정도 수준까지 올려놔야 할 필요가 있었다.

유지한이 싸울 의지가 없다면 두들겨 패서라도 강하게 만들 생각이었다.

뭐, 유지한의 성격상 그렇게 패면 열 받아서 달려들 테니까.

─ 넌 왜 나를 못 패서 안달인 거야?

─ 수련이라고 말했을 텐데.

─ 덕분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난 충분히 강해!

─ 애송이지.

─ 나를 애송이라고 말하는 건 루시엘 너밖에 없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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