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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했더니 신이 되었다-531화 (531/760)

531화 변화 (1)

“나 아직 안 취했거든? 빨리 입력해라. 아니면 확 물건 안 주는 수가 있어.”

한미래의 재촉에 유지한은 마지못해 ‘김유한’이라는 이름을 입력했다.

이름이 등록되자 유지한의 손목에 랭킹을 확인할 수 있는 숫자가 나타났다.

한미래가 말하는 물건은 슬라임이 한미래에게 맡긴 것이였다.

“입력했다고. 빨리 내놔. 뭔데 그래?”

유지한이 말을 꺼내기 무섭게 한미래가 아이템창에서 가방 하나를 꺼냈다.

가방을 열자 보이는 것은 다름 아닌 수많은 금화였다.

무기도 아니고 어디 쓴 곳도 없는 금화라니.

“장난해? 이런 걸 왜…….”

“이런 거라니, 너 이 공적치가 얼마인 줄 알기나 해? 4위까지 올라가려면 얼마나 공적치를 긁어모아야 하는지 상상도 안 됐는데 이걸 보니 알겠다. 넌 미친놈이야.”

“사람 면전에 대고 못 하는 말이 없지. 그보다 이게 전부 공적치라고?”

“헤파이토스의 금화라는 거야. 왕 게임 당시의 칩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될걸. 마력을 부여하면 공적치로 흡수가 돼.”

“그렇군.”

한미래의 설명이 끝나자 유지한이 헤파이토스의 금화를 꽉 쥐었다.

한미래가 그런 유지한의 팔을 붙잡았다.

“야야, 멈춰! 제정신이야?”

“뭐? 이러면 공적치가 흡수되는 거라며?”

“바보냐고! 네가 뭐 때문에 정체를 숨겼다고 생각하는 건데? 랭킹을 산정하는 건 공적치 순서대로라고 했잖아!”

한미래의 말에 유지한이 재빨리 금화에서 손을 뗐다.

“공적치를 수급할 만한 상황도 아닌 마당에서 갑작스럽게 순위 변동이 일어나면 다른 유저들이 가만히 있을 거 같아?”

“아니, 그럼 이건 어디에다 써먹는데!”

유지한은 가방 안에 담겨 있는 헤파이토스의 금화가 갑자기 고물처럼 느껴졌다.

“일단 가지고 있어. 어쨌든 공적치가 높아서 손해는 아니니까.”

“이해할 수가 없네.”

유지한이 금화 몇 개를 빼 주머니에 넣어 놓은 후, 나머지 상자를 아이템창에 집어넣었다.

대화를 마친 두 사람은 아침이 되기 전 5구역으로 향하기로 하고 잠이 들었다.

* * *

새벽 해가 떠오를 무렵, 침낭에서 깨어난 한미래가 눈을 비볐다.

한미래는 침낭을 열고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분명 자고 있어야 할 유지한이 보이지 않았다.

한미래는 침낭을 뒤집어쓴 채 콩콩거리며 잔해더미 밖으로 나왔다.

하늘 위로 검보랏빛의 새벽 달빛이 쏟아졌다.

그 가운데 선 유지한이 불가살이의 검을 쥔 채 짧은 숨을 내뱉었다.

검이 부드럽게 허공을 가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검의 궤적을 따라 아름다운 보랏빛의 마력이 새어 나왔다.

검을 휘두를 때마다 마력의 형태가 더욱 진해지며 겹겹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공격이라고 하기보다는 마치 춤을 추는 것만 같았다.

사방으로 유지한이 만든 마력들이 일렁거렸다.

마력 일부가 한미래의 뺨에 살짝 닿았다.

그저 스친 것뿐인데도 불구하고 무척이나 무겁고 진득한 죽음의 기운이 느껴졌다.

한미래는 중층에서 본 유지한에게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위화감을 상당히 많이 느꼈다.

아마 그건 원래의 유지한을 알고 있는 다른 유저들도 똑같을 거다.

하지만 김다솜이나 이은희가 가지고 있는 위화감과 한미래가 신살자 유지한에게 느꼈던 위화감은 좀 달랐다.

한미래는 탑에 들어오기 전부터 수많은 죽음을 봐 온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한미래 또한 죽음에서는 누구보다 민감한 편이었다.

유지한에게서 느껴지는 위화감, 그건 어쩌면 단순히 유지한이 다른 사람일 거라는 위화감 때문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죽음.

유지한은 죽음을 거부하지만, 누구보다도 죽음에 근접해 있는 사람이었다.

유지한의 검에는 여태까지 자신이 죽여 왔던 모든 이의 죽음이 깃들어 있었다.

유지한이 검을 내려놓으며 고개를 돌렸다.

검에 집중하느라 한미래가 보고 있었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뭐 하냐? 김밥 놀이?”

“죽을래?”

“김밥처럼 돌돌 말린 채 서 있으니까 그러는 거지.”

“시끄러워. 야, 내가 자라고 했지. 언제 일어나서 검이나 휘두르라고 했어? 나중에 졸리다 하면 가만 안 둔다.”

“하루 이틀 안 잔 거로는 졸리지도 않아.”

유지한이 검을 집어넣은 후, 아이템창에서 워터볼을 꺼내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유지한은 초월자가 된 이후로 몸이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장막에서 깨어나 정신없이 싸웠을 때는 눈치를 채지 못했지만 말이다.

시간이 지나니 몸과 정신의 변화가 실감이 되기 시작했다.

그중 대표적인 게 잠이었다.

“일어났으면 출발하지?”

“아오, 누구 때문에 삼십 분은 더 잘 수 있었는데 잠이 다 달아났네. 아까워 죽겠어.”

한미래가 침낭에서 나오며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넌 나보다 먼저 초월자가 됐으면서 왜 이렇게 잠은 잘 자냐?”

“잠이라도 잘 자야지.”

“…….”

“아니면 내가 더는 인간이 아닌 거 같잖아.”

한미래도 유지한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유지한의 말대로 하루 이틀 정도 안 자는 거쯤이야, 아무 영향이 없었다.

한미래도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며칠 동안 잠을 자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싸움이 계속되거나 잘 만한 상황이 아닐 때만이었다.

잘 수 있다면 잠은 제때 자는 게 한미래의 신조라면 신조였다.

“인간이 아닌 거 같다니…….”

“그렇지 않아? 팔이 부러져도 내버려 두면 일주일도 안 돼서 낫고, 엘릭서나 마력을 이용해 치료하면 몇 초도 지나지 않아 원래대로 돌아와.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즉사일 거 같은 충격을 입어도 멀쩡하게 살아 있어.”

“…….”

“10층 높이에서 뛰어내려도 마치 계단 한두 개 뛰어 내린 거처럼 멀쩡하고, 네 말대로 이삼일 잠을 자지 않아도 생활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어. 유저마다 개인차는 존재하겠지만 대부분의 유저들이 그래. 넌 이게 정말 인간이라고 생각하니?”

한미래의 말에 유지한은 입을 꾹 다물었다.

싸우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유저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유저조차도 마력과 스킬은 숨 쉬듯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었다.

당연하게 생각했기에 의심해 본 적이 없는 부분이었다.

“가능할 거라는 생각은 안 드는데, 만약 이 상태로 원래 세계로 돌아간다면 우리는 과연 인간이 맞을까?”

“…….”

“난 아니라고 보거든. 넌 고유 결계를 사용하고 싶어 하는 거처럼 보였는데, 사실 그게 좋은 건지 잘 모르겠어.”

슬라임의 말대로 한미래는 유지한에게 초월자가 되었다는 사실도, 고유 결계를 사용하게 되었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유지한은 한미래보다 먼저 탑에 들어왔으며, 누구보다도 초월자가 되고 싶어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유지한이 한 번 더 초월자의 벽을 뛰어넘고 싶어 한다는 걸 한미래가 모를 리가 없었다.

한미래는 뒤늦게 탑에 들어온 자신이 유지한보다 빠르게 성장했다는 게 알려지는 게 무서웠다.

유지한이 자신을 질투하거나 싫어할까 봐.

웃긴 일이다.

유지한은 한미래가 경쟁하던 오빠와는 다른 사람이고, 그럴 일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행동했다.

“잘 모르겠다고?”

“그래, 잠을 며칠 안 자도 활동 할 수 있었구나 하는 거야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 하지만 이건……. 뭐라고 해야 할까. 정말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마지막 선을 넘은 느낌이야.”

“…….”

“고유 결계를 사용하고 난 이후에 느낀 감정은 뭔가를 이뤄 냈다는 게 아니라 두려움이었으니까.”

한미래는 처음 고유 결계를 사용한 그 날이 잊히지 않았다.

그 넓은 설원이, 눈밭 위에 피어 있는 수많은 얼음의 꽃들이 자신이 만들어 낸 광경이라는 걸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한미래는 그 경이로운 광경에서 정체 모를 불안함을 느껴야만 했다.

고유 결계를 사용하는 유저들이 오만한 이유를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적어도 그 결계 안에서 결계의 주인은 신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건 직접 경험해 보지 않은 이상 절대 알 수가 없는 것이였다.

유지한과 한미래는 후드를 쓴 채 2구역을 빠져나왔다.

유지한의 마력 탐지 덕분에 두 사람은 유저와 환수들을 거의 마주치지 않고 이동할 수 있었다.

“정상원, 그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거 같던데.”

정상원은 마치 그 안에서 자신이 뭐든 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었다.

마치 신이 된 것처럼.

유지한은 한미래 또한 당연히 그럴 거로 생각했다.

“나도 알아. 내가 정상이 아니라는 거, 어쩌면 고유 결계를 사용하는 유저 중에서는 정말 자신을 신으로 착각하거나 신이 되고 싶어 하는 녀석들이 있을 수도 있겠지.”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유저에게 그 힘을 준 자들이 다름 아닌 신이라 불리는 자들이었다.

신의 힘을 빌어 인간을 뛰어넘었으면서, 기어코 신의 자리까지 넘보는 게 과연 맞는 일인 것인지 한미래는 알 수가 없었다.

“너도 만약의 이야기를 했으니 나도 만약의 이야기를 하나 하지. 신이 될 수 있다면 어떻게 할 거냐?”

“그건 그 슬라임이나 내가 모시는 화타 같은 존재가 된다면의 이야기야?”

유지한이 맞다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별로 되고 싶지 않은걸. 기분 탓인지 몰라도 나는 그 둘이 그렇게 행복해 보이진 않았거든. 게다가 결국 신이라는 존재도 벽 너머에 존재하는 상위 차원의 또 다른 누군가일 뿐이잖아.”

한미래는 고유 결계의 사용자가 된 이후에는 그 말이 더욱 틀리지 않는다 확신했다.

탑에 막 들어왔을 때만 해도 아득하게 느껴지던 신들의 존재가, 지금은 손을 뻗으면 닿을 거처럼 가까이 다가와 있음을 느꼈다.

물론, 한미래는 본능적으로 그걸 탐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여기에는 없지만, 탑에 들어온 뉴비가 나나 너를 보면 어떻게 생각할 거 같아?”

“…….”

“너는 나를 보고 따라잡을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라고 생각을 하지만 뉴비들은 다를걸.”

한미래 또한 마찬가지였다.

지금이야 유지한보다 강하다고 하지만, 한미래가 목표로 했던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한이었다.

뉴비들이 보기에 유지한이나 한미래는 감히 넘볼 수 없는 신처럼 보일지도 몰랐다.

“그러니 나는 네가 조급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건 뭐라고 해야 하지, 인생의 선배로서 충고?”

“내가 너보다 탑에 오래 있었거든?”

“하지만 탑 바깥에선 내가 더 오래 살았잖아. 각자 잘하는, 추구하는 방향이 다를 뿐이야.”

“뭐……. 슬라임 놈도 비슷한 얘길 하더군.”

유지한이 그만하면 됐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한미래의 초월기를 경험했을 때 유지한은 자신은 이걸 감당할 수 없을 거로 생각했다.

어쩌면 그래서 더 조급하게 고유 결계를 가지고 싶어 했는지도 모른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인지 정상원의 고유 결계는 생각보다 할 만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오히려 슬라임의 말대로 별거 없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한미래의 고유 결계가 그렇게 크고 화려한 건, 아마도 한미래의 성격을 닮았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5구역 근처에 도착하자 유지한이 걸음을 멈췄다.

유지한이 무너진 건물 잔해 사이로 몸을 숨겼다.

“유저들이 꽤 많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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