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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했더니 신이 되었다-636화 (636/760)

636화 한 번만 닿아라 (5)

유지한은 지천우를 처음 만났을 때 그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건 유저의 모습이 아니었다.

지천우 또한 연옥 파티의 유저들이나 환수가 된 다른 유저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차이가 있다고 한다면 환수가 된 순간, 많은 유저들은 자아를 잃어버렸지만 지천우는 아니라는 것 정도였다.

희미하긴 해도, 당시의 지천우는 소통이 가능할 정도의 자아가 남아 있었다.

“그, 그러면…….”

“과정이 어찌 됐든 나는 킹을 쓰러트리고 중층부를 지키겠다고 약속했고, 그걸 못 지킨 건 사실이니까.”

지천우는 이해해 달라고는 끝내 말하지 않았다.

결과로 보여 줘야 한다.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다고 하면 그건 실패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사이에 있었던 모든 일이 그 의미를 찾으려면 반드시 그에 맞는 결과가 있어야 했다.

사람들은 성공한 자가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한 노력과 과정에 대해서는 박수를 보내면서, 실패한 자에게는 야유를 보낸다.

그 성공을 위해 얼마나 큰 노력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걸 진정으로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지천우 또한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금기가 발목을 잡을 거라는 걸 계산에 넣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했다.

단지 그뿐인 일이었다.

지천우의 대답에 최진성은 어이가 없었다.

“아아, 그랬죠. 형은…… 그런 사람이었죠.”

“…….”

“어쨌든 사정은 알았어요. 그런다고 해서 형에 대한 원망이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요.”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최진성을 보다 못한 유지한이 살짝 끼어들었다.

“거 뒤끝 기네.”

지천우는 최진성에게 담백하게 실패한 원인을 말했다.

지천우는 끝까지 자신이 책임을 지지 못한 걸 미안해하고 있는 모양새였으나, 유지한이 보기에 최진성이 지천우를 못마땅해하는 건 킹을 죽이는 데 실패한 책임을 돌리는 게 아니었다.

최진성의 원래 소속이었던 한인 커뮤니티.

자세한 내막은 모르나, 지천우는 거기 있는 유저들을 희생시킨 게 분명해 보였다.

‘어이가 없군.’

최진성은 그냥 유저들을 희생시킨 지천우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거고, 지천우는 그 속죄를 킹을 죽이는 거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러니 대화가 평행을 달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넌 그냥 지천우가 싫은 거 아닌가? 이유가 어찌 됐든.”

맞지 않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

내가 싫어하는 녀석은 모두가 싫어했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놈을 싫어하는 녀석이 나밖에 없다.

주변의 다른 사람들은 녀석을 좋아하고, 오히려 나를 이상하게 생각한다.

“교복 입고 다니더니, 딱 생각하는 수준하고는.”

“그러는 선배도 고등학생이었다면서요! 왜 나한테만 그러는데!”

“그냥 맞지 않는 거다. 너랑 지천우는. 그걸 인정하기 싫으니까 싫어하는 이유를 만드는 것뿐 아닌가? 그럼 네가 말해 보지.”

“뭘요?”

“그 상황에서 한인 커뮤니티를 살릴 방법이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내가 모르는 건 중요하지 않다.”

유지한의 단호한 말투에 최진성이 인상을 찌푸렸다.

당시 상황을 떠올릴 필요조차 없었다.

답은 명확하니까.

그 상황에서 한인 커뮤니티 유저들이 나서지 않았다면 더 많은 유저가 죽었을 거였다.

머리로는 알고 있다. 머리로는.

최진성은 유지한과 지천우를 번갈아 바라봤다.

“저는 어떻게 그렇게 이성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건지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당장에 유지한만 해도 그렇다.

유현우라는 사람이 형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도 유지한은 움직이는 데 있어 일말의 주저도 없었다.

“어쩌면 선배 말대로 그럴지도 모르죠. 그냥 성격이 맞지 않는 것뿐인데.”

서로 맞지 않는 사람끼리 무조건 그럴싸한 이유가 필요한 건 아니었다.

다만 그걸 인정하지 않거나 받아들이기 싫은 경우, 싫어할 만한 이유를 만든다.

이래서 마음에 안 들어, 저래서 마음에 안 들어, 혹은 다른 사람이 저 사람을 싫어하면 ‘봐, 나만 싫어하는 게 아니잖아. 내 눈은 이상한 게 아니야.’라고 생각하며 자기 합리화를 한다.

최진성이 높게 뻗어 있는 나선형 계단을 올려다봤다.

언제까지 이런 이야기로 시간을 버릴 순 없었다.

계단 위로 올라가니 아니나 다를까, 높이를 가늠할 수 없는 계단이 하늘까지 닿아 있었다.

최진성이 계단을 올라가며 말을 걸었다.

“딱 하나만 물어볼게요.”

“나중에 하라니까.”

유지한이 과거 이야기는 이제 되지 않았느냐며 투덜거렸다.

“킹이 반신이라서, 형이 실패한 거라면 이번엔 어떻게 할 건데요? 설마 100년 사이에 금기가 바뀌거나 했을 리도 없을 테고.”

“하하, 그럼 좋을 텐데 말야.”

“웃을 때냐고요. 뭔가 생각이 있으니까 온 거겠죠?”

마음에 들진 않지만, 지천우는 대책 없이 움직이는 유저가 아니었다.

빠른 속도로 계단을 오른 유지한이 뒤를 살짝 돌아봤다.

“이놈이 괜히 나에게 빨대를 꽂았겠냐?”

“그렇게 말하면 내가 나쁜 놈이 된 거 같잖아.”

지천우는 유지한을 본 순간 직감했다.

킹을 죽이고, 중층부를 구할 유저는 자신이 아니라 유지한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여기까지 온 걸 보면 지천우는 자신의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고 확신했다.

“흐음, 고유 결계도 없는데?”

“얼마 전까지 없었던 네가 할 말은 아니지 않아?”

“……크흠, 뭐가 됐든요. 그건 스킬이에요?”

최진성이 아는 지천우는 온갖 특이한 스킬들을 가지고 있었다.

가끔 뭔가 이상하다 싶으면 스킬 때문이라고 말하는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닌데?”

“…….”

“그냥 감이야.”

“언제부터 그런 거에 의지하게 되셨어요?”

“밑바닥까지 떨어져 보니까 알겠더라. 가끔은 객관적인 것보다 감도 중요하다는 걸.”

최진성은 지천우가 말하는 감이라는 게 뭘 말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아, 그래요.”

최진성이 계단을 올라가는 속도를 늦추자 지천우와 최진성의 거리가 순식간에 벌어졌다.

계단 근처에 있는 벽이 일렁거리더니 그 사이로 몬스터들이 나타났다. 최진성이 계단 아래로 칠성검을 크게 휘둘렀다.

검에 감겨 있던 불꽃들이 아래에서 올라오는 몬스터들을 불태웠다.

“계단은 튼튼하네.”

불길에도 약간의 그을림만 있는 걸 보니, 쉽게 무너질 거 같아 보이지 않았다.

“저는 둘을 지키기 위해 온 거니까요.”

“…….”

“이번에는 킹을 쓰러트리라구요.”

“당연하지.”

“그러고 나면 못 한 얘기 해요.”

지천우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위로 올라갔다.

수백의 언데드 군단들이 아래는 물론 위에서도 떨어져 내렸다.

일렁거리는 불길이 탑 내부를 뒤덮을 것처럼 퍼져 나갔다.

유지한은 길을 막고 있는 언데들을 흘끔 바라봤다.

피부가 군데군데 썩어 살점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데다가 뱀처럼 생긴 게 꼭 히드라 같아 보였다.

유지한이 불가사리의 검을 휘두르려던 순간, 아래에 있던 불꽃이 위로 올라오더니 유지한과 히드라 사이를 가로막았다.

이어 최진성의 검이 유지한이 베려는 히드라는 물론 근처에 있는 언데드까지 싹 쓸어 버렸다.

붉은 불꽃 사이로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불꽃이 함께 섞여 있었다.

유저의 스킬이나 마력은 모시는 신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최진성은 원래 모시던 신이 아닌, 유지한과 똑같은 소테르 신을 모시고 있었다.

유지한은 저 검은 불꽃이 그 힘의 일부라는 걸 바로 깨달았다.

― 너만 특별할 줄 알았나?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김아진에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솔직히 조금 상처였다.

‘망할 슬라임 놈.’

다른 건 다 알 수 있었지만, 그 녀석만큼은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알 수가 없었다.

유지한은 바스러지는 언데드의 시체를 밟으며 위로 올라갔다.

계단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탑에 들어올 때처럼 커다란 석상처럼 생긴 몬스터 두 마리가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그 뒤로 문이 보이는 걸 보면 저기가 마지막이 틀림없어 보였다.

유지한은 지천우를 흘끔 바라봤다.

정말 같은 지구에서 왔음에도 조금씩 세계의 차이가 있다고 한다면.

‘어쩌면 나와 형의 세계가.’

다를 수 있다.

그 가능성을 들은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했다.

크아아아악.

침입자라는 걸 알긴 아는 석상이 움직이며 두 사람을 노렸다.

피부가 갈라지며 그 사이로 수십 마리의 뱀들이 다가왔으며, 삼지창이 머리 위로 다가왔다.

유지한과 지천우가 거의 동시에 옆으로 피하며 위로 뛰어올랐다.

계단 옆으로 뛰어내린 지천우의 어깨에서 날개가 나타났고, 유지한은 삼지창을 타고 위로 올라갔다.

누가 어떤 걸 상대할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음에도, 마치 처음부터 합을 맞춘 것처럼 움직였다.

손끝에서 생겨난 커다란 마법진에서 붉은빛이 유지한에게 쏟아졌다.

유지한이 몸을 뒤로 내빼며 아슬아슬하게 공격을 피했다.

동시에 움직이는 삼지창을 뛰어넘어 녀석의 머리 위로 불가살이의 검을 치켜들었다.

“하여튼, 이놈이고 저놈이고.”

유지한은 누군가에게 빙의를 당한 게 처음이 아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유지한의 자의는 아니었다.

유지한이 입술을 꽉 깨물며 짜증을 냈다.

재수가 없는 점이 있다면 미래의 자신을 포함해 그놈들은 하나같이 유지한보다 높은 경지에 있다는 거였다.

― 야, 유익한 얘기 하나 해 줄까?

― 필요 없다.

― 빙의한다고 해서 힘을 전부 사용할 수 있는 건 아니거든?

― 아, 관심 없다고!

― 쉽게 말하자면 그 유저가 가지고 있는 힘의 크기만큼만 사용할 수 있다는 거지.

유지한은 그냥 이 망할 슬라임 놈이 처음부터 자기 의견 같은 건 들을 생각도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냥 지가 말하고 싶어서 하는 거였다.

― 하지만 보통 빙의를 할 수 있는 수준의 정신체면 너보다는 강할 테니까. 그놈이 네 몸으로 무슨 짓을 하든 그건 고스란히 네 힘일 가능성이 커. 그리고 또…….

녀석은 이후에도 구구절절 뭔가를 설명했으나, 유지한에게 중요한 건 그 이상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처음에는 저게 무슨 말인가 싶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그 망할 슬라임이 한 말이 하나씩 몸으로 와닿았다.

짜증이 나게도.

유지한이 번뜩이는 검은 눈을 보며 불가살이의 검을 틀었다.

영혼마저 집어삼키는 불가살이의 검에는 검에 죽어 나간 수많은 유저와 몬스터의 원한들이 담겨 있었다.

유지한은 아이템창에서 꺼낸 포롱이를 밟으며 아래로 내려갔다.

‘딱 한 번이다.’

딱 한 번만 닿으면 된다!

당장은 천마라 불리는 자를 흉내 낼 생각은 없다.

유지한이 따라 하고 싶은 건 그놈이 아니니까.

불가살이의 검에서 흘러나온 검은 마력들이 거대한 석상의 몸을 뒤덮었다.

검 끝이 녀석의 피부를 가르기 시작했고, 그 틈으로 기다렸다는 듯 유지한의 마력들이 파고들었다.

“죽어!”

유지한이 검을 더 빠르게 움직이며 아래로 내려갔다.

미완성에, 군데군데 틀린 게 없진 않지만, 그건 분명 천마삼검(天魔三劍) 초식의 일부였다.

유지한이 불가살이의 검을 내려놓자 옆에서 흰빛이 쏟아지며 입구를 지키고 있던 악마가 사라졌다.

<호오, 재미있군. 역시 이 몸의 눈은 죽지 않았단 말야.>

“야.”

<…….>

“나 예민하니까 말 시키지 마라.”

천마고 신이고,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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