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탑스타의 음악에는 악마가 산다-120화 (120/194)

120화

“아니! 뭐야!”

“혀어어엉!”

“야! 설희 너!”

전화로 이종인이 말한 곳으로 와보니 이종인과 함께 Qrious가 완전체로 날 기다리고 있었다.

설희가 휴가를 나올 때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그게 언제인지 정확히는 모르고 있었다.

“야아아아아!”

“와아아아!”

설희와 난 만나자마자 서로를 붙잡고 발을 동동 굴렀다.

무대가 아니면 얌전했던 우리 둘이지만.

보기 드물게 한껏 높아진 텐션으로 서로를 반겼다.

빡빡이가 되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모자를 쓴 설희의 외모는 여전했다.

다만 고생을 좀 했는지 피부가 좀 상한 것 같아 보였다.

“야! 너 언제 나왔어”

“저 어제 나왔습니다.”

“야! 뭔 ‘나왔습니다’야! 하하하!”

“아, 맞다….”

그렇게 이동할 생각도 못한 채 찬바람을 맞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야, 재희야.”

“응”

맞은편에 있던 김도화가 날 불렀고 그녀를 바라보니 눈짓으로 뒤를 보라고 했다.

“음”

뒤를 돌아보니 고등학생 쯤 되어 보이는 두 사람이 쭈뼛대고 있었다.

“저…. 팬인데 혹시 사진 좀 찍어주실 수 있을까요”

“아.”

난 설희와 눈이 마주쳤다.

설희는 뿌듯하다는 듯한 미소를 건넸고 찍어주고 오라는 듯 나의 등을 살짝 밀었다.

“네, 물론이죠.”

난지공원에서 열렸던 페스티벌과 상황이 바뀌었다.

그 때는 설희가 팬들에게 사진 촬영 요청을 받았고.

난 돗자리에 앉아 그걸 지켜봤다.

지금은 내가 팬들과 사진을 찍는 중이었고.

설희는 뿌듯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중이었다.

[금세 따라잡았네.]

물론 이런 작은 상황들로 누군가를 따라잡고 넘었다고 말하는 건 웃기는 일이었지만.

악마의 말엔 상징적인 의미가 담겨 있었다.

난지공원과 마찬가지로 김도화가 사진을 찍어줬고.

난 어색한 표정과 자세였지만 최선을 다해 포즈를 취했다.

“감사합니다! 오늘 공연 정말 최고였어요!”

“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그 두 학생은 돌아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단순히 공연을 잘 마친 것만으로도 행복했었다.

하지만 이렇게 반가운 얼굴을 보니 그 행복은 배가 되었다.

“자, 일단 움직이자.”

“응!”

이종인의 말과 함께 우린 김도화의 차를 타고 움직였다.

* * *

태훈이는 얼마 전 휴가를 받았지만.

시간이 애매해서 가족들만 보고 다시 부대로 복귀했다고 들었다.

설희는 부대가 서울과 가까워 이렇게 시간을 낼 수 있던 것이었다.

공연을 마친 후 우린 예성대학교로 향했다.

김도화가 모는 차를 타고 이동하는 차 안.

“이야, 진짜 너무 든든한데”

“에이! 형! 이 정도는 일도 아니죠! 형 음악에 참여할 수 있다니 저희가 영광인걸요!”

곡을 제작하던 중 이종인은 몇 악기는 미디로 작업하는 것이 아닌 직접 연주하는 게 낫겠다고 했고.

난 그 작업을 Qrious에게 부탁했다.

설희를 제외한 Qrious의 멤버들은 지난번에 우리 동아리 사람과 인사도 나눴었기에 이종인과도 어색하지 않았다.

특히 문희철은 특유의 친화력으로 이종인과 빠르게 친해졌다.

“야, 그나저나 너 언제 나온 거야”

“저 어제 나왔습니다. 처음엔 이럴 생각 없었는데 형 마침 오늘 공연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문희철이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제가 서프라이즈 하자고 말 했죠!”

“이야…. 진짜 상상도 못했어. 그나저나 설희 말투 진짜 적응 안 된다.”

“아, 맞아…. 아니, 이게 입에 자꾸 붙어버렸지 말입… 붙어서요.”

“하하하! 붙어버렸지 말입니다”

“아니요. 하, 참 엄청 오래 있던 것도 아닌데 이게 참…….”

설희는 군기가 바짝 든 것 같아 보였다.

“학교 오랜만이지”

“네, 도착하면 진짜 반가울 것 같아요.”

원래 Groovy Nation이 사용하는 모든 실은 외부인 출입 금지였다.

다만, 이종인의 경우는 유연하게 허락이 되는 중이었다.

난 따로 작업할 개인 작업실이 없었기에 동아리원들에게 허락을 맡아야 했다.

앨범 제작을 하고 싶은데 마땅한 공간이 없어서 외부인을 잠깐 출입 시키고 싶다고 했고.

다행히도 회장 장한슬을 포함한 모든 동아리원들은 허락해줬다.

그렇게 우린 예성대학교에 도착했고.

창밖을 바라보는 설희의 눈은 반짝였다.

* * *

“우와…. 이렇게 생겼구나….”

녹음은 합주실에서 하기로 했다.

이종인이 가지고 있는 악기 레코딩 전용 마이크를 챙겨 합주실에 들어오자 가장 크게 반응하는 건 설희였다.

생각해보니 설희는 작년에 Groovy Nation에 지원했다가 떨어졌다.

설희에게는 여길 와보는 게 꽤 의미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악기를 바리바리 싸들고 세팅을 하는 Qrious의 멤버들.

이종인과 난 악기가 준비될 때까지 기다리는 중이었고.

설희는 합주실을 둘러보며 입을 벌리며 감탄했다.

사실 별거 없는 합주실이었다.

흡음 시설이 잘 되어있다는 것, 비싼 장비가 한두 개 있다는 것 정도.

하지만 이곳은 설희의 과거의 꿈이 깃든 곳이었기에 특별해 보이나 보다.

“자, 준비 끝났는데 시작할까요”

“오케이, 시작해봅시다.”

문희철의 말에 이종인이 노트북을 열며 대답했다.

마이크를 왼손에 들고 시퀀서를 실행하는 이종인.

오늘 녹음할 곡은 총 세 곡이었다.

윤종철은 하나의 트랙에만 참여하고 김도화와 문희철은 세 트랙 모두에 참여하기로 했다.

특히 기타리스트인 문희철은 각 트랙에 여러번 녹음을 해야 했다.

어려운 작업이 될지도 몰랐지만 이들은 흔쾌히 허락했다.

난 당연히 이들의 연주를 크레딧에 넣어줄 생각이었고.

멤버들은 오히려 그게 더 영광이라고 했다.

서로가 원하는 것이 딱 맞아 떨어지는 완벽함이었다.

“흠…. 어디 보자…. 종철이 먼저 시작할까”

“네. 좋아요.”

윤종철은 이미 드럼 키트 안에 앉아있었다.

Qrious 멤버들에겐 미리 곡을 숙지시켜 두었고.

타이밍에 잘 맞춰 연주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자, 시작한다.”

-틱! 틱! 틱! 틱!

하이햇을 짧게 두드리는 소리.

그 소리와 함께 본격적인 녹음이 시작되었다.

* * *

원래는 녹음만 하고 바로 집으로 가려고 했다.

올해는 술을 마시는 날이 참 많았다.

작년 까지만 해도 거의 입에도 대지 않았지만.

역시 사람을 많이 만나게 되면 술자리가 느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그래도 네가 술이 세서 다행이지.]

‘그리고 자리도 재밌고.’

JH 엔터테인먼트에 다닐 때 나의 술자리는 회식이 거의 대다수였기에 술자리에 대한 흥미가 없었다.

하지만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자리라면 언제든 환영이었다.

그렇게 오늘도 계획에 없던 술 자리를 가지게 되었다.

“와아아아!”

이종인과 나, Qrious의 완전체 멤버들은 술잔을 부딪쳤다.

“아니, 형 그런 곡은 도대체 어떻게 만든 겁니까”

설희는 최근 이종인과 작업한 곡을 오늘 처음 들었다.

“아, 그거 종인이가 만들어준 곡을 빌드업 시킨 곡이야. 괜찮아”

“네, 그렇습니다.”

“아니, 제발…….”

“아, 맞다….”

설희는 소위 ‘다나 까’ 말투를 도통 입에서 덜어내질 못하고 있었다.

“아, 맞네! 내가 너희한테 만들어준 곡 있잖아. 가로등 말고.”

“네.”

“그거 종인이가 도와준 곡이야.”

“아 그랬어요”

“헐, 진짜요 그건 몰랐네.”

Qrious의 멤버들은 다들 놀란 눈이 되었다.

이종인과 안면을 튼 건 지난 달이었지만.

자신들의 곡을 제작하는 데 도움을 줬다는 건 이제 알았다.

물론, 이종인은 내가 게스트로 섰던 크로스라인에서의 Qrious 무대를 봤기에 알고 있었다.

“와, 형님. 역시 실력이 장난이 아니시네요.”

“아니야, 아직 멀었지 뭐….”

우리 테이블에 올라온 안주는 주로 음악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난 옆에 앉은 설희와 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좀 어때 아직 많이 힘들지”

“아…. 죽겠습니다.”

“아직 그럴 때지.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몸만 건강하게 있어.”

“네, 알겠습니다.”

“그 다나 까는 안 할 수 없겠지”

“잘못 들었슴다”

“아니다…….”

[푸하하하핫! 짜식 가서 아주 제대로 뺑이 치고 있나 보구만! 하하하하!]

악마는 설희가 고통 받는 게 즐거운가 보다.

역시 악마가 따로 없었다.

술자리는 계속해서 무르익었다.

이런 자리가 너무 많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내 주변 사람들이 협조적인 덕분에 작업이 수월했다.

당연히 속도도 예상보다 빨랐고.

이제 완성까지 남은 곡은 네 곡이었다.

그 중에서도 세 개의 곡은 오늘 악기 녹음을 마쳤고 믹싱과 마스터링 작업만 마치면 끝이었다.

실질적으로 남은 곡은 하나였다.

이종인과의 협업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속도가 빨랐기에 작업에 어려움은 전혀 없었다.

“하…. 아무래도 쉽지 않지 말입니다….”

문제가 될 게 있다면 우리 불쌍한 설희의 군 생활 뿐이었다.

* * *

“미치겠다. 이건 진짜 좋은 게 안 떠오르는데…….”

[흠…. 어떤 방식으로 풀어나가는 게 좋으려나…….]

이종인이 건네준 여덟 개의 트랙 중 일곱 개는 완성이 되었다.

그리고 남은 하나의 트랙.

이건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도통 감이 오지 않았다.

이 곡은 리듬이 강조된 트랙이었고.

나의 음악에선 시도해본 적 없던 뭄바톤 계열의 리듬이 주를 이뤘다.

중간엔 드럼이 빌드업되며 카니발 리듬을 두드렸다.

다른 악기들도 조화롭게 잘 만들어진 트랙이었기에 이걸 완성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내가 댄스곡을 만들어서 쓸 수는 없잖아.”

[응, 너의 춤을 눈 뜨고 보느니 차라리 평생 음악을 안 듣고 사는 게 낫겠어.]

“아니, 내가 그 정도로 최악이야”

[최악이라기보다는 그냥…. 너무 별로야.]

“똑같은 말이잖아.”

트랙을 들으며 머리를 아무리 싸매도 좋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종인도 마찬가지였다.

완벽한 댄스곡은 아니면서 이 리듬을 버리지 않는 POP, R&B 장르의 곡.

그런 곡을 만들고 싶었는데 엄청난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적당히 만들라고 하면 할 수 있지만.

우린 그런 곡을 만들 계획을 세운 것이 아니었으니까.

“특별한 게 필요해….”

[야, 근데 꼭 여덟 곡을 다 만들어야 해]

“어”

[아니, 어차피 이거 바로 발매 할 거 아니잖아. 윤대웅이랑 쇼부 치려고 만드는 곡 아니야]

“어…. 그렇지”

[이 트랙은 윤대웅이랑도 머리 싸매고 만들어 봐. 일단 일곱 곡으로….]

“아! 윤대웅 선배님!”

[아이 씨! 깜짝이야. 깜빡이 좀 켜라 이 자식아.]

“아니, 그냥 안 쓰던거 싹 집어넣으면 되잖아. 뭔 고민을 이렇게 했을까”

[에라이…….]

악마의 윤대웅이라는 말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가장 잘 다룰 수 있고 이해도가 높은 악기.

전자음이 가득한 요즘 음악 시장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그런 느낌.

리얼 악기가 주를 이루는 곡을 만들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디어가 번뜩인 건 윤대웅이라는 이름에 피아노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악마는 곡 완성을 미루라고 했지만.

그 이야기 덕분에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왠지 최근 발매 했던 Harmony 만큼이나 신선한 곡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탑스타의 음악에는 악마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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