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했더니 신이 되었다-697화 (697/760)

697화 우습게 보지 말라 이 말이야 (1)

차를 타고 선양시 도심에 도착했다.

군 관련 시설로 갈 줄 알았던 내 예상과 다르게 도착한 곳은 선양시 중앙에 있는 고급 호텔이었다.

“이쪽입니다.”

로비에 있는 카페로 들어가자, 미리 기다리고 있던 군인들이 경례했다.

─ 국외 파견을 갔다 온 군인들은 계급에 비해 높은 대우를 받는 편이다.

일부를 제외하면 주로 현장에서 뛰는 일이 많으므로 대체로 군 계급이 낮은 편이라 했다.

하지만 그만큼 실력 하나는 확실해서, 해외 파견을 다녀와 군사 학교 교관이 된 후 몇 년 안에 꽤 좋은 보직을 받아 승진하는 게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였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받자, 같이 차를 타고 왔던 사내가 말했다.

“간단하게 신분만 확인하면 됩니다.”

“그러지.”

나는 장성현이 준 휴대폰으로 QR 화면을 보여 줬다.

그거 말고도 무슨 몸에 기계 같은 걸 가져다 댔는데, 슬쩍 보니 신분이 바로 뜨는 걸 보아 생체 칩을 읽을 수 있는 기계 같아 보였다.

신분 확인이 끝나자, 휴대폰으로 또 다른 QR코드 하나가 전송되었다.

“열차의 출발 시각은 17시입니다. 그럼 이만.”

다시 경례한 사내들이 조용히 호텔을 나갔다.

호텔에서 늦은 점심을 먹은 후, 시간에 맞춰 열차역으로 향했다.

중국을 횡단하는 고속 열차인 모양인지 들어오는 모양새부터가 장난 아니었다.

나는 중화 길드에서 끊어 준 일등석 칸 앞으로 다가갔다.

‘여기도 안면 인식이냐고.’

안면 인식에, QR, 그리고 생체 칩 인식을 마치자 문이 열렸다.

꽤 넓어 보이는 열차 객실 안에는 이미 누군가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

다른 병사들과 다르게 고개를 돌려 나를 위아래로 훑는 모습이 딱 봐도 꽤 높으신 분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의 얼굴을 본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왜 이놈이 여기 있는 거야?’

육군 서부 전구 부정치의원 리중보 중장.

장성현의 말에 의하면 창사시의 마력 핵 기지와 관련된 가장 핵심 인물이라고 했다.

우리가 있는 선양시는 북부 전구의 구역으로 서부 전구 소속인 그가 여기까지 올 일이 거의 없었다.

‘개인적인 볼일인가? 장성현도 몰랐던 거 같은데.’

일등석 내부에 각성자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으나, 정확하게 누구인지 몰랐던 나로서는 살짝 당황스러운 만남이었다.

뭐, 덕분에 다음번에 만나면 쉽게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건 그거대로 운이 좋았다.

“전략지원부 제4국 소속의 진강 중위입니다.”

“그렇군. 앉게.”

“감사합니다.”

나는 가방을 내려놓으며 리중보의 앞에 앉았다.

열차가 출발하고, 일등석의 문이 자동으로 닫혔다.

“편하게 있어도 되네.”

리중보의 말에 나는 가장 먼저 답답하기 그지없는 코트를 벗어 한쪽에 걸어 두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열차의 흔들림이 없고 조용했다.

먼저 말을 건 사람은 다름 아닌 리중보였다.

“전략지원부 4국에 선양시로 들어온 거면 북쪽이겠군.”

“예.”

“안 그래도 통일이니 뭐니 시끄러울 텐데 고생이 많았군. 그래도 대테러 부대에는 포함이 안 된 모양이야.”

장성현의 말에 의하면 종선 선언문이 발표되고, 남한에서 일어난 테러는 여의도 국회의사당이었으며 그 일로 인해 평양으로 올라가던 중 한 번 더 테러를 당했다고 했다.

다행히 북한 쪽 테러는 빠르게 진압됐으며 사상자나 부상자도 없었다.

북한 테러의 배후는 청량 길드의 각성자들이었는데, 이들은 사실상 중화 길드의 지령을 받고 있던 중화 길드의 하위 길드였다.

문제는 여의도 쪽인데, 당시 회의를 진행 중이던 국회의원들과 몇몇 보좌관들은 대회의실 밑에 있던 방공호에 들어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아마 리중보가 말하는 대테러 부대는 이번에 한국에서 일어난 테러를 말하는 거였다.

원래 4국은 일본과 한국을 집중적으로 관리하는 부서였는데, 일본이 망하면서 사실상 북한과 남한을 관리하는 부서로 변했다.

“예, 저는 귀국 명령을 받아 이번에 돌아오게 됐습니다.”

“어디로 가나?”

“창사시로 갑니다.”

“창사시라면……. 자네 엘리트였구만.”

“과찬이십니다.”

리중보는 마력 핵 기지가 있는 창사시 군사 도시 군 기지에서 주로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는 내가 창사시라는 말을 하자마자 군사 학교의 교관으로 간다는 걸 눈치챘다.

“혹시 어디로 가나?”

“아, 저는 백아학원으로 갑니다.”

“크흠, 백아학원이라면……. 내 아들이 있는 곳이겠군.”

“아들 말입니까?”

“그래, 이번에 군사 학교에 입학하게 됐거든.”

나는 적당히 그렇구나 하며 고개만 끄덕였다.

‘설마…….’

장성현이 나를 백아학원 쪽으로 발령을 낸 이유가 왠지 이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구체적인 계획은 도착하면 한 번 더 접선해 알려 주겠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그게 이거 같다는 느낌이 물씬 들었다.

“교관 생활을 한 이후에 재배치를 받을 텐데, 혹시 서부 전구는 관심이 없나?”

“제가 해외 생활을 오래 해서 말입니다. 관심이 없진 않지만 원한다고 해서 발령을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건 압니다. 당국의 뜻에 따라야죠.”

“크흠, 암. 그렇고말고. 내 추천 정도는 해 줄 수 있다 이 말이었네. 이것도 인연이니 말이지.”

“실례가 아니라면 아드님 성함이 어떻게 됩니까?”

“리오진이네.”

“백아학원에 가면 신경 좀 써 드리겠습니다.”

각성자라는 건 되고 싶어서 될 수 있는 게 아닌 데다가 중국도 이런 부분에서는 철저한 능력주의였다.

나는 리중보를 살짝 떠보기로 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신경을 쓰시는 겁니까?”

장성현과 리서영에게 들은 말이 맞다면, 중화 길드 엘리트층의 자식들은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 부모에게서 분리가 된다.

이후에는 한 달에 한 번밖에 볼 수가 없기에 그다지 부모와 자식 간의 연이 없다는 식으로 말했다.

하지만 리중보는 누가 봐도 교사인 나에게 아들 좀 신경 써 달라 청탁을 하는 느낌이었다.

“자네, 아직 자식이 없지?”

“예. 군사 학교를 졸업하고 얼마 되지 않아 계속 북한에 있어서 잘…….”

“내가 말이야, 자식이 13명이야.”

나는 테이블에 놓여 있는 물을 마시다가 뱉을 뻔했다.

그는 아무리 나이를 많이 쳐줘도 40대 초반 정도였다.

13명은 좀 너무한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중 진짜 호적에 올라간 놈은 딱 셋일세. 두 놈은 각성자는 아니지만, 머리가 좋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지. 그리고 나머지 하나가 막내아들인 리오진일세.”

“…….”

“자네처럼 당연하게 각성자로 태어난 자식들은 이해를 못 해. 그런데 가진 게 늘어나기 시작하면 알게 될 거다. 잃어버리는 것의 두려움이라는 걸 말이야.”

“아드님이 각성자로서 반드시 성공하셔야 한다는 거군요.”

“성공이라고 할 거까지 있나? 그냥 자네 정도만 해 줘도 감지덕지하지.”

“힘이 될 수 있는 게 있다면 언제든 도와드리겠습니다.”

나는 리중보와 간단하게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다행인지, 리중보는 나를 꽤 마음에 들어 하고 있는 그거처럼 보였다.

아무리 중화 길드의 간부라 해도 사관 학교 교관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한국도 부모가 잘나도, 자식 교육해 주거나 대학 보내 주는 사람에게 고개 숙이는 거랑 비슷해 보였다.

“고맙군. 덕분에 안심할 수 있겠어.”

리중보가 꽤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나는 논밖에 없는 열차의 유리창 너머를 바라봤다.

이렇게 이틀을 더 가야 한다니 어휴.

‘다른 사람들은 도착했으려나.’

솔직히 말해서 이제 은영 누나랑 유지한은 크게 걱정이 되지 않는다.

의외로 내가 가장 걱정하고 있는 건 다름 아닌 최수현이었다.

* * *

“죽고 싶어. 아니지, 죽여 줘.”

“2만 피트 상공 위다. 뛰어내릴 거라면 말리진 않지.”

전용기에 놓여 있는 테이블에 머리를 박던 최수현이 고개를 들었다.

송은영의 영혼석을 가지고 온 최수현은 여자의 몸이 됐다.

최수현의 영혼석을 챙긴 송은영은 남자로 변했다.

“너 말투 내가 아는 누구랑 닮은 거 같아서 굉장히 짜증이 나거든?”

“누구지?”

“박시우라고, 진우 형님 동생.”

“몇 번 본 적은 있는 거 같군.”

스쳐 지나가듯 본 박시우를 떠올린 장성현이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소파에 등을 기댄 최수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어깨 아래로 흘러내리는 긴 머리카락에, 가느다란 팔다리, 작고 아담하게 생긴 얼굴,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당한 키.

약간 기가 세 보이는 게 흠이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한눈에 봤을 때는 시선이 끌리는 외모였다.

“여자 거라면 여자 거라고 처음부터 말 좀 해 줬으면 좋았잖아.”

“내가 왜 그 말을 해 줘야 하지?”

애당초 씩씩거리며 영혼석을 바꾼 건 장성현이 아니라 최수현과 송은영이였다.

“그러니까 그 부분이! 박시우 같다고!”

“다른 사람이랑 비교하지 말아 줬으면 좋겠군. 비교당하는 내 입장이 썩 좋진 않아서 말이지.”

“아, 예.”

몸을 살짝 숙인 최수현이 테이블에 팔을 괸 채 장성현을 노려봤다.

불만이 가득하긴 했으나, 최수현은 의외로 여자의 몸에 금방 적응을 했다.

사실 최수현이 그럴 수밖에 없는 데는 그만한 사정이 있었다.

“그건 그렇고, 내가 왜 네 여자친구야! 생각하면 할수록 열 받네?”

장사시로 간다길래, 당연히 군사 학교 교관이나 일반 병사로 위장 취업 같은 걸 할 줄 알았다.

정작 교관으로 간 건 강한결이랑 유지한 둘뿐이었다.

“TO가 둘밖에 없는 걸 나한테 탓할 필요는 없지.”

“송은영……. 아니, 류 뭐지…….”

“류청선이다.”

“그래 걔는 경찰 부대 간부로 들어간다면서. 근데 나는 왜 네놈 여자친구 신세냐고!”

“원래라면 네가 갈 예정이었다만.”

“……그건 맞긴 하지. 아니, 그래도 그…… 그러니까 그게…….”

최수현이 팔짱을 낀 채 복잡한 심경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만약 영혼석을 바꾸지 않았더라면 장성현과 함께 전용기를 타고 가고 있는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 송은영이었을 거였다.

비록 가짜 신분이라 해도 송은영이 장성현의 여자친구 역을 한다고 생각하니 그건 또 그거대로 짜증이 났다.

그렇다고 여자가 된 것도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중화 길드 간부 중에서는 여자도 꽤 많다. 내가 다가가기 힘든 부분도 있으니, 그 부분은 네가 알아서 해라.”

“서부 전구 부사령관을 꾀라니 그게 지금 말이 되는 소리냐고. 대체 어느 남자친구가 여자친구한테 그딴 걸 부탁해!”

“못 본 척해 줄 테니 걱정할 필요는 없어.”

“그게 문제냐고! 아, 화병이 나. 그냥 다 죽여 버리고 싶다.”

최수현은 유지한이 짜증 날 때마다 ‘죽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심정을 절실히 공감하고 있었다.

소파에서 일어난 최수현은 술이 진열된 바 쪽을 기웃거렸다.

원래라면 같이 따라오는 수행원들도 있었으나, 장성현이 여자친구(?)와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이유로 쫓아내 버렸다고 했다.

최수현이 바에 놓여 있는 위스키 하나를 가지고 왔다.

“오, 이거 맥켈란 프리미엄 에디션 아니냐? 30년산짜리네. 술 취향 하나는 마음에 드는데?”

양주를 챙긴 최수현이 별생각 없이 등을 돌리자, 장성현이 서 있었다.

최수현을 위아래로 훑어본 장성현이 손끝으로 최수현의 턱을 들어 올렸다.

여자가 되어 버리면서 키가 줄어든 탓에, 최수현은 졸지에 장성현을 올려다봐야 하는 신세가 됐다.

“아무래도 여자가 되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겠군.”

“……야.”

최수현이 대리석으로 만든 바에 거칠게 양주병을 올려놓은 채 장성현의 멱살을 잡아당겼다.

“내가 중국 돌아가기 전에 네 면상 한 대는 꼭 치고 간다. 내가 진짜 한다면 하는 놈이거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