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탑스타의 음악에는 악마가 산다-74화 (74/194)

74화

“형, 그….”

“어 왜”

데미안의 기타리스트가 최수혁의 무릎을 건들며 그만하라고 했다.

자신의 신념을 강하게 어필하느라 최수혁만 이 분위기를 읽지 못하고 있었다.

“수혁아. 애들한테 너무 그런 생각 가지지 마라. 안타깝다.”

“네 왜죠”

사장님은 눈을 질끈 감으며 최수혁에게 말했다.

“애들이 왜 자꾸 너희랑 같이 하는 뒤풀이 자리 피하겠냐. 잘 생각해봐.”

“그, 그건…….”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고이게 되어 있지만 그것보다 무서운 건 자신의 생각이 고여 있는 걸 모른다는 거야.”

“아니, 사장님. 솔직히 사장님도 예전부터 음악 하셔서 아시잖아요. 요즘은….”

“알아, 아는데. 지금 핵심은 그게 아니야.”

“네”

“수혁아. 넌 참 음악을 잘 하는데 너무 안타까워….”

“아니, 그러니까 어떤 부분이 안타까운건데요”

“그건 스스로 알아야 한단다.”

“하아…….”

최수혁은 갑자기 훅 들어온 사장님의 말에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었다.

물론 갑자기 훅 들어온 게 아니라는 것은 다른 멤버들도 잘 알고 있었다.

최수혁이 음악을 괜찮게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요즘은 인성도 받쳐줘야한다.

그러한 이유는 연예계에서 논란이 없어야 한다는 것뿐만이 아니었다.

새로움을 받아들일 줄 알고 남을 깎아내리지 않는다는 것은 수용력이다.

수용력은 결국 스스로의 음악에 대한 발전 가능성이었고.

그건 예술가에게 있어 존폐를 논하는 부분이었으니까.

결국 최수혁이 지금까지는 잘 버텨왔지만.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의미였다.

물론, 여기 있는 모두는 몰랐지만.

최수혁에게는 또 다른 모순점이 있었다.

음악성을 그렇게 중요시 여기면서 뒤로는 자신의 유명세를 이용해 나쁜 짓을 종종 하고 다녔다.

김도화 일만 해도 그랬다.

물론 아무도 모르게 은밀히 저지르고 다녔지만.

누군가가 용기를 낸다면 언젠가는 들통 날 일이었다.

그런 최수혁을 좋지 않게 보는 건 동료 음악가들 뿐만 아니라 크로스라인 사장님은 물론 데미안의 멤버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슬슬 지쳐가는 멤버들이었다.

“형, 진짜 그만 좀 해. 지금이 80년대야”

“야, 넌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아니, 운 좋게 좋은 곡 뽑아서 거기에 멈춰있지 좀 마라고.”

“운 좋게 너 말 다 했냐”

“하아……. 그럼 그게 운이지 뭐야”

“야!”

결국 목소리가 높아졌고 술집 안에 손님들이 데미안이 앉은 테이블을 바라봤다.

“됐다. 내가 괜한 말을 했구나. 그만 일어나자.”

사장님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로 향했다.

데미안의 멤버들이 멀리서 보니 직원에서 큰 소리 내서 죄송하다는 말을 하는 것 같았다.

“난 먼저 가마. 오늘 다들 고생했다.”

“네, 그럼 들어가세요.”

“고생하셨습니다.”

데미안의 멤버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드렸고 사장님은 그대로 술집에서 나갔다.

잠시 침묵이 일었다.

데미안을 창설하고 지금 같은 냉기가 흐른 적은 없었다.

다들 머릿속으로 각자의 생각을 하고 있었다.

우리 이대로 괜찮을까.

이 분위기로 내일 형들을 어떻게 볼까.

어쩌다 이 지경이 되어버렸는지, 이게 다 누구 탓인지 등등….

하지만 생각 만으로는 해결될 분위기가 아니었고.

최수혁이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집에 가자.”

그렇게 데미안은 별다른 말 없이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데미안 공연 역사상 가장 찝찝한 뒤풀이었다.

* * *

최근 두 번의 공연은 각각 다른 의미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J홀에서 열렸던 Groovy Nation 정기 공연은 감정이 고장나버린 탓에 고통스러웠다.

반면 크로스라인에서의 공연은 피아노 연주 능력을 처음으로 선보일 수 있어 흥미로웠고.

마음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온 것 같아 만족스러웠다.

감정이 치유되었고 음악에 대한 흥미도 충분히 채워진 것 같았다.

침대에 누워 책상 쪽을 바라보니 마이크와 오디오인터페이스, 그리고 건반이 눈에 들어왔다.

당장 작업을 시작하고 싶어서 미칠 것 같았다.

이번엔 어떤 곡을 만들까.

어떤 곡을 만들어 클라우드 사운드 팔로워들을 놀라게 해줄까.

벌써부터 짜릿함이 온 몸을 감싸 마치 전기에 감전된 것 같았다.

하지만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어제 명함을 받은 유재희라고 합니다…….

우선 어제 내게 명함을 건네준 박윤기 PD에게 연락을 해야 했다.

어떤 이유로 내게 명함을 준 건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왜 명함을 줬을까 궁금하다.]

“그치 나도 궁금해.”

[뭐, 아이돌 런칭 기획이나 그런 건 아니라는 거지]

“응, 그런 거였으면 PD가 아니라 엔터에서…. 어! 아닐 수도 있어!”

[헐, 설마]

“오디션 프로그램이 있지! 그건 엔터가 아니라 방송국에서 론칭하고 섭외도 그쪽에서 하니까.”

[헐, 그럼 진짜 아이돌 되는 거야]

“야, 난 사양이야…….”

[왜 아이돌 무시해]

“아니, 무시가 아니라 난 춤도 못 추고, 얼굴도 아이돌 할 외모는 아니고…. 끼도 없고….”

[등신이고.]

“야!”

[자신감 좀 가져라.]

“나 나 자신감 넘치는데 요즘 내가 예전이랑 같은 줄 알아 나 완전 다른 사람이야.”

[예, 예…. 잘도 그러시겠지요.]

“영혼 좀 담아서 대답 해줄래”

-지이잉.

악마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답장이 왔다.

-안녕하세요. EJ C&M 예능국 PD 박윤기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프로그램 연주자 섭외차 명함 드렸습니다. 시간 되시면 직접 만나서…….

[흠, 연주자]

“그래, 무슨 오디션 프로그램이나 그런 건 아니었겠지.”

[뭐, 나쁘진 않지만 크게 흥미롭진 않네.]

“왜”

[아냐, 우선 답장해.]

“어떻게 할까”

[음……. 어떻게 하고 싶은데 하고 싶은 대로 해.]

“하고 싶은 대로…….”

신중하게 결정해야 했다.

난 앞으로 음악으로 먹고 살 생각이고 이미 진로가 정해진 이상 도전과 고수를 적절하게 해야 했다.

이 프로그램이 어떤 프로인지도 모르고 어떤 연주를 해야 할 지도 몰랐고.

모르는 사람을 무턱대고 만나기엔 위험할 것 같….

[야이! 그냥 일단 만나서 물어나 보던가! 뭔 생각이 그렇게 많아]

“이야, 너 님 천재.”

[어후! 등신이 따로 없네.]

그렇게 악마의 호통을 들으며 난 박윤기 PD에게 문자를 보냈다.

* * *

[일이 술술 풀리는 거면 좋겠다.]

“응, 마침 막막하던 찰나였는데 잘 됐어.”

박윤기 PD와는 다음 날 상수동의 한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다.

점심시간이 지난 낮 2시.

8월이 거의 다 끝나가고 가을을 알리는 9월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지만.

햇살은 여전히 따사롭기만 했다.

상수동으로 달려가는 나의 차는 어쩐지 평소보다 가벼웠다.

엔진 오일을 교체 안 한지 좀 됐음에도 불구하고.

기분 탓인지 악셀을 밟는 기분이 상쾌했다.

하지만 아직 모른다 오늘은 박윤기 PD를 만나 정확히 어떤 프로그램인지, 내가 뭘 해야 하는지 듣기 위해 외출한 것이었으니까.

만약 조금이라도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인 것 같으면 정중히 거절할 생각이었다.

그래도 왠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았다.

두 번의 공연이 끝나고 나니 앞으로 뭘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몰려왔었다.

그냥 곡을 만들고 업로드 하는 것만으로는 무리가 있었고.

유명 엔터에 데모 테잎을 보내야 되나, 생각이 슬슬 들고 있었다.

하지만 박윤기 PD로 인해 더 재밌는 일이 생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송을 타게 된다면 나의 음악을 홍보하는 게 더 쉬워질지도 모르고.

누군가의 밑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그 누군가가 먼저 날 찾게 만드는 게 더 좋았으니까.

우선은 유명해져야 한다.

그렇게 되면 지금은 몇 명 듣지 않는 내 음악을 더 많은 사람들이 듣게 될 테니까.

나라는 사람 자체가 유명해지는 것보다 자식같은 내 음악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것을 꼭 보고 싶었다.

-잠시 후 목적지 부근입니다.

“오, 여기인가 보네.”

[오, 때깔 좋네. 박 PD한테 커피 사라고 해.]

“야, 어떻게 그러냐”

[진담이겠냐 이 멍청아.]

“믿었겠냐 이 멍청아.”

[어쭈]

카페는 총 4층짜리 건물이었다.

지하는 주차장이었고 난 거기에 차를 댄 후 카페로 올라갔다.

조금 이르게 나갔기에 내가 먼저 도착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박윤기 PD는 나보다 한발 빠르게 움직였다.

-재희 씨. 저 도착했는데 커피 뭐 드시겠어요

‘오 도착하셨다고’

계단을 오르다 박윤기의 연락을 받았다.

-괜찮습니다. 저도 지금 지하에서 올라가는 중이니 보고 고르겠습니다.

[커피가 비싼 건 아니지만 어지간히도 너 섭외하고 싶은가 보네]

‘그런가’

[음, 그냥 왠지 그런 생각이 들어.]

악마는 박윤기의 작은 호의에는 다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카페에 들어서니 높은 천장이 한 눈에 들어왔다.

건물 밖에서도 느껴졌지만 내부는 훨씬 고급스러웠다.

상수동에 이런 곳이 있던가 싶은 생각보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려는 발걸음이 훨씬 빨랐다.

“안녕하십니까 테르담입니다. 주문 도와드릴까요”

“아, 네. 아이스 아메리카노 주세요.”

“앞 쪽에 원두 골라주세요.”

“아, 원두요 음…. 엄….”

취급하는 원두가 꽤 많았다.

전부 다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이었지만.

내가 맛을 기억하고 있을 리가 없었다.

맨날 집 앞 2000원 짜리 아메리카노만 마시던 내가 고민하던 찰나.

[야! 야! 나 과테말라 안티구아.]

‘어 어’

[어차피 너 뭐가 뭔 맛인지도 모르잖아.]

‘어…….’

“저, 과테말라 안티구아로 할게요.”

“네, 4800원 결제 도와드리겠습니다.”

난 카드를 내밀었고 폰에 알람이 오는 것을 확인했다.

결제 완료 문자인가 싶었지만 박윤기 PD에게서 온 문자였다.

-2층 창가 쪽 자리에 있어요.

[이히히! 맛있겠당!]

-[Web발신]

유*희(1234)

8/26 13:57

4,800원

테르담

원두도 결정해야 하고 문자가 여러 군데에서 오고 악마는 떠들고.

정신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진동벨로 알려드리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잠깐 동안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몸에 땀이 나는 것 같았다.

땀도 식힐 겸 1층에서 기다렸다가 커피가 나오면 들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흐아…….”

빈자리에 잠시 앉아 커피가 나오길 기다렸다.

[야, 근데 생각해보니까 피아노 세션 찾는 거면 네 친구한테는 왜 명함 준 거야]

‘어…. 그러네’

나는 박윤기 PD의 연락을 받았지만 설희에게 따로 이야기 하지는 않았다.

군대를 앞둔 친구에게 자신만 좋은 일을 위해 외출한다는 걸 말하기가 좀 미안했다.

어차피 조만간 직접 만나게 될 건데 그 때 천천히 이야기 해줄 생각이었다.

근데 악마의 말대로 피아노 연주자를 찾는 거면 왜 설희에게 명함을 준 건지 궁금했다.

[그냥 잘 생겨서 준 건가]

‘뭐, 노래도 잘 하니까. 그랬겠지’

[아니야, 그 정도 노래하는 애들은 많아. 내가 봤을 때는 얼굴이랑…. 음, 그래 무대 매너 정도 그 정도는 인정이야.]

‘뭐, 이따 기회 되면 물어보지 뭐.’

-지이잉! 지이잉!

그때 커피가 준비되었는지 진동벨이 시끄럽게 울렸고.

난 커피를 받아든 후 2층으로 향했다.

그 탑스타의 음악에는 악마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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