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설마 설희 너….”
“저 9월 중순에 가요.”
“헐…….”
태훈이와 비슷한 시기였다.
나도 정말이지 아쉬웠다.
소중한 친구가 둘이나 사라지는 건 싫었다.
살면서 친하다고 말 할 수 있는 친구라고는 임태현 뿐이었고.
아직까지 좋은 우정을 유지하는 중이었다.
친구가 사라지는 기분이 뭔지 잘 모르겠지만.
당연히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닐 것 같았다.
“그렇구나, 너무 아쉽다…. 안 가면 안 되나 너 현역이지”
“그렇죠. 의경이나 공익이면 음악 하기 훨씬 좋았겠지만, 몸이 너무 건강하네요.”
설희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얼마전 우리 집에서 함께 밥을 먹을 때만 해도 군대에 가기 싫다며 시무룩했던 설희다.
하지만 의외로 날짜가 가까워지니 의연한 태도를 보였다.
역시 처음 봤을 때부터 느낀 거지만 설희는 어른스러운 면모가 있었다.
[크크큭…. 그래도 괜찮아. 요즘 군대가 군대냐]
‘야, 그래도 다들 자신만의 힘듦이 있는 거야.’
[야, 우리 때를 생각해봐. 요즘 군대는 군대도 아니야. 캠핑이라고!]
‘어휴……. 애가 군대를 간다는데….’
아무리 녀석이 나에게 호의적이라 해도 이럴 때 보면 역시 악마는 악마였다.
[캬캬캬! 뺑이 치고 오렴 꼬맹아!]
정말 악마가 따로 없었다.
‘어우, 소름끼쳐…….’
공연의 뒷 이야기는 설희의 군대 이야기 때문에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그나저나 이게 좀 아쉽네요. 오늘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런 걸 받았는데.”
설희는 주머니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내며 말했다.
“어, 맞아. 그거 뭐야 아까 그 사람은 누구고”
윤종철이 설희에게 물었다.
“아까 공연장에 들어오는데 케이넷에서 나왔다고 어떤 사람이 명함 줬어요.”
“와, 정말”
“헐, 진짜 뭔가 했더니 방송국에서 나온 거였어”
멤버들은 설희가 쥐고 있는 명함을 보고 신기해했다.
EJ C&M 소속 박윤기 PD.
조작된 명함이 아니라면 정말 방송국에서 나온 사람이 맞는 것 같았다.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 다들 신기해 하는 것 같았다.
“그거… 너도 받았어”
“엥 너도라니 그럼 너도 받았어”
나의 질문에 김도화가 다시 물었고 난 마찬가지로 명함을 꺼내 들었다.
-EJ C&M 소속 박윤기 PD.
“이거… 맞지”
“오! 똑같은 거네”
“뭐야, 둘 한테만 준 건가본데”
“이야…. 역시 대단들 해.”
문희철은 우리 둘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며 말했다.
“역시…. 답은 얼굴인가….”
“야, 멍청아. 설마 얼굴만 보고 명함을 줬겠냐”
“키키킥…. 아니 근데 그것도 한 몫 하긴 했을 걸요”
“흠…. 그렇긴 해.”
갑자기 멤버들이 나와 설희의 얼굴을 번갈아보며 바라봤고.
나와 설희는 얼굴이 붉어졌다.
“아, 뭘 그렇게까지 봐요. 민망하게….”
“하하, 아니야. 잘 생겨서 쳐다봤지.”
“그나저나 방송국에서 섭외라니 신기하네.”
“그래요 보통은 이렇지 않아요”
나는 박윤기 PD가 직접 우리에세 명함을 준 게 이상했고.
그 의문에 Qrious 멤버들이 내게 질문했다.
“보통은 엔터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지.”
“아, 하긴 그렇네요.”
“이렇게 방송국 PD가 직접 명함을 건네는 경우는 보통 두 가지로 볼 수 있어.”
[오, 역시 엔터에서 일하던 짬밥이 있네.]
악마는 내가 이야기를 주도적으로 끌고 나가는 모습에 흐뭇해했고.
Qrious의 멤버들은 나의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일반인을 상대로 하는 예능을 기획하는 중이거나 아니면 급하게 누군가를 섭외해야 하는 경우지.”
“급하게”
“응, 뭐, 펑크가 났다거나…. 아니면 촬영이 곧인데 아직도 섭외가 안 됐거나…. 다양한 이유가 있지.”
“오, 역시 프로로 일 하다 오셔서 그런지 이쪽을 잘 아시는군요”
“아냐, 나도 방송국 쪽은 잘 몰라. 그냥 주워들은 거지.”
실제로 방송국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아무리 유명 엔터에서 일 했다고 해도 내 포지션은 방송에 출연하는 연예인이 아니라 프로듀서였으니까.
그것도 음악을 주로 프로듀서였기에 방송국보다는 작업실에 있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그래도 듣는 게 꽤 많았기에 이 정도의 흐름은 대략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게 나에게 있어 꽤 좋은 기회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마냥 좋은 티를 내긴 힘들었다.
“다행이네요. 저는 군대 때문에 좋은 기회를 놓치게 되겠지만. 형이라도 잘 이야기 해봐요.”
“음, 뭐…. 봐서.”
설희에게도 이 섭외가 좋은 기회일 것이었다.
하지만 군대를 곧 가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했고.
나 혼자만 이 섭외에 답을 할 수 있었다.
상황을 잘 알고 있었기에 마냥 좋은 티를 낼 수는 없었다.
나중에 박윤기 PD에게 연락을 하고 섭외 제안을 수락하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벌써부터 고민이었다.
[열심히나 해. 네가 잘 되면 저 꼬맹이도 좋아해 줄 거야.]
‘그래도, 막 티내기는 좀 그래….’
“뭐, 군대 금방이야. 몸 건강히만 다녀와. 휴가 나오면 형이 맛있는 거 사준다!”
“하하, 고마워요 형.”
문희철은 설희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상대가 태훈이었다면 서로 신이 나서 목소리를 높였겠지만.
설희는 그저 미소를 보이며 고맙다는 말만 건넬 뿐이었다.
-지이잉….
오늘도 나의 폰은 불이 나는 중이었다.
나는 진동이 울리는 폰을 확인했고.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 있어요 표정이 왜그래요”
“음, 그래, 설희 너한테 물어보면 되겠다.”
나는 폰을 건네주며 설희에게 질문했다.
“넌 보통 뭐라고 대답해”
내가 보여준 폰에는 다이렉트 메시지 창이 띄워져 있었다.
-재희님 오늘 공연 잘 봤어요!
-아까 사진 찍은 학생이에요! 공연 잘 봤어요 다음에 공연 또 하시면 꼭 스토리 올려주세요!
비슷한 내용들의 다이렉트 메시지.
곡을 올리거나 공연을 하고 나면 꼭 이렇게 메시지가 왔다.
물론 홍차와의 이슈가 있던 직후엔 지금보다 훨씬 많은 메시지가 왔었고.
최근은 5명이 넘는 정도의 사람이 고정적으로 메시지를 보내왔다.
많은 수는 아니었지만 뭘 어떻게 답해줘야 할지 잘 몰랐다.
그래서 한참이 지나 답을 해주거나 너무 형식적인 말만 해주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아무래도 난 말 주변이 너무 없는 것 같았다.
“오, 디엠도 와요”
“응, 너도 오지 않아”
“얘는 엄청 많이 오죠.”
“역시…….”
설희는 이런 경험이 꽤 많아 능숙할 것 같았다.
“음, 그냥 감사하다고 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아니면 좋아요 눌러주던지….”
“음, 그냥 그게 다야”
“음, 뭐 다른 게 있을까요 저도 이런 메시지 많이 받긴 하지만 딱히 말주변이 좋지만은 않아서….”
생각해보니 설희도 성격이 나와 비슷했다.
“그냥 뭐…, 다음에 더 좋은 무대나 곡 보여드리겠습니다.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면 뭐… 뭐가 있을까….”
설희도 나랑 크게 다른 게 없는 것 같아 보였다.
“그, 그냥 내가 알아서 해볼게.”
“하하! 그래요. 저도 뭐 딱히 특별한 말을 해준 경험이 없는 것 같긴 하네요.”
설희는 모든 메시지에 답을 해주긴 한다고 했지만.
딱히 특별한 이야기를 하거나 그러진 않는다고 했다.
생각해보면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원래 아는 사이도 아니었고.
감사하다는 말 외에 무슨 할 말이 있을까 싶었다.
물론, 말주변이 더 좋은 사람들은 이런저런 말을 잘 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시간 지나면 익숙해질 거야 그냥 편한대로 해.]
다른 이야기로 샜지만 금방 다시 오늘 있던 공연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왔다.
설희가 군대를 가기 전 마지막 공연이었기에 너무 아쉬웠지만.
그만큼 소중한 공연이었고 그에 대한 감상은 밤이 깊어지도록 계속되었다.
* * *
같은 시각 데미안은 크로스라인 사장님과 함께 공연장 근처의 술집에서 자리를 가지고 있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사장님.”
“오늘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하하, 그래 고맙다. 오늘 다들 멋지게 잘 했다.”
사장님과 데미안의 멤버들은 술잔을 부딪치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나저나 오늘 큰 공연을 했는데 뒤풀이 자리가 좀 심심하네.”
공연에 참여한 사람은 많았지만.
뒤풀이에 참석한 사람은 데미안의 멤버들 뿐이었다.
원래 같으면 Qrious와 유재희도 참여해야 했지만.
어쩐 일인지 다른 두 팀은 오지 않겠다고 했다.
사장님은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었지만.
정확한 내막 보다는 대략적인 흐름을 알 수 있었다.
데미안만 끼면 뒤풀이에 참여하지 않는 팀이 생기는 건 이번 뿐만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뭐, 다들 바쁜가보죠 뭐.”
“아쉽긴 하네요. 왁자지껄하게 놀면 좋을텐데 말이에요.”
“어쩔 수 없죠 뭐.”
데미안의 멤버들은 사장님의 말에 찔리는 게 있기라도 한 듯 앞 다퉈 아쉽다는 말을 늘어놓았다.
데미안의 멤버들은 Qrious와 유재희가 오지 않은 이유에 대해 각자 다르게 짐작하고 있었다.
최수혁은 과거에 자신이 김도화에게 실수한 것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다른 멤버들은 오늘 최수혁이 유재희에게 좋지 않은 말을 한 탓이라고 생각했다.
각자가 생각하는 부분은 달랐지만 아무튼 이유는 최수혁이었다.
“그나저나 너희 이제 나이가 어떻게 되지”
사장님의 질문에 멤버들이 하나 둘 대답했다.
29살, 30살, 32살….
아무리 젊어도 29살이었다.
아마추어 씬에서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살아남아 있기는 참 어려운 일이었다.
대부분이 현실의 벽에 막혀 진로를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이렇게 오랫동안 남아있는 경우는 보통 다른 이들보다 열정이 뜨겁거나.
혹은 프로가 될 수 있는 문이 코앞에 놓여있는 것 같기 때문인 경우도 있었다.
물론 데미안의 경우는 후자였다.
작은 역할이고, 드물긴 했지만 TV에도 출연했고.
대중들이 가수를 잘 모르긴 했지만 유명곡도 보유하고 있었다.
게다가 실력이 좋다는 말도 여기저기서 듣고 있었기에 음악을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
하지만 요즘 시대는 음악을 잘 하는 것만으로는 뜨기 힘들다.
그리고 그 사실을 오랜 연륜을 가진 사장님은 잘 알고 계셨다.
“너희는 요즘 음악하는 애들 어떤 것 같니”
사장님의 질문에 최수혁이 대답했다.
“에휴…. 엉망이죠, 뭐. 다들 겉멋 들어서 음악 하는 것 같아요. 순수 음악만 하라는 건 아니지만 너무 무시하는 경향이 있죠.”
“흠…. 그러니”
“네, 도대체 왜 그러는 건지 몰라도 애들이 어려질수록 실력이나 태도가 영…….”
최수혁은 정말 진심이었다.
32살인 최수혁은 이제 어린나이가 아니었다.
그냥 나이가 많은 탓이었을까
아니면 정말 그 사람 자체가 꼬인 사람이어서였을까.
어린 아티스트들의 태도와 음악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최수혁은 순수 음악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었지만.
순수 음악이 설 자리는 시간이 갈수록 사라지는 중이었다.
요즘은 악기로 표현하기 힘든, 기계로 만들어진 사운드가 판을 치고 있었고.
그걸 앞세워 악기도 배우지 않은 작곡가들이 많았다.
최수혁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이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물론 순수 음악이 점점 사라지는 건 슬픈 일이지만.
시간은 멈추지 않고 시대는 시간을 따라간다.
그것을 멈추거나 되돌리려는 생각은 객기일 뿐이었다.
결국 발을 맞추지 못하는 건 최수혁 스스로일 뿐이니까.
최수혁이 침을 튀겨가며 자신의 의견을 말할수록 분위기는 무거워져만 갔다.
정말 안타깝게도 최수혁을 제외한 모두가 이 불편해진 공기로 숨을 쉬고 있었다.
그 탑스타의 음악에는 악마가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