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했더니 신이 되었다-667화 (667/760)

667화 판도라의 상자 (3)

최수현이 다 마신 커피를 탈탈 털고는 혀를 차더니 휴대폰을 만졌다.

“뭐 해요?”

“커피 하나 더 시켰다.”

“심부름 너무 시키는 거 아니에요? 저번엔 택배도 한 상자 시키더만.”

은영 누나에게 택배 중독이 어쩌고 떠들었던 주제에, 정작 최수현 본인이 쇼핑 중독자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많이 시키고 있었다.

“야! 그럼 어떻게 하냐! 갇혀서 아무것도 못 하는데. 난 섬세한 인간이라 아무 샴푸나 쓰면 안 된다고.”

“어련하시겠어요. 아, 그럼 저도 시켜 줘요.”

“네가 문자 보내.”

“달달한 걸로.”

휴대폰을 만지던 최수현이 한 번 더 혀를 차면서 내 음료수까지 같이 주문했다.

“형, 근데 커피 그렇게 마시면 병나요.”

“내 위장은 강철이라 괜찮아.”

“그렇게 말하는 인간이 꼭 나중에 고생한다던데.”

“됐고, 그래서 나 던전에서 실종된 게 리벨리 제약 폭로 사건 때문에 그런 거냐고 물어봤었냐?”

“예.”

“맞아.”

여기까지 온 마당에, 최수현은 더 이상 숨길 마음이 없다며 대답했다.

살아 돌아온 최수현은 곧바로 길드를 탈퇴하고 헌터 은퇴 선언을 한 후 협회에 들어갔다.

‘협회에 들어간 건, 신변 보호 목적도 있었던 거네.’

최수현은 절대 자신의 입으로 그 말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

헌터였던 시절의 최수현도 편법을 써서 던전에 가둬 버린 놈들이었다.

최수현이 실종된 기간 동안 전 협회장이 사라지고, 박진우가 협회장이 되고, 리벨리 제약이 미국으로 쫓겨나다시피 했으니 이 전처럼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다.

최수현이 무소속 각성자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솔직히 그 부분이 가장 이해가 되지 않았다.

헌터를 은퇴하지 않았더라면, 협회에 신변 보호를 요청할 필요조차 없었을 거였다.

신변 보호를 요청하기 위해 헌터를 은퇴했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최수현도 자신의 상황에서 그게 악수(惡手)라는 걸 모르지 않을 거였다.

알면서도 그런 선택을 했다는 건, 필시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밖에 해석이 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유지한도 그런 말을 하긴 했지.’

자신만 탑에 대해서 알 거라 생각하지 말라면서 언급한 사람이 최수현이었다.

‘설마, 수현이 형…….’

실종된 기간 탑에 다녀왔나?

그런 일이 가능한가?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뭘 그렇게 생각하냐?”

“그냥요. 형이 죽다 돌아왔어도 신도를 그만두고 헌터를 은퇴하는 게 나쁜 선택이라는 걸 알고 있을 텐데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가 궁금해서요. 제가 아는 형이라면 그런 사람은 아니거든요.”

효율을 중시하는 최수현은 손해 보는 걸 그 누구보다 싫어했다.

최수현이 뒤쪽으로 손을 흔들었다.

심부름하러 다녀온 직원이 커피와 음료수를 테이블에 올려 주었다.

뚜껑을 열어 다시 커피를 홀짝인 최수현이 꼬았던 다리를 풀었다.

“순서가 틀렸어.”

“네? 그럼 진짜 협회의 보호를 받기 위해 헌터를 은퇴했다는…….”

“그게 아니라. 그걸 고민하기 전에 신도를 관둔 거다. 헌터 은퇴야 이쪽 사정 이야기고.”

“오, 무슨 일이 있었는데요?’

나는 최수현이 멋대로 시킨 자바칩 프라페를 마셨다.

“옛날이야기는 여기까지.”

“아니, 지난번에도 그러더니 왜 그래요?”

“누가 말 안 해 준다고 그랬냐? 할 얘기가 너무 많으니까 다음으로 넘어가자고 말한 거지. 내가 장담하는데 그 얘기 시작하면 자료 하나도 못 보고 나간다.”

“또 무슨 대하소설을 쓰려고……. 하아, 알았어요.”

하긴 최수현이 실종된 게 3년 전이니, 3년 동안 있었던 일들을 풀려면 확실히 이야기가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최수현의 말발이 좀 좋아.

저 말이 농담이 아니라는 게 더 소름 돋는 점이었다.

“그 얘긴 이번 일 어느 정도 끝나면 말해 줄 테니까.”

“약속한 거예요.”

최수현이 그렇게 하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판도라 파일(최수현이 첫날 그렇게 말한 이후 우리는 대충 이 파일을 그렇게 부르고 있다.)에는 최수현의 비밀만 있는 건 아니었다.

내가 최수현 너머로 고개를 살짝 들었다.

하품하며 회의실에서 나온 초아와 이도혁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몸을 튼 최수현이 손을 흔들었다.

“앉아도 됩니까?”

“의자만 가지고 와.”

누가 보면 아주 집주인인 줄 알겠다.

최수현의 허락에 이도혁이 초아의 의자까지 같이 끌고 왔다.

“무슨 얘기 하고 있었어요?”

“파일 얘기 말고 없었죠. 아, 이도혁 씨 출신에 대해 말하고 있었어요.”

내가 최수현을 흘끗 보며 대화의 주제를 바꿨다.

“윽, 그거 벌써 보신 겁니까?”

“다들 반응이 한결같아서 좋네. 착실하게 이력 쌓은 줄 알았던 헌터가 알고 봤더니 한국 협회 정보부 소속의 중화 길드 정보원이었다니.”

“그 얘기는…….”

“여기선 해도 되잖아.”

“그, 그렇긴 합니다만. 이게 다른 사람이 알아도 되는 건지 아닌 건지 잘…….”

“여기 있는 사람들 정도는 괜찮을 거라 판단했으니까 넣어 놨을 거다.”

듣고 있던 최수현이 쿠키를 반 뜯어 입에 넣었다.

“왜 그렇게 생각해요?”

“난 우리에게 준 파일도 다 믿지 않아. 거짓말이 있다는 게 아니라.”

“은폐하거나 숨겼을 가능성을 말하는 거지? 수현아.”

“예, 아마 정말 민감하다 싶은 자료들을 정리했을 겁니다.”

“저희가 본 것도 엄청난데 그 이상이 있다니 좀 상상이 안 됩니다. 하아.”

이도혁이 이게 뭔 상황인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최수현의 손가락이 대각선에 앉은 이도혁에게 닿았다.

“그러니 넌 대충 협회가 뭘 하고 싶은 건지 처음부터 눈치챘을 거야. 협회 밥 먹고 사는 녀석들 눈치는 보통이 아니니까.”

중화 길드가 아닌 이상, 헌터 신분으로 협회 공무원이나 군인이 된다는 건 일반 헌터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애국심이 있어야만 가능했다.

대형 길드에서 충분한 보상과 명예를 누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런 선택을 한 거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협회 소속의 헌터들은 겉으로 드러나지도 않았다.

다른 S급 헌터들처럼 이름이 알려지는 순간에 오는 디메리트가 너무 컸다.

비밀리에 키워지거나, 신분 보호를 위해 헌터 네트워크를 조작하기도 했다.

최수현이 협회에 들어가서 한직을 맡은 건, 무소속 상태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큰일을 맡기에는 너무 유명해져 있어서인 것도 있었다.

“다들 짐작은 하셨겠지만……. 한국 협회는 중국과 전쟁이 목표인 거로 보입니다.”

“뭐, 그렇겠지?”

최수현이 그럴 줄 알았다며 혀를 찼다.

국내 정·재계 비리라고 쓰여 있어도 자료 대부분이 중화 길드와 연관이 있다는 건 조금만 자료를 읽어 보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사견을 좀 보태자면 그건 시작일 수도 있을 겁니다. 저도 그 이상의 수는 짐작하기 힘들지만, 최악의 경우에는 그…….”

“세계 대전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말이죠?”

초아도 비슷하게 생각했는지 머뭇거리는 이도혁의 말에 덧붙였다.

세계 대전.

이전에도 인류는 3번의 세계 대전을 경험했다.

하지만 퍼스트 게이트 이후, 이전의 세계 대전은 거의 없는 전쟁 취급을 하고 있었다.

퍼스트 게이트 이후에는 차수를 늘리는 것 자체에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단 한 번의 전쟁이면 모든 게 끝날 테니 말이다.

“어디까지나 최악까지 갈 경우입니다. 뭐가 됐든 중화 길드의 행태는 내버려 둘 수 없습니다.”

“도혁 씨는 중화 길드에서 장교를 했다고 본 거 같은데 맞나요?”

그래도 기밀 자료가 맞긴 한 모양인지, 이도혁의 구체적인 직급이나 임무에 대해서는 대략적으로만 나와 있었다.

물론, 그 대략이라는 것도 수백 페이지가 넘지만 말이다.

“아, 정확하게 말하자면 장교는 아니고, 장교 보좌역이긴 했습니다.”

중화 길드 역시 반쯤은 군 조직이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실력 우선주의가 강한 곳이었다.

일부 헌터와 계급을 제외하면 젊은 사람들이 빠르게 치고 올라가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보좌역?”

“예. 중화 길드 장교 시험은 상당히 까다롭습니다. 엄청난 충성심을 보여야 하는 시험들이 대부분인 데다가, 장교가 되면 중화 길드 내에서 지정해 준 신분으로 세탁을 해야 합니다.”

“하긴, 북한에서 만난 군인 놈들도 하나같이 제정신이 아니더라.”

최수현이 공감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신분 세탁을 한 이후에는 몇 배로 감시가 강화됩니다. 특히 장교의 이적행위(利敵行爲)는 최소 사형인 중죄인 데다가 고발자는 이유 불문하고 특진 대상입니다. 간첩 특진은 대우가 상당한 편이라 그것만 전문적으로 잡는 간부나 군인도 있습니다.”

“최소가 사형이면 대체 뭘 더 한다는 거냐?”

“연좌제(連坐制)입니다. 가족은 물론 부대 자체가 몰살되기도 합니다.”

호의로 밥 한번 잘못 먹었다가 죽기도 한다니, 장교급부터는 살얼음판을 걷는 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몇 번인가 장교 시험에 도전했다가 떨어진 척을 하긴 했습니다만, 비밀 평가도 포함이 되는 편이라 계속 시험을 보지 않거나 시험만 보면 아슬아슬하게 떨어지는 경우 간첩 의심을 받기도 합니다.”

장교가 되면 더 많은 정보를 빼돌릴 수 있지만, 그만큼 리스크가 너무 크기에 대부분은 이도혁의 선에서 멈춘다고 했다.

그나마도 이도혁만큼 걸리지 않고 올라가는 간첩의 숫자도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었다.

“그래, 그쪽은 딱 봐도 성실해 보이니까. 아, 편하게 말해도 되는 거지?”

“나이는 제가 더 많은 거 같아 보입니다만.”

내 반말에 이도혁이 당황스러운 듯 최수현을 바라봤다.

“야, 내버려 둬. 저놈 저거 박시우랑 진우 형님에게도 반말하는 놈이야.”

“진우……. 협회장님이요? 아, 그럼 그냥 편히 하시죠.”

“형 그렇게 말하면 내가 뭐가 돼요?”

“사실이잖아. 말 더럽게 안 듣는 놈.”

“크흠, 어쨌든 그게 제가 한국으로 복귀하고 헌터가 된 이유입니다.”

“한국인, 아니지 협회 출신 비밀 요원 중에서 중화 길드의 장교까지 올라간 사람이 있어?”

비밀 요원으로 잠입하는 헌터들은 주로 중국과 한 몸이나 마찬가지이고, 신분 세탁이 쉬운 동남아 쪽으로 빠진 후 본토에 진출하는 형식을 사용했다.

중화 길드에서는 헌터들을 총 3계 계급으로 분류한다.

3계는 중화 연맹이 아닌 각성자들.

한국이나 미국, EU 각성자들로 이런 사람들은 일부 특수 귀화를 제외하면 장교가 아니더라도 엄청난 감시 속에 살아야 했다.

이런 국적의 출신의 각성자들은 정상적일 경우 중화 길드에 올 이유가 없기도 하니 대부분 특수 귀화나 국가를 배신한 헌터들이 많았다.

2계는 중화 연맹 출신 국적의 자들로 동남아나 아프리카, 남미의 일부 국가라고 한다.

중화 길드의 일반 병사로 지원하는 경우가 많으며 장교가 돼도 일정 수준까지는 올라갈 수 있었다.

일부 소외된 지방 지역 출신의 각성자와 대부분의 중국 인민들이 포함된다.

1계는 베이징을 포함해 몇 개 성 출신에, 집안의 이력 등 여러 가지를 보는 특권층이었다.

단순히 호기심에 물어본 질문에 이도혁이 주변을 보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기본적으로 협회를 제외한 해외 요원들은 점조직 형태로 운영이 돼서 저도 자세히는 모릅니다만, 소문에 의하면 딱 한 명. 1계 출신의 고위 간부가 있다 들었습니다. 저도 중국에서 돌아올 때 그의 도움을 받았습니다만, 어떤 사람인지. 누구인지는 여전히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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