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화
“재희 씨. 이거 이대로 우리가 써도 되지”
“아, 물론이죠. 쓰라고 해드린 건데요.”
내가 작업해준 걸 써도 되냐는 질문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었지만.
난 그 말이 너무나도 감사했다.
이들은 나의 창작물을 존중해줬다.
누구와 다르게 말이다.
“그럼 작, 편곡에 이름 넣을게. 등록은 했어”
“아! 네! 했습니다. 지금 이름 등록 되어 있어요.”
“그래, 잘 됐네.”
윤대웅의 노래에 내가 작, 편곡가로 들어가게 되었다.
[오, 뭐, 당연한 거긴 하지만 좋은데 이렇게 갑자기 일이 성사 되다니.]
물론 나는 그저 작, 편곡가가 아닌 가수의 모습을 꿈꾸고 있었다.
하지만 이정도의 시작이면 꽤 괜찮은 시작인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 혹시 작업 하시다가 더 보완할 거 생기시면 언제든지 불러 주세요.”
“그래, 고마워 재희 씨.”
그렇게 우리 셋은 함께 작은 부분들을 더 보완하기 시작했고.
마치 하나의 팀이 된 것처럼 움직였다.
그렇게 곡이 거의 완성본의 구색을 갖췄고.
본격적인 마무리는 작곡가가 다음에 따로 하기로 했다.
약 두 시간 정도 작업을 진행한 우리는 자리에 앉아 잠시 휴식했다.
“와, 재희 씨. 정말 멋지세요. 제가 한참 배워야겠어요.”
“에이, 아닙니다. 다 강점이 있는 거죠.”
TY 엔터의 작곡가는 연신 혀를 내두르며 나의 실력에 감탄했다.
[너 TY 엔터 들어갔으면 저 녀석 밥그릇 싹 다 뺏었겠는데]
‘에이…. 뭘 그렇게 까지 됐겠어’
[그랬을걸…]
‘아냐, 내가 여기 오디션 봤으면 작곡가 말고 가수로 오디션 봤겠지.’
[아, 맞네 야, 그럼 윤대웅한테 네가 최근 만든 곡 들려줘 봐.]
‘이따가 타이밍 봐서.’
작업을 마친 후 가지는 시간이었지만 아직 곡에 대한 이야기 중이었기에 갑자기 내 곡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악마의 말을 듣기라도 한 듯 윤대웅이 먼저 내게 물었다.
“재희 씨 새로 만든 곡은 있어 이 정도 실력이면 정식 음원도 내면 좋을텐데.”
“아, 그렇지 않아도 최근에 완성한 곡이 있어요. 이건 정식 음원으로 내려고요.”
“오, 정말 들어볼 수 있을까”
“네, 아직 좀 부족하지만 들려드리겠습니다.”
“에이! 부족하기는 무슨 소리야”
나는 폰에서 곡을 재생하려고 했다.
“스피커로 들어보자. 좋은 곡은 출력 좋은 장비로 들어야지.”
“아, 그럴까요 알았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컴퓨터로 향했다.
폰에서 파일을 옮겨 실행 시켰고 잠시 후 음악이 흘러나왔다.
이 곡은 얼마 전 동아리 실에서 이종인과 장한슬 앞에서 만든 그 곡이었다.
두 사람의 극찬을 받았던 곡.
내가 생각해도 지금 나의 실력으로 만들 수 있는 최고의 곡이었다.
윤대웅에게 이 곡을 들려줄 생각을 하니 기분이 들떴다.
“오오…….”
“이야!”
그리고 반응은 바로 터져 나왔다.
아마 모든 것을 다 캐치하긴 힘들 거다.
난 이 곡에 숨겨놓은 요소도 많았고.
완성되지 않은 애매한 코드가 주는 오묘한 느낌과 보컬로 인해 완성되는 코드 톤.
악기 간의 조화가 주는 조화로움, 그리고 불친절한 진행이 주는 답답함.
이 모든 디테일을 한 번 듣고 판단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한가지 그들이 느낄 수 있는 게 있었다.
곡을 통으로 들었을 때 느낄 수 있는 감성과 완성도.
“와, 미쳤네. 재희 씨. 이거 대작인데요”
“그러게 말이야. 소리도 잘 만졌고 베이스 무빙도 너무 좋아.”
“근데 코드는 뭘 어떻게 한 거예요 뭔가 이상한데…”
작곡가는 내게 뭔가 이상하다며 물었다.
물론 그 이상하다는 표현의 의미는 모두가 잘 알고 있었다.
“코드를 전부 파워 코드만 써서 가능성을 좀 열어 봤어요. 그리고 그 사이에 올 음은 다른 악기로 채웠구요. 그리고….”
난 곡에 사용된 기법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물론 모든 것을 다 설명하진 않았다.
그러면 설명이 너무 길어질 것 같기도 했고.
원래 자신만 아는 비법은 남들에게 잘 알려주지 않는 법이니까.
“와…. 장난 아니시네. 역시 JH 엔터는 아무나 가는 곳이 아니네요.”
“감사합니다.”
연신 이어지는 칭찬에 기분이 좋아졌다.
내 음악이 좋은 평을 받는 건 언제나 기쁜 일이었으니까.
“재희 씨. 이거 발매 할 거지”
“네, 이건 그냥 두기 아까워서요.”
“유통사 괜찮은 곳 소개해줄까”
“엇, 그러면 감사하죠.”
나도 음원을 발매하기에 좋은 유통사를 알고 있었지만.
아무 곳에나 맡길 수는 없었다.
JH 엔터에 있을 때 컨택했던 곳은 전부 아이돌 음악을 전문으로 유통하는 곳이었고.
내가 알기로 이 음악은 아마 그런 곳에서 해주지 않을 거다.
그렇기에 지금 내가 만든 곡은 어디에서 유통해야 할지 알 수 없었고.
마침 윤대웅은 이런 곡을 전문으로 다루는 유통사를 알고 있는 듯 했다.
“아 그런데 선배님. 혹시 결과는 나왔나요”
“결과 무슨 결과”
“그, 퍼스트 마이크 1차 경연 결과요.”
“아, 나왔지. 알려줄까”
[오, 그러네 나도 궁금하다. 알려달라고 해봐.]
“네, 저도 궁금하네요.”
“하하, 맞아 재희 씨한테 말을 해줬어야 하네. 몇 등이었냐면…….”
* * *
“야! 시작한다! 시작한다!”
“야! 맥주 가져와!”
“예스, 예스.”
신림에 위치한 나의 자취방.
오늘은 혼자가 아닌 이종인과 함께였다.
치킨과 캔맥주를 세팅해두고 우리 둘은 TV 화면에 시선을 고정했다.
지금 TV에서 방영중인 프로그램은 K-Net의 퍼스트 마이크.
오늘은 드디어 대망의 첫 화가 시작하는 날이었다.
“야, 오늘 너 나와”
“응, 1편에서 딱 우리 공연까지 나온다고 했어!”
“와! 씨! 미쳤다! 유재희 텔레비전 나온다!”
“아직 안 나왔어 진정해…….”
[현대인들은 호들갑을 참 좋아하는 것 같아.]
‘아니야, 그냥 우리 학교 사람들이 좀 이상한 것 같아….’
퍼스트 마이크 1편의 초반부는 여느 프로그램과 같았다.
각 출연진들이 섭외된 장면부터 모두 한자리에 모여 견제하는 장면까지.
사람만 바뀌었지 다른 경연 프로그램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K-Net 뿐만 아니라 각종 채널에서 했던 모든 경연 프로그램의 초반부는 이런 식이었다.
진부하긴 해도 계속해서 이런 장면들이 나오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와, 근데 최설하 저 사람 진짜 예쁘다.”
“걸그룹 출신이시잖아.”
“너도 최설하 직접 봤어”
“아니 생각보다 정신이 너무 없었어. 내 기억엔 누구랑 마주친 적이 없는 것 같아.”
[뭐 아니야. 최설하 못 봤어 그 통로 지나갔었는데]
‘거기 좀 어두웠잖아.’
[음…. 하긴 넌 못 봤을 수도 있었겠네.]
만일 내가 누군가를 지나쳤다고 해도 그날은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기억을 할 리가 없었다.
-저는 비장의 무기를 준비했습니다.
-오, 설하 씨가 준비한 비장의 무기가 뭘지 정말 궁금합니다. 기대가 되는데요.
진행을 맡은 도진환 MC는 비장의 무기가 있다는 최설하의 말에 궁금증을 자아냈다.
“뭔지 알아 무슨 무기야”
“야, 저 사람 진짜 정면승부 대박이었어.”
“뭔데”
“말해줘”
“아니야, 말 하지 마. 그냥 모르고 볼래.”
“그래, 어차피 이따 나올 거야.”
그렇게 인터뷰, 공연 준비 등등 많은 장면이 지나갔고.
드디어 경연이 시작됐다.
-안녕하십니까. 진행을 맡은 도진환입니다.
-와아아아아!
TV 화면은 무대로 전환되었고.
무대 오른쪽 단상에서 진행을 맡은 도진환이 멘트를 이어갔다.
쏟아지는 환호성.
소리를 지르고 박수를 치는 관객들의 모습이 잠깐 지나갔고.
이어서 대기실에 있는 몇몇 참가자들의 모습도 지나갔다.
그들의 표정엔 긴장감과 비장함이 묻어나고 있었다.
“우오오오옹….”
“그렇게 기대 되냐”
“당연하지. 친구가 나오는데 기대가 안 될 수가 있냐”
도진환은 개그맨이라는 직업과 잘 어울리게 재치있고 매끄러운 진행을 이어갔다.
그리고 이어지는 대망의 첫 순서.
최설하의 무대가 이어졌다.
긴장감을 조성하는 듯한 장면이 이어졌다.
무대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관객들이 화면에 들어왔고.
무대 뒤에서 인이어를 만지작거리는 최설하의 옆모습이 클로즈업 되었다.
그리고 무대 위로 오르는 최설하.
그녀는 반짝이는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기다란 치마가 그녀의 발길을 따라 걸었다.
“와, 진짜 여신이다. 얼굴로 나라 세우겠는데 말이 되냐 와, 진짜 최설하 얼굴 아직도 못 본 사람은 전생에 뭔 죄를 지은 걸까”
“그렇게 예쁘냐”
“저 얼굴이 안 예뻐”
“예쁘지 예쁘긴 한데.”
[저 반응은 너무 주접이다 이 말이지.]
‘그렇지.’
그리고 곧이어 최설하의 무대가 시작되었다.
피아노 선율로 시작되는 최설하의 무대.
“어 이거….”
“알겠어 이게 저 사람 무기야.”
“와, 대박.”
TV 화면은 대기실에 있는 윤대웅의 모습으로 전환되었다.
-엇! 와! 진짜야 진짜 이 곡이야 이거 내 노래잖아! 하하하!
윤대웅은 허탈한 웃음과 함께 한 방 먹었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최설하는 첫 경연부터 큰 승부수를 띄운 것이었다.
참가자들 중 꽤 높은 연차를 자랑하는 선배의 곡을 감히 도전적으로 가지고 나온 것이었다.
화면은 다시 무대로 전환되었고 최설하는 아주 짧은 미소를 흘린 후 노래를 시작했다.
* * *
“우와…. 노래 되게 잘하시는데”
“응, 나도 대기실에서 모니터했는데 진짜 잘하시더라.”
“아니, 저 작은 체구에서 어쩜 저런 성량이 나오는 걸까”
“그러게 말이야. 대단해.”
최설하는 자신의 순서를 완벽히 해냈다.
무대 중간중간 윤대웅의 표정이 자주 클로즈업 되어 나타났고.
다른 참가자들이 감탄하는 모습도 보였다.
두 번째 순서까지 끝이 났고.
그리고 드디어 세 번째 순서인 윤대웅의 차례가 다가왔다.
“오오, 그냥 무대 준비 과정 스킵하고 바로 보여주면 좋겠다.”
“에이, 그럼 방송이 아니지.”
“아 근데 너도 무대 준비하는 장면에 나와”
“음…. 아마도 밥먹는 장면이랑 합주 장면 찍긴 했어.”
“오오….”
친구가 TV에 나오는 건 신기한 일이 맞다.
근데 그게 뉴스나 짧은 인터뷰 혹은 지나가는 게 찍히는 정도가 아니었기에 이종인은 더욱 기대감이 컸다.
윤대웅의 무대 준비 장면의 처음은 그와 작곡가가 곡을 고르는 장면부터 시작했다.
-대영아 이거 어때
-음, 좋은데요 형님이랑 잘 어울려요.
화면 속 윤대웅은 작곡가와 함께 한 영상을 보고 있었다.
그 영상은 프레디 머큐리라는 가수의 생전 공연 영상이었다.
-형님 한국의 프레디 머큐리잖아요.
“맞아, 윤대웅 님 별명이었지.”
“응, 진짜 노래 하나는 기가 막히게 부르셔.”
곡의 방향성을 선정하는 장면.
이어서 이어지는 윤대웅의 인터뷰 장면.
-제가 존경하는 가수인 프레디 머큐리의 노래를 오마주해서 곡을 준비했습니다.
윤대웅의 포부가 가득 담긴 인터뷰가 지나가고 이어서 TY 엔터테인먼트의 녹음실이 나타났다.
-아, 아. 자 녹음 시작할게요.
-네, 들어가겠습니다. 선배님.
윤대웅이 곡을 녹음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담겼다.
“와, 미친 잠깐 봐도 녹음 엄청 잘 하시는데”
“나도 녹음 하는 건 처음 보네. 진짜 잘 하신다.”
“그러니까. 완전히 레코딩 기계야.”
잠간 스치는 윤대웅의 레코딩 장면에 우리 둘은 놀라울 지경이었다.
저 탄탄한 소리가 온전히 마이크에 수음되는 것이 TV 화면 밖까지 느껴졌다.
그리고 이어지는 다음 장면.
“이야아아!”
그 장면을 본 이종인은 갑자기 소리를 질렀고.
“야, 옆집에서 뭐라고 하겠다. 조용히 좀 해.”
[아이고…….]
나는 이웃집이 신경 쓰여 이종인을 진정시켰지만.
가슴이 들뜨는 건 사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 탑스타의 음악에는 악마가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