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클립 속 영상은 본 방송과 달리 참가자들의 반응은 편집되어 있었고.
온전히 무대만 보여지는 형태였다.
나는 영상을 재생해둔 채로 댓글을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와 윤대웅 클라스 여전하네….
-한국의 프레디머큐리 ㅇㅈ
-와 피아노 미쳤다 ㄹㅇ 나 전공자인데 저건 그냥 배워서 나오는 짬이 아님-아무래도 퀸 표절인 것 같네요. 실망스럽습니다.
-프레디 머큐리 오마주라고 병신아 ㅋㅋㅋ 본방 좀 보고 말해라-유재희 저 사람 예전에 홍차 터질 때 잠깐 이슈 된 그 사람 아님 피아노도 잘 치네
-윤대웅 울림통 말이 되냐 저 마른 몸에서 어떻게 저런 소리가 나와
-피아노 치는 사람 연예인임 대존잘인데
-피아니스트랑 윤대웅 케미 미쳤네 훈훈한 삼촌이랑 조카같아
나는 댓글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나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을 거라 예상했지만.
약 7대 3의 비율로 나에 대한 이야기도 조금씩 나오는 중이었다.
“야, 대박이다….”
[그러게 이게 이렇게까지 반응이 올 일이구나]
“확실히 방송이다 보니 그런 것 같아. 홍차 때랑은 비교도 안 돼.”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대부분 이름도 모르고 있었지만.
정말 간혹 가다 한 명씩은 나의 이름을 알고 있었고.
홍차와의 이슈까지 알고 있었다.
난 그렇게 댓글을 계속해서 읽어나갔다.
멈출 수가 없었다.
나에 대한 관심은 이전에 비해 커지는 중이었고.
난 그 관심에 천천히 중독되는 것 같았다.
[이야…. 심장 떨리는 것 봐.]
“기분 엄청 이상해.”
[응, 다 느껴져. 여기서 만약에 감정 한두 개 더 섞이면 나 힘드니까 조심해 줘.]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지만 노력해볼게.”
사실상 댓글의 개수와 조회수가 그리 많은 수를 기록하는 건 아니었다.
퍼스트 마이크는 예고편부터 저조한 성적을 보였다.
참가자들의 풀버전 공연 클립도 걸그룹 출신인 최설하만 압도적으로 높았고.
나머지는 몇 만 정도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이정도면 방송 조회수 치고 그렇게 높은 조회수는 아니었다.
확실히 한국 음악 시장은 아이돌 위주로 돌아가는 중이었고.
연차 높은 가수들의 무대는 파격적인 이슈를 이끌어 내기에 좋은 요소가 아니었다.
물론 실력은 모두 두말하면 입 아플 정도였지만.
그것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화제성이 있어야 했다.
그리고 그 화제성은 아마 다음 경연쯤이 되면 생길 것 같았다.
퍼스트 마이크의 2차 경연은 아이돌 음악을 편곡해서 참가해야 하는 룰이 있었다.
그렇게 된다면 원곡의 팬들이 조금은 유입이 될 거고 좋던 나쁘던 입방아에 오르내릴 거다.
뭐, 어쨌든 그건 박윤기 PD가 알아서 해야 할 일이었고.
나에게는 지금 이 정도로도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안주하면 안 된다.]
“당연하지. 아직 부족해.”
이 정도로는 부족했다.
난 더 큰 꿈이 있었고.
이건 단지 시작일 뿐이었다.
* * *
그렇게 난 한동안 관심이 만든 얕은 바다 속에서 허우적댔다.
느리지만 천천히 무대 클립 영상의 조회수와 댓글이 늘어났고.
마찬가지로 나에 대한 이야기도 점점 늘어났다.
지금이 정말 좋은 타이밍이었다.
나를 알릴 수 있는 가장 좋은 타이밍.
그렇게 나는 윤대웅에게 문자를 보냈다.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혹시 지금 연락 가능하실까요
답장은 거의 바로 왔다.
-응, 지금 막 촬영 끝나고 집에 가는 길이야. 무슨 일인데
-지난번에 유통사 알아봐주신다고 했던 것 때문에 연락 드렸습니다.
-아, 그래, 지난번에 그 노래 발매할 거지
-네, 맞습니다.
-그래, 그럼 내가 한 십분 이따가 유통사 이름 알려줄게 거기에 연락하면 돼.
-네, 감사합니다.
음원을 발매하기 위해서는 유통 과정을 꼭 거쳐야 한다.
곡이 완성 되면 우리가 아는 여느 음원 스트리밍 회사에 바로 연락하는 것이 아니라 유통사를 꼭 거쳐야 한다.
보통 한 유통사는 특정 장르 위주로 유통을 해주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곡이 좋거나 가수가 유명인인 경우.
다시 말해 화제가 될만 한 곡은 가리지 않고 유통해주기도 한다.
아무튼 이런 과정을 거쳐 곡을 발매한다고 해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 걸로 알고 있었다.
큰 기획사에서 내는 곡은 당연히 발매 예약 1순위였고.
그 순위가 계속 밀려 나 같은 아마추어는 못해도 발매 예약이 한달은 걸린다.
그렇기에 지금도 빠른 건 아니었지만.
퍼스트 마이크로 인한 단물이 다 빠지기 전에 빨리 음원을 발매해야 했다.
-픽업뮤직컴퍼니. 유통사 이름이야. 여기로 연락하면 돼.
-네, 감사합니다. 선배님.
-그래, 거기 나 아는 사람 있으니까 혹시 예약 너무 밀리면 말해. 좀 당겨줄게.
예상치도 못하게 음원을 빨리 발매해야 한다는 압박감은 사라져버렸다.
-항상 도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선배님.
-아니야, 좋은 곡도 주고 연주도 해줬는데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아무튼 고생해.
-네! 감사합니다!
괜찮은 유통사도 알았겠다 이젠 음원을 발매하는 일만 남았다.
[윤대웅 그 양반 너한테 되게 호의적이네.]
“그러게 말이야. 베풀 줄 아는 사람인 것 같아.”
[응, 사실 너는 방송 출연으로 얻을 거 얻었고 곡 작업 도와준 것도 크레딧에 이름 올라가는데 말야.]
나와 악마는 윤대웅이 내게 이렇게 잘 해주는 게 신기했다.
난 이미 받아야 할 것들을 정당하게 다 받거나 받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그 누구도 내게 더 잘 해줄 필요 없었지만.
윤대웅은 정이 있는 사람인 것 같았다.
그동안 엔터와 연예계에 있어 좋지 않은 생각을 해왔지만.
윤대웅이라는 사람을 알고 나니 내가 편협한 시야를 가지고 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음원을 발매하는 건 나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몇 가지 심사가 끝나면 마지막엔 크레딧을 전달해야 했고 그것까지 모두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 나 혼자 준비하기 어려운 게 있었다.
“으으….”
[그냥 연락 해. 너 걔 좋아하냐 뭘 그렇게 고민해]
“아니, 그게 아니라 필요할 때만 연락하는 것 같아서 미안하잖아.”
-Qrious 김도화 26
나는 김도화의 연락처를 보며 고민중이었다.
음원을 처음 등록하는 거라면 몇가지 필요한 게 있었다.
그건 바로 프로필 사진과 앨범 커버.
음원을 제작하고 유통사에 곡을 전달하고 예약을 잡는 것까지는 일도 아니었지만.
나를 꾸미고, 사진을 찍고 앨범 커버를 제작하는 것.
“아…. 이건 진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러니까 그냥 연락 하라니까]
내 주위엔 이런 것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 없었지만.
문득 생각난 사람이 김도화였다.
나에게 메이크업과 코디를 해준 적도 있었고.
손으로 하는 건 어지간하면 다 잘한다고 들었다.
“그래, 혼자 고민 하면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니까.”
그렇게 난 잠깐 고민하다 김도화에게 전화를 걸었다.
생각해보니 이제 막 저녁 시간이라 퇴근은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보세요
“어, 바빠”
-아니, 퇴근하는 중이야. 왜
“아니, 나 뭐 좀 물어보려고.”
-뭔데 얘기 해.
먼저 내가 꺼낸 이야기는 프로필 사진이었다.
음원을 내려고 하는데 프로필 사진이 필요하다.
그런 사진은 어디서 찍어야 하고 어떻게 꾸미고 가야 하는지에 대해 물었고 김도화는 별 거 아니라는 듯이 대답했다.
-그냥 아무 스튜디오 가서 찍으면 돼. 어려울 거 없어.
“아, 그래 아무데나”
-너 증명사진 찍은 적 있지
“응, 있지.”
-그냥 그런 곳에 가면 돼. 아니면 좀 더 괜찮은 곳 찾아봐야지.
“음…. 그렇구나….”
-나 아는 곳 있는데 거기로 가던가.
“오, 정말”
-응, 그리고 옷이랑 메이크업은 내가 해줘도 되지.
“야, 그러면 고맙지. 시간 괜찮겠어”
-직장인이 퇴근하면 남는 게 시간이지 뭐 체력이 안 남아서 그렇지.
“내가 맛있는 거 사줄게.”
-그래 뭐, 그러던지….
그러고 난 후 앨범 커버에 대해서도 물었지만.
그 분야는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여기저기 알아본 후 외주를 맡기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그래 그럼 그 날 보자.
“응, 도와줘서 고마워.”
-고맙긴…. 아무튼 끊는다.
“응.”
전화를 끊고 생각해보니 하나는 벌써 해결이 된 것 같았다.
[야! 쟤가 너!]
“안 좋아해.”
[흠… 넌 역시 이런 쪽으로는 재미가 없어….]
악마의 헛소리를 무시한 채 난 앨범 커버를 전문으로 만드는 업체나 디자이너를 찾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끝나면 정말 나의 앨범이 발매될 수 있을 것 같았다.
* * *
유재희는 최근 들어 모든 일이 잘 풀리고 있었다.
그의 과거를 잘 떠올려보면 그야말로 악몽이 따로 없었다.
중학교를 다닐 때는 학교 폭력으로 인한 힘든 시기를 보냈다.
학교폭력을 당하는 많은 이들이 그랬듯 유재희 또한 선생님들께는 물론 부모님께도 이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
결국 유재희의 부모님은 아들의 고통스럽던 과거를 전혀 모르신 채 그가 상병일 때 이 세상과 작별하셨다.
뭐가 그렇게 급하셨는지 아들이 유명해지는 것도 지켜보지 못하시게 됐다.
그렇게 유재희는 매일매일 눈물로 하루를 보냈다.
전역을 하고 난 후 JH 엔터와 계약했지만.
결과는 모두가 알다시피 곡을 빼앗겼고.
그가 얻은 건 이 회사에서 자신의 미래는 없다는 것과 엔터에 대한 불신.
그리고 좌절에게 비웃음 당했을 때 솟아오르는 반발심과 음악에 대한 열정이었다.
이렇게 힘든 일들만 가득해서였을까
최근 유재희에게는 좋은 일이 가득했다.
악마의 이야기를 제외하더라도 자신의 힘으로 김종필을 잘라낼 수 있었고.
설희와 태훈이, Qrious의 멤버들처럼 감사한 친구들이 생겼다.
그리고 홍차와의 사건이 타이밍 좋게 맞아 떨어진 것.
퍼스트 마이크에 출연하게 된 일과 윤대웅이 적극적으로 자신을 돕는 것까지.
세상은 그동안 고통에 시달리며 음악을 찾아 겨우 숨쉬던 유재희를 돕고 있었다.
그리고 이 세상은 거기서 만족하지 못했는지 유재희에게 줄 선물을 한 가지 더 준비하고 있었다.
퍼스트 마이크와 관련된 2차 가공 영상은 유튜브와 여러 SNS를 통해 퍼져나가는 중이었다.
아직 원본 조회수가 그렇게 높진 않았지만.
슬슬 화젯거리가 되어가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그 많은 영상 중 특정 사용자들에게 빠르게 번지는 영상이 있었다.
-돈스탑 피아노 걔
영상의 제목은 이러했다.
이 영상이 빠르게 퍼지고 있는 소비층은 주로 아이돌의 팬덤이었다.
해당 영상은 이름 모를 한 유튜버에 의해 제작되었고.
영상은 본 방송에서 유재희의 컷만 잘라 만들어진 것이었다.
해당 영상은 아이돌 영상을 주로 보는 사용자들에게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갔고 조회수는 서서히 오르고 있었다.
-아니 나 왜 저 사람 웃는 거 계속 돌려봄
-0:42 여기 웃는 거 상상 속에서 본 학과 선배 재질…….
-저 얼굴에 안경 씌워보고 싶다-아니 제일 발리는 부분이 뭐냐면 계속 시종일관 웃으면서 훈훈하게 피아노 치다가 마지막에 뭐에 미친 듯이 연주하는 거임 저 갭차이에서 빠져나오질 못하겠어….
-누가 저 사람 SNS 계정 좀….
-저사람 홍래방 박살낸 그 사람 아니야
영상에는 유재희에 관한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해당 영상의 길이는 굉장히 짧았지만 큰 힘을 가지고 있었고.
유튜브 뿐만 아니라 각종 SNS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건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은 이들만 즐길 수 있는 영상이었기에 유재희는 당연히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 탑스타의 음악에는 악마가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