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탑스타의 음악에는 악마가 산다-166화 (166/194)

166화

아이스브레이킹을 위한 곡 선정은 잠시 뒤로 미뤄졌고.

본격적인 프로그램 설명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박윤기 PD가 설명을 도맡았고 남희영 작가가 그의 이야기를 뒷받침했다.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프로그램은 총 6부작이구요. 총 2박 3일 동안 진행 됩니다.”

“저, 잠은 어떻게 자나요”

애니데이의 수빈 선배님께서 질문했다.

아무래도 성별이 다른 사람들이 함께 여행을 가는 프로그램이었기에 빠질 수 없는 질문이었다.

“숙박은 캠핑카와 텐트에서 진행될 건데 자율적으로 회의 하시면 됩니다. 아마 하루 씩 번갈아 가면서 주무시지 않을까 싶어요.”

“아하, 알겠습니다.”

“그리고 버스킹 공연은 사흘 동안 진행될 예정입니다. 스케줄은 저희가 매니저님들께 일정표를 드릴 테니 다시 확인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박윤기 PD는 프로그램의 전반적인 스케줄.

프로그램의 방향성과 각 출연진이 해줬으면 하는 역할에 대해 브리핑했다.

거기에 더해 작가님께서는 공연 때 사용할 곡의 분위기 등 제작진이 상상하는 분위기를 이야기했다.

[완벽하게 힐링용 방송을 원하는 구나]

‘응, 그러니까. 자극적인 요소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 같아. K-Net답지 않은 그런 프로그램이네.’

[뭐, 구성원들 보면 제작진 의도대로 잘 될 것 같네.]

‘응, 아마 처음부터 그런 방향을 생각하고 섭외했겠지’

회의를 진행하면서, 그리고 박윤기 PD의 설명을 들으면서 출연진들의 태도를 쓱 훑어봤다.

그들은 모두 남들 앞에서 모난 행동을 하거나 특별히 튀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데뷔 이후 내가 출연한 방송은 전부 나와 잘 어울리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었다.

나 같은 신인이 왜 이렇게 방송 운이 좋은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답은 생각보다 빨리 찾을 수 있었다.

“이 프로그램에 잘 어울릴 것 같은 분들로 캐스팅 했으니까 다들 이번 기회에 친분도 쌓으시면서 프로그램 잘 진행해봅시다.”

[그럼 그렇지. 비슷비슷한 사람들로 모아놨으니까 방송이 쉽지.]

생각해보면 방송국 사람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이 조합에 미꾸라지를 풀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제작진과 함께 하는 회의가 끝이 나고 다시 우리끼리 진행하는 회의가 시작됐다.

박윤기 PD는 프로그램 제작 때문에 방송국으로 돌아갔고.

남희영 작가님만 남은 채 곡 선정 회의가 다시 시작됐다.

* * *

첫 날은 출연진 각자가 생각해온 곡을 들어보고 방향성을 정하는 회의가 진행되었다.

이어서 간단한 합주로 합을 맞춰보았고.

나는 피아노, 싱어송라이터 이민찬 선배님은 기타를 치기로 했다.

추가적으로 필요한 악기 세션은 우리가 요구하면 작가님과 PD님께서 준비해주겠다고 하셨다.

그렇게 나를 포함한 모든 출연진과 제작진은 이 프로그램을 위해 시간을 맞춰 연습을 계속했다.

연습을 하며 느낀 건 촬영 날짜가 다가옴에 따른 설렘뿐만이 아니었다.

출연진들 중 가장 연차가 많으신 조수아 선배님은 혹여나 젊은 친구들이 불편해하지 않을까 싶어하셨다.

그 마음은 그녀의 말에서 계속 묻어나왔고.

매순간 우리를 배려해주셨다.

실력은 당연히 출중하셨고 그렇다고 후배들을 깔보거나 하지도 않으셨다.

사실상 나와는 나이 차이가 세 살 밖에 나지 않으셨지만.

그녀의 성숙한 태도는 실제 나이보다 훨씬 중후한 매력을 뿜어냈다.

보이 그룹 클락션의 태휘 선배님은 단연 분위기 메이커였다.

자칫 지루할 수 있는 멤버들 사이에서 가장 말도 많았고.

형이자 후배인 나와 이민찬에게도 어렵지 않게 말을 걸어왔다.

걸 그룹 애니데이의 수빈 선배님은 우리들 중 가장 낯을 많이 가리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또래의 남자 성비가 많아 조심하는 건지 원래 성격이 그런 건지는 몰라도 불필요한 말은 잘 하지 않았다.

내가 가장 눈여겨 보는 사람은 싱어송라이터 이민찬 선배님이었다.

25살로 나보다 두 살이 어렸지만 데뷔한 지는 2년차가 된 실력파 가수였다.

물론 나와는 곡 작업의 방향성이 달랐지만.

그의 실력이 뛰어난 것은 확실했다.

특히나 우리가 버스킹에 사용할 어쿠스틱 장르에 있어서는 나보다도 훨씬 뛰어난 실력자였다.

출연진 모두는 훌륭한 가창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실력자들과 함께하는 협업 게다가 그게 방송이라 그런지 나도 분위기에 힘입을 수 있었다.

“원래 수빈님은 말수가 적으셔. 불편해서 그런 게 아니라 멤버들이랑 있을 때도 그래.”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합주가 없던 7월의 어느 날.

더운 바깥 날씨를 피해 이종인과 난 회사 휴게실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아, 아니. 그냥 네가 거기 나간다니까 좀 찾아봤지 뭐….”

[얼씨구 그냥 네가 좋아하는 그룹의 멤버라고 왜 말을 못해]

‘걸 그룹 덕질하는 게 그렇게 부끄럽나…’

[그러게 말이야. 맨날 말은 다 해놓고 모른 척하네.]

이야기를 나눠볼수록 느껴지는 건데 이종인이 좋아하는 걸 그룹은 한두 그룹이 아닌 것 같았다.

“그나저나 이제 이틀 남았네.”

“하아…. 그러게 말이야. 처음엔 몰랐는데 부담이 엄청 돼.”

이제 이틀이 지나면 메이지의 미니 앨범이 발매된다.

곡의 프로듀싱은 변함 없이 이종인이 메인으로 맡기로 했고.

내가 듣기론 그동안 잘해온 것 같았지만.

막상 일이 코앞으로 다가오니 부담이 많이 되는 것 같아 보였다.

“잘 될 거야. 곡 좋잖아.”

“그래 아, 난 이제 너무 많이 들어서 그런지 곡이 좋은지 어쩐지 잘 모르겠어.”

[귀 고장났네.]

실제로 하나의 곡을 너무 많이 들으면 객관적인 귀가 사라지는 경우가 있다.

특히 이종인의 경우엔 이번 작품이 첫 데뷔작이나 마찬가지였기에 더욱 심혈을 기울였을 거다.

하루에도 백 번은 넘게 그 곡을 들었을 거고.

그로 인해 이젠 객관적으로 곡을 듣기 어려웠을 거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는 곡에 이상한 게 들려도 내가 틀렸나 싶어서 수정도 안 봤어.”

“응, 그래 잘 했어. 그거 오래 들고 있는다고 해서 더 좋아지지도 않아. 너 지금 한 달 넘게 그 한 곡에 매달려 있잖아.”

“응, 텀을 좀 두면서 작업했어야 했는데 데뷔곡이라 그렇게 못하겠더라고.”

“괜찮아. 다음에 잘 하면 되지. 아, 물론 지금도 잘 하고 있어.”

나는 JH 엔터테인먼트에 있을 때 지금 이종인의 포지션이었다.

그렇기에 곡을 발매하기 전에 가져야 하는 태도, 방법 등을 잘 알고 있었고.

이종인에게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불안해하는 이종인이었지만 그럼에도 난 걱정이 전혀 되지 않았다.

[곡이 워낙 좋잖아. 알아서 잘 하겠지. 이게 잘 안 되면 무조건 회사 탓이야.]

악마의 말대로 곡은 너무 좋았다.

나의 첫 더블 싱글인 Heaven도 수록된 곡은 좋았지만.

홍보와 나의 인지도가 미약한 탓에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메이지 선배님은 이미 팬덤도 탄탄했고 나보다 유명했기에 성과를 기대해볼만 했다.

* * *

메이지의 컴백은 스톤 엔터테인먼트에게 있어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두말할 것도 없이 회사의 초기 지반 형성을 위해 꼭 잘 돼야 하는 앨범이었다.

스톤 엔터테인먼트는 이종인의 의견을 받아들여 후발대 앨범 구매자들을 위한 이벤트를 공지했고.

덕분에 최근 앨범 구매자의 수가 비약적으로 뛰었다.

메이지의 앨범은 회사에게도 이종인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중요한 일이었다.

“아, 같이 있으면 좋을텐데 아쉽네.”

“그러게 말이야. 그런데 이제 곧 촬영이라 매일 합주 가야 해.”

“어쩔 수 없지. 잘 다녀와.”

오늘은 메이지 선배님의 앨범이 발매되는 20일이었지만.

곧 촬영이 시작될 프로그램을 위해 합주를 가야 했다.

“그래, 다녀올게. 이따 합주 끝나고 보자.”

저녁 6시가 되면 앨범이 발매된다.

최근 일주일 동안 스톤 엔터테인먼트의 인스타그램, 유튜브 계정엔 메이지의 티저 사진과 영상이 계속해서 업로드 되었고.

팬들의 반응은 나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뜨거웠다.

그렇게 난 회사를 떠나 합주실로 향했다.

이종인이 풀풀 풍기는 긴장감 때문에 그의 두근대는 심장박동은 회사에서 멀어져도 들릴 것만 같았다.

내가 출연하는 프로그램의 제목은 결국 캠퍼스킹으로 정해졌다.

[아이씨, 제목이 왜 이렇게 후져]

‘왜 계속 들으니까 난 괜찮은 것 같은데’

[별로야. 아니 방송국 놈들은 뭔 작명 센스가 그렇게 없어 ‘지옥에서 온 악마와의 버스킹 한마당’ 이런 거 좋잖아.]

‘너, 넌 진짜 답이 없다…….’

[왜]

악마의 저세상 작명 센스에 머리가 아파오는 것 같았다.

[아니면 ‘지옥 같은 캠핑, 불구덩이에서 올라온 버스커’ 이런 느낌.]

‘네가 인간 세계에 직접적인 관여를 못하는 게 정말 다행인 것 같아.’

[왜]

이 녀석이 방송에 관여하는 악마가 아니라 음악에만 관여할 수 있는 게 정말 다행이라 생각했다.

* * *

이젠 꽤나 익숙해진 합정의 합주실.

오늘은 다들 늦지 않고 합주실에 도착했다.

오늘은 첫 합주를 시작한지 꼭 2주가 되는 날이었다.

그동안 우린 노래도 함께 부르고 밥도 같이 먹었다.

아이돌 출신인 태휘와 수빈, 그리고 연차가 높아 가장 유명세가 큰 조수아 선배님은 밖을 돌아다니기 어려웠지만.

나와 이민찬은 두 번 정도 밖에서 따로 만나 식사를 함께 하고 커피를 마시기도 했다.

그렇게 친분이 많이 쌓인 우린 오늘도 합주에 집중했다.

“역시 너희 둘 하모니 장난 없네.”

“하하! 아닙니다. 선배님 메인 라인이 너무 좋은 덕분이죠.”

조수아 선배님은 지금까지 합주가 진행되는 동안 자신의 곡을 할 때 뒷받침을 해주는 나와 이민찬의 코러스를 마음에 들어 했다.

피아노와 기타, 그 외에 많은 세션들이 있었지만.

그녀가 가장 큰 반응을 보이는 건 이민찬과 나의 목소리라는 악기였다.

“자, 그럼 다음은 태휘 솔로 해보자.”

“네, 알겠습니다.”

나와 이민찬은 악기를 다룬다는 이유로 거의 모든 곡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제 우리 모두는 대부분 호칭을 편하게 정리했다.

다만, 연차가 압도적으로 높은 조수아 선배님께만 선배님 호칭을 사용했다.

태휘는 목소리 소스만 봤을 때 우리들 중 가장 매력적이었다.

평소엔 활력이 넘치는 모습이었지만.

노래를 부를 때는 안개와도 같은 몽글몽글한 목소리를 사용했다.

[저런 소리를 너도 낼 수 있으면 좋을텐데 말이야.]

‘그러게. 태휘 목소리는 정말 욕심나는 소스야.’

악마에게서 가창력을 받았지만 그건 변성의 영역이 아닌 성대 근육을 사용하는 범위의 증폭이었다.

내가 가진 소스도 나쁘진 않았고 소리를 내는 범위가 넓어졌을 뿐.

내가 가진 소리 자체를 변화시킬 수는 없었기에 내가 갖지 못한 몽환적인 사운드는 욕심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이민찬, 수빈이의 노래 또한 각자의 매력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난 우리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할 일을 하며 완벽한 하모니를 만들고 있다 생각했다.

지금까지는 말이다.

그렇게 합주는 계속 되었다.

저녁 시간이 훌쩍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우린 밥 생각도 잊은 채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했다.

6시가 지나 7시가 되었지만 아무도 저녁 식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정도로 합주에 몰두했다.

“이야, 역시 민찬이 형 센스 장난 없으시네요! 아까 거기 기타 애드립 본 공연 때 쓸 수 있으세요”

“물론이지.”

“크으…. 그럼 부탁 좀 드릴게요! 애드립 센스 장난 없으시네.”

태휘는 나의 연주 위로 얹어지는 이민찬의 센스있는 애드립에 감탄했다.

[어허…. 이거 큰일이네….]

그리고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악마의 목소리.

그 후에 느껴지는 이상한 감정.

나도 모르게 머릿속에 떠올린 말.

‘저 자식보다는 내가 훨씬 낫지 않아’

악마는 대답 대신 탄식을 자아냈다.

[아이고…. 가장 소중히 여기는 가치가 그런 거라니….]

아마 내 마음이 또 고장나버렸나 보다.

갑자기 이 합주실에 있는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탑스타의 음악에는 악마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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