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7화 배틀 필드 (1)
내가 피를 토하자 근처에 있던 중화 길드 각성자들이 놀라서 달려왔다.
사실 피를 토하고 쓰러질 만큼은 아니긴 한데.
‘그래도 S급 던전을 혼자 클리어하고 나왔으니까.’
너무 멀쩡하게 나가면 그건 그거대로 수상하다 생각할 게 분명했다.
‘초월의 별도 얻었겠다, 이만하면 뭐.’
아직 아이템깡은 안 하긴 했으나, 그래도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내 뒤에 있던 게이트가 사라지고, 나는 의식을 잃은 척하며 눈을 감았다.
“어, 어라? 이거 진짜 클리어한 거야?”
“그런 거 같은데?”
“일단 보고…… 아니지, 중장님에게 연락해!”
내가 S급 던전을 클리어했다고 판단한 중화 길드 각성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나는 다시 리중보의 별장에서 깨어난 것처럼 행동했다.
소식을 들은 리중보가 방문을 열고 급하게 들어왔다.
“S급 던전을 크, 클리어했다는 게 사실인가?”
“예. 윽…… 무척 어렵긴 했지만요.”
“믿을 수 없군.”
“못 믿는 겁니까?”
“그런 게 아니라, 너무 놀라서 믿을 수 없다는 의미였네. ……몸은 괜찮은가?”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었습니다.”
“피를 많이 토했다고 들었네만. 그렇다니 다행이군.”
리중보가 같이 들어온 사내를 보더니 고개를 까닥였다.
밖으로 나간 그가 방 주변에 있는 각성자들을 전부 보냈다.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낸 리중보가 뭔가를 만졌다.
소리가 나진 않았으나, 방 안에 숨겨져 있던 카메라와 도청기가 꺼졌다.
내가 일어나려 하자 리중보가 재빨리 말했다.
“편하게 앉게. 부상자에게 서 있으라 할 순 없으니.”
“아, 감사합니다.”
고개를 살짝 숙인 나는 침대에 걸터앉은 채 리중보를 바라봤다.
“정말 이틀 안에 나왔군. 그래, 던전 내부는 어떻던가? 던전을 클리어했으면, 왜 두 번이나 실패했는지 알 거 아닌가.”
“……예. 뭐, 이유가 있긴 했습니다.”
보스인 상류도 상당히 강하긴 했지만, 만약 상류만 있었다면 이 정도는 아니었을 거였다.
상류도 상류였으나, 이호트가 만들어 낸 촉수들이 던전 내부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거였다.
“이, 이계의 괴물이라고? 그럼 그로스가 있었단 건가?”
“아마 그럴 겁니다.”
“……놈은 정말 특수한 경우에만 나타난다 들었는데.”
“다행히 그렇게 강한 놈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제가 살아 돌아온 거겠죠.”
“허허, 이계의 괴물을 쓰러트린 자가 겸손하군.”
A급 던전은 그렇다 쳐도 S급 던전은 초월자가 아닌 자가 단독으로 들어가기는 힘들었다.
원래의 진강 중위는 초월자긴 했으나, 초월자로서 실력이 월등하게 뛰어난 건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리중보가 헛기침을 하며 내 눈치를 살폈다.
“크흠, 조심스러울 수 있는 질문이지만 해도 괜찮겠나?”
“조심스러운 질문이라면?”
“자네와 관련된 이야기네.”
나는 일부러 카메라가 있는 장식을 유심히 바라봤다.
그런 내 의중을 눈치챈 리중보가 말했다.
“도청과 카메라는 전부 껐네. 근처에 사람도 없으니, 나와 네 대화를 듣는 자는 없을 걸세.”
“그럼 이 대화는 저와 중장님만의 비밀이겠군요.”
“허허, 그런 셈이 되겠군.”
“물어보실 거라 함은?”
“……자네, 보고를 보면 S급 던전을 혼자 들어갈 정도로 강하지 않다고 나와 있는데.”
“그건 지난번에 말씀드렸다시피…….”
리중보가 손을 들어내 말을 잘랐다.
아직 자신의 말이 끝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난 북한의 사정은 관심이 없네. 자네도 본국에 들어왔으니 그 일은 이제 신경 쓰지 않는 게 좋아.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자네의 실력이지.”
“실력이요?”
“혹시 2 초월 각성자인가?”
이래저래 뜸을 들이긴 했으나, 리중보가 저렇게 물어볼 거라는 건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냥은 안 넘어가 주지.’
나는 살짝 심호흡하며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실 리 중장님에게만 말씀을 드리자면, 직전이었습니다.”
“직전이었다는 건…….”
“최근 제가 A급 던전을 열심히 들어가지 않았습니까?”
내 말에 리중보가 뭔가를 깨달은 듯 입을 벌렸다.
리중보도 내가 왜 이렇게 블랙마켓을 통해 A급 던전을 열심히 돌았는지 궁금할 게 분명했다.
“그게, 이거 때문이었다는 거군.”
“예. 사실은 그렇습니다.”
“그럼 아직도 직전인가?”
“상류를 죽일 수 있었던 건 운이 좋았습니다.”
“2 초월 각성자가 됐다는 거군.”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거로 대답을 대신했다.
사실 장성현이 나에게 준 지령은 리중보를 공략하는 거였다.
서부 전구 부정치의원인 리중보는 서부 전구 내에서도 가장 세력이 작았다.
그도 그럴 게 같은 급의 부사령원이 진위 중장이기 때문이었다.
1계 출신의 3 초월 각성자인 진위 중장은 중화 길드 내에서 엘리트 중의 엘리트로 평가받았다.
장성현 다음으로 잘나가는 젊은 각성자라고 하니 말 다 한 셈이었다.
장성현과는 친구 사이로, 진위 중장은 장성현과 현설이 담당하기로 했다.
중화 길드 내에서의 세력이라는 건 결국 힘이었다.
아무리 정치 실력이 좋아도, 그에 걸맞은 힘이 없다면 의미가 없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였다.
둘 중 하나만 있으면 어느 정도까지는 올라갈 수 있어도 그 이상은 힘들었다.
가장 좋은 건 장성현이나 진위처럼 둘 다 가진 사람이면 되는 거였다.
‘그게 쉽나.’
당장 한국에서도 그 두 가지가 다 되는 사람을 꼽아 보자면 박시우 말고 떠오르는 인물이 없었다.
리중보는 자신의 부족한 힘을 대신해 줄 부하를 찾고 있는 게 분명했다.
“저도, 하나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뭐지?”
“리 중장님께서는 2 초월 각성자라고 들었는데…….”
“…….”
“사실이 아닌 모양이군요.”
이런 건 원래 뜸을 들일 필요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내 말에 리중보가 얼굴을 붉히며 헛기침을 했다.
“사실이네.”
“그럼 2 초월 각성자라는 소문은…… 대체 어디서 난 겁니까?”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소문이지. 지금과 같은 경우로.”
S급 던전을 클리어한 건 나지만, 보고서는 물론 내가 거기에 갔다는 사실조차 비밀에 부쳐질 예정이었다.
S급 던전을 여러 개 클리어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2 초월 각성자가 된 게 아니냐며 이야기가 부풀려진 거였다.
리중보도 손해가 아니라 판단한 모양인지 알면서 모르는 척하고 있었다.
만약 2 초월 각성자가 아니라는 게 탄로 나도, 소문일 뿐이니 자신은 2 초월 각성자라 말한 적이 없다 둘러대면 그만이었다.
생긴 거랑 다르게 확실히 머리를 쓸 줄 알았다.
“자네도 알다시피, 초월자라 해도 다 같은 초월자가 아니지 않은가.”
“그렇죠.”
1 초월 각성자라 해도 실력이 천차만별이지 않는가.
“그래도 초월자이시니 강하시겠죠.”
“그러면 뭐 하나?”
리중보가 한숨을 내쉬며 의자를 끌어와 내 앞에 앉았다.
“자네 같은 괴물이 버젓이 살아 있는데 말이야.”
그가 푸념하듯 중얼거렸다.
리중보도 한때 자신이 가장 강하다는 생각에 빠져 있었다고 했다.
그 오만함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딱 여기까지였다.
“나는 더 이상 위로 올라갈 수 없네. 나이를 먹고 있다는 걸, 모르고 살아왔던 거지.”
세대교체가 빠른 중화 길드에서 리중보는 꽤 오래 버티는 편이었다.
예전만 하진 못하지만 말이다.
“아래에서 치고 오는 녀석들을 보니 깨달았네, 이게 내 한계라는 걸.”
“……그런데도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건…… 여전히 욕심이 있으신 거 아닙니까?”
“이 사람아, 그게 없었으면 나는 이 자리에 있지도 않았네. ……자네도 위를 생각한다면 줄 하나쯤 있어도 괜찮지 않나?”
“저에게 이런 제안을 해도 되는 겁니까?”
“무슨 말…… 아, 그러고 보니 자네가 장 중장과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 있더군.”
“부정은 않겠습니다.”
“내 충고 하나 하지. 장 중장의 자리를 빼앗을 게 아니라면, 서부 전구로 오게. ……애당초 가질 수 있는 자리도 아니지만.”
리중장이 다소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내가 장성현을 이기지 못할 거라는 듯한 뉘앙스로 말한 건 알겠으나, 그게 왜 충고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게 왜 충고인 겁니까?”
“장 중장은 중앙 군사위원회 장윈리 상장의 아들일세.”
장윈이라면 중화 길드의 올 마스터 각성자였다.
내가 당황하자 리중보가 그럴 수 있다며 가볍게 웃었다.
“고위 간부 중에 알 만한 사람들은 대부분 알고 있는 내용이라 엄청난 비밀은 아니지만 말이야.”
“처음 들었습니다.”
“……그러니 장성현은 말도 안 되는 거물이지. 북한에서 조금 좋게 봐 줬다고 해서 어울려 볼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그렇게 죽은 놈들을 꽤 봐 왔거든.”
“그럼 리 중장님은 어떠십니까?”
“자네도 알다시피 난 장 중장만큼은 아니라서 말이지. 교관 임기가 끝나면 내 밑으로 오게. 왕첸성 상위에게 추천서를 써 달라고 하면 될 거야.”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앞으로 시간은 많으니까, 관계는 만들어 가기 나름이지 않는가? 교관 생활을 무사히 할 수 있도록 편의를 봐 주도록 하지.”
나는 여전히 고민해 보겠다며 고개를 살짝 숙이는 거로 대답을 대신했다.
리중보는 내 대답이 조금 못마땅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참, 그러고 보니 마력 핵 기지에 관심이 있다고 했나?”
“아, 예.”
“조만간 사람을 보낼 테니 만나게. 견학을 하는 거쯤이라면 상관없겠지.”
“감사합니다.”
“배웅은 필요 없으니 쉬게.”
나는 리중보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 * *
나는 다음 날 백아학원으로 복귀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출장을 갔다고 보고가 된 모양인지 내 부재를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복도에서 초아와 부딪힌 나는 종이와 함께 USB를 건네받았다.
수업이 끝난 후, 술을 마시러 나가자는 조치량의 제안을 거절한 후 방에 들어왔다.
며칠 동안 녹화 비디오를 따 놓은 데다가 시키는 대로 해킹을 마쳐 놓은 상태였다.
아마 영상에는 같은 장면만 반복해서 나갈 거였다.
‘너무 길면 걸리니까 자주 쓰진 말라고 했던가.’
의자에 앉은 나는 침대 밑에 뒀던 가방에서 대포폰을 꺼내 초아가 건넨 USB를 연결했다.
USB 파일 안에는 초아가 찍은 거로 추정되는 사진들이 있었다.
‘연구 시설 같은데…….’
마력 핵 기지인지는 정확하게 짐작을 할 수 없었다.
벽에 있는 사진 하나를 확대해 보니 익숙한 그림 하나가 나왔다.
중국의 최대 바이오 그룹이자 마도 공학 회사인 ‘판다’ 그룹의 로고였다.
‘뭐, 국영 기업이니까.’
그런데 바이오라고 적혀 있는 게 영 꺼림칙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아가 다녀온 곳은 서부에 있는 공업 단지였다.
시간상 동부 공업 단지에 가 보진 못한 것 같았다.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더니 순식간에 인기척이 사라졌다.
나는 휴대전화를 집어넣은 후 방문을 살짝 열었다.
문 앞에는 얇은 카드 한 장이 놓여 있었으며, 카드 뒤에는 날짜와 시간이 적혀 있었다.
아마도 리중보가 말한 마력 핵 기지의 견학 날짜인 것 같았다.
‘가 보면 알겠지.’
어디가 진짜 마력 핵 기지이고, 여기에 뭘 숨겨 놓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