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안녕하십니까! 홍대에서 진행하는 홍차의 홍래방! 오늘도 많은 실력자 분들이 나타나길 기대하며 컨텐츠 진행해 보겠습니다!”
“우와아!”
“훠어어어우!”
이종인과 내가 뛰기 시작했을 때 홍차는 마이크를 들고 텐션을 올리며 소개를 시작했다.
[워, 사람 개 빨리 모이는데 야 좀 더 안으로 들어가 봐.]
“야, 재희야 우리 좀 더 앞으로 가자.
“어, 그, 그래….”
난 이종인의 뒤를 따라 안쪽으로 들어갔다.
“자, 자, 잠시만요…….”
“아이씨….”
“죄, 죄송합니다…. 잠시만 지나갈게요.”
“아나, 진짜…….”
“죄, 죄송합니다.”
[꼭 그렇게 쭈글이처럼 지나가야 하냐]
‘아니, 죄송하니까 그렇지.’
[아이고 두야….]
그렇게 난 꾸역꾸역 인파를 헤치고 이종인을 따라 가장 앞쪽에 도착했다.
주변은 이미 사람으로 바글거렸다.
예상대로 인기가 많은 것 같았다.
홍차는 소개에 이어 준비한 노래를 시작했다.
언제나 홍래방의 시작은 텐션을 높이기 위해 홍차가 먼저 노래를 불렀다.
그가 선곡한 노래는 데뷔한 지 15년이 넘은 한 발라드 가수의 노래였다.
이 곡이 나온 지는 10년이 다 되어가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노래였다.
“우와아!”
“이야!”
“훠우! 훠어우우!”
전주를 듣자마자 이 노래를 안다는 듯 사람들은 환호와 박수를 쏟아냈고.
홍차는 짧은 간주를 지나 노래를 시작했다.
“오”
[성대 울림은 좋네.]
‘그러니까. 유튜브에서 들은 것보다 훨씬 잘 하네.’
[어, 뭐 탄탄하게 잘 하는 듯]
‘오 네가 봐도 그래’
[아직도 날 모르냐…. 그냥 저냥 들을 만 하다는 이야기지.]
‘아, 하긴. 그렇겠지…….’
악마의 평은 여전했지만 홍차는 노래를 꽤 잘 했다.
디테일에 있어서 교정을 받아야 할 부분이 눈에 보였지만.
그래도 충분히 잘하는 편에 속하는 실력이었다.
[잘하긴 하지만, 너도 들리잖아 소리는 좋지만 음이 흔들리고 애드립 라인 엉망인 거.]
‘그렇긴 한데 과하게 티가 날 정도는 아니니까.’
“야, 홍차도 노래 잘 한다 그치”
이종인도 홍차의 노래를 괜찮게 듣고 있었다.
“응, 탄탄하게 잘 부르네.”
“근데 네가 더 잘 불러.”
“어”
이종인은 나를 보며 미소 지으며 말했다.
얼마전 날 죽일 듯이 바라보던 그 사람은 이미 온데간데 없었다.
“고마워.”
난 음악에 있어 관대한 편이었다.
물론 절대음감을 갖게 되었기에 홍차의 부족한 디테일이 전부 귀에 들렸다.
애드립 라인을 펼칠 때 스케일을 벗어나는 한두 개의 음이 존재했지만 탄탄한 성량에 가려졌다.
그리고 높은 음에서는 음정이 조금씩 흔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지금 실력일 뿐이지 꾸준히 연습하고 고민하다 보면 고쳐질 부분이었고.
크게 티가 나지는 않았다.
지금의 모습으로만 그 사람을 판단하고 싶진 않았다.
나도 10년 후의 능력을 부여받은 사람이었기에 누군가의 가능성을 무시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내가 보기에 홍차의 무대는 꽤 괜찮았다.
주변에 모인 사람들은 곡이 끝남과 동시에 환호와 박수를 쏟아냈고.
본격적인 컨텐츠에 돌입했다.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본 무대를 위한 깔깔이 홍차였구요. 자, 이제 지원자 받겠습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지원 해주시길 바…….”
“저요! 저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몇몇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듯 지원했다.
“아! 네, 좋아요 거기 단발머리 여성분!”
“우와아!”
“우와아아아!”
“훠어우!”
환호가 이어졌고 나와 이종인은 서로를 보며 헛웃음을 터트렸다.
“푸핫! 야, 좀 빨리 움직여야겠다.
“하하, 그러게 생각보다 경쟁이 쟁쟁하네.”
첫 지원자는 키가 작고 단발머리에 풀뱅을 내린 한 여자였다.
고등학생, 아니면 20대 초반.
그 지원자가 손을 들고 외치는 발성만 들어도 노래할 때의 성량이 예상되었다.
출범식 공연 때 악마가 한 학생이 전화 받는 소리만 듣고 노래 실력을 예상했던 때가 기억났다.
아마 악마도 이런 기분을 느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쯤 그 지원자는 자기소개를 마쳤다.
“자, 어떤 노래 보여주실 건가요”
“음, 저 데일리의 시계 부르겠습니다.”
“오! 가창력 끝판왕의 노래가 나왔어요. 기대가 됩니다. 자, 그럼 엠알 틀어주세요!”
홍차의 말과 함께 준비된 노래방 기계가 전주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우와아아아아!”
“예쁘다!”
“이채원 파이팅!”
“잘해라!”
관객석에서 들리는 소리를 들으니 이름이 이채원인 것 같았다.
-아무리 달려도
제자리인 것 같아
하루를 네 생각으로 다 써도
결국 돌아온 곳은 여기야-
“오오오오오!”
전주를 지나 첫 도입부를 듣자마자 사람들이 환호를 쏟아냈다.
저음 구간이었지만 디테일이 훌륭했다.
어긋나는 음정도, 그 음을 끌고 가는 지구력도, 호흡과 감정까지 꽤 괜찮았다.
“이야…. 잘하네….”
난 그 지원자의 노래를 들으며 감탄했다.
“그러게, 어려 보이는데 진짜 잘한다.”
“역시 실력자가 많이 나오는 컨텐츠라 그런지 시작부터 장난 없네.”
[맞아 쟤가 녹차인가 홍차인가 쟤보다 훨씬 나아.]
‘어어…. 그래… 홍차….’
도입부를 지나 후렴으로 천천히 흘러가는 곡.
곡의 BPM은 느린 편이었지만.
슬슬 높은 음이 나타나며 긴장감을 더해갔다.
-난 아직도
그 시간에 살아
하루를 더해도
언제나 그 시간
네가 보고 싶어-
후렴에 다다르자 하늘을 찌를 듯한 고음이 나타났다.
또 한 번의 함성이 터져 나왔고.
이채원은 그에 힘입어 더욱 탄탄한 발성을 자랑했다.
저 작은 체구에서 어떻게 저런 성량이 나올 수 있는지 신기했다.
[이야, 쟤는 최근 들었던 일반인들 중에는 제일 잘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쟤 진짜 잘한다.’
[고음만 빽빽 질러대는 애들은 많은데 쟤는 디테일도 좋네.]
악마는 누군가의 노래를 들을 때면 언제나 이렇게 평가하곤 했다.
그리고 이번은 처음으로 나와의 의견이 일치했다.
이종인도 그 참가자의 노래에 푹 빠져있었고.
난 잠깐 동안 나의 긴장감에 다시 집중했다.
‘야, 나 잘할 수 있을까’
[꼭 제일 잘할 필요는 없지 않아]
‘그래도 기왕 하는 거 제일 잘하는 게 좋잖아.’
[쟤보다…. 아 글쎄 쟤는 진짜 잘 해서 선곡이 중요할 것 같아. 네 선곡이 별로면 쟤가 더 나을걸]
‘음……. 내가 부를 곡이 반응 좋으면 좋겠다.’
우선은 지켜보기로 했다.
이채원은 끝까지 준수한 실력과 텐션을 유지하며 곡을 마쳤다.
이어서 이어지는 인터뷰.
이름과 나이 등 자기소개를 하며 홍차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아니, 노래를…. 하하! 왜 이렇게 잘하세요 원래 노래를 하시는 분이세요”
“네, 해서대학교 실용음악과에서 보컬을 전공하고 있어요.”
“이야! 역시! 어쩐지! 노래를 엄청나게 잘 하시더라구요!”
‘거의 홍보 해주는 수준인데’
[그러게 말이야.]
이전에 유튜브로 홍래방을 볼 때는 잘 몰랐다.
인터뷰 장면은 쓱쓱 넘기면서 봤고 어떤 실력자가 나오는 지가 더 중요했으니까.
이제 보니 인터뷰도 꽤 길었고 내용도 괜찮았다.
거의 참가자를 홍보 해주는 수준이었다.
이 정도라면 나를 어필하기에도 충분할 것 같았다.
“인터뷰 내용 좋지”
“응, 내용 진짜 알차네.”
“이래서 데려왔지.”
이종인은 뿌듯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물론 나 또한 여기 온 게 만족스러웠다.
“다음 타이밍엔 무조건 먼저 손 들 거야.”
[목소리나 크게 내 이 소심아….]
“응! 무조건!”
“어 뭐”
“아, 아니야….”
이종인이 보기엔 나 혼자 자문자답 한 것처럼 보였을 거란 생각에 민망함이 몰려왔다.
‘너, 너… 이제 조용히 해….’
[낄낄낄낄낄낄!]
“네! 감사합니다. 그럼 채원 씨 인터뷰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고 다음 참가자 모실게요!”
“저요!”
“저요!”
“저기요! 저요!”
“저요! 저여!”
“네! 저기 뒤쪽에 비니 쓰신 남자 분. 나와주세요!”
“아…….”
“아, 까비.”
[다음엔 더 크게 외쳐보자.]
‘아니 내가 제일 빨랐는데.’
[그니까. 어쩔 수 없지 한국에선 목소리 큰 놈이 이기는 거랬어.]
‘별 이야기를 다 아네…….’
“아, 너무 아쉽다. 다음엔 나도 같이 손 들게.”
“응, 고마워. 더 크게 해보자.”
이종인도 나만큼이나 아쉬워했다.
다음 참가자는 멋진 랩을 선보였다.
나는 랩을 잘 하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요즘은 힙합이 큰 유행을 타고 있었기에 많이 들어 해당 참가자의 실력이 대충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되는 것 같았다.
[에헤이 그게 아니지.]
‘어’
[전에도 말했듯이 너 박자 감각이 좀 아쉬운 것 같아.]
‘어, 내가 그 정도야’
[미디를 너무 오래 했어. 감각적인 부분을 좀 키우도록 노력해봐.]
‘음…….’
악마는 나의 재능을 마음에 들어 했다.
곡을 제작하는 능력, 번뜩이는 아이디어.
특히, 가장 기본적인 것이지만 음계의 활용이 뛰어나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박자에 있어서는 뭔가 아쉬운 모양이었다.
[당연히 박치 수준은 절대 아니지만 좀 더 디테일하게 들을 필요가 있어. 미디를 너무 오래 해서 기계로 멋진 박자를 만드는 건 잘 하지만 감각이 쫌 아쉬워.]
‘흠, 그렇군…….’
내 눈앞에서 현란한 제스처와 함께 랩을 쏟아 부어내는 저 사람의 박자 감각.
지금의 내가 듣기엔 꽤 잘 하는 것 같았다.
또한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큰 호흥을 쏟아내는 걸 보니 일반 사람들이 듣기엔 부족함이 없을 실력이었다.
하지만 난 유능한 아티스트라는 꿈을 꾸고 있었기에 이들과 차별화가 될 필요는 있었다.
악마의 말대로 박자 감각에 대해 좀 신경을 써봐야 할 것 같았다.
랩을 선보이던 참가자의 순서도 끝이 났고 이제 다음 지원자를 받을 순간이 다가왔다.
“저요!”
“저요! 저 할래요!”
“얘요! 얘 노래한대요!”
“네! 이번엔 여기 오른쪽 남자 분! 나와주세요!”
“오예!”
[아니, 바로 앞에서 이렇게 소리를 지르는데 쳐다도 안 보냐]
“야, 쉽지 않다.”
“아, 그러니까…….”
나와 이종인은 풀이 죽어버렸다.
바로 앞에서 함께 죽어라 소리쳤지만.
홍차는 아예 내 쪽은 쳐다도 보지 않았다.
아무래도 인파가 많고 그만큼 지원자도 많아서겠지….
보통 5명에서 많으면 10명까지 받던데 그 안에는 꼭 들어야 했다.
아직 세명.
나에게도 기회는 아직 남아 있었다.
* * *
홍대는 홍래방 컨텐츠 진행으로 시끌시끌했다.
실력자들의 노래가 끊이지 않았고.
관객들의 환호 소리도 가득했다.
“야, 연락 안 돼 왜 아직도 안 와”
“아, 죄송합니다 형님. 한명은 늦게 일어났다고 하고, 한명은 이제 출발 했다고…….”
“이제 출발 뭔 씨발 짜장면 시켰냐 장난하나 진짜….”
참가자의 노래가 한참 진행중일 때 홍차는 관계자 한 명과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 씨발. 이 새끼들이 여기가 아무나 나올 수 있는 곳인 줄 아나.”
“죄송합니다. 다시 연락 해볼게요.”
“연락 오는 대로 나한테 말해.”
“네, 알겠습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홍차.
뭔가 일이 뜻대로 진행되지 않는 분위기였다.
축제를 방불케 하는 홍래방.
그와 반대로 심각한 홍차의 표정.
하지만 관객들이 이 분위기를 눈치 채게 할 수는 없었다.
이윽고 네 번째 참가자의 노래가 모두 끝이 났다.
“이야! 엄청난 가창력! 잘 봤습니다. 먼저 어디 사는 누구신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네, 저는 합정에 사는 스물네 살 직장인 정한열입니다.”
“오! 한열 씨. 노래 잘 들었습니다. 직장인이시면 노래 연습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정말 잘 하시네요”
“아, 제가 직장인 밴드를 하고 있어서요.”
“크…. 멋지십니다. 실례지만 밴드 이름을 좀 여쭤 봐도 될까요”
“네, 저희 밴드 이름은…….”
홍차는 계속해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지원자가 말을 이어가는 동안 잠시 뒤를 돌아보는 홍차.
그와 눈을 마주친 한 관계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 씨…….’
“이야! 이름도 멋지네요! 그럼 음악은 언제부터 시작하신 거예요”
“노래는 중학교 때 밴드부 활동을 하면서…….”
인터뷰가 점점 길어졌다.
그 때문에 루즈해진 분위기에 뒤쪽에 서있던 관객들이 하나 둘 빠지는 걸 눈치챈 홍차.
다른 참가자들에 비해 인터뷰가 많이 길어지고 있다는 것을 홍차도 관객들도.
그리고 유재희와 이종인까지 눈치 채고 있었다.
이대로 분위기가 다운되게 둘 수는 없었다.
“네, 감사합니다. 고생하신 정한열 씨에게 박수 한번 부탁드립니다!”
“와아아!”
-짝짝짝짝짝!
드디어 길고 긴 인터뷰가 끝났고 홍차는 다시 뒤를 돌아봤다.
여전히 고개를 젓는 관계자.
“자……. 음…. 네! 좋습니다. 그럼 다음 참가자 지원 받겠습니다!”
홍차의 말과 함께 몇몇 사람들이 손을 들었고.
한 명 한 명의 눈을 바라봤다.
확실히 지원자의 수가 줄었다.
누가 좋을까.
잠깐의 고민이 이어졌고 바로 왼쪽에 시끄럽게 손을 드는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하…. 모르겠다.’
“어…. 여기 앞에 계신 남자 분 나와주세요.”
홍차와 눈이 마주친 한 남자.
유재희는 자리에서 일어나 무대로 향했다.
그 탑스타의 음악에는 악마가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