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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했더니 신이 되었다-630화 (630/760)

630화 만년설화(萬年雪花) (3)

이은희가 만든 길을 달리고 있던 최진성은 한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뭘 두리번거려?”

“아, 그……. 의사 쌤이 안 보이는데.”

한미래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 최진성이 적당히 말했다.

“한미래는 남을 거다.”

“이렇게 갑자기요?”

“이만한 광역 마법을 들키지 않고 사용 한 놈이니, 무시하고 지나가긴 어렵겠지.’

“그거야 그렇긴 한데…….”

최진성이 이은희가 만든 길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길을 제외하고 나머지 부분들을 중심으로 우박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최진성은 자신의 검을 꽉 쥐었다.

상대한다면 동상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있는 자신이 남는 게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런 최진성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유지한이 말을 걸었다.

“너, 설마 네가 남았어야 했다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아, 아니 그……. 아니거든요!”

최진성이 억울하다며 소리를 질렀으나, 유지한은 코웃음 쳤다.

최진성은 연옥 파티의 감시 역할로 온 유저였다.

그런데 자기가 남아서 몬스터를 처리하고 오겠다니.

“어차피 원해서 감시역으로 온 것도 아니고.”

최진성도 찔리긴 한 모양인지 입술을 삐죽 내밀며 투덜거렸다.

“금방 쓰러트리고 오면 선배의 감시에 아무 지장이 없을 거 같은데……. 아.”

“아?”

“방금 그 말은 못 들은 거로!”

최진성이 이은희가 스킬을 사용해 만든 길을 넘어오려는 몬스터에게 검을 휘둘렀다.

흰 털에 원숭이처럼 생긴 몬스터가 최진성의 검에 닿자 불에 타들어 가 녹아내렸다.

“오호라, 그 녀석이 그렇게 명령했다는 거지?”

“딱히 명령한 건 아니고! 아아아악! 내가 이 얘길 왜 했지!”

실수했다는 걸 깨달은 최진성이 괜히 내려오는 몬스터를 향해 화풀이했다.

유지한은 사방으로 퍼지는 최진성의 불꽃 검을 유심히 바라봤다.

최진성의 말에 의하면 검 자체에서 불길이 나오는 건 아니라고 했다.

최진성이 가지고 있는 <이프리트의 가호>로 인해 마력을 불길로 바꿔 검으로 휘두르고 있는 거였다.

최진성의 마력이 담긴 이프리트의 불꽃은 한미래의 빙화검이 만들어 낸 얼음과 비슷하게 잘 꺼지지 않는다.

불꽃도 불꽃이었지만, 유지한의 생각에는 불꽃을 견디는 최진성의 검도 보통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그러고 보니 네 검은…….”

“아, 이거요?”

유지한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최진성이 자신의 검을 치켜들었다.

‘이 녀석, 정말 단순한 건가.’

불과 몇 초 전까지 차성진이 자신을 감시하라고 한 얘길 꺼낸 걸 후회하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검을 자랑하고 있었다.

뭐, 베크나와 싸우고 돌아온 이후부터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딱 달라붙어 있는 최진성을 보고 어느 정도는 그런 말이 오갔을 거라 눈치를 채고 있었기에 최진성의 말은 크게 놀랍진 않았다.

불길을 거둔 최진성이 유지한에게 자신의 검을 슬쩍 보여 줬다.

자세히 보니 검날의 한쪽이 파여 있었는데, 그 사이로 독특한 그림 같은 게 그려져 있었다.

어떻게 철에 이런 그림을 넣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정교한 문양이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승천하는 용처럼 생기기도 했다.

“칠성검이에요.”

“오.”

유지한이 눈을 반짝거리자 최진성이 뒤쪽으로 검을 휘두르며 살짝 거리를 벌렸다.

한순간이지만 검을 탐내하는 거 같았던 건 기분 탓이겠지.

아무렴 유지한에게는 이미 정체를 알 수 없는 특이한 검이 있지 않은가.

“저, 그러면 미래 씨는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건가요?”

“그래. 금방 따라올 거다.”

유지한이 말을 하기 무섭게 김세훈이 육신환을 먹으며 두 번째로 면역 스킬을 사용했다.

두 번째 1분이 끝나 갈 즈음, 이은희가 만든 길의 끝이 다가왔다.

동시에 멀게만 보였던 첨탑이 조금은 가까워진 것처럼 보였다.

최진성이 길을 빠져나온 그 순간, 등 뒤로 커다란 눈보라가 쏟아졌다.

휘날리는 눈 일부가 최진성의 뺨에 닿았다.

분명 차가워야 할 눈이건만, 닿은 뺨에서 아무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프리트의 가호를 받고 있기 때문에?

그것 때문만은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최진성이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눈보라를 향해 손을 뻗었다.

타악.

그 순간, 유지한이 최진성의 손을 붙잡았다.

“정신 차려.”

“어? 제가 방금 뭘 하려고…….”

정신이 번쩍 든 최진성이 당황하며 유지한을 바라봤다.

혹시 뭔가 큰 잘못을 한 건 아닌가 싶어 유지한을 바라봤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유지한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유지한이 최진성의 손목을 붙잡은 채 등을 돌렸다.

“어, 어라? 그냥 가도 되는 거예요?”

“상관없다.”

“진짜요?”

“그럼 가짜겠냐! 아, 성가셔 죽겠네!”

유지한이 두 번 말하게 하지 말라며 짜증을 냈다.

유지한의 손을 내려놓은 최진성이 언데드를 상대하고 있는 다른 유저들에게 자연스럽게 합류했다.

유지한은 눈보라가 치는 뒤쪽을 흘끔 바라보며 불가살이의 검을 꽉 쥐었다.

* * *

한미래는 설원의 한가운데 선 채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휘몰아치는 눈보라, 그 가운데 보이는 건 폭풍이기도 했고, 아무것도 없는 허공이기도 했다.

한미래가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긴 채 빙화검을 꽉 쥐었다.

우리 집은 어딘가 이상하다.

머리가 크고, 학교에 다니기 전까지는 몰랐다.

다른 집 애들도 다 이렇게 사는 줄 알았다.

─ 야, 한미래! 너 미쳤어? 문과가 왜 이과 시험을 쳐? 네가 뭔데!

─ 좋냐? 내 생각은 안 하지? 누군 삼수해서 학교 갔는데, 누군 문과 주제에 이과 시험을 쳐서 학교 들어오고. 똑똑해서 좋겠다? 어? 나는 동생이랑 동기라니 쪽팔려서 학교 다니겠냐고!

빙화검을 쥔 한미래의 손에 조금씩 힘이 들어갔다.

─ 그 남자가 참하더라. 네가 병원에서 일한다니까 오히려 애 낳고 애들 아프면 걱정할 거 없지 않냐고 좋아해 주고. 그러니 그런 병원 그만두고 결혼해. 공부도 할 만큼 했잖아. 엄마한테 왜 그러는 거니, 대체?

─ 좋겠네. 나는 삼수하고, 군의관까지 뺑이 돌고 돌아와서 이제 시작인데 누구는 이제 교수 달고. 교수님이라고 불러 줘야 했냐? 나도 여자로 태어날 걸 그랬어.

─ 잘난 건 알겠는데 다른 사람 배려 좀 하고. 모두가 너처럼 재능이 있는 줄 알아?

한미래의 마력이 더욱 차갑게 변했다.

그칠 줄 모르던 눈보라가 잦아들었다.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쌓인 눈이 꿈틀거리더니 그 사이로 얼음 줄기가 올라왔다.

“후우.”

한미래가 가볍게 심호흡을 하자 눈보라가 완전히 끊겼다.

엉망으로 흩날리던 머리카락이 차분해졌다.

흘러내린 앞머리를 뒤로 쓸어 넘기며 피식 웃었다.

“이제 다 내려놓은 줄 알았는데.”

한미래도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남들과는 조금 다르다는 걸.

그래서 말하지 않은 것들도 있었다.

남들이 죽어라 하고 노력해도 얻기 힘든 것들을 순간의 노력만으로 얻었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물론, 그 순간의 한미래가 노력하지 않은 건 절대 아니었다.

남들은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초월기를. 고유 결계를 사용할 줄 안다고 자랑하지 않았던 것도 한미래는 나름대로 배려한 거였다.

이제는 차라리 그냥 당당하게 말하는 게 낫다는 걸 알았다.

그런 줄 알았는데…….

김세훈에게 그런 말을 한 걸 보면 아직도 갈 길이 먼 모양이었다.

“나이를 먹으면 성장하는 게 아니라 고집만 세진다더니.”

어쩌면 정말 그 말이 틀린 건 아닐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쿵, 쿵.

한미래가 바라보고 있는 방향에서 커다란 땅울림이 느껴졌다.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쌓여 있는 눈들이 정신없이 흔들렸다.

가라앉은 눈보라 사이로 나타난 건 짐승의 모습을 한 괴물인, 이타콰였다.

사람처럼 두 다리와 두 팔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 모습은 무척이나 괴상했다.

크기는 3m가 넘어 보였으며, 온몸은 푸른 근육으로 뒤덮여 있었다.

얼굴은 어둠에 가려져 그 형태를 알아볼 수 없었으며, 대신 붉은 눈과 입은 꽤 선명하게 나타나 있었다.

녀석의 손에는 죽은 지 꽤 오래된 것 같은 사람의 머리가 얼어 버린 채 들려 있었다.

크르르릉.

추위의 신이라 불리는 이타콰는 노골적으로 한미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입을 벌린 놈이 내뿜은 살기가 피부에 차갑게 와닿았다.

살기와 함께 바람이 한미래의 옆을 스치고 갔다.

처음부터 단순한 위협이라는 걸 알고 있었던 건지, 한미래는 끔벅도 하지 않았다.

한미래의 뺨과 손에 희미하게 베인 듯한 상처가 남았다.

크르르르.

이타콰가 숨을 내뱉자 발밑에 있던 얼음 줄기들에 금이 갔다.

그걸 본 한미래가 화타의 검을 살짝 틀었다.

파아앗.

한미래의 마력이 새어 나가자 금이 갔던 줄기에서 꽃봉오리가 올라왔다.

줄기 사이로 빠르게 자라난 꽃봉오리는 이내 얼음꽃으로 바뀌었다.

“어리, 석은, 인간…….”

“뭐야? 너 말할 줄 아는구나? 하긴…….”

유지한에게 저주를 걸었던 베크나를 보니 상위 개체들이 지적 능력이 있는 건 이상한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이타콰가 한미래를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한미래가 설원을 박차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순식간에 이타콰의 앞까지 도착한 한미래가 빙화검을 위에서 아래로 휘둘렀다.

명백하게 목을 노린 공격이었다.

그러나 이타콰가 한미래의 빙화검을 한 손으로 붙잡았다.

손이 얼마나 튼튼한 건지 빙화검을 쥐고도 별다른 상처 하나 없었다.

이타콰가 몸을 앞으로 숙이자 한미래와 얼굴이 가까워졌다.

“이…….”

한미래가 검을 뒤로 내뺌과 동시에 이타콰의 다른 손이 한미래의 몸 근처로 다가왔다.

이타콰의 푸른 손바닥이 한미래의 몸 근처에 닿았다.

파아아아앗.

손에서 나온 마력들이 한미래에게 직접 닿았다.

온몸의 장기가 찢겨 나가는 고통과 함께 피부에 수많은 상처가 남았다.

“쿨럭…….”

흰 눈 위로 한미래가 쏟아 낸 피가 붉은 물감처럼 뚝뚝 떨어졌다.

한미래가 두 손으로 꽉 쥔 빙화검을 녀석의 가슴 근처로 가져다 댔으나 끝내 닿지 않았다.

이타콰가 손에 있던 머리를 내려놓은 채 한미래의 머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너는, 약해.”

녀석이 한미래의 머리를 잡아 뜯으려던 그때 위쪽에서 커다란 마력이 느껴졌다.

“뭐래?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이타콰의 머리 한참 위쪽에서 떨어진 한미래가 화타의 검을 아래로 쭉 내리그었다.

화타의 검을 중심으로 세상이 반으로 잘린 거 같은 풍경이었다.

검 끝에서 나온 물들이 빠르게 얼어붙기 시작하며 이내 이타콰의 몸과 함께 그가 붙잡고 있던 가짜 한미래의 몸이 잘려 나갔다.

콰아아아앙.

이타콰의 몸에 수직으로 긴 상처가 남았으며 동시에 한미래와 이타콰 사이로 거대한 빙산이 나타났다.

가짜였던 몸은 마치 얼음 조각상처럼 변하더니 파스스 부서졌다.

한미래와 이타콰의 주변에 있는 수많은 꽃 중 하나가 사라졌다.

한미래의 눈이 어느 때 보다 차갑게 가라앉았다.

빙산을 향해 검을 휘두른 한미래가 다가오는 이타콰를 보며 중얼거렸다.

“고유 결계 만년설화(萬年雪花).”

절대 지지 않는 얼음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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