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0화 스승 vs 제자 (4)
은영 누나가 멀어진 최수현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내가 쓰러진 지세은을 데리고 가려 하자 누나가 다가왔다.
“내가 데리고 갈게.”
“그러고 죽이려는 거 아니지?”
“너까지 나를 못 믿는 거야? 실망이야.”
“하하.”
왠지 모르게 은영 누나도 점점 최수현이랑 닮아 가는 것 같아서 말이다.
은영 누나한테 이 말 했다가는 아무리 나라 해도 한 대 맞을 것 같았다.
‘하긴 내가 데리고 가면 그림이 좀 이상하긴 하지?’
아무리 의식을 잃었다고 해도 나보다야 은영 누나가 데리고 가는 게 더 나을 거 같았다.
내가 순순히 물러나자 누나가 의식이 없는 지세은을 안았다.
“잠깐, 누나? 복도는 이쪽…….”
내가 뒤쫓기도 전에 은영 누나가 지세은을 데리고 유리창에서 뛰어내렸다.
갑자기 억울해진 나는 아래로 뛰어내리는 은영 누나에게 말을 걸었다.
“미안, 한결아! 잠깐 빌릴게!”
“안 죽인다고 했잖아!”
“안 죽일 거야! 빌리는 거라고!”
“아니이이이!”
그 여자는 물건도 아니고, 죽이지 않는다는 거랑 빌리는 거랑 대체 무슨 차이야!
그거 봐 내가, 은영 누나랑 최수현이랑 다른 거 없다고 그랬잖아.
누나를 따라 아래로 뛰어내려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그때, 문이 부서지며 최한 길드 헌터들이 쳐들어왔다.
“대표님! 괜찮으십니까!”
“너 뭐 하는 놈이야!”
“잠깐, 저 녀석 설마 협회에 붙은…… 누구더라?”
“처음 보는 놈인데?”
“지금 그게 중요하냐고! 대표님 찾아, 대표님!”
방으로 뛰어들어 간 다른 헌터들이 지세은을 찾기 시작했다.
왠지 나는 별로 안중에 없는 것 같다고 생각해 펜트하우스를 나가려던 그때, 아니나 다를까 몇몇 헌터들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대표님은 어디 있지?”
“안 죽었어.”
“어디 있냐고.”
사내는 노골적으로 살기를 흘리며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하긴, 최한 길드가 지세은이 가장 유명하긴 하지만 그래도 대기업에 속하는 길드였다.
최한 길드에 소속되어 있는 초월자의 숫자도 적지 않다는 뜻이었다.
몸을 튼 나는 깨진 유리창 너머를 손가락질했다.
“뛰어내렸는데?”
“여기 70층이야. 장난하냐?”
“그녀라면 70층에서도 가뿐하지 않겠어?”
“그, 그거야 그렇긴 한데…… 어쨌든 네놈은 못 보낸다.”
그가 무기를 쥔 채 나를 노려봤다.
달리 방법이 없다고 판단한 나는 조용히 하늘검을 뽑아 들었다.
먹고 살기 힘드네! 진짜.
근데 우린 왜 이렇게 협동이 안 되냐?
탑에서 보니까 거 유지한이랑 다니는 유저들은 서로 죽이 잘 맞던데 말이다.
내 잘못인가?
* * *
점멸을 사용해 높이 뛰어오른 최수현이 마탄을 쏘았다.
동시에 바람을 가르고 딱 봐도 묵직해 보이는 탄환이 최수현의 앞까지 다가왔다.
점멸을 사용해 몸을 아래로 떨어트린 최수현이 거리 한가운데 있는 조형물 위로 떨어졌다.
“헐, 저거 최수현 아냐?”
“어디? 뭐야, 없잖아.”
“잘못 본 거 아냐?”
“아니야! 진짜 있었던 거 같은데……. 어디 갔지?”
지나가며 수군거리는 사람들을 뒤로한 채 최수현이 점멸을 사용하며 위로 뛰어올랐다.
몸을 튼 최수현이 쭉 보이는 건물 빌딩 사이로 총구를 당겼다.
다 똑같아 보이는 건물이었으나 최수현의 눈에는 아니었다.
유리창이 깨지며 호텔의 방이 보였고, 그 사이로 임우현의 실루엣이 스쳐 지나가듯 움직였다.
몸을 튼 최수현이 날아오는 마탄을 향해 여러 발의 총을 쏘았다.
하늘에서 마치 폭죽이 터지는 것 같은 굉음이 이어졌다.
‘이럴 때는 강한결이 부럽다니까.’
강한결은 최수현을 보며 저 거리가 보이냐며 감탄했지만, 정작 본인은 처음 임우현이 총구를 당긴 순간부터 정확하게 위치를 파악하고 있었다.
최수현이 보기에는 그쪽이 훨씬 더 대단해 보였다.
허공에 또 있는 최수현을 향해 붉은 마탄들이 쏟아졌다.
‘몇 번을 싸워도.’
실체가 없는 유령을 상대하는 기분이었다.
간신히 막아 내긴 했으나 정황상 최수현이 불리했다.
‘완전 시가지니까.’
솔직히 시가지라는 환경 자체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문제는 거리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최수현의 마탄은 일반인들에게도 피해가 간 데 비해 임우현이 쓰고 있는 저격용 마탄은 마력이 있는 것 외에는 모든 물질을 관통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간신히 마탄을 전부 막아 낸 최수현이 입 안에 고여 있는 피를 뱉어 냈다.
재킷 안쪽에 있는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
대충 통화 버튼을 누른 최수현이 이어폰으로 전화를 받았다.
─ 어이, 이만하면 물러나지?
전화를 건 상대가 누군지 확인할 필요도, 안부 인사를 할 이유도 없었다.
─ 오, 드디어 차단 풀었네!
─ 지금 그게 중요하냐고!
최수현은 통화하며 빌딩을 쭉 둘러봤다.
임우현의 위치를 파악한 최수현이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송은영이 임우현의 사주를 받고 지세은을 죽이러 왔다고 했을 때부터 이렇게 될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신경이 쓰이는 건 임우현이 왜 지세은을 죽이려 했냐였다.
청월 길드 대표의 권한으로?
‘아냐.’
최수현이 아는 임우현은 이유 없이 암살을 시도하는 녀석이 아니었다.
─ 지세은은 못 죽여! 이제 적당히 하라고!
─ 나한테 지세은을 죽여 달라 의뢰한 놈이 누군지 궁금하지 않냐?
─ 뭐?
─ 지금부터 두 시간 안에 나를 잡으면 알려 줄게. 싫으면 말고.
─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최수현이 어이가 없다며 중얼거렸다.
짜증이 나긴 하지만, 최한 길드 압수 수색만큼이나 신경이 쓰이는 게 임우현에게 암살을 사주한 놈이었다.
─ 그러고 보니 넌 술래잡기에서 날 이긴 적은 한 번도 없었지. 좀 늘었냐? 애송아.
─ 아셈타워 옥상.
─ 거긴 뛰어내린 지 오래고.
─ 너, 약속은 지켜라.
최수현이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으며 마탄을 꽉 쥐었다.
점멸을 사용해 이동하려던 그때 최수현의 밑으로 뭔가가 날아왔다.
최수현은 반사적으로 날아오는 것을 붙잡았다.
“이건 또 뭔…….”
위험한 것 같진 않아 보여서 잡았는데 방향을 보니 무조건 자신을 노리고 던진 게 분명해 보였다.
최수현에게 날아온 건 다름 아닌 육신환이었다.
대로변에 있는 사람들을 둘러본 최수현의 시선이 아래에 있는 유지한과 마주쳤다.
유지한이 내려오라는 듯 손가락을 까닥였다.
“저 자식이.”
최수현은 임우현이 있는 방향과 유지한을 번갈아 바라봤다.
마지못해 점멸을 사용한 최수현이 유지한의 앞으로 다가왔다.
“뭐냐?”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뭐 하고 있는 거지?”
“임우현이 지세은을 암살하려다가 실패했어. 그걸 쫓고 있었던 중이고.”
“임우현이라면 청월 길드의 대표?”
“그래, 그놈. 너 때문에 놓쳤잖아.”
최수현이 마탄을 갈아 끼우며 툴툴거렸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유지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탄에 대한 문외한이긴 하지만, 입과 행동이 따로 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놓쳤으면서 탄환은 열심히도 갈아 끼우는군.”
“형 바쁘다. 너랑 한가하게 대화할 시간이 없어요.”
“누가 형이냐?”
마탄을 전부 갈아 낀 최수현이 그걸 말이라고 하냐며 고개를 들었다.
“설마 너 나보다 나이가 많…… 은 건 아니지? 그럼 진짜 동안인 건데.”
“네놈보단 어리니까 걱정하지 마라.”
“그럼 형이지.”
유지한은 뭐 이런 녀석이 다 있나 싶은 얼굴로 최수현을 바라봤다.
유지한이 등을 돌리는 최수현을 붙잡았다.
“지세은은 죽은 거냐?”
“안 죽었어.”
강한결이랑 송은영이 보호하고 있고, 여차하면 아래쪽에 다른 헌터들도 있으니 섣불리 지세은을 죽이지는 못할 거였다.
“암살에 실패했는데 네가 그놈을 쫓는 이유는 뭐지?”
“너 오늘따라 말이 많다?”
“상황 보러 최한 길드로 향하던 중이었다. 사태 파악할 시간은 좀 주지?”
유지한이 진심으로 억울하다며 최수현을 바라봤다.
유지한도 성격 급하다는 소리 듣고 사는 편이지만, 최수현은 그런 유지한이 보기에도 성격이 급했다.
너무 과했다고 판단한 최수현이 총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네가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청월 길드 대표로 있는 임우현은 각성자 전문 청부살인업자다.”
“각성자면서 몬스터보다 사람 죽이는 전문가라는 뜻이군.”
“아마 죽인 몬스터보다 헌터의 숫자가 더 많을걸. 청월 길드 대표가 된 이후에는 그런 쪽으로 활동은 잘 하지 않는 거로 알고 있다만, 이유 없이 암살할 인간은 절대 아니다.”
“붙잡아서 누가 사주했는지 알려고 했던 건가?”
“글쎄다.”
최수현이 목덜미를 긁적이며 모호하게 대답했다.
세르비아 신도를 그만두고, 최수현 본인도 이런저런 일을 많이 겪긴 했지만, 솔직히 아직도 임우현을 상대로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 가늠이 잘 안 되었다.
만약 지세은을 암살을 시도한 각성자가 임우현이 아니었다면 유지한의 말이 맞았을지도 몰랐다.
최수현이 손목에 있는 시계를 보며 말했다.
“6시까지 자신을 잡으면 암살을 의뢰한 범인이 누군지 알려 주겠다고 했다.”
“그 말을 믿나?”
“믿어야지 별수 있겠냐. ……그리고 아마 빈말은 아닐 거다.”
“어째서지?”
“아, 거 궁금한 것도 많네! 그야 당연히 의뢰인 보호 때문이지! 다른 녀석들은 몰라도 임우현은 프로니까.”
“하긴, 그러니 청월 길드 대표 자리에까지 올라갔겠지.”
“거기에 대해선 사연이 좀 있긴 한데 어쨌든…….”
최수현이 은근슬쩍 유지한의 눈치를 봤다.
임우현을 쫓아야 하는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유지한의 말에 신경질을 내면서도 꿋꿋하게 대답해 준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유지한도 최수현이 이유 없이 자신의 질문에 순순히 대답해 줄 놈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잡기만 하면 되나?”
“그거 말고 다른 조건은 못 들었어.”
“그 말은 내가 끼어들어도 된다는 거겠군. 나도 관심이 있다. 지세은 암살을 시도한 배후.”
최수현의 말을 들어 보니, 임우현이라는 녀석은 아무래도 꽤 대단한 암살자 같아 보였다.
이거저거 다 빼고 청월 길드 대표에게 타 길드 대표의 암살을 의뢰한 것만 봐도 배후가 심상치 않은 녀석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붙잡으면 나도 들을 수 있는 거겠지?”
“야, 물론이지!”
최수현이 신이 난 듯 목소리를 높였다.
“근데 너 술래잡기 좀 하냐?”
“숨는 건 모르겠고, 잡는 건 좀 하는 편이다.”
유지한에게는 강한결과 똑같은 마력 탐지가 있었다.
거기에 곰돌로스인지, 이찬인지 하는 녀석의 해킹 실력도 상당한 편이었다.
유지한의 실력이야 어느 정도 검증이 됐으니 문제라고 할 것도 없었다.
“원하는 옵션이라도 있냐?”
“술래잡기하는데 뜬금없이 무슨 옵션 타령이야?”
최수현이 살짝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되묻자 유지한이 오토바이의 시동을 켰다.
“임우현인지 하는 녀석 죽이고 싶어 하는 거 같았는데 내가 잘못 본 건가 보군.”
“뭐만 하면 죽인데 아주. 그럴 수 있었음 내가 널 끌어들였겠냐? 여기서 임우현이랑 진심으로 싸웠다가는 어떻게 될 줄 알고.”
“그러니까.”
“아, 뭐!”
“죽이고 싶은 놈이 있는데 죽이지 못하면 엿이라도 먹어야지.”
유지한의 대답에 최수현은 진심으로 뭐 이런 놈이 다 있냐는 표정을 지었다.
내 적이 저런 소릴 했다면 죽이고 싶었을지도 모르지만, 문제는 그 또라이가 적이 아니라 같은 편이라는 거였다.
최수현이 고개를 돌려 한강을 바라봤다.
“흐흐, 야, 너 좀 맘에 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