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탑스타의 음악에는 악마가 산다-111화 (111/194)

111화

합정과 홍대 사이에 위치한 공연장 Black Daddy는 평범한 크기의 소 공연장이었다.

공연자들을 위한 대기실이 무대와 바로 연결된 곳에 위치하고 있었고.

객석과 분리되어 있는 프라이빗한 공간이었다.

리허설을 해본 결과 음향도 꽤 괜찮았고, 객석까지의 거리도 적절했다.

크기는 대략 40명에서 5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정도.

‘꽤 괜찮은데.’

괜히 이종인이 추천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이종인도 나도 간과한 것이 하나 있었다.

대기실에서 시간이 되길 기다리던 난 밖에서 들어온 서희진의 말을 듣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오빠, 어떡해요”

“왜 무슨 문제 있어”

“사람이 다 못 들어와요.”

“어 왜”

[야, 보러 가자. 사람 많이 왔나 봐.]

“사람이 너무 많아요. 어떡해요”

내 예상은 끽해봐야 20명에서 30명 정도.

얼마나 왔길래 다 못 들어온다는 거지

난 대기실 문을 빼꼼 열어 바깥 상황을 확인했다.

대기실 문 바로 앞까지 사람이 들어 차 있었고.

여길 나가려면 꽤 고생할 것 같았다.

“야, 너 대기실 어떻게 들어왔어”

“저, 사람 비집고 어찌저찌 들어왔죠…….”

“아….”

난 바로 장한슬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슬아 티켓팅 하고 있어”

-네, 형. 근데 어쩌죠 더 못 받을 것 같은데요

“아, 어쩌지….”

당연히 사람이 많이 온 건 좋은 일이었지만.

처음으로 여는 공연에 처음으로 겪게 되는 어려움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공연을 보러 왔는데 돌려보내기도 죄송스러웠고.

더 들어올 공간도 없는데 돈을 받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 어쩌지….”

[돌려보내야지 뭐. 어쩔 수 없어. 연예인들 콘서트 할 때도 티켓팅 실패하면 못 가는 거잖아.]

악마의 말이 맞았다.

너무나도 죄송한 일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하아…. 죄송하지만 자리 없다고 이야기 좀 해줘. 부탁 좀 할게.”

-괜찮아요. 저희도 이런 적 엄청 많았어요. 준비 잘 하세요 형.

“응….”

어쩐지 마음이 무거워졌다.

공연을 보지 못하게 된 관객들에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했고.

내가 이렇게까지 큰 기대를 받고 있다는 건 몰랐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위치는 그저 그런 아마추어들 중 아주 약간 나은 정도였다.

프로 생활을 좀 했었고 악마에게 능력을 받은 아마추어.

그게 얼만큼의 힘을 가지고 있는지 잘 몰랐다.

온통 처음 겪는 일 뿐이었다.

프로로 일하다가 아마추어로 활동하는 것도, 악마에게 능력을 받은 것도.

1000명이 넘는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와 방송에 출연해 윤대웅의 샤라웃을 받는 것까지.

온통 처음 겪어보는 일이었기에 그게 얼마나 큰 힘을 가지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너 자신감 좀 가져도 된다고 몇 번을 말했냐]

그동안 악마가 왜 그렇게 말 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내가 조금씩 이룩해내는 것들을 보며 작은 자신감이 솟긴 했지만.

억지로 텐션을 끌어올리려는 노력을 했을 뿐이었다.

난 내가 많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나를 봐주러 오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니 진심으로 자신감이 샘솟았다.

갑자기 내가 멋진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누군가는 TV에 나와 무대를 하고 윤대웅의 곡을 편곡한 게 더 훌륭한 일이 아니냐는 말을 할 수도 있겠지만.

난 내가 주도적으로 벌인 일이 잘 되는 것이 더 소중했다.

“오빠, 진짜 인기 많네요”

“고맙다. 동아리 사람이 게스트로 온대서 더 많이 온 걸 거야.”

“에이, 그래도 호스트가 중요하죠.”

서희진도 옆에서 나의 용기를 끌어 올려줬다.

왠지 공연이 더 재밌을 것 같았다.

빼곡하게 들어찬 관객들과 함께 소리 지르고 뛸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조명을 받는 느낌이었다.

처음엔 부담감이 밀려왔지만 어느덧 자신감과 기대감으로 모두 변해 내 가슴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 * *

Black Daddy 내부는 무대에만 은은한 조명이 켜져 있었다.

각종 악기가 비치되어 있었고 조명을 받아 반짝이는 중이었다.

엔지니어 부스에는 이종인이 앉아있었고.

리허설 때 점검했던 음향, 조명 등 모든 것을 다시 복기하는 중이었다.

사람들이 지루하지 않게 음악을 틀어놓았고 이종인의 선곡은 탁월했다.

객석 가득히 들어찬 관객들은 그 음악에 춤을 추고 싶었지만.

공간이 너무 협소해서 그럴 수 없었다.

“와, 사람이 이렇게 많아도 돼”

“우리 공연 때도 이렇게는 안 왔는데 말이에요.”

Qrious의 멤버들은 객석의 중간쯤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들어찬 공연장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아니, 밀도만 봤을 때는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유재희의 인기가 실감이 되는 순간이었다.

“재희 형 인기 있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이정도일 줄이야….”

“대단한 녀석이야.”

그리고 객석의 뒤쪽엔 임태현이 겨우겨우 자리를 잡고 서있었다.

너무 복잡해서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친구가 여는 첫 공연이었기에 그럴수는 없었다.

그리고 유재희가 자신의 공연에서 어떤 모습을 보일지 궁금하기도 했으니까.

빨리 공연이 시작되기만 기다렸다.

그리고 엔지니어 부스 앞에서 혼자 공연이 시작되길 기다리는 한 남자.

그 남자는 남들처럼 음악을 즐기지도, 유재희를 기대하며 마음 졸이지도 않았다.

그저 혼자 폰을 들여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건장한 체구에 과하다 싶을 정도로 편하게 입고 온 남자.

-형님 도착했습니다.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네요.

-그래 잘 하고 와 부탁 좀 할게 -네, 알겠습니다.

어딘가로 문자를 보내고 시간을 확인했다.

-6:58

6시 58분.

‘이제 곧 시작하겠….’

“오오오오…….”

이제 곧 시작하겠다는 생각이 들 때쯤 관객들의 술렁이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고 무대를 바라보니 누군가가 올라왔고.

바로 첫 곡이 시작되었다.

“와아아아아!”

멘트도 없이 MR과 조명이 Black Daddy를 장식했고.

오프닝을 맡은 누군가가 올라와 멋진 무대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 * *

“경환이 말대로 저렇게 멘트 없이 시작하는 것도 꽤 괜찮은데”

오프닝을 맡은 백경환은 첫 곡에서 멘트 없이 바로 무대를 보여주겠다고 했다.

난 한 편으로 소개도 없이 무대를 보여주는 건 도대체 무슨 자신감일까 싶었지만.

내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무대는 뜨겁게 달궈지는 중이었다.

백경환은 힙합을 하는 친구여서 그런지 평소에도 에너지가 넘쳐났고.

무대에서는 그것보다 훨씬 뜨거운 에너지를 발산했다.

Black Daddy의 대기실은 크로스라인처럼 모니터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그렇기에 소리로만 밖의 상황을 확인해야 했다.

무대와 연결된 문이 있었지만.

오른쪽 끝에 있는 관객들에게 보이는 각도였기에 그럴 수도 없었다.

“오오! 경환이 오빠 역시 무대 잘 하네!”

“야, 희진아 보이겠다.”

“에이, 뭐 어때요.”

서희진은 대기실 문을 아주 살짝 열고 무대를 보는 중이었다.

“이야…. 막 뛰고 난리 났네.”

“경환이가”

“아뇨, 관객들이요.”

“와, 그래”

나를 포함한 다른 대기자들도 서희진의 설명으로 백경환의 실력을 전해 들었다.

“혼자 저렇게 하는 거 진짜 쉽지 않은데…. 저 오빠 진짜 대단하네….”

오늘 무대에서 혼자 서는 건 나와 백경환이었다.

다음 무대를 대기하던 중 악마가 말을 걸어왔다.

[너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래도 저 정도 에너지 내긴 힘들 것 같아. 아무래도 장르의 특성이라는 게 있으니까.’

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백경환은 말 그대로 무대를 찢고 있는 중이었다.

내가 그만큼의 에너지를 뿜어내는 건 당연히 아직 안되겠지만.

악마는 다른 방향으로 나의 무대를 기대하는 중이었다.

[밖에 사람 엄청 많은 거 알지]

‘응, 알지. 아까 들었잖아.’

[응, 그래. 알면 됐어.]

‘뭐야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

악마는 나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 나의 떨림을 온전히 느끼고 있을 거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몇가지의 감정이 교차하는 중이었고.

그럴 때면 악마는 걱정하지 말고 평소처럼만 하라는 말이라던가, 실수만 하지 않으면 된다는 말을 해줬다.

그건 극도로 치솟는 나의 긴장감을 풀어주기 위한 말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잘할 것 같다는 말과 밖에 관객이 많은 걸 알고 있냐는 말만 남기고 별말 하지 않았다.

왜 그런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지금은 그걸 궁금해할 타이밍이 아니었다.

“와아아아!”

“훠어우!”

“감사합니다. 영 디키였습니다!”

백경환은 자신의 랩네임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주며 공연을 마무리했다.

[가자. 일어나.]

‘응.’

공연이 마무리되는 소리와 함께 나는 대기실 문 쪽으로 향했다.

내가 문을 열기도 전에 문이 열렸고 백경환이 들어왔다.

앞머리가 땀에 젖은 백경환은 날 보자마자 손을 건넸고 나는 그의 손을 꼭 잡고 악수했다.

“잘했다. 고생했어.”

“형, 제가 무대 잘 달궈놨으니까 잘하고 오세요.”

“그래, 고맙다.”

그렇게 난 대기실 문을 나가 무대로 향했다.

쏟아지는 함성 소리.

정신이 벌써 아득해지는 것 같았다.

* * *

“오! 재희다!”

“와! 재희 형!”

“꺄아아악!”

백경환의 불같은 공연에 잔뜩 달궈진 관객들.

무대에 유재희가 올라오자마자 찢어질 듯한 함성이 울려퍼졌다.

Qrious와 임태현도 마찬가지로 소리를 지르며 환호했다.

유재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냥 무대에 올라 리허설 때 약속한 마이크를 찾을 뿐이었다.

지금 이 곳은 유재희를 보기 위해 온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그렇기에 당연히 유재희를 향한 환호가 가장 클 수밖에 없었고.

그냥 마이크를 집는 모습만 봐도 열광하는 관객들이었다.

“이야…. 인기 많네….”

엔지니어 부스 앞쪽에 있던 의문의 남자.

그 사람은 유재희를 향한 사람들의 함성이 놀라웠다.

연예인도 아닌데 꽤 괜찮은 반응을 얻는 유재희.

그는 유재희를 보며 미리 가져온 가방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 * *

“안녕하세요. 유재희입니다.”

“와아아아!”

나의 인사와 함께 반가운 환호 소리가 들렸다.

“꺄아아악!”

그리고 객석 맨 앞에 어떤 여자 관객이 거의 비명에 가까운 환호를 보냈다.

“하하하하!”

“푸하하하하!”

그 소리에 한바탕 웃음이 터져나왔고.

난 다시 멘트를 이어나갔다.

“혹시 저 얼마 전에 TV 나온 거 보신 분”

“저요!”

“저요!”

“나! 나! 나!”

“그때 피아노 친 게 반응이 좋아서 피아노 좀 치려는데 연결 좀 할 게요.”

“네!”

난 잠시 피아노를 세팅하기 위해 마이크를 내려놓고 무대 왼쪽에 있던 피아노를 옮겼다.

백경환의 무대에서 공간을 활용해야 했기에 피아노를 직접 옮기는 수밖에 없었다.

만약 공개 방송 공연이었다면 이런 것도 스텝들이 다 해줬겠지만.

이런 것도 소 공연장 무대의 묘미였다.

피아노를 옮기던 중 시선이 느껴졌다.

50명이라는 수용 가능 인원을 훨씬 넘은 수의 시선.

피아노를 옮기는 동안 관객들이 지루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난 마이크를 잡았다.

“그, 뭐야…. 옆 사람이랑 인사도 좀 하고 친해져요. 저 피아노 옮기는 거 지루하실 텐데.”

[어째 지난번에 했던 멘트랑 비슷한 것 같다]

‘내 말주변은 이게 최선이야….’

[응, 인정하마….]

“아니에요!”

“괜찮아요!”

다행히도 관객들은 천천히 날 기다려줬다.

사실 10초도 걸리지 않는 텀이었지만.

관객들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빠르게 세팅된 피아노와 마이크.

난 그 앞에 앉아 정면을 바라봤다.

이종인이 정면 엔지니어 부스에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첫 곡 시작하겠습니다.”

난 건반을 두드리기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관객들의 함성이 터져나왔다.

내 생에 첫 호스트 공연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그 탑스타의 음악에는 악마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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