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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했더니 신이 되었다-676화 (676/760)

676화 압수 수색 (4)

채설하는 한동안 테이블에 놓여 있는 물을 홀짝였다.

최수현이 말하니까 뒤통수가 아니라 사기를 치자 말하는 것같이 들리는 건 기분 탓일까.

최수현은 이미 소테르 신의 신도가 되기 전에 자신이 모시던 신인, 세르비아에 사기를 치고 나온 전적이 있었다.

신은 그렇다 쳐도 같은 세르비아 신도들에게 있어 최수현은 원수나 다름없었다.

물론, 사기를 쳤다는 사실을 아는 자도 적을뿐더러 그걸 알고도 최수현을 싫어하는 헌터들은 대부분 청월 길드 내에서도 극소수 정통파 헌터들이 대부분이었다.

채설하를 포함한 일반 헌터들은 여전히 최수현이 청월 길드를 나왔다는 것에만 충격을 받을 뿐, 정작 최수현에게는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게다가 지금의 최수현은 청월 길드에서 활동할 때보다 더 잘나가고 있었다.

아리아 길드의 파트너십 헌터로 일하고 있다고 해도 박시우가 그렇게 간섭을 많이 하는 것 같아 보이지도 않았다.

길드 대표란 자리는 생각보다 할 일은 물론 신경 써야 하는 일들이 많았다.

청월 길드 대표는 전통적으로 다른 길드 대표보다 얼굴이 잘 알려진 편은 아니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길드 대표의 의무들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이기적이긴 해도 책임 없는 자유만큼 가장 좋은 건 없었다.

청월 길드 신도였던 최수현을 본 건 아니지만, 열도를 경험한 채설하는 최수현이 그때보다 강해지면 강해졌지, 약해지진 않았다 판단했다.

“차라리 그냥 길드 대표 자리에 앉는 건 어때요? 임 대표님도 세르비아 신도도 아니잖아요.”

원래라면 임시로 임우현이 몇 년간 길드 대표를 하고, 세르비아 신도였던 최수현이 길드 대표 자리를 물려받을 계획이었다.

계획이 틀어졌다는 말은 부정할 수 없지만, 최수현의 공백이 길어진 만큼 임우현의 입지도 상당히 강해졌다.

지금 돌아온다면 다소 불만이 있긴 할지라도 충분히 잠재울 수 있었다.

아니, 지금이야말로 최수현이 청월 길드로 복귀할 수 있는 절호의 타이밍이라 느꼈다.

그러나 채설하의 말에 최수현은 오히려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안타깝게도 나는 못 돌아가, 그럴 마음이 없다.”

“세르비아 신도가 되라는 것도 아닌데, 그거 고집이에요.”

“그러니까 네가 어리다는 거야.”

“뭐, 라구요?”

“이쯤 되면 못 바꿔. 돌이킬 마음도 없고. 그냥 그런 줄만 알아.”

단호해 보이는 최수현의 말투에 채설하는 입을 다물었다.

최수현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르지만, 최수현이 아닌 누구라도 저런 표정을 지으면 말이 통하지 않는상황이라는 것 즈음은 눈치챌 수 있었다.

채설하가 스테이크를 썰어 입에 넣은 후 말했다.

“수현 오빠가 한 제안의 가장 큰 문제점이 뭔 줄 아세요?”

“뭔데?”

“일단 제가 길드 대표가 될 만한 역량이 안 되는 거요.”

채설하가 송은영에게 가지는 감정은 단순히 밉다고 하기보다는 질투와 애증에 더 가까웠다.

인정하고 싶진 않아도 송은영은 대단했고, 동시에 또 다른 롤 모델이기도 했다.

길드 대표가 되려면 못해도 그 정도 혹은 그 이상은 되어야 했다.

자신이 약하다는 걸 남 앞에서 인정하긴 쉽지 않았다.

그나마 존경했던 사람이니까, 최수현이니까 이 정도로 용기를 내서 말할 수 있었다.

나이프로 고기를 썰던 최수현이 손을 살짝 들어 올렸다.

“그거야 당연한 거고.”

“네?”

“네 나이가 몇인데 청월 길드 대표를 맡아. 네가 길드 대표하려면 구멍가게 길드 하나 만드는 거 말고는 없을 거다.”

무게 잡길래 무슨 소릴 하나 싶었던 최수현은 뭘 그렇게 당연한 소리를 당연하게 하냐며 웃음을 터트렸다.

“지금 청월 길드 사정은 잘 모르겠고, 당시 임우현 그 인간이 길드 대표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가 뭔 줄 알아? 길드 대표가 아니었거든.”

“네?”

“후원자 뭐 이런 걸로 해서 내 대리로 들어가 있었어. 너도 그 자료 봤으니까 대충 내 집안 사정은 알 거 아니야.”

최수현의 어머니는 당대에 꽤 유명한 톱스타 배우였다고 했다.

최수현이 자신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살짝 훑었다.

“불행 중 다행히도 그 집안보다는 어머니를 더 닮았고.”

집안의 여자들은 어머니를 닮은 최수현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치가 떨린다며 소리를 질러 댔지만 말이다.

“길드와 일반 기업 경영이 분리되어 있긴 해도 각성자들은 예외인 편이거든.”

“아무래도 그건 그거대로 형평성에 어긋나니까요.”

길드는 반드시 각성자가 운영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는데, 뛰어난 실력을 갖췄음에도 기업가 집안의 각성자라는 이유 하나라는 이유만으로 길드 경영진에 오르지 못한다는 건 또 다른 차별이었다.

정말 다행히도 길드는 세습제가 아닌 실력제였다.

작은 길드라면 모를까, 영향력이 있는 길드 대표들은 대부분 그쪽과는 크게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돈이 많다고 해서 올라갈 수 있는 것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의미였다.

최수현의 설명에 채설하가 입가를 닦으며 나이프와 포크를 내려놓았다.

“리벨리 제약에서는 단 한 명도 각성자가 나오지 않았어요. 어쩌면 그래서 더 호문쿨루스 산업에 매달렸던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생각해 보니 오빠는 최연소 각성자였잖아요.”

최수현이 그 집안에 들어간 건 각성자라는 게 밝혀진 이후였다.

이 모든 이야기가 맞아떨어지려면 딱 한 가지 조건이 더 있어야 했다.

“임 대표님. 리벨리 그룹 사람이었군요.”

“리벨리 제약을 미국으로 도망칠 수 있게 해 주고, 작은 형을 죽인 범인이 누구라고 생각해?”

청월 길드의 대표 자리는 처음부터 그룹 사람들이 오랫동안 손을 써서 만든 피 묻은 왕좌나 마찬가지였다.

“헌터 업계고 정·재계고 전부 다 가지고 싶었던 욕심인 거다. 그러니 나에게 있어 그 자리는 신도니 뭐니 하는 문제를 떠나 돌아갈 필요 자체가 없는 자리다.”

임우현이 길드 대표가 될 수 있었던 건 당시 세르비아 신도로서 천재라 불리던 최수현이 있기 때문이었다.

비공식적인 임우현의 직급은 어디까지나 길드 대표 대리에 지나지 않았다.

디저트까지 먹은 후 채설하는 최수현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반나절 만에 너무 많은 이야기를 들어서 그런지 머리가 복잡했다.

“본사 들를 거예요?”

“당연하지! 그럼 뭐 하러 그 고생을 해서 여기까지 내려왔는데?”

최수현이 빨리 가자며 채설하를 재촉했다.

ACKO 본사로 향하고 있던 최수현이 별안간 걸음을 살짝 멈추며 휴대폰을 봤다.

“왜 그러세요?”

최수현이 휴대폰을 보라는 듯 손가락질했다.

채설하가 휴대폰을 꺼내 단톡방을 확인했다.

“날짜 결정된 모양이네요.”

채설하가 말하는 날짜는 최한 길드의 압수 수색 날짜였다.

“그래, 목요일 두 시. 일 보고 서울로 올라가면 딱 맞겠네.”

“네? 오늘 올라가는 거 아니었어요?”

“아닌데?”

“……그런 건 미리 말 좀 해 주세요.”

당연히 당일치기인 줄 알았던 채설하가 살짝 당황했다.

당일치기가 아니라면 이렇게 불편하게 입고 나왔을 리도 없었다.

“아, 미안. 말한 줄 알았다.”

채설하는 아주 조금 송은영이 가끔 최수현의 욕을 하는 이유에 공감할 수 있을 거 같았다.

뭐랄까 이런 부분에 있어서 최수현은 굉장히 제멋대로였다.

“일 없지?”

“최한 길드 때문인지 요즘은 한가해요.”

“앞으로 바빠질 텐데 휴가 왔다고 생각해.”

“진짜, 어디 가서 그런 말 함부로 하지 마세요.”

“뭐?”

“됐어요!”

채설하가 신경질을 내며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갔다.

채설하는 최수현이 본사까지 내려와 뭘 하려는지 궁금했다.

뭔가 엄청난 걸 꾸미고 있는 거 아닌가 싶었던 예상과 다르게 최수현은 평범하게 사격장 대여를 신청했다.

ACKO 코리아에는 마탄이나 총기를 구매나 수리할 수 있는 곳은 물론 국내에서 가장 좋은 총기 훈련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물론, 웬만큼 규모가 큰 길드에도 자체 훈련 시설은 가지고 있지만, 마탄을 사용하는 헌터들의 전문 훈련장은 아니라 어느 정도 한계가 있었다.

“진짜 훈련하러 왔어요?”

“그럼 뭐 하러 여기 왔겠냐? 내일까지 풀로 빌린 거니까 편하게 써.”

“하하.”

채설하는 정말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다 나왔다.

사람이라는 건 거리를 두고 볼 때 가장 아름다워 보인다더니 정말인 모양이었다.

이미 반쯤 포기한 채설하가 넓은 사격장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채설하도 몇 번인가 ACKO의 훈련장에 방문하고는 했지만, 이렇게 단독으로 사용하는 건 사실상 처음이었다.

채설하는 뒤쪽에 놓여 있는 데스크를 바라봤다.

술이나 과자, 과일 같은 건 물론 머리끈이나 신발 같은 것들까지 잘 정리가 되어 있었다.

“여기 내일까지 빌렸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래.”

“엄청 비쌀 거 같은데요.”

최수현이 손가락 하나를 들어 올리더니 가볍게 까닥였다.

“천만 원이요?”

“1억.”

“대박.”

가방을 내려놓고 신발을 갈아 신은 채설하가 황당한 얼굴로 최수현을 바라봤다.

“나도 요즘은 자주 안 오긴 하는데, 한가할 때마다 한 번씩 와. 시설도 시설인데 돈값은 하거든.”

재킷을 대충 벗어 소파에 던진 최수현이 늘어진 총기를 둘러봤다.

“제가 맞게 이해한지 모르겠는데요. 그러니까 수현 오빠가 절 길드 대표로 만들어 주겠다는 거죠?”

“그래. 난 한 발을 쏴도 확실한 한 방을 원해.”

몸을 튼 최수현이 과녁을 향해 총구를 당겼다.

날아간 마탄이 사람 형태의 과녁의 심장에 닿았다.

“구체적으로 말해 주세요.”

“관심이 있긴 한가 보지?”

“일단 오빠랑 저랑 이해관계가 일치한다는 건 확실히 알겠어요. 그리고 길드 대표 자리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흉내라도 내려면 지금이 상태로는 안 된다는 건 알고 있어요. 전 진심으로 강해지고 싶어요.”

채설하는 주먹을 꽉 쥐며 최수현을 바라봤다.

최수현은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최고의 암살자라 불리는 임우현의 사실상 유일한 제자나 마찬가지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같은 마탄을 사용하는 헌터로서 최수현에게 한 수 배울 수 있다면 그것만한 영광은 없었다.

“너 정통파 헌터들 만났지?”

“네.”

의도한 건 아니긴 하지만, 마력 간섭탄을 사용하고 열도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채설하는 내세우기 딱 좋은 인물이었다.

비록 초월자가 아니긴 해도, 어린 나이인 걸 고려하면 충분히 염두에 둘 법하다고 판단한 게 분명해 보였다.

“아마 그놈들이 시키는 대로 해도 길드 대표 자리까지는 올라갈 수 있을걸? 한 10년은 걸리겠지만.”

최수현이 계속해서 마탄을 쏘며 중얼거렸다.

최수현의 마탄은 정조준한다고 하기보단 그냥 자기가 쏘고 싶은 곳에 마구잡이로 쏜다는 쪽에 더 가까워 보였다.

맞히고 싶은 곳에 맞힐 수 있는 것도 재능이었다.

“대표가 된다 해도 허수아비일 거다. 그거라도 상관없다면 솔직히 말리진 않아.”

“말리진 않겠지만 오빠가 제안하는 건 다른 생각이 있어서겠죠.”

“나한테 붙어. 그러면 2년.”

총을 내려놓은 최수현이 몸을 살짝 틀었다.

“그 안에 청월 길드 대표 이사에 네 이름 걸어 주지. 넌 스물넷에 대한민국 1위 길드 대표가 되는 거야. 그것도 최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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