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9화 집안싸움 (3)
유지한이 검을 틀어 유현우를 공격한 후, 지천우를 향해 손을 뻗었으나 이미 늦은 후였다.
유지한의 검을 쳐 낸 유현우의 모습이 별안간 시야에서 사라졌다.
‘움직임을 놓쳤다? 아냐.’
유현우의 속도는 빠르긴 해도, 눈으로 따라가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유지한은 단순 이동 같은 게 아니라 판단했다.
유지한이 별안간 지천우의 팔을 아래로 잡아당겼다.
그 탓에 지천우의 몸의 균형이 기울며 앞으로 휘청거렸다.
“너 뭐 하는…….”
유지한의 돌발 행동에 당황하는 것도 잠시, 지천우는 자신의 등 뒤에서 나타나는 유현우의 인기척에 깜짝 놀랐다.
유지한과 마찬가지로 지천우 또한 유현우를 놓쳤기 때문이었다.
몸을 숙인 지천우의 등 뒤로 유지한이 내찌른 검이 스치고 지나갔다.
불가살이의 검이 유현우의 팔을 스치며 상처를 냈다.
동시에 유현우의 손이 지천우의 몸에 닿았다.
지천우가 몸을 빙글 돌리며 등 뒤에 있는 유현우를 향해 발트안데르스를 내리그었다.
마치 번개가 치듯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 내렸다.
빛이 사라진 자리에 유현우는 보이지 않았다.
뒤로 살짝 물러난 지천우가 유지한을 흘끔 바라봤다.
“팔 잡아당긴 건 어쩔 수 없었다 쳐. 뭘 눈치챈 거야?”
“하아, 저걸 봐라.”
유지한이 형이 있는 곳을 향해 고개를 까닥였다.
유현우는 무너지는 건물 잔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유현우가 검을 휘두르자 머리 위로 떨어지고 있던 전봇대가 반으로 잘리며 옆으로 떨어졌다.
지천우는 얼마 가지 못해 유지한이 뭘 말하고 싶은 건지를 어렴풋이 깨달았다.
분명 유지한이 냈을 팔의 상처가 빠르게 낫고 있었다.
“숨기고 있었던 건가?”
분명 처음에 싸울 때 유현우는 자가 치유 능력이 없었다.
유지한이 지천우의 어깨에 있는 날개를 흘끔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네 능력이잖아.”
“뭐? 설마……. 아니, 설령 카피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말도 안 돼.”
다른 유저의 스킬을 복사하거나, 빼앗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유저는 드물지만 없는 건 아니었다.
“뭐가 말이 안 돼.”
유현우가 자가 치유 능력을 얻었다는 게 성가시긴 하지만, 그래 봤자 치유 스킬 하나지 않는가.
“저건 평범한 치유 스킬이 아니야. 초월기라고! 게다가…….”
지천우가 유지한에게 스킬의 내용을 설명하자 유지한이 미간을 찌푸렸다.
신체가 파괴되면 그 부분이 새로 재생하는 스킬이라니.
뭐, 그런 스킬이 다 있나 싶으면서도 지천우가 여기까지 독하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를 깨달았다.
“그럼 팔이 잘리면…….”
“다시 자라.”
“아놔, 진짜 무슨 몬스터도 아니고. 어떻게 죽이라는 건데?”
유현우는 입을 다문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천우의 스킬을 빼앗고 난 후라 그런지 여유가 넘쳐 보였다.
“그래 봤자 빼앗은 스킬이니까 분명 한계가 있을 거야.”
“말 돌리기는.”
유지한이 그럴 줄 알았다며 중얼거렸다.
지천우는 아무리 죽기 직전이라고 해도 자신에게 불리하게 다가올 거 같은 말은 절대 하지 않는 편이었다.
생명의 나무 스킬의 약점을 말하는 건, 곧 지천우의 약점을 말하는 것과 다를 게 없기 때문이었다.
유지한은 급소를 노리거나, 치명타를 입혀도 쉽게 죽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염두에 두기로 했다.
아마 지천우가 원하는 것도 딱 거기까지 일지도 몰랐다.
“그럼 저건 어떻게 할 건데?”
유현우의 등 뒤에서 지천우의 날개와 똑같은 날개가 생겨났다.
“근데 저것도 뭐 효과가 있나?”
“남 일 아니라고 태연하게 말하지 말아 줄래?”
지천우는 유지한이 묘하게 재미가 들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지천우가 가지고 있는 천사의 날개는 종합 버프 스킬이었다.
버프 스킬이라는 말에 유지한이 한숨을 내쉬었다.
안 그래도 상대하기 힘든데 지천우의 버프까지 달았다니.
“형, 못 본 사이에 많이 비겁해졌다? 내가 아는 형은 그런 인간이 아니었던 거 같은데.”
“야, 너 쓸데없는 말을…… 하아. 마음대로 해.”
지천우는 이제 멋대로 떠드는 유지한을 반쯤 포기했다.
검을 쥔 채 다가오던 유현우가 유지한의 말에 반응했다.
“도발할 생각이라면 통하지 않아. 넌 예전부터 사람 신경 긁는 데는 타고난 녀석이었다는 건 알고 있으니까.”
“내가 어렸을 때 그거 때문에 학교에서 엄청나게 싸웠잖아.”
유지한이 옛날 생각이 난다며 큭큭 웃었다.
눈치가 없어서 그런 행동을 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눈치가 있으니까 그렇게 할 수 있는 거였다.
“어떻게 했지? 그것만 알려 줘. 나름 동생 부탁인데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잖아.”
“너 제정신이야? 대답해 줄 리가 없잖아.”
아무리 형제라고 해도 결국은 적이었다.
지천우는 유지한이 의미 없는 시간 벌이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유현우가 검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을 살짝 풀었다.
“레코드 스킬이다. 현재를 기록하는 스킬이지.”
“복사라도 한 줄 알았는데 그런 건 아니었던 모양이네.”
“많이들 착각해.”
지천우가 태연하게 대화를 주고받는 두 사람에게 끼어들었다.
“이해가 안 돼. 유지한이 알려 달라고 했다고 진짜로 알려 줘? 방금 그걸로 당신은 엄청난 손해를 봤어. 왜 그런 짓을…….”
“그래도 자신이 있다는 거겠지.”
유지한이 어깨에 살짝 걸쳤던 불가살이의 검을 내려놓았다.
유현우는 유지한이 말하는 것은 웬만하면 다 들어줄 게 틀림없었다.
시험 하루 전에 여동생이 학교 쉬는 날이라며 놀러 가자고 말해도 유현우는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던 사람이었다.
동생과 노느라 시험을 포기해서?
아니, 놀아도 시험을 보는 데 아무 지장이 없기 때문이었다.
“어떠한 변수가 일어나도, 전부 계산할 수 있다. 아닌가?”
그게 유지한이 아는 유현우라는 인간이었다.
유지한은 어쩌면 유현우가 수사관이 된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닐지 모른다 생각했다.
“하지만 악질이긴 하네.”
유현우의 신은 라케시스라는 녀석으로 알고 있었다.
현재를 가지고 오는 스킬이라니 그건 마치 미래와 과거가 없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이지 않은가.
세상은 바뀌었는데, 유현우의 시간은 여전히 탑에 들어오기 전에 멈춰 있는 것만 같았다.
그 기분이 유지한을 자못 불편하게 만들었다.
“너희 둘은 나를 이길 수 없다.”
“형 그거 알아?”
“…….”
“내 앞에서 그렇게 말하는 녀석들은 이제 없어. 다 죽였거든.”
유지한이 살벌한 살기를 내뿜으려 유현우를 노려봤다.
언제 다시 검을 부딪쳐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이변이 일어난 건 유지한이 검을 휘두르려 자세를 잡은 그 순간이었다.
“어?”
별안간 당황하는 지천우에 유지한은 뭐가 문제냐며 인상을 찌푸렸다.
“스킬이 사라졌어.”
유지한은 지천우가 종종 날개를 꺼냈다가 집어넣는 경우가 많았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스킬이 사라졌다니?
유지한이 설마 싶어 자신의 상태창을 확인했다.
스킬 하나가 빨간색으로 빛이 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유현우가 유지한에게 티를 내며 보여 주었던 오귀검법(五鬼劍法)이었다.
유지한은 확인할 필요도 없이 오귀검법을 사용할 수 없다는 표시라는 걸 깨달았다.
“하, 자신감의 근원이 이거였나.”
“인과라고 하지.”
“…….”
“초월기나 특수한 스킬의 경우 같은 스킬을 가지고 있는 유저가 둘이 될 순 없다. 적어도 이 안에서는.”
카피 스킬에 한계가 있는 건, 아무리 다른 유저의 스킬을 일시적으로 빼앗아 봤자 가짜는 진짜를 따라갈 수 없어서였다.
생명의 나무 스킬을 가지고 있는 유저는 지천우 말고는 없었다.
두 개의 스킬을 보유할 수 없으니, 자연스럽게 한쪽의 스킬은 사라지는 셈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불리해지는 건 너희다.”
“그렇겠지. 이쪽은 스킬이 줄어든 데 비해, 형은 늘어나니까. 그런데 그거 알아?”
유지한이 순식간에 유현우의 앞까지 다가가 불가살이의 검을 내리그었다.
유지한과 유현우가 서로 검을 맞댔다.
“형은 우리에게 그 얘길 하면 안 됐어.”
유현우의 성향을 알기 때문에 물어본 건 맞지만, 유지한 또한 지천우처럼 유현우가 손해를 본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게 패배의 요인이 되는 거다.”
등 뒤에서 나타난 지천우가 발트안데르스를 휘둘렀다.
두 사람이 스킬을 사용하지 않은 채 유현우를 몰아붙였다.
유지한의 빈틈을 지천우의 공격이 빠르게 들어와 메꿨다.
지천우가 밀릴 때면 유지한이 기가 막히게 끼어들었다.
둘이 아니라 하나를 상대하는 것만 같았다.
유현우가 생명의 나무 스킬을 가지고 간 탓에 지천우의 상처는 회복되지 않았다.
유지한은 그걸 알고 있음에도 지천우를 무시한 채 이 전처럼 위험한 줄타기를 계속했다.
“형이 죽는 게 먼저인지! 아니면 내 스킬이 전부 끝나는 게 먼저인지 해 보자고!”
카앙.
날카로운 검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유지한과 지천우가 허공에서 날아오는 것을 반사적으로 쳐 냈다.
바닥으로 떨어져 박힌 그것은 유현우가 끌고 있던 검이었다.
검은 검들 수십 개가 허공에 둥둥 떠 있었다.
아무리 거의 완벽하게 스킬을 가지고 왔다고 해도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스킬만으로 모든 걸 할 수 있다면 사기적인 스킬을 가진 유저가 최강자여야 정상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유저들간의 싸움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숙련도라는 게 괜히 있는 말은 아니었다.
“이게 형의 스킬이라 이거지?”
유지한은 두 손으로 빠르게 날아드는 칼을 쳐 냈다.
이런 종류의 공격은 김다솜의 소울테이커를 많이 봐 왔던 유지한에게 위협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유지한이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칼날을 피한 후 유현우의 앞으로 다가갔다.
유현우가 오귀검법(五鬼劍法)의 초식을 밟았고, 유지한도 똑같은 초식을 밟았다.
그러나 스킬을 보유하고 있지 않아서 그런지 중간부터 마력의 흐름이 원활하지 않았다.
밀려난 유지한의 목 근처로 지천우의 검이 다가왔다.
검을 튼 유지한이 풍아(風牙)를 사용했다.
그다음 다시, 타루검법(陀累劍法)의 초식을 밟으며 지천우를 몰아붙였다.
스킬을 사용할 때마다 유지한의 상태창이 붉은색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유현우가 유지한에게서 가지고 온 스킬을 그대로 사용할 때마다 유지한 또한 똑같은 초식을 밟았다.
그럴 때마다 밀린 유지한의 몸에 상처가 늘었다.
급소를 피하긴 했으나 딱 거기까지였다.
유현우가 검을 휘두름과 동시에 위쪽에서 마력을 실은 검들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검이 머리 위까지 닿은 그 순간까지 유지한은 심호흡하며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혔다.
타앗.
검들이 유지한에게 닿으려던 그 순간, 아슬아슬한 간격으로 두고 커다란 방패가 생겨났다.
몸을 살짝 숙인 유지한이 그대로 유현우의 앞으로 달려갔다.
“어이, 망할 검. 너 더 많은 힘을 원하지?”
유지한은 알고 있었다.
이 검은, 환수나 이계의 괴물을 죽인 것으로는 만족하지 않는다.
어쩌면 평생을 만족하지 못하는 게 이 검의 저주인지도 모른다.
“네가 만족할 만한 끝을 보여 주지.”
유지한의 말에 반응이라도 하듯 검신에서 검은 마력이 새어 나왔다.
지천우의 도움을 받은 유지한이 앞으로 달려 나가며 초식을 밟았다.
“천마삼검(天魔三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