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했더니 신이 되었다-648화 (648/760)

648화 약속 (4)

김아진이 마왕성의 심장부에 도착했을 때는 모든 게 끝난 후였다.

아니, 그걸 끝났다고 표현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믿을 수 없군.”

거대한 홀 전체에 나 있는 싸움의 흔적들은 정상적이지 않았다.

괴물과 괴물의 싸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내가 몸을 돌리자, 김아진이 나에게 다가왔다.

“늦었잖아.”

“가장 일찍 도착한 사람에게 할 말은 아니군.”

“네가 1번 아닌데?”

나는 기둥 옆에서 팔짱을 끼고 있는 서유라를 손가락질했다.

김아진도 민망한 모양인지 헛기침했다.

“2등도 늦은 건 아니다.”

“그래, 알았어. 봐줄게.”

“신이라는 건……. 다들 너 같은 건가?”

“뜬금없이?”

“100년 전에도 이계의 괴물은 존재했다. 그걸 쓰러트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유저들이 죽었는지…….”

끝까지 말을 하진 않았으나, 내가 그걸 혼자 다 죽여서 허무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거 같았다.

“너는 개미와 인간의 악력을 비교할 수 있어?”

“우리가 개미라는 거냐.”

“그렇게 보는 신들도 적지 않을걸. 아니면 코끼리랑 팔씨름이라도 해 볼래?”

“그건 내가 이긴다.”

아니 이 자식이?

그야 당연히 이기겠지.

우리 기준으로 봤을 때 약할 뿐이지, 탑에 있는 유저들은 평범한 사람들을 놓고 봤을 때 절대 약하지 않았다.

오히려 평범한 사람들 입장에서 본다면 초월자나, 김아진 같은 녀석들이 괴물로 보일 거였다.

나는 하늘검을 집어넣었다.

“야! 비유가 그렇다는 거잖아. 탑에 막 들어온 유저들이 보면 너도 괴물이야!”

“틀렸다.”

“뭐가 틀린데?”

“처음부터 강했던 유저는 없다. 그러니…….”

“두려워할 필요 없이 강해지면 된다는 거지?”

김아진이 그 말대로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면 어떻게 할 건데?”

“그건…….”

“내 경지가 아득해 보이는 건, 네가 너무 약하기 때문이야.”

약하다는 말을 들은 김아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의외로 김아진에게 면전에 대고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어 보였다.

그야 얼굴 험악하게 생겼고.

“결정적으로 너희들은 나를 절대 못 따라잡아. 그야 나한테 공적치를 바치는데 어떻게?”

내가 사라지는 아스모데우스를 보며 킬킬거렸다.

냉정하긴 해도, 남에게 기대는 유저들은 그 한계가 명확했다.

그렇다고 해서 혼자 설 수 있냐고 하면 그것도 쉽지 않았다.

“뭐, 쓸데없는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하고. 이만하면 충분히 제 역할은 했다고 생각하는데.”

“지천우가 유현우라는 자를 쓰러트렸을 때가 됐다는 건가?”

“지천우가 아니라 유지한이! 말은 똑바로 하지?”

아무리 그 뭐냐, 아픈 손가락이라고 해도 남의 집 자식이랑 비교하고 싶진 않았다.

그런데 김아진도 지금은 식구잖아.

“아, 알았다고. 살벌하게 굴 거 없지 않나.”

“너 경고야.”

나와 김아진이 대화를 하는 사이, 의식을 잃었던 서아현이 정신을 차렸다.

“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서유라의 부축을 받고 있던 서아현은 영문도 모른 채 끝나 버린 싸움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연옥 파티 유저들이 중앙 홀에 모여들 무렵, 아스모데우스의 마왕성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잘 들어.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니까.”

“그건, 아직 유현우가 죽지 않았다는 뜻인가? 아니면 뭔가 더 남았다는 건가?”

“후자야. 너 왜 100년 전에 지천우가 킹을 죽이는 데 실패했는지 알아?”

“자세한 건 나도 모른다.”

김아진은 지천우를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는 유저 중 하나였다.

하지만 잘 이해한다는 게,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뜻은 아니었다.

이해라는 건 결국 내가 가진 거울로 상대를 바라보는 것뿐이니 말이다.

나는 두 개의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말했다.

“두 가지 가설이 있어. 첫 번째는 지천우가 정말 약했을 경우. 두 번째는 이길 수 있었음에도 뭔가에 막혀서 실패했을 경우. 그 녀석은 누구보다도 금기가 많은 인물이잖아?”

“지천우가 금기가 많다고?”

“녀석은 쉽게 죽을 수 없어, 죽고 싶지 않아 하는 다른 사용자들에게는 축복일지 모르겠지만 지천우 본인에겐 저주이자 금기나 마찬가지겠지.”

“……그런 식으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몰랐군. 그래도 지천우는 그렇게 약하지 않다.”

그렇겠지.

김아진, 최진성을 포함한 100년 전 유저들에게 지천우는 희망이자 빛이었다.

김아진이 아직도 저런 말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상대가 더 강했을 수도 있잖아?”

김아진은 여전히 공감하지 못한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하늘검에 손을 올린 후 몸을 틀었다.

“좋아, 그럼 나는 어때? 나랑 지천우랑 진심으로 싸우면 누가 이길 거 같지?”

김아진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김아진의 시선이 모습이 거의 다 사라진 아스모데우스의 시체에 닿았다.

“잘 모르겠군. 네놈은, 아니지. 신들이라는 녀석들은 그 깊이를 알 수가 없으니. ……설마.”

“내가 이렇게 있는데, 그놈이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잖아?”

“화신체인 건가.”

“그래.”

이런 말을 하긴 좀 그렇지만, 지천우와 100년 전 유저들은 처음부터 계란으로 바위 치기에 가까운 싸움을 하고 있던 셈이었다.

그리고 지금부터 내가 하려는 건, 그 행위가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거였다.

마왕성이 완전히 무너지고, 우리는 마왕성 아래에 있는 중층부로 이동됐다.

다행히 마왕성에 들어올 때처럼 여기저기 흩어지진 않은 거 같았다.

“유지한에게 합류하는 거겠지?”

서유라가 성큼성큼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맞아. 그런데 유지한은 없어.”

“뭐라고? 설마…….”

말을 흐린 서유라가 내 눈치를 살폈다.

유지한이 없다고 말했을 뿐, 죽었다고 말하진 않았다.

“벌써 중층부를 떠났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 보지?”

“그래. 유지한은 중층에 없어. 이번엔 그 녀석이 가장 먼저 상층에 올라갔으니까.”

“왜…….”

“너에게 설명해 줘야 할 의무는 없을 거 같은데.”

내가 선을 긋자 서유라가 못마땅한 듯 인상을 찌푸렸다.

“아, 그래? 마왕성도 쓰러트렸겠다. 이제 따로 움직여도 상관없는 거겠지?”

“마음대로.”

“아현 씨, 가요.”

“자, 잠깐…… 같이 가요! 지한 씨가 중층에 없다니 그게 대체 무슨 말인지…….”

서아현은 당황하면서도 서유라를 따라 유현우가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자, 우리도 슬슬 움직이자.”

중층부 사건의 끝을 마무리 지을 최후의 전투가 다가오고 있었다.

* * *

시간의 신전 입구.

김다솜은 착잡한 표정으로 시간의 신전 입구를 바라봤다.

“왜 그래?”

“아뇨. 그냥 먼 길 왔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처음부터 이런 일이 될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으니까요.”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굳이 중층부의 일뿐만이 아니었다.

하층부 생활을 시작할 때만 해도, 한미래는 이 세계를 게임에 가까운 세계 정도로만 생각했다.

실상은 그런 게임보다 훨씬 더 잔인하고, 잔혹한 세계였다.

“하아, 중층에서는 이 난리를 쳤으니. 솔직히 말해서 상층은 어떨지 상상도 안 돼요.”

하층에 있을 때만 해도 중층이 이런 곳일지, 그리고 이렇게 될지 몰랐다.

그 경험을 상층에서도 해야 한다고 하니 막막하기 그지없었다.

그러고 나면 정말 끝인 걸까?

탑의 너머에는, 바깥에는 대체 무엇이 있는 걸까?

아무리 김다솜이라도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나아가는 수밖에 없겠지. 여태까지 그래 왔듯이 말야. 그나저나.”

“왜 그러세요?”

“하세영은?”

이은희는 어느 순간부터 하세영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대기 시간이 길어진다는 걸 알고는 어디로 가던데요?”

두리번거리는 이은희에게 대답을 해 준 건 다름 아닌 김세훈이었다.

“찾아볼까요?”

“아니야, 내버려 둬. 금방 돌아오겠지.”

하세영과는 임시 동맹에 지나지 않았다.

유현우가 죽은 지금, 어디서 뭘 하든 그건 하세영의 자유로 이은희가 뭐라 할 수 있는 자격은 없었다.

하세영이 다시 돌아온 건 오 분이 좀 지났을 무렵이었다.

“아직도 안 나왔나 보군요.”

하세영은 시간의 신전 입구를 지키고 있는 이은희와 김다솜에게 다가왔다.

“시간이 좀 걸리나 봐. 그런데 거기 있는 유저들은?”

“전 사화 엔터 유저라고 말하면 되는 걸까요?”

하세영이 어둠의 조직 쪽에 임시 동맹으로 합류하면서, 사화 엔터는 사실상 반으로 쪼개졌다.

유현우가 죽었으니, 하세영이 사화 엔터의 실질적인 대표나 마찬가지였다.

이은희는 하세영의 뒤에 있는 유저들을 흘끔 바라봤다.

전의는 없어 보이지만, 여전히 언제 뒤에서 칼을 들고 덤빌지 모르는 유저들이였다.

“괜찮겠어?”

이은희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모르지 않는 하세영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은요. 아무리 그래도 사화 엔터 유저들이니까 내버려 둘 수도 없었어요.”

“…….”

“조직이라는 건 원래 다 그런 거기도 하구요.”

위쪽의 싸움에 애꿎은 아랫사람들만 피해를 보는 일들은 흔했다.

정작 그 아랫사람들은 별다른 생각이 없거나, 분위기에 흘러 넘어간 경우도 드물지 않게 있었다.

하세영의 대답에 이은희는 하세영이 어련히 알아서 잘하겠거니 싶었다.

“중층부가 정리되는 대로 나는 상층으로 올라갈 거야.”

“저는…….”

하세영이 뒤쪽에 있는 게이트를 흘끔 바라봤다.

“상층으로 올라가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릴 거 같네요. 해야 할 일이 많아서.”

환수 사태 이후로 뉴비 유입은 거의 끊겼다.

하지만 차원이 정상화되기 시작하면 다시 뉴비들이 생겨날 게 분명했다.

설령 지나쳐 가는 차원이라 할지라도, 새로 들어온 유저들에게 아무것도 없는 중층부를 남겨 두고 가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환수가 사라졌다고 해도 지금의 중층부를 내버려 두면 더 큰 혼란을 불러일으킬 거예요.”

살아남은 유저들 중에서 세력을 형성하는 이들이 있을 거고, 그들이 중층부의 복구를 최우선으로 할지는 의문이 들었다.

하세영은 중층이 마무리되는 대로 상층에 올라갈 생각이었다.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김다솜이 말했다.

“어둠의 조직은 사화 엔터에게 협력할게요.”

“……뭐?”

“동맹 같은 게 아니에요. 이번 일이 마무리되면 어둠의 조직은 사화 엔터의 명령을 따를 거예요.”

어둠의 조직을 창설한 건 이은희지만, 지금의 대표는 이은희가 아니라 김다솜이었다.

아무리 이은희가 실권자라 해도 김다솜에게 발언권이 없는 건 아니었다.

“중층부를 복구한다고 하면 두 개의 조직은 분열을 일으킬 가능성이 커요. 세영 씨가 새로운 중층을 어떻게 구상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협조해 준다면 저희야 고맙죠.”

“저도 중층부에는 오래 머무를 생각이 없어서요.”

새로 들어올 유저들을 위해서라도 떠날 유저는 빠르게 떠나는 게 맞았다.

모두가 하세영처럼 중층부나 조직에 충성하는 건 아니었다.

하세영도 그 부분은 이해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김다솜은 하세영이 데리고 온 유저들을 훑어봤다.

그들은 하세영이 사화 엔터를 나간다고 했을 때, 사화 엔터에 남아 있던 무리였다.

김다솜의 시선이 후드를 깊게 눌러쓰고 있는 한 유저에게 닿았다.

“왜 그래?”

“저기 저 유저요.”

김다솜이 후드를 쓴 유저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