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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했더니 신이 되었다-538화 (538/760)

538화 연옥 (4)

“신의는 또 뭐야? 이 녀석이 무슨 신의야. 신의는 돌팔이 의사지.”

“맞을래?”

“유저를 찔러 대는 게 무슨 의사냐고.”

유지한이 한미래와 툴툴거리고 있는 사이, 이은희가 다가왔다.

명이걸을 데리고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면서, 유지한은 두 사람에게 자신이 발견한 독특한 마력에 관해 이야기를 했다.

─ 제삼자의 마력이 느껴진다고?

─ 그래. 그것도 경계 구역 전체에서.

─ 그게 무슨 말이야?

─ 분명 침식체는 무너져가는 차원에서만 나타나는 흔적이라고 했지?

─ 맞아.

─ 이거, 고유 결계에도 해당이 되나?

유지한은 한 번씩 생각지도 못한 부분을 찌르고 들어올 때가 있었다.

한미래와 이은희는 멍하니 서로만을 바라봤다.

─ 환수 사태 당시 다른 경계 구역은 전부 무너졌다고 들었다. 이 구역만 멀쩡하다고 하면 그건 이 경계 구역이 무너진 다른 경계 구역과 다르다는 뜻 아닌가?

─ 그러고 보니 명이걸은 세계의 끝에 다녀왔다고 했어. 자신이 갔을 때는 이미 모든 게 끝나 있는 거라고 말했고.

─ 그렇다면 이 경계 구역은 무너진 곳의 주인과는 다른 놈이겠군. 그런데 이 정도로 침식이 심하다면 돌아갈 때는 괜찮은 거냐?

─ 어.

─ 듣고 보니 그렇네.

유지한의 지적에 결국 이은희가 돌아가는 길을 확인하러 갔다 오기로 했다.

“어땠어?”

한미래의 질문에 이은희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글렀어, 돌아가는 게이트가 완전히 무너졌어.”

세 사람이 게이트에서 멀어지는 사이 침식체득이 게이트를 거의 다 갉아 먹은 모양이었다.

외부에서 이 사실을 눈치챘는지까지는 알 수 없었다.

“하아, 골치 아프게 됐네.”

“뭐……. 일단은.”

유지한은 막 깨어난 명이걸을 흘끗 내려다봤다.

“어떻게 된 일인지 사정을 들어 볼 필요성은 있어 보이는군.”

“크흠, 나 말인가?”

“그래. 한미래의 말대로 환수화가 된 유저 전부를 되돌릴 수는 없다. 네놈에게 그 기회를 사용한 거나 마찬가지이니 최소한 그 가치는 해야 할 거다.”

“누가 보면 지가 만든 줄 알겠어.”

유지한이 조용히 하라며 한미래를 흘끔 노려봤다.

명이걸이 머뭇거리더니 이내 노골적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명이걸은 분명 죽고, 환수가 되었다.

그런 자신이 이렇게 다시 유저로 되살아날 거라고는 정말 생각도 못 했다.

환수가 된 유저를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다는 말은 거짓말 같지는 않아 보였다.

“알겠다. 우선 내가 아는 걸 전부 말하고 협력하도록 하지.”

“고맙군.”

유지한은 명이걸로부터 그간 있었던 일에 대해 대략 사정을 들었다.

그중에는 이미 한미래에게 말을 한 것도 포함이 되어 있었다.

아무렴 유지한이 모른다고 하면 처음부터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데일 지그문트? 세계의 끝에 녀석이 있었던 건가?”

“그래. 나는 얼굴을 보지 못했지만 말야.”

“그렇다는 건 환수 사태를 일으킨 주범은 데일 지그문트를 죽인 새끼겠군.”

유지한의 중얼거림에 옆에서 듣고 있던 한미래는 흠칫 놀랐다.

빙의가 풀리기 전 유지한도 정확하게 저런 말을 했기 때문이었다.

역시 유지한은 유지한인 모양이었다.

“흐음, 그렇겠지. 하지만 그자가 누구인지까지는 모른다.”

“알아야 할 필요가 있나?”

“무슨 말이지?”

“환수 사태는 이미 일어나 버린 일이다. 범인이 누구든 알 바는 아니지. 물론, 나를 방해한다면 그건 이야기가 좀 다르지만. 그렇다는 건…….”

유지한이 숲 안쪽으로 고개를 살짝 돌렸다.

초월자가 된 영향인지 몰라도 유지한은 자신이 무척이나 예민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분명 한미래나 이은희는 유지한보다 강하며, 어느 정도의 마력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마력 탐지에 있어서는 유지한이 가장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유지한은 숲에 들어왔을 때부터 기운이 심상치 않다는 걸 감지하고 있었다.

“이 빌어먹을 경계 구역의 주인은 따로 있다는 거다.”

“어디 있는지 알아?”

유지한이 알 거 같다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유지한의 입장에서는 이 독특한 마력을 눈치채지 못하는 두 사람이 오히려 더 신기할 뿐이었다.

“이제 나를 어떻게 할 거지?”

“흐음, 생각 좀 해 보고.”

유지한은 과거(정확하게 말하자면 미래의 유지한이지만)의 자신이 현재의 자신에게 남겨 놓은 힌트가 이거라는 걸 깨달았다.

사정은 들었으나, 명이걸의 처우에 대해서는 크게 생각해 둔 게 없었다.

“검은 마법사. 네놈에게 세계의 끝에 대해 알려 준 녀석이 누구인지는 알고 있냐?”

“그걸 알면 이 고생은 안 했겠지.”

“모르는 놈을 따라가지 말라는 건 어린애도 안다.”

“허, 나를 애 취급하다니 기가 차는군. 당시의 나는 100년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싶었다.”

“그 검은 마법사가 100년 전의 일을 묻으려고 하는 인물이었으면 어쩌려고 그랬던 건데?”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거기까진 생각을 안 해 봤다.”

“결국 그놈이 누군지는 모른다는 거지?”

명이걸이 고개를 끄덕이자 유지한이 지끈거리는 이마를 꾹꾹 눌렀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한미래가 슬쩍 끼어들었다.

“검은 마법사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짐작이 가는 건 있어.”

“짐작이 가는 거?”

“녀석은 라케시스의 신도야.”

“누구야 그건?”

“어, 그게…….”

처음 듣는 신의 이름에 한미래가 머뭇거렸다.

‘지금의 유지한은 모르는 건가?’

당시의 유지한은 거의 확정 조로 그 녀석이 라케시스라는 신의 신도라고 말했다.

한미래는 당연히 유지한이 알고 있을 거로 생각해 꺼낸 말이었다.

한미래가 가까이 와 보라며 유지한에게 속삭였다.

아니나 다를까 한미래의 말을 들은 유지한이 짜증을 냈다.

“뭐? 그런 얘길 했으면 진작 말했어야지!”

“그래서 너 정말 라케시스가 누군지 몰라?”

“내가 어떻게 알아? 그놈이 뭐 하는 신인데?”

“둘이 뭘 그렇게 수군거려? 그보다, 라케시스라고 하지 않았어?”

다가오는 한미래에 유지한이 맞다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라케시스라면 유현우의 신이잖아. 아, 그……. 유지한 너, 사화 엔터 대표가 네 형인 거 알고는 있지?”

“그거라면 알고 있다. 그런데 라케시스라는 신이 형이 모시는 신의 이름이라고?”

“확실하진 않지만 아마 그럴 거야.”

“별로 좋은 소식은 아닌 듯싶군.”

유지한이 인상을 찌푸림과 동시에 이은희도 그렇게 생각한다며 혀를 찼다.

괜히 숨겨서 좋을 건 없다고 생각한 이은희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이건 내 생각이긴 한데, ……어쩌면 명이걸에게 누명을 씌운 검은 마법사라는 녀석 말야. 유현우일 수도 있어.”

“…….”

“너희랑 다르게 나는 누구보다도 그 녀석을 가까이서 봐 왔어.”

“증거는?”

“반쯤은 감이야.”

“그럼 그냥 감으로 묻어 둬라.”

유지한이 별로 듣고 싶지 않다며 고개를 확 하고 돌렸다.

한미래 또한 이은희와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한미래가 이은희를 보며 왜 그런 말을 했냐고 눈치를 줬다.

“언젠가 해야 할 말이었어.”

이은희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가볍게 어깨를 들썩였다.

명이걸이 한숨을 내쉬는 유지한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사화 엔터 대표가 네 형이라는 건가?”

“뭐, 주변에서 그렇다고 하네.”

“그건 무슨 말이지?”

“나도 본 적이 없어서. 그러는 너도 얼굴은 못 본 모양이군.”

“사화 엔터 대표의 얼굴을 본 유저가 더 드물지 않을까 싶은데.”

명이걸은 사화 엔터에 붙잡혀 왔지만 끝내 유현우의 얼굴을 보지는 못한 채 죽음을 맞이했다.

유지한이 몰려드는 침식체들을 보며 혀를 찼다.

“하아, 일단 이동하는 게 좋겠군.”

“어디로 갈 생각이지?”

“이곳의 주인에게 갈 예정이다. 여기서 갇혀 지낼 수는 없으니까 말이지. 일단 동행해라. 뒷일은 정리가 되면 생각해 보지.”

유지한의 말에 명이걸이 그렇게 하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력 탐지를 사용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유지한은 가장 최단 거리로 숲의 중심부로 향했다.

한미래가 옆에서 걷고 있는 명이걸에게 말을 걸었다.

“그런데 그 데일 지그문트라는 녀석이 100년 전에 1위였던 유저인 거지?”

“그럴 거다.”

“전부터 궁금했는데, 그럼 대체 중층부의 현재 1위는 누구인 거야?”

중층부의 1위 유저에 대한 소문은 환수 사태가 일어나기 전부터 있었다.

환수 사태가 일어나기 전이라면 모를까, 환수 사태가 일어나고 수많은 순위 변동이 있었음에도 1위 유저가 나타나지 않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좀 이상했다.

알고 있는 건 100년 전, 데일 지그문트라는 유저가 1위였다는 거 정도였다.

“나도 모르겠군.”

“한미래 너는 뭐 아는 거 없어?”

“나라고 해서 다 아는 건 아니거든?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1위 유저가 사라지면 2위 유저가 1위가 되잖아.”

“2위는 유현우잖아.”

“그사이에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있었다고 한다면?”

“……뭐?”

“가설일 뿐이야. 킹이 1위가 되지 못한 건 1위와 2위 사이에 있는 누군가 때문이 아닌가 하는 거지. 랭킹 시스템은 완벽한 게 아니잖아.”

이은희가 유지한을 흘끔 바라봤다.

명이걸은 유지한이 한번 랭킹 시스템에서 나갔다가 들어왔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나도.”

“넌 또 뭐?”

“이은희랑 비슷하게 생각한다고.”

“1위와 2위 사이에 누군가가 있다는 거? 그런 게 가능해?”

“가능한지 아닌지는 모른다. 하지만 바꿔 말하자면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는 증거도 없잖아.”

“그렇긴 하지. 어쨌든 그러려면 데일 지그문트 못지않게 강한 유저여야 한다는 거잖아.”

“그야 그렇지.”

“그런 유저가 어디 있는 건데?”

“100년 전 유저를 내가 어떻게 알아?”

유지한은 이 중에 중층부 경력이 가장 짧은 유저였다.

“소문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100년 전쟁 당시 데일 지그문트와 함께 활약했다는 유저에 대한 기록이 딱 하나 남아 있다.”

“있는 거냐고. 뭐 하는 유저인데?”

“솔직히 유저인지 아닌지도 모르겠다. 기록에 의하면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와 같았다고 한다. 데일 지그문트와 맞먹을 정도로 강했다더군.”

“천사라, 혹시 저거 말하는 거냐?”

유지한이 참격을 이용해 근처에 있는 구울들을 쓰러트린 후 나타나는 호숫가 너머를 손가락질했다.

작은 호수의 가운데에는 거대한 나무 하나가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바람이 불더니 풍성한 나뭇잎이 크게 흔들렸다.

그러자 아래에서 흰빛들이 쏟아져 내렸다.

떨어진 빛에 닿은 울과 밤을 갉아 먹는 벌레들이 움찔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나무 기둥의 가운데에는 반투명한 수정 같은 게 박혀 있었다.

흰 날개가 빛이 나는 수정을 감싸 안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천사와도 같았다.

그 광경을 목격한 세 사람은 멍하니 호수의 풍경을 바라봤다.

단 한 명, 유지한만 제외하면 말이다.

“뭘 그렇게 얼이 빠져 있어? 저거 아니냐고 천사.”

아닌가. 그냥 날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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