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2화 Project No.0 (4)
초아는 고통을 느끼지 않는 몸이었다.
유지한도 그 사실을 모르진 않았으나, 그 원인을 정확하게 아는 건 아니었다.
“그건 네놈이랑도 관련이 있는 건가?”
초아가 자신의 가슴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맞아요. 저는, 리벨리 그룹에서 만든 유일한 성공체예요.”
세계 각국에서 비밀리에 진행되는 실험은 종류가 많았다.
극비인 만큼 그 방향성도 다양한 편이었다.
그중에서 모든 연구자들의 꿈이 바로 인공 각성자였다.
이미 인류는 퍼스트 게이트가 일어나기 전부터, 인간 복제에 관한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윤리적인 문제 때문에 하지 못했을 뿐.
그러나 퍼스트 게이트는 한동안 인류 전체에게 생존이 걸린 중대사가 되었고, 그 과정에서 윤리와 인권들이 다소 무시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럼 너는 호문클루스인 건가?”
“완벽한 호문클루스는 아녜요. 반쪽짜리, 모체가 있어요. 그러니까 복제 인간이라는 뜻이죠.”
모체를 중심으로 한 수백 구의 복제 인간 중 초아는 유일하게 각성한 성공체였다.
다만, 각성했음에도 연구실에서는 한동안 초아를 무소속 각성자라 알고 있었다.
초아가 고통을 느끼지 않는 건, 이 실험이 그럴 목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었다.
“병기가 고통을 느낄 필요는 없잖아요.”
각성자를 염두에 두고, 처음부터 설계된 완벽한 유전자.
물론, 부작용이 없진 않았다.
각성자로서 유일한 성공체인 그녀는 다른 실험체들과 비교한다면 실패작에 가까웠다.
성장을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잔인한 경험을 했군. 그래서 그 유전자 가위 기술이 있는지 확인하면 어떻게 할 생각이지?”
“리벨리 그룹이 미국으로 넘어가는 조건 중에는 호문클루스 관련 기술에 대해 절대 해외에 유출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있어요. 설령 관리 부실이라 할지라도 만약 그 기술이 넘어갔다고 한다면, 이건 계약 위반이에요.”
“그냥 시비를 걸고 싶은 게 아닌가 싶은데.”
유지한이 팔짱을 낀 채 정초아를 내려다봤다.
상식적으로 아무리 관리를 한다 해도 모든 기술이 유출되는 걸 전부 막을 순 없을 거다.
한국 정부에서 그걸 몰랐을 리도 없을 테고.
“선천성 무통각증 유전자 가위는 달라요. 리벨리 그룹 연구의 핵심 기술 중 하나였으니까요. ……그러니까 지한 씨가 저에게 협조하거나 아니면 마력 저장고 쪽으로 갔으면 좋겠어요.”
“교정 시설에 마력 저장고가 있다는 것도 확실한 정보는 아니잖아.”
“추측이긴 하지만, 아마 맞을 거예요.”
다른 목적이 있었다고 해도 놀고 있었던 건 절대 아니었다.
유지한이 마력 탐지를 넓게 사용했다.
‘확실히 네 말이 맞는 모양이군.’
희미하긴 하지만 멀리서 송은영의 마력이 느껴졌다.
이 거리에서 마력이 잡히려면 상당히 큰 기술을 사용해야만 가능한 걸 감안하면 싸움이 있긴 한 모양이었다.
초아가 유지한을 재촉했다.
“어떻게 하실 거예요?”
“강한결 그 자식은 어디 있는지 아나?”
“……글쎄요. 소란이 일어났으니까 사관 학교에만 있진 않을 거예요.”
“어딘가에 있을 텐데, 어디 있는지는 모른다는 거군.”
유지한이 쯧 하고 혀를 찼다.
초아의 반응은 볼 필요조차 없었다.
“네 얘길 들으니 나도 중화 길드 놈들의 인공 생명 공학에 관심이 생겼다.”
“제 목적은 리벨리 제약 관계자가 여기서 일하고 있는지와 그들의 신상을 확보하는 거예요.”
“살려서 데려갈 생각은 아니겠지?”
장성현과 함께 온 유저들은 모두 대륙 간 이동 스크롤을 가지고 있었다.
대륙 간 이동 스크롤을 리벨리 제약 관계자에게 주는 미친 짓을 할 게 아니라면, 그 자녀들을 데리고 한국까지 무사히 돌아가는 건 미친 짓이었다.
“설마요. 영상이나 음성 자료만 있으면 충분해요. 조작이라고 우겨 댈 수도 있지만…….”
“장성현이 중화 길드를 장악하면, 중국 측에서 보증을 서 줄 거다. 이 말이군.”
“맞아요.”
“사전에 이야기가 됐으니 움직인다는 건 알겠지만……. 그렇게 되면 산업 자체가 날아갈 텐데?”
“아마 완전히 날아가진 않겠죠. 타격은 입겠지만요.”
유지한도 장성현을 오래 본 건 아니지만, 유지한은 그가 딱히 한국 편이라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는 그저 자신의 목적과 이득을 위해서 행동하는 자였다.
원하는 걸 이루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국가? 충성? 그런 개념은 저런 사람들에게 없었다.
필요하다면 충성하고, 아니라면 언제든 등을 돌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이유 없이 그런 짓을 할 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만.”
이번에 피해를 입어야 하는 곳은 마력 저장고와 마력 핵 기지 정도면 충분했다.
인공 생명 공학 기지는 이른바 불똥을 맞은 셈이다.
마력 핵을 타격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내줘야 하는 부분인가? 하면 그것도 그것도 아니었다.
“그건…… 하아, 장성현이 장씨 가문이기 때문일 거예요.”
현재 중화 길드의 고위 간부 두 명 중 한 명은 장씨 가문이었다.
중화 길드의 설립자인 장위런은 물론, 현재 최소 실세라 불리는 장윈리 군사위원 상장까지 전부 장씨 가문이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었다.
혈통 기반 실력 우선주의의 폐해인 셈이다.
“아무리 그래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확실히 장씨 집안에서 다 해 먹는 건 좀 이상하군.”
장씨 집안 출신이라 해도, 각성자가 아니라면 기껏해야 명문가 집안의 비각성자로 대우받는 정도가 다였다.
오래된 가문이니 그만큼 직계는 물론 방계 사람들도 많을 거라는 생각은 들었으나, 그걸 감안해도 너무 과했다.
여기저기 씨를 뿌리고 다니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장씨 가문 내부에는 알케온의 신도가 있다고 해요. 분해의 신.”
“역시 그 자식이군.”
“알고 계셨어요? ……아는 사람이 많진 않은데.”
“장성현이 영혼석을 가지고 왔을 때부터 짐작했다. 알케온의 신도가 있을 거라 말이지.”
분해의 신.
그는 세상의 모든 것을 분해하고 재조립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자였다.
물론, 해당 신의 신도가 된다 해서 모두 그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신의 힘은 신도에게 영향을 미칠 뿐, 신의 힘 그 자체를 사용할 순 없었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사정이 달라 보였다.
“알케온의 신과 비슷한 힘을 가지거나, 혹은 화신체일 수도 있다고 말이지.”
“장씨 가문은 오랫동안 알케온 신도의 힘을 이용해서, 다른 각성자들의 힘이나 능력을 빼앗아 왔어요.”
알케온의 분해의 능력을 사용하면, 외형을 따로 분리할 수도, 그가 가진 스킬만을 가져오는 것도 가능했다.
말 그대로 그건 영혼의 분해니까.
분해의 조건만 충족한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그 중심에 중화 길드 인공 생명 공학 연구소가 있구요.”
“여기에 알케온의 신도가 있나?”
“거기까진 저도 모르겠어요.”
“장성현이 인공 생명 공학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군.”
유지한의 대답에 초아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중화 길드에 일찍 들어온 초아는 장성현과 개인적으로 이야기할 시간이 좀 있었는데, 초아가 호문클루스라는 걸 알고 난 이후 먼저 이런저런 말을 꺼냈다.
“제가 장성현에게 들은 건. 중화 길드 4개의 명문가 자식들은 3대 방계까지 태어난 순간부터 별개의 장소에서 교육받는다는 거예요.”
1계의 위에 존재하는 아이들.
어떤 이들은 그 4개의 가문을 묶어 0계라 불렀다.
세상 밖으로 나올 때까지 세상에 존재해서도 안 되며, 알려져서도 안 되는 자들이었다.
태어난 순간부터 엄청난 특권을 가진 그들이지만, 내부의 경쟁은 외부보다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각성자가 됐다고 해서 끝난 건 아니었다.
“각성자 중에서도 바깥에 나올 수 있는 건 극히 소수밖에 없어요. 4대 가문 출신의 각성자가 약하다는 건 인정할 수 없으니까요.”
다른 각성자들보다 월등히 강한 각성자가 되어야 한다.
군사 학교에서 성적이 뒤처지면, 낙오자라는 낙인과 함께 교정 시설에 가는 것처럼 4대 가문 출신도 마찬가지였다.
바깥보다 더 엄격한 기준을 요구하는 4대 가문의 각성자 평가는 절대적인 상대 평가였다.
정말 집안에서 압도적으로 강한 자가 나온다면 밑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강하든 말든 그를 위해 희생해야 하는 구조였다.
지금의 장씨 가문 입장에서 본다면 그건 장성현이었다.
장성현은 막내아들이었는데, 각성자 형제만 7명이 있었다고 했다.
각성자가 된 지 1년 만에 형제들을 전부 죽였다고 하니, 난놈이었다.
내부 경쟁에서 진 형제는 영혼이 분해되며, 승자에겐 그 힘의 일부를 가질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장성현은 그 자체, 그리고 중화 길드의 거대한 시스템에 의문을 가졌다고 했다.
“장성현은 물론 그의 형제들 또한 반쯤은 만들어진 자들이니까요.”
장씨 가문의 여자들은 절대 임신하지 않는다.
임신하는 시간조차도 낭비이며, 그렇게 낳은 아이가 각성자가 될지 아니면 낙오자가 될지 알 수가 없어서였다.
굳이 장씨 가문뿐만이 아니라 고위 간부 집안의 여자 중에선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내부 경쟁은 외부 경쟁과 비교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다.
그런데도 0계 출신의 아이들이 죽을 각오로 살았던 건, 바깥으로 나가는 순간 겪을 수 있는 모든 특권 때문이었다.
4대 가문에서는 잊을 만하면 아이들에게 자신들이 ‘선택받은 자’라는 사실을 거듭해서 상기시키는 행사를 진행한다.
장성현은 모두가 그 환상에 빠져 있을 때, 유일하게 자기 세계에 의문을 가졌던 사람이었다.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하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초아는 유지한에게 확보해야 할 사람들의 얼굴과 신상이 담겨 있는 휴대폰을 넘겼다.
“제가 내부를 장악하는 사이 확인하면 될 거예요.”
“나에게 맡겨도 되는 건가?”
“전 다 외워서 상관없어요.”
“영혼석으로 얼굴을 가렸을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겠군.”
“사실 그게 가장 성가시긴 해요.”
유지한이 있으니,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싶기도 했으나 마력 탐지만으로는 그 사람이 한국인인지 아닌지 아는 방법은 없었다.
유지한이 몸을 숨기는 사이, 검은 망토를 쓴 초아가 높이 뛰어올랐다.
“점프력 하나는 기가 막히는군.”
초아의 점프는 뛴 게 아니라 날았다고 봐도 좋은 수준이었다.
덕분에 기지를 둘러싼 철창은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았다.
유지한은 그사이 초아가 준 휴대폰의 앨범을 훑어봤다.
‘어쩌면 대어를 낚을 수도 있겠군.’
유지한의 원래 목적은 중앙 군사위원회 상장인 장윈리였다.
조금 돌아가는 감이 없지는 않았으나, 유지한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아주 오래전부터, 유지한의 감은 틀린 적이 별로 없었으니까.
* * *
창사시 외곽의 어느 컨테이너 창고 안으로 검은 차 한 대가 들어왔다.
차가 멈추기 무섭게 장성현이 차에서 내렸다.
경비를 서고 있던 다른 각성자들이 장성현과 소미연에게 다가왔다.
“허억…… 충성! 여긴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이 근처에서 소란이 있지 않았나?”
“아뇨. 소란이라면 동부 기지 쪽에서 있었습니다만 이쪽은 조용합니다.”
“그런가.”
장성현이 손을 살짝 들자 사내의 등 뒤에서 장전 소리가 났다.
당황한 사내가 뒤를 돌아보기 무섭게 소미연이 머리를 향해 총구를 당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