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4화 최진성 (3)
“컨디션 좋고.”
안타깝게도 이런 놈들은 이제 내 상대가 되지 않았다.
나는 지면을 박차며 앞으로 달려나갔다.
동시에 마력 탐지를 넓게 사용했다.
건물 잔해들이 흔들리더니 그 위로 뭔가 익숙한 몬스터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수백? 아니 수천쯤은 될까?
흰 뼈다귀가 아닌 검은 뼈다귀를 하는 녀석들은 누가 봐도 스켈레톤 종류의 몬스터였다.
그로스가 소환한 몬스터는 불러들이려는 이계의 괴물과 아주 관련이 없진 않았다.
언데드 쪽 몬스터라는 건 그쪽 관련 일 가능성이 컸다.
낙영비화검(落英飛花劍)의 초식을 밟아 근처에 있는 스켈레톤들을 전부 쓸어 버리며 달려 나간 나는 유지한 일행들이 있는 쪽을 흘끔 바라봤다.
‘나한테는 오히려 좋긴 한데…….’
이게 유지한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 도무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물론, 내가 걱정하는 건 지금의 유지한이었다.
아마 초월자 유지한이었다면.
‘물 만난 물고기였겠지.’
녀석이나 나나, 죽음과 관련된 힘에 대해서는 상성이었다.
분명 한번 쓸어 버렸을 테임에도 불구하고 스켈레톤 무리가 달려들었다.
크게 하늘검을 휘두른 후 오랜만에 롱기누스의 창을 꺼내 들었다.
이제는 이미 창을 나누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다.
나눌수록 크기와 위력이 작아지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이거 생각하면 박시우의 월하신검은 정말 사기라니까?’
나도 작정하면 크기와 위력을 키울 수 있지만, 굳이 그렇게 할 필요는 없었다.
내 뒤를 노리는 언데드를 향해 발을 크게 휘두름과 동시에 머리 위에 있던 롱기누스의 창이 지면에 처박히며 폭발을 일으켰다.
“아직이다!”
아직 이쪽은 시작에 지나지 않았다.
폭발과 함께 스켈레톤이 쓸려 나간 틈을 타 두 손으로 하늘검을 꽉 쥔 뒤 몸을 틀었다.
‘후우.’
마력을 크게 끌어올리자 발밑으로 푸른 하늘이 생겨났다.
동시에 하늘검을 위에서 아래로 크게 내리그었다.
다가오려던 스켈레톤의 몸이 쏟아지는 마력에 닿자 산산조각이 나며 부서졌다.
콰아아아아아.
직선으로 뻗어 나간 마력이 길을 막고 있던 스켈레톤과 함께 근처에 있던 건물 잔해들을 싹 쓸어 버렸다.
마치 고속도로처럼 그로스로 향하는 직선 도로가 생겨났다.
이거지.
처음 하늘과 땅을 가르는 검을 사용했을 때를 생각한다면 확실히 달라진 걸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일말의 고민도 하지 않은 채 앞으로 달려 나갔다.
스켈레톤, 언데드 몬스터들은 성가시다.
녀석들은 애당초 ‘생물’이 아니었다.
쉽게 말하자면 언제든 고쳐서 다시 쓸 수 있는 기계에 가까웠다.
지속해서 마력 공급만 가능하다면 부활쯤이야 대수로운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나에겐 아니었다.
내 공격을 맞은 녀석들은 부활하려다가도 몇 번인가 스르르 무너져 내렸다.
“흐흐. 어디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보자고.”
나는 이미 10개의 눈이 떠진 그로스를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내 힘은 근원.
마력을 타고 흘러 들어간 파괴의 공격이다.
소환체가 많으면 많은 수록 오히려 나에게는 유리했다.
내가 녀석이 소환한 언데드들을 죽이면 죽일수록, 그로스는 역으로 대미지를 입게 된다.
그저 언데드들을 죽이는 것만으로도 그로스에게 마력을 소모하는 그 이상의 대미지를 줄 수 있었다.
아르벨리시아 대륙에 있을 때 우리는 이걸 ‘이능’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내가 처음 이능을 각성했을 때 루시엘이 했던 말이 있었다.
─ 네 능력은 위험하다.
─ 응?
─ 근본을 파괴하는 힘이니까.
그게 바로 이거고, 지금의 나다.
나는 뒤따라오는 김아진과 유저들을 뒤로한 채, 하늘검을 휘두르며 그로스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자, 누가 나오나 보자고.’
어떤 놈이 나오든 간에.
그 자식은 살면서 가장 최악의 수를 뽑은 것일 거라 자신할 수 있었다.
뒈졌어.
* * *
멀리서 일어난 폭발을 본 유지한은 인상을 찌푸렸다.
뭔가 일어날 거라는 예상을 하긴 했으나, 솔직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난데없이 하늘에서 피가 쏟아지더니 이후 몬스터들이 나타났다.
유지한이 불가살이의 검을 뽑았다.
“야, 교복.”
“최진성이야!”
“나한테 이름으로 불리려면 백 년은 이르…… 아, 너 나보다 백 살 더 먹었지.”
“이, 이 자식이!”
“할아버지라고 불러 줄까? 조상님도 괜찮고.”
유지한이 근처에 있는 스켈레톤을 베어 냈다.
선택하라는 듯한 뉘앙스에 최진성이 둘 다 싫다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조상님은 너무했잖아.”
누가 보면 유지한이랑 혈육인 줄 알겠다.
최진성은 유지한 같은 조상이라면 절대 사양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같은 땅에 살면 다 같은 핏줄이지, 뭐.”
“그걸 지금 말이라고……. 이름이 싫으면 하다못해 후배라고 불러도 되잖아.”
점점 늘어나는 언데드에 최진성도 마지못해 검을 꺼내 휘둘렀다.
“그럼 선배라고 부를 거냐?”
“아니, 그건 좀…….”
“교복.”
“혹시 존댓말도 써야 해?”
“그건 봐주지.”
“빌어먹을, 선배라고 하면 되잖아.”
최진성이 마지못해 대답하자 유지한이 킬킬거리며 웃었다.
한미래가 유지한의 뒤쪽으로 화타의 검을 휘둘렀다.
화타의 검에서 흘러나온 물들이 언데드 몬스터를 쓸어 버리며 정화했다.
최진성은 그런 한미래를 신기하게 바라봤다.
한미래가 다른 치유계 유저들치고는 전투 능력이 높다는 건 알고 있었다.
간혹 호신용으로 배우는 유저도 있으므로, 그 정도일 거라고 생각했던 최진성은 검을 쥐는 한미래의 모습을 보고 생각을 바꿨다.
저건 단순히 호신용 검이 절대 아니었다.
“야, 유지한. 너 즐기는 거 같은데?”
“재밌잖아.”
“다 들리거든?”
“네놈을 데려오려고 그 망할 군인이랑 얼마나 싸웠는지 모른다. 어렵게 데려온 만큼 값은 치러야지.”
“사람을 물건처럼 말하지도 말고! 제길. 도움이 되긴 뭘 돼.”
최진성이 짜증을 내며 검을 휘둘렀다.
유지한 일행들에게 가기 전, 차성진은 100년 후 유저들을 봐 두는 게 도움이 될 거라 말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은 공감을 못 하고 있었다.
“뭐, 그럼 슬슬 출발해 볼까.”
유지한은 알고 있었다.
유현우는 그로스의 너머, 안쪽에 있는 게 분명하다.
마력 탐지 스킬이 있다고 해도 이만한 마력들이 사방에서 넘실거리는데, 그 와중에 유현우의 마력만 찾아내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 말인즉슨 저건 일부러 티를 내는 거였다.
초월기를 사용한 유지한은 낙영비화검(落英飛花劍)의 초식을 밟았다.
검은 참격들이 꽃잎처럼 흩어지며 모여 있는 스켈레톤과 언데드를 갈기갈기 찢어 놓았다.
최진성은 저도 모르게 그런 유지한을 멍하니 바라봤다.
“아차.”
정신을 차린 최진성이 멀어진 유지한을 쫓아갔다.
─ 잘 들어, 네가 감시해야 할 유저는 딱 하나야. 다른 유저는 신경 쓸 필요 없어.
─ 누, 누군데요?
─ 유지한.
이런 말을 들었을 때는 정말 더더욱 가기 싫었지만.
“……솔직히 믿을 수 없어.”
어둠의 조직이 있는 베이스캠프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최진성은 차성진의 말대로 고유 결계를 얻었다.
그것도 굉장히 허무할 정도로 갑자기.
상태창 하나가 시야를 가린 게 전부였다.
그동안 했던 고생은 뭔가 싶기도 했지만, 동시에 이상할 정도로 후련한 느낌이 들었다.
최진성이 빠르게 유지한의 뒤를 따라잡았다.
“와, 깔끔하네.”
조금 뒤에 출발하긴 했지만, 유지한을 따라간 길에는 언데드 몬스터들의 사체밖에 없었다.
아직 그렇게 강한 몬스터가 없다고 해도 그렇지 이 정도로 깔끔하게 쓰러트리고 지나갈 수 있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뭐, 녀석에게는 마력 탐지 스킬이 있으니까.”
“……천우 형. 언제 따라서 온 거예요?”
“방금?”
“빠르기도 해라.”
“너 역시 유지한의 감시를 하러 온 거구나?”
“…….”
“대답하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거든?”
순식간에 최진성을 지나친 지천우가 레이피어를 뻗었다.
파아아아앗.
지천우가 휘두른 공격에 부활하려던 언데드들이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이계의 괴물과 싸움에서 지천우가 압도적인 실력을 보인 건 단순히 치천우가 2위 유저였기 때문에만은 아니었다.
신성계 유저인 지천우는 언데드 몬스터에게 있어서 엄청난 속성 우위를 가지고 있었다.
뒤따라온 최진성이 한참 만에 대답했다.
“맞아요.”
지천우의 관심법의 쿨 타임은 10초였다.
즉, 10초 이후에 대답하는 건 관심법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어차피 사실대로 말하긴 할 거였지만, 그래도 가급적 관심법의 영향을 받는 건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절 쫓아내실 겁니까?”
지천우는 연옥 파티가 아닌 다른 곳에서 유지한 일행들과 만났다.
그 말인즉슨, 어떤 식으로든 여태까지 따로 살아 있었다는 뜻이었다.
전쟁이 한창일 당시, 지천우는 중층부에서 ‘마지막 희망’이라고 불렸다.
지천우가 중층부를 구원해 줄 거라고, 그 말을 믿으며 얼마나 많은 유저들이 희생했는지 모른다.
최진성은 그게 싫었다.
같은 신을 모시면서.
지천우와 주변 유저들의 모습을 보면, 지천우가 신 같고 다른 유저들이 신도 같았다.
최진성은 과거에도 지천우를 위해 자신이 희생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결국에는 지천우를 위하는 일을 해 버리고 말았긴 하지만 말이다.
웃기는 일이었다.
“김아진이 그러던데? 자신들의 일에 간섭하지 말라고. 그러니 난 너에 대해 간섭할 이유가 없어. 만약 필요하다고 한다면 무력행사를 하겠지.”
“솔직하게 말해서 선배요. 다른 유저들을 쉽게 믿는 타입 같진 않거든요?”
유지한의 일행이라 불리는 다른 유저들은 대부분 하층에서부터 유지한과 생사고락을 함께해 온 유저였다.
그에 비해 지천우는 갑자기 끼어든 유저이지 않은가.
게다가 지천우가 어떤 인물인가.
성격, 말투, 능력, 얼굴부터 발끝까지 대놓고 ‘수상한’ 티를 풀풀 내는 인물이었다.
유지한이 바보도 아니고, 그런 지천우를 순순히 받아 준 것도 이상했다.
“무엇보다 왜 그렇게 저 유저들 앞에서 착한 척을 하는지 잘 모르겠네요.”
“난 착하거든?”
“…….”
“하하, 뭐 됐어. 넌 이해 못 하겠지.”
“아뇨. 할 거 같은데요.”
최진성이 지천우의 발밑에서 나타나는 언데드를 향해 검을 내리그었다.
두더지처럼 나타난 구울을 반으로 갈라낸 최진성이 뒤로 물러나며 레이피어를 휘두르는 지천우를 바라봤다.
최진성과 지천우는 같은 신을 모시는 신도다.
그리고 현재의 최진성은 세르비아의 신도가 아니었다.
허무할 정도로 간단하게 고유 결계를 얻고 난 이후, 문득 그런 생각이 최진성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사실은 알고 있었다.
고유 결계를 사용하고 있는 웬만한 유저들보다 자신이 강하다는 걸.
실제로 그걸 증명한 적도 있었다.
‘왜 나만?’
최진성이 옆쪽으로 한 번 더 검을 찔러 넣었다.
늑대같이 생긴 녀석이 최진성의 몸을 잡아먹을 것처럼 입을 벌린 채 멈춰 있었다.
최진성이 검을 빼내며 녀석을 발로 차 날려 버렸다.
아래로 내려온 최진성은 마력으로 검에 묻은 피를 날려 버렸다.
‘사실은…….’
누군가가 고유 결계의 사용을 막고 있었던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