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했더니 신이 되었다-567화 (567/760)

567화 뭐가 문제야 (1)

“맞아. 녀석이 틈새에서 본 건 내가 아니었으니까.”

“뭘 본 건데요?”

순수하게 묻는 김다솜의 질문에 나는 순간적으로 말이 막혔다.

어, 그게…….

하씨, 이걸 슬라임이라고 말해 말아.

다른 말을 하기에는 그럴싸한 변명이 떠오르지 않았다.

“스, 슬라임.”

“슬라임이요?”

김다솜도 슬라임이라는 말을 들을 줄은 몰랐다는 듯 당황했다.

“그런 게 있어…….”

“뭐가 됐든 지금의 지한 오빠는 한결 씨를 모른다는 건 변함이 없네요.”

“그건 맞아.”

“미래 언니는 같이 틈새에 있었다고 할 테니 알 거 같고, 나머지는요?”

입을 맞추든 거짓말을 하든 하려면 상황을 파악하는 게 필수였다.

“서유라는 아무것도 모르고, 한미래 걔는……. 일단 미래의 유지한에 대한 건 몰라.”

“그 말은 한결 씨에 대한 건 알고 있다고 들리는데, 맞나요?”

“그래. 그러니 그냥 내버려 두면 돼.”

김다솜은 유지한에 대한 건 모르면서, 나에 대한 건 알고 있는 한미래를 수상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 부분도 뭐라 설명을 해야 할지 애매해졌다.

다 말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그때 김다솜이 먼저 말을 꺼냈다.

“이해가 됐어요.”

“이해가 됐다니?”

“제가 한결 씨가 지한 오빠의 신인 줄 몰랐을 때요. 은희 언니가 한결 씨를 알아보더라고요. 그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는데 생각해 보니까 이상했어요.”

“…….”

“그리고 갑자기 어둠의 조직을 그만둔 것도요. 은희언니, 그렇게 보여도 책임감이 없는 성격은 아니라서 말이에요. 그럴 만한 사연이 있다고 생각했죠.”

이은희가 연합을 관둔 건 내가 데일을 만나고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그 이후 환수 사태가 일어났으니, 김다솜은 원인이 나에게 있다고 판단을 한 듯싶었다.

“이은희와는 그냥 개인적인 사정이 좀 있어.”

“지한 오빠랑 관련이 없는 개인적인 사정인거죠?”

“맞아.”

“알았어요. 그쪽도 그냥 넘어갈게요. 그래서 한결 씨는 사화 엔터와 싸우려고 연합을 끌어들인 건가요?”

김다솜이 조심스럽게 본론을 꺼냈다.

수적으로는 연합이 엔터와 비교하면 열세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폐쇄적이며 자신들을 따르지 않는 유저들을 배척하는 엔터에 비해 어둠의 조직은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편이었다.

사화 엔터에 대한 여론이 나빠지고 있는 지금 둘 사이에 전쟁이 일어난다고 한다면 연합이 선택해야 하는 포지션은 정해져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아닌데?”

“……네?”

“안 그래도 그거 때문에 김아진이랑……. 아, 김아진은 내 대타. 어쨌든 걔랑 한참 이야기하던 중이었어. 나한테 물어보는 걸 보니 연합 측에서도 금시초문이었던 모양이네.”

김다솜이 맞다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닥치면 하긴 해야겠지만, 전쟁을 결정할 정도로 연합에 여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아마 유지한 측에서 낸 소문 같아.”

“미래 언니랑 같이 다른 데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아예 별도로 움직여.”

“하지만 소문은…….”

“겹친 거야. 나와 유지한의 작전이.”

나는 어둠 속에서 야광봉을 붕붕 휘둘렀다.

이런 건 나를 닮아서 말야. 안 닮아도 되는데.

“뭔가 이상해요.”

“이상하다니?”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지한 오빠와 미래 언니가 연합의 상태를 모를 리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지금이야 몇몇 유저들 사이에서 뜬소문처럼 퍼지고 있지만, 소문이 커지는 건 순식간일 게 틀림없었다.

김다솜이 움직인 것도 ‘사화 엔터와 연합 간 전쟁이 날지도 모른다.’라는 근거 없는 소문 때문이었다.

“이건 마치 연합에 대답을 요구하는 거 같거든요. 포지션을 확실히 하라고. 아니면 입장 곤란해질 거라고 말이에요.”

“그렇긴 하지.”

아무리 소문이라고 해도 연합이 계속 침묵으로 일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입을 다물면 다무는 대로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고 의심을 할 게 분명했다.

“한결 씨가 하지 않은 거라면, 지한 오빠와 미래 언니가 이런 소문을 냈다는 거잖아요.”

“정황상 그렇지?”

“두 사람이 저를 곤란하게 할 만한 소문을 내고 다닐까요? 끌어들이는 거잖아요. 그야 연합이 사화 엔터와 전쟁을 하기에 가장 좋은 소재이긴 하지만요.”

“…….”

“만약 지한 오빠와 미래 언니였다면 이런 방식을 사용하지 않았을 거예요. 오히려 직접 찾아와서 말했겠죠.”

나는 김다솜이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이해했다.

김다솜이 말하는 유지한이라면 김다솜의 면전에 대고 전쟁을 치르라 했을 거라는 뜻이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건 유지한의 방식이 아니다. 라는 거지?”

“네. 정말 지한 오빠와 미래 언니만 있는 거 맞아요?”

“하나만 물어볼게.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이 소문은 누가 냈을 거 같아?”

유지한 일행 중에서 김다솜이 어둠의 조직을 이끌고 있다는 걸 모르는 유저는 거의 없었다.

아니, 대부분의 유저들이 어둠의 조직의 리더에 대해 알고 있었다.

“일단 저에 대해 모르는 유저여야겠죠. 객관적으로 놓고 본다면 연합을 끌어들이는 게 가장 최선의 수니까요.”

아무리 유지한과 일행들이 냉정하다고 해도 유저인 이상 사적인 감정을 빼놓을 수는 없었다.

하물며 이런 소문을 내면 김다솜이 곤란할 거라는 걸 아는 상황에서 말이다.

‘김다솜에게 직접 찾아오는 게 맞지.’

김다솜과 대화를 내줄 수 있는 수단이 있는데 압력을 넣는 건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았다.

“제삼의 세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구요. 전 당연히 한결 씨가 지한 오빠 일행과 같이 움직이는 줄 알았어요.”

김다솜은 두 트랙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조차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었다.

“당연히 100년 전 유저들 집단은 생각도 못 했구요.”

“하아, 여기서 더 끼면 곤란한데. 농담하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제삼의 세력이 있다고?

안 그래도 머리가 터질 거 같은데, 또 누가 뭘 꾸미고 있다고 생각하니 한숨이 나왔다.

“제가 몰래 나온 건 당연히 전쟁에 관련해서 논의하기 위해서였어요.”

“유지한 일행은 지금 우리랑 정반대 편에 있어. 6구역이었나.”

“그렇다면 제대로 잘못 짚었네요. 6구역까지 돌아갈 시간은 없어요. 저도 연합을 챙겨야 할거든요.”

하층에서 봤던 김다솜은 굳이 말하자면 유지한과에 가까웠다.

어딘가에 속하고 싶어 하지 않았고, 책임감을 느끼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김다솜이 처음 만났을 때 비해 많이 달라졌다는 걸 깨달았다.

“뭐, 나도 널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전쟁에 대한 연합의 입장을 듣고 싶은데. 할 거야?”

“…….”

“유현우를 적으로 돌리게 될지도 몰라.”

“그 부분 말인데요. 지한 오빠는 대체 무슨 생각인 걸까요? 그 사람을 적으로 돌리는 건 저뿐만이 아닐 텐데.”

전쟁과 관련한 소문을 내고 다니는 유저가 유지한 일행이 아닐지라도, 유지한 일행이 사화 엔터를 건드리고 있는 건 사실이었다.

“지금 미래 언니와 같이 있는 지한 오빠는 제가 알던 지한 오빠인 거죠?”

“맞아.”

“그럼 더더욱 이해가 안 돼요. 그…….”

“유현우가 선택한 방식이 옳지 못하다면 유지한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유현우가 틀렸다는 게 아니다.

유지한과 추구하는 방향이 다른 것뿐이었다.

“지한 오빠는 형이 틀렸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게 아니야. 틀렸을 경우 바로잡기 위해서 움직이는 거야.”

만약 유현우가 틀렸다고 해도 유지한에게 힘이 없다면 아무것도 바꿀 수 없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한결 씨는 제 신은 아니지만……. 솔직히 더는 안 된다는 걸 알고 나오긴 했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네가 찾고 있던 사람이 유지한이 아니라 유현우였다고 해도, 유지한과 있었던 시간이 달라지는 건 아니잖아.”

“…….”

“그게 가짜로 만든 시간이 되는 건 아니잖아. 유지한이 너에게 유현우인 척이라도 했어?”

아니다.

유지한이 자신이 아닌 누군가를 착각하고 있다고 눈치챘다고 한들 그 사람을 이용해 김다솜을 옆에 둔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유지한은 유지한이었고, 그냥 네가 찾고 있던 사람이 유현우였던 거뿐이야.”

“…….”

“그러니 유지한에게 사과할 필요도 없고, 너는 네가 하고 싶었던 걸 하면 돼. 아마 유지한도 그렇게 생각할걸. ……뭐, 지극히 내 생각이지만 말야.”

내 대답에 김다솜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뭐, 그럴 만도 하지.

“그래서 전쟁에 관한 이야기 정도는 듣고 가고 싶은데. 어떻게 할 거야?”

“시간의 신전이 원래 명예의 전당처럼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들었어요.”

“맞아. 그리고 원로원이 무너진 지금 그건 유현우의 손에 있지.”

사실상의 독점이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김다솜에게 소울젬에 대한 정보를 건넸다.

“소울젬이라니……. 그건 처음 들어요.”

“숨기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어.”

정보를 푼다고 해도 전부 풀어서 좋을 건 없었다.

“드 마리니의 시계라는 건요?”

“그게 고장 난 건 맞아. 그리고 난 그 시계를 고칠 수단을 찾고 있고.”

“……그 부분은 생각지 못한 거네요. 조금 더 고민해 볼게요. 그럼 연합의 입장을 대신 전할게요. 지한 오빠 일행을 만나면 전해 주겠지만, 혹시 먼저 만나게 되면…….”

“알았어! 대신 말해 줄게.”

내 대답에 김다솜이 고맙다며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시간의 신전에 대한 공유, 그리고 드 마리니의 시계의 상태에 대한 설명. 사화 엔터에는 이 두 가지를 요구할 생각이에요.”

“사화 엔터 측에서 거절한다고 하면?”

“드 마리니의 시계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시간의 신전에 대해서는 강하게 항의할 거예요. 여차하면 전쟁을 해야죠.”

연합 측은 모든 유저들이 시간의 신전을 공평하게 사용할 수 있게 하겠다는 조건을 내걸 게 틀림없었다.

몇몇 외곽 지역을 돌아보니, 벌써 사화 엔터 소속 유저들이 살아남은 유저들을 괴롭히거나 무시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었다.

혹은 사칭이거나.

뭐가 됐든 사화 엔터의 평판은 날이 갈수록 안 좋아지고 있었다.

이건 연합이 사화 엔터가 아닌 일반 유저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전해 주세요.”

“알겠어. 우린 2주 안으로 4구역에 갈 거야.”

“그게 디데이라고 알고 있을게요.”

김다솜이 발을 옆으로 휘둘러 철근을 밀어냈다.

근처에 모여 있던 유저들이 김다솜을 신기하다는 듯 바라봤다.

김다솜이 고개를 홱 하고 돌리며 4구역 쪽으로 돌아갔다.

김아진이 밖으로 나온 나에게 말을 걸었다.

“와우, 까칠한 여자네.”

“저래 봬도 착해.”

“너, 저 여자가 우리 애들 어떤 꼴로 만들어 놨는지 안 봤지? 착하다고?”

“싸울 때는 좀 뒤가 없긴 하지. 그보다,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말야.”

“뭐지?”

나는 중층부에 제삼의 세력 같은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생각했다.

이유인즉슨, 중층부에는 이제 그만한 여력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만약 유지한과 함께 있는 유저가 그 지천우? 라고 한다면.”

“…….”

“그 녀석 컨트롤이 되는 놈이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