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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했더니 신이 되었다-653화 (653/760)

653화 진실의 불꽃 (1)

아래에서 느껴지는 지천우의 마력을 뒤로한 나는 라케시스의 고유 결계 안으로 들어왔다.

눈을 뜨자 보이는 건 꽤 커다란 도시의 한복판이었다.

도시의 뒤쪽으로는 딱 봐도 커다란 성이 있었으며, 성에는 군데군데 붉은 태양의 문양을 한 깃발들이 달려 있었다.

하늘검을 쥔 손에 힘을 살짝 푼 뒤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군데군데 노점상과 가게로 추정되는 것들이 보였다.

어딘가의 시장이라 추정되는 곳에 떨어진 것 같았다.

나는 천천히 유리창이 있는 가게 앞으로 다가갔다.

“빌어먹을, 어이가 없네.”

유리창 너머에 진열된 옷 밑으로 명패가 붙어 있었다.

한글도, 영어도, 그렇다고 한자나 다른 나라 언어도 아닌 형태의 익숙하지 않은 글자였다.

하지만 내 눈에는 그 무엇보다도 익숙한 글씨로 보였다.

“몇 번을 봐도 어이가 없단 말이지.”

내가 싸우고 있는 놈이 과거의 라케시스라는 게 말이다.

나는 천천히 유리창에서 손을 뗐다.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라케시스를 죽이면…….’

어쩌면 내 과거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말도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한 번 정도는 해 볼 법하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너, 어떻게 네가 여기에…….”

아스트라의 활을 쥔 이은희가 나에게 다가왔다.

“왜 그래? 얼굴 처음 보는 것도 아니면서…….”

“돌아오고 난 이후에는 처음이거든? 이 바보야!”

“…….”

“내가,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데……. 김다솜이랑 미래 언니는 만나 줬으면서 나한테는 얼굴도 안 비추고.”

이은희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이은희 말대로 나는 세계의 끝에서 돌아온 이후 이은희를 만나지 못했다.

워낙에 일이 많은 데다가 이은희를 만날 만한 기회가 없었다.

그래도 종종 소식을 들으니 다른 유저들이랑 잘 지내고 있겠거니 했다.

이은희도 내 존재를 눈치채고 있을 테니,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느꼈다.

이런 반응을 보일 줄 몰랐던 나는 진심으로 당황했다.

“걱정해 줘서 고맙다. 아마 날 걱정해 주는 유저는 앞으로도 지금도 너밖에 없을걸.”

“거짓말.”

“진짜라고. 유지한 그놈은 날 보면 걱정이 아니라 죽으라고 노래를 부를 테고, 한미래 걔도 점점 유지한 화가 되어서 나 같은 건 신경도 안 쓸걸.”

김다솜이야 나를 좋아하는 거 같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유지한의 ‘신’이기 때문에 생기는 호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미래 언니가 유독 유지한에게 많이 물들긴 했지.”

이은희가 공감한다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나는 이은희의 팔과 몸을 훑어봤다.

이은희의 몸에는 크고 작은 상처들이 나 있었다.

“너야말로 괜찮은 거지?”

“어, 응. 무리하게 스킬을 사용하다가 스친 흔적이라서.”

이은희가 고개를 돌려 왔던 방향 쪽을 바라봤다.

나는 뒤늦게 도시의 절반 정도가 깔끔하게 사라졌었다는 걸 깨달았다.

“여기서 나가려고 했는데 좀처럼 안 되네.”

“고유 결계니까.”

“결계는 부수라고 있는 그랬어.”

“누가?”

“유, 유지한이…….”

“야!”

내가 소리를 지르자 이은희가 뺨을 긁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자기가 생각해도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긴 한 모양이었다.

“아, 어쨌든! 너는 들어왔는데 나는 왜 못 나가는데!”

“하세영은 나간 모양이던데?”

“어라, 정말?”

“둘이 같이 휘말렸다고 하지 않았어?”

“그러긴 했는데 만나진 못했어.”

이은희의 대답에 나는 팔짱을 낀 채 잠시 고민에 빠졌다.

마을의 1/3 정도가 날아간 공격이었다.

저렇게 화려하게 했는데 하세영이 눈치를 채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그건 바꿔 말하면 이은희가 도시를 때려 부수기 전에 쫓겨났다는 의미였다.

나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은희는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깨달은 거 같았다.

“하세영은?”

“오는 길에 만났어.”

“나는 어떻게 됐냐고 물어봤어.”

이은희가 주먹을 꽉 쥔 채 내 앞으로 걸어왔다.

“죽었을 거야.”

누군가의 죽음에 대해서만큼은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하세영의 죽음과 함께 바깥에 있는 상황을 대충 전해 주었다.

“라케시스의, 화신체라고?”

“그래.”

“그럼 한시라도 빨리 여길 나가야…….”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이은희가 뭔가 이상하다며 나를 바라봤다.

“밖에서 그 난리가 났는데, 넌 왜 여기로 들어온 거야? 이 공간에 뭐가 있는 거지?”

“화신체는 어디까지나 분신일 뿐이지, 진짜는 아니야.”

“그럼 진짜는…….”

“여기 어딘가에 있을 거야.”

여긴 녀석의 진짜 라케시스의 고유 결계 내부이니까 말이다.

대충 상황을 파악한 모양인지 이은희가 가볍게 숨을 들이쉬었다.

“있잖아, 하세영의 마지막은 어땠어?”

그녀의 죽음에 대해 전해 들은 이은희는 충격이 가시지 않는다는 얼굴을 하면서도 비교적 차분하게 이 상황을 파악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마지막을 본 건 내가 아니라 지천우야. 그래도 그 녀석이 봤다고 하니 괜찮을 거로 생각해.”

지천우는 생각보다 많은 유저의 죽음을 밟고 올라온 유저였다.

그러니 누구보다도 죽은 유저를 보내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어쩌면 하세영의 마지막을 장식한 유저가 지천우여서 다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어 가는 유저에게 있어서 지천우는 말 그대로 한 줄기의 등불이나 마찬가지니 말이다.

이은희도 지천우라는 말에 안심이 된 듯 찡그린 표정을 풀었다.

“애도는 짧게, 복수는 가슴이 아니라 머리로 하는 거랬어.”

“네가 유지한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거 같은데?”

탑의 유지한이 저런 말을 할 리는 없으니, 딱 봐도 신살자 유지한이 한 말 같아 보였다.

녀석의 시니컬함은 지천우 쪽에 조금 더 가까워 보였으니 말이다.

나와 이은희 사이로 침묵이 흘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은희가 침묵을 깼다.

“이제 괜찮아.”

“다행이네.”

나는 담담하게 대답하며 이은희를 유심히 바라봤다.

하세영은 고유 결계가 완성되자마자 밖으로 튕겨 나간 게 분명했다,

그런데 왜 이은희만 혼자 여기 남아 있는 거란 말인가?

“너 말야. 혹시 어디 불편하거나, 뭔가 이상하거나 그런 건 없지?”

“뜬금없긴 한데, 딱히 없어. 왜?”

“네가 어떻게 여기 있을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고 있었거든.”

“그 말은 마치 내가 여기 있으면 안 되는 존재처럼 들리는데?”

“절반은 맞아.”

“절반은 맞다는 건 무슨 소리야?”

“네가 여기 있으면 안 되는 건 맞는데, 누군가가 널 여기에 뒀을 수도 있다는 거야.”

누군가라는 말에 이은희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런 짓을 할 만한 자는 고유 결계의 주인 말고는 없었다.

‘어쩌면 하세영과 이은희가 휘말린 것도…….’

두 사람은 유현우가 사화 엔터를 통치할 시절, 사화 엔터의 유저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 사태의 모든 원인이 둘에게서 일어났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이은희에게 원한을 가지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

“날 내보내고 싶었으면 여기가 중요한 공간이라는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해.”

“아무 말도 안 했어.”

“눈빛이 딱 봐도 날 어떻게 내보내야 하는지 고민하는 것 같았는데?”

이은희가 활을 어깨에 살짝 걸치며 말했다.

“부정은 하지 않을게. 라케시스가 너를 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거든.”

지금이야 조용하지만, 고유 결계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나도 장담할 수 없었다.

“미래 언니에게 들었어, 중층부를 이렇게 만든 라케시스라는 신이 유지한을 노리고 있어서 그 녀석을 상층으로 올려보냈다고.”

“맞아.”

시간의 신전이 수리되는 데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유지한 하나 정도는 올려보낼 수 있을 거였다.

“나까지 상층으로 올려보낼 생각이야?”

이은희는 내가 내부로 들어왔으니, 나가는 방법도 알고 있을 거로 생각하고 있는 거 같았다.

나는 언제까지 여기 있을 순 없지 않냐며 거리를 좀 걷자고 했고, 이은희가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상층부까지는 모르겠는데, 널 밖으로 내보낼까 조금 고민했었지.”

“했었다는 건 뭔데?”

“아까 말했잖아, 바깥도 지금 라케시스의 화신체로 인해서 난장판이라니까? 차라리 녀석이 널 노린다면 오히려 내 옆이 안전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이은희가 노려지는 것과 유지한이 노려지는 건 전혀 별개의 문제였다.

뭐가 됐든 내가 바깥에서 이은희를 지키며 싸운다면, 라케시스와는 소모전이 될 뿐이었다.

“그, 그렇게 말해 봤자 누가 기뻐할 줄 알고!”

“기뻐하라고 한 말은 아닌데…… 악! 왜 발로 차고 그래!”

나는 이은희에게 맞은 무릎을 움켜쥐며 이은희를 노려봤다.

“눈치 없는 녀석. 너 같은 게 신이라니 믿을 수 없어.”

“뭐?”

“고마워.”

“딱히 고맙다는 말을 들으려고…….”

“이거 말고! 11층에서. 그때 말야, 나 정말 도망치듯 11층에 들어왔거든. 미션이고, 탑이고 뭐고 다 때려치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그러니까 죽으려고 들어왔어. 로비에서 죽으면 손가락질당하지만, 탑에 들어가서 죽었다고 하면 손가락질하는 유저는 없을 테니까.”

죽는다고 해도 시체가 발각되지 않을 테니 하층부의 미션 탑만큼 자살하기 좋은 곳은 없었다.

실제로 몇몇 유저들은 미션을 깨기 위해 들어가는 척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고 했다.

“너도 알다시피 당시의 나는 구제 불능이었으니까.”

“그러긴 했지.”

“네 입으로 들으니까 좀 짜증 나는데?”

“활 하나 똑바로 못 쏘는 걸 구제 불능이라고 말하지, 뭐라고 말해?”

내 말에 이은희가 억울하다며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래도 내가 뭐랬어. 너 할 수 있다고 했잖아.”

“탑에 들어온 이후, 나에게 그런 말을 해 준 건 네가 처음이었어.”

이은희는 11층을 나온 이후, 거짓말처럼 유지한을 만났다는 말을 덧붙였다.

“유지한 그 자식은 정말 골 때리는 놈이긴 했지. 할 수 있다가 아니라 해야 한다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늘어놓는 녀석이었으니까.”

“…….”

“가끔 네가 내 신이었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어. 그래서 그런가? 유지한이 부럽기도 했고……. 한미래가, 김다솜이 부러울 때도 있더라고.”

나와 이은희는 자연스럽게 가운데 있는 성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처음부터, 라케시스는 저 성안에 있었다.

저쪽에서 여유를 부리고 있는 거라면 우리도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아마 루시엘이라면 분명 그렇게 했을 거였다.

“그렇게 부러우면 신도 관두지그래?”

김아진도, 최진성도 다 원래 모시던 신과의 연결을 끊어 낸 후 내 신도가 됐다.

내 말에 이은희가 손에 있는 아스트라를 만지작거리며 피식 웃었다.

“그게 또 쉽지 않네. 죽을 뻔한 나를 도와준 건 네가 아니라 그 신이었으니까.”

“…….”

“차라리 그때 네가 나타났으면 모를까.”

“됐어, 나도 농담으로 한 말이니까.”

이은희에게 활을 물어다 준 건 정체를 알 수 없는 슬라임이라고 했다.

이은희가 아직도 신의 존재를 모르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망할, 사서 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너무 버려두는 거 아니냐고.

처음으로 ‘나’에 대해서 불만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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