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탑스타의 음악에는 악마가 산다-57화 (57/194)

57화

서희진과 장한슬이 소속된 밴드 무대는 성공적으로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근데, 나 궁금한 게 있었는데 첫 팀 선곡은 예열 때문이야”

“응, 그렇지.”

난 무대를 구경하다 이종인에게 물었다.

오늘 무대에 서는 모든 팀은 자작곡으로 공연을 선보일 예정이었지만.

첫 밴드는 그와 달리 기성곡들로만 준비했다.

아무래도 대중들이 잘 아는 곡들로 시작하는 것이 분위기를 띄우는 데 좋으니까.

“헉!”

무대 조명 편성에 집중하던 이종인은 뭔가를 본 듯 갑자기 놀라는 듯한 눈치였다.

“뭐야 왜 뭐 있어”

“음, 아니야. 아무것도….”

이종인은 객석의 무언가를 보고 놀란 눈치였고.

나도 객석으로 눈을 돌렸지만 너무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았다.

내 시야에 한 번에 잡히는 사람이라곤 Qrious와 태훈이, 그리고 임태현 뿐이었다.

Qrious는 공연을 마음껏 즐기고 있었고.

그 중 가장 신기한 건 문희철이었다.

[와, 쟤도 음악에 진심이긴 한가봐]

‘그러게. 미동도 안 하고 보네.’

[아마 저 서희진이라는 애가 기타 엄청 잘 쳐서 그런 거일 걸]

‘음, 하긴 희진이가 기타 엄청 잘 치긴 하지.’

실제로 문희철은 서희진의 기타 실력에 매료되고 있었다.

“와, 대박…. 누나, 저 여자애 기타 엄청 잘 치지 않아요”

“응, 잘 한다. 역시 이 동아리는 아무나 못 들어간다는 말이 맞나봐.”

“와, 진짜 개 쩐다…. 재희 형한테 소개해달라고 해야겠어요.”

“뭐 마음에 드냐”

“네, 미쳤어요….”

“너도 미친 것 같아….”

첫 밴드의 공연은 녹진하게 무르익고 있었다.

분위기는 뜨거워져만 갔고 관객들 중 일부는 소리를 지르거나 제자리에서 뛰기도 했다.

장한슬은 보컬로서 다른 악기 플레이어들과 함께 강력한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었다.

무대의 규모는 소공연장 치고 넓은 편이었다.

무대를 넓게 사용하고 당차게 뱉어내는 노래.

신나는 노래들 위주로 구성되어 있었고.

장한슬은 관객들보다 더욱 신이 난 것처럼 무대를 뛰어다녔다.

자고로 공연에서 관객을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는 공연자가 먼저 몸을 움직여야 하는 법이다.

그것을 장한슬은 잘 보여주고 있었고.

나에게도 귀감이 되었다.

“흠…….”

[저렇게 뛰어다니니 라이브는 무너져도 에너지는 넘치네.]

‘그러니까 말이야. 새삼 아이돌들 대단하다. 춤을 그렇게 추면서도 노래를 하다니….’

[멍청아 그건 AR 뒤에 숨는 거잖아.]

‘아닌 애들 말 하는 거야.’

[음, 뭐 그래 인정. 잘 하는 애들도 있긴 하지.]

나도 무대 위 장한슬처럼 하고 싶었다.

물론, 오늘 당장부터 저런 에너지를 갖기란 쉽지 않겠지만 말이다.

관객들의 정신이 정말로 나가버리기 직전.

다행히 첫 밴드의 무대는 끝이 났다.

[확실히 아마추어 공연에서 보기 드문 분위기긴 하네.]

‘응, 나도 인정.’

악마의 말에 음악 실력을 칭찬하는 말은 없었지만.

우리 동아리원이 뿜어내는 에너지는 칭찬할 만 한 것 같았다.

그렇게 성공적인 첫 무대를 시작으로 나의 첫 정기 공연은 계속되었다.

* * *

Groovy Nation의 정기공연은 볼거리가 꽤 많은 공연으로 유명했다.

악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밴드가 주를 이뤘지만.

그 외에도 발라드나 R&B, 힙합 등 다양한 장르를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듣기로 예전에는 더욱 다양했다고 들었다.

춤을 추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동아리 특성상 지금은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전부였고.

꽤 예전엔 국악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했다.

물론, 공연에서 선보였다가 갑자기 분위기가 이상해지는 바람에 그 때 뿐이었지만 말이다.

그 사람은 실력이 뛰어났다고 했지만.

분위기의 흐름이라는 것이 있었으니까.

공연은 계속됐고 어느덧 다섯 번째 순서가 끝이 났다.

다시 장한슬이 무대 위로 올랐고 마이크를 잡았다.

“와아아!”

“우와아아!”

“꺄아아악!”

장한슬의 등장과 동시에 환호가 터졌고 장한슬은 넉살 좋게 답했다.

“아, 네, 네. 감사합니다. 하하! 네, 알아요. 저예요.”

“하하하하!”

“잘 생겼어요!”

객석에서 튀어나온 잘 생겼다는 말.

소리가 난 쪽을 향해 장한슬이 답했다.

“아, 그럼요. 당연하죠 저희 부모님이 낳아주셨거든요. 이거 반박하면… 아시죠”

“하하하하!”

객석에서는 장한슬의 능청스러움에 웃음이 터져나왔다.

“지금까지 공연 즐겨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조금 전의 공연으로 1부가 끝이 났구요. 잠깐 10분 쉬고 다시 2부 공연 시작하겠습니다.”

장한슬은 공지를 한 후 다시 퇴장했다.

이종인은 다시 준비한 음악을 틀었고 조명은 좀 더 어두워졌다.

보통 공연 사이에 쉬는 시간을 두면 텐션도 떨어지고 도중에 나가는 관객이 생길 수 있지만.

Groovy Nation은 자신감이 있었기에 관객을 배려해 쉬는 시간을 둔 것이었다.

“으아아아! 뻐근해!”

이종인은 기지개를 있는 힘껏 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 생각해보니까 네가 제일 고생이겠구나.”

“원래 엔지니어가 그렇지 뭐. 나 담배 하나만 태우고 올게.”

“응, 알았어. 난 대기실로 가면 돼”

“응, 이제 대기실 가서 준비해. 안에 물이랑 먹을 거 있으니까 먹고.”

“알았어.”

이종인은 공연장 밖으로 나갔고.

난 대기실에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엔지니어 부스에서 대기실로 가기 위해서는 객석을 지나칠 필요가 없었기에 편히 이동할 수 있었다.

[오호! 인기남이시네여 히히히!]

‘이번엔 또 뭔 헛소리야’

[넌 안 들리겠지만 말이야.]

‘뭔 소리야 대체’

악마의 헛소리가 들렸지만 공연을 앞두고 있었기에 전부 다 답해줄만한 심적 여유가 없었다.

* * *

“와, 대박! 야! 대박! 저기 있어!”

자리에서 일어나는 유재희를 발견한 일부 관객들.

어두운 공연장이지만 엔지니어 부스는 항상 조명이 들어와 있어야 했다.

공연 중에 무대에서 엔지니어가 알 수 없는 문제가 생기면 신호를 보내야 했으니까.

위치를 알고 소통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엔지니어 부스는 밝을 수밖에 없었다.

공연 중에는 관객이 앞만 보고 있었기에 이 부스를 볼 일이 없었지만.

1부가 끝나고 쉬는 시간이 되어서야 유재희를 발견한 것이었다.

“헐, 진짜네! 공연 이제 곧 직관 할 수 있나봐!”

“야, 그나저나 잘 생겼는데”

“그니까 인스타 영상보다 훨씬 잘 생겼는데”

“피부 하얀 것 좀 봐. 미쳤다.”

“아니, 그니까 저 얼굴에 노래까지 잘 하는 건 반칙 아니야”

“심지어 예성대학교. 공부까지 잘 해.”

“맞네…. 사기캐다.”

유재희를 발견한 사람은 꽤 많았다.

어두운 공연장 안에 유일하게 불이 밝혀진 부스에서 누군가가 일어났기에 당연히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유재희는 잠깐 모습을 보인 후 어디론가로 사라졌고.

그에 따른 관객들은 영화의 예고편이라도 본 듯 기대감이 높아졌다.

* * *

[잘생긴 훈남! 오오!]

‘아, 뭔데 자꾸’

[거기에 공부까지 잘 해]

‘미친 건가….’

[노래도 잘 해고 맬이얘~]

‘그만…….’

악마는 알 수 없는 말을 두서없이 늘어놨고.

당연히 난 그게 날 놀리는 거라 생각했다.

난 피부가 좀 하얀 편일 뿐 그렇게 잘 생긴 얼굴도 아니고.

공부도 이번 학기는 B+가 세 개나 나와버려 망한 성적이었다.

노래도 나 스스로는 아직 부족하다고 느끼는 중이었다.

‘그만 좀 놀려.’

[하하하하! 그래, 너만 평생 모르고 살던가! 하하하!]

‘자꾸 무슨 소리야…. 시끄럽게 하지 말고 들어가 있어 그냥.’

[잉…. 말을 너무 서운하게 하네….]

악마가 이러는 게 하루 이틀이 아니었기에 그러려니 하며 난 대기실의 문을 열었다.

대기실엔 아직 아무도 없었다.

아마 이제 막 쉬는 시간이 시작돼서 다들 화장실을 가거나 한 것 같았다.

내 순서는커녕 2부도 시작하지 않았지만.

기대감과 함께 심박수는 멈추지 않고 올라가는 중이었다.

* * *

J홀의 외부.

“후우….”

이종인은 입구 근처 흡연 구역에서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진짜 왔네”

“응, 어쩌다 보니 와버렸다.”

“잘했어.”

이종인은 김종필과 함께 담배를 태우는 중이었다.

생각해보면 군생활을 할 때도 이렇게 함게 담배를 태운 기억이 많았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때만큼의 결속력이 없었다.

“마음이 불편해서 집에 못 있겠더라고.”

“그래, 잘 생각했어. 지금 재희 대기실에 들어갔으니까 공연 끝나고나 이야기 해봐.”

“응.”

“아니면 뒷풀이 올래”

“아니, 그건 아닌 것 같아.”

“뭐, 그건 편한 대로 해라.”

이종인은 지난번 김종필과의 술자리에서 공연에라도 와서 사과하라고 말 했고.

김종필은 고민 끝에 이종인의 말을 듣기로 했다.

물론 유재희에게 미안하기도 했지만.

자신의 마음이 편해지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죄책감을 덜어야 마음의 무게가 가벼워질 것 같았다.

“공연이 언제 끝나지”

“아홉시 반 예상인데 아마 딜레이 될 거야.”

“음, 일단 알았어. 끝나고 이야기 해볼게.”

“야, 너 그리고….”

이종인은 김종필에게 사뭇 진지한 태도로 말했다.

“너, 만약에 재희가 사과 안 받아주면 어쩔 거야”

“별 수 있냐 난 사과 한 거야. 안 받아주면 진짜 남남 되는 거지 뭐.”

“그래, 혹시 재희가 사과 안 받는다고 해도 분위기 망치지 말고 나중에 따로 이야기 하라고. 우리 공연 날이니까.”

“아, 그건 걱정마. 나도 눈치가 있지.”

“그래, 그럼 다행이고. 난 아무튼 이제 들어가볼게. 공연 잘 봐라.”

“어, 고생해라.”

이종인은 J홀 안으로 들어갔고.

김종필은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공연장 안에서 음악 소리가 나면 들어가고 싶었다.

혹시라도 공연장을 돌아다니는 유재희와 마주치고 싶지 않았으니까.

마음이 왜 이런 걸까.

친구들의 말대로 학교 폭력은 절대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라서

아니면 유재희가 용서해주길 바라서

그것도 아니라면 자신은 가해자가 맞지만 피해자가 사과를 받아주지 않을까봐

잘 모르겠다.

그냥 예전처럼 유재희와 아무 불편함 없이 지내고 싶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그래야 자신의 마음이 불편하지 않을 테니까.

담배를 하나 더 태우려던 순간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2부 공연이 시작을 알렸지만 쉽사리 발이 떼어지지 않았다.

* * *

“워! 워! 워! 워! 워!”

2부가 시작되고 한참이 지난 후.

J홀은 거의 유명 가수의 콘서트장을 방불케 했다.

이종인은 완벽한 음향 세팅을 마친 후 싸이키와 녹색 레이저를 마구 쏘아댔고.

무대 위엔 힙합을 주로 하는 멤버들이 뜨거운 에너지를 뿜어대고 있었다.

관객들과 하나 되어 마구 뛰어다니는 랩퍼들.

역시 요즘은 힙합이 유행이어서인지 관객들의 호응 또한 엄청났다.

그 우렁찬 소리는 대기실 안까지도 전해졌다.

“와하하하! 경환이 아주 찢고 있나보네요.”

“그러게, 엄청 신나 보인다.”

대기실 안에 남은 인원은 나를 포함해 총 아홉 명이었다.

내 순서는 여덟 번째 그 뒤 두 팀은 모두 밴드였기에 아직도 대기실엔 사람들이 가득했다.

지금 무대에 서있는 힙합 팀은 일곱 번째의 순서였다.

바로 다음이 내 차례라는 의미였다.

난 지금 당장 무대로 뛰쳐나가 저 에너지를 함께 즐기며 노래하고 싶었다.

[진정해. 제발 좀….]

‘진정이 안돼. 빨리 나가고 싶어.’

[하…. 백퍼 오늘이네….]

‘뭐가’

[거래 말이야…. 이제 난 몰라.]

마치 무슨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말하는 악마.

아직까지 난 그 의미가 뭔지 알 수 없었다.

그 탑스타의 음악에는 악마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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