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탑스타의 음악에는 악마가 산다-190화 (190/194)

190화

“아악!”

대표실의 문을 노크하려다 나오는 이윤정 팀장님과 마주쳐 깜짝 놀라 우리는 소리를 질렀다.

대표실 안에서는 무슨 일인가 싶어 이쪽을 바라보는 윤대웅 대표님이 눈에 들어왔다.

“어휴, 깜짝이야…. 노크라도 하지 그랬어.”

“아, 저, 방금 노크 하려고….”

놀란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윤정 팀장님은 그대로 기획실로 돌아가셨고.

난 윤대웅 대표님과 면담하고 싶은 게 있어 대표실로 들어갔다.

[야, 너 못 들었지]

‘뭘’

[아니야. 일단 대표랑 이야기 끝나면 이따 이야기 하자.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아.]

‘어, 그래. 알았어.’

대표님과 가벼운 면담을 하러 온 것이었는데 악마가 좋은 소식을 듣기라도 했나 보다.

* * *

외부 활동에 대한 조언과 곡 작업의 방향성, 회사의 입장과 내가 추구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좀 나누고 대표실을 빠져나왔다.

내가 곡을 아무리 잘 만든다고 해도 방향성이나 컨셉 등 일관적인 모습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에 이런 면담은 꾸준히 이어져야 했다.

‘뭔데 그 좋은 일이라는 게’

[나는 인간들 보다 귀가 좋잖아. 그래서 아까 이윤정 팀장이랑 윤대웅 대표가 하는 말 들었거든.]

‘응, 뭔데’

[윤대웅 대표 잘하면 5월부터 녹화하는 락 오디션 프로그램에 심사위원으로 나갈 수도 있나봐.]

‘오, 그래’

[…….]

‘그래서 뭐’

[야, 락 오디션 프로그램이라고. 밴드!]

“아!”

[조용히 해 여기 회사야.]

다행히 계단을 혼자 내려가는 중이라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생각해보니 5월이면 시기도 괜찮네.’

[그치 꽤 재밌을 것 같아.]

악마가 가져온 소식은 정말이지 매력적인 이야기였다.

그렇지 않아도 올해는 기대되는 것이 많았는데 거기에 하나가 더 추가된다니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다.

2021년은 짜릿한 한 해가 될 게 분명했다.

* * *

설희와 태훈이에게서는 종종 연락이 왔다.

그 둘은 내 번호를 알고 있기도 했고.

내가 비공개로 쓰고 있는 SNS 계정도 서로 아는 사이였으니까.

나 때는 아니었지만 요즘은 군대에서도 일과 시간이 끝난 후에 폰을 쓸 수 있다.

설희와 태훈이 둘 다 이젠 짬이 꽤 찼기에 폰을 사용하는 것에 큰 제약이 없었고.

원할 때면 언제든지 연락을 할 수가 있었다.

윤대웅 대표가 그 프로그램에 나가게 된다면 그때부터 은밀한 일을 벌일까 생각중이다.

그 프로그램의 크기가 커진다면 이슈를 만들고 그걸 뒤집어엎어야 한다.

그래야 Qrious도 나도, 우리 회사도 유명세를 얻을 수 있으니까.

우선은 일이 진행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 * *

“그건 안 되지.”

“아무래도 그런가요…”

“그럼. 회사랑 계약한 대로 움직여야지 그렇게 마음대로 하면 쓰나.”

“음….”

회사와 계약을 한 이상 마음대로 움직일 수는 없었다.

회사는 나에게 좋은 환경을 제공하고 방송에 내보내준다.

홍보도 최선을 다해주는 중이고.

무엇보다 나 혼자서는 절대 만들 수 없는 뮤직비디오도 제작해준다.

그렇기에 회사와 한 약속은 꼭 지켜야만 했다.

나는 회사에 곡을 외부인에게 줘도 되냐고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곡비를 무조건 받아야 한다는 말이었다.

이건 JH 엔터에 있을 때와 같은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난 이미 김도화에게 몰래 곡을 준 상태였고.

당연히 그 곡은 내 이름이 기재되지 않은 채로 사용될 것이다.

아무튼 공식적으로 외부인에게 곡을 무료로 주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

지금처럼 계속 몰래 주는 수밖에.

어차피 시간을 쓰는 건 나고 곡을 제작하느라 피곤한 것도 나니까.

회사에겐 잠깐 미안한 일이지만 이게 다 나중을 위한 일이다.

[물론 일이 잘 된다면 말이지.]

‘잘 안 된다 싶으면 나도 발 뺄 거야.’

[영악해졌네]

‘현실적인 거지.’

말은 이렇게 해도 잘 될 것 같았다.

밴드 오디션 프로그램이라 화제성은 좀 떨어질지 모르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대중성을 겸비한 밴드는 아직 대한민국에 많으니까.

그리고 그건 내가 만들어낼 생각이다.

오늘부터는 곡 작업으로 피곤한 하루가 계속 될 것 같았다.

* * *

“락 갑자기”

“응, 넌 좀 알잖아.”

“흐음….”

회사가 끝나고 이종인과 우리 집에서 같이 밥을 먹고 음악 이야기가 나왔다.

“근데 갑자기 왜 락을 만들 생각을 한 거야 노선 바꾸게”

“아니, 내가 쓸 건 아니고 친구가 쓸 건데….”

“회사랑은 이야기 된 거야”

“아니, 몰래 하려고.”

“엥 그래도 되겠어 걸리면 혼나는 거 아니야”

“혼 좀 나지 뭐.”

“오오….”

“아니, 사실은….”

난 낮에 들었던 이야기를 이종인에게 전했다.

윤대웅 대표님이 밴드 오디션 프로그램에 섭외 제안을 받았다는 이야기부터 그 이후 내가 계획하고 있는 일까지.

아직 계획일 뿐이고 실행되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이종인에게는 말을 해야할 것 같았다.

“재밌겠는데”

“그치”

이런 반응이 나올 것 같았으니까.

“근데 말이야….”

“응”

이종인은 턱을 매만지며 말을 흐렸다.

“이거 재밌겠는데 너랑 나랑 대결 구도가 나올 수도 있겠어.”

“뭔 말이야”

“나도 참전하겠다는 말이지.”

“야…. 너무하네….”

도움을 받으려고 했는데 졸지에 라이벌이 생겨버렸다.

“아니, 넌 누구로 하게”

“레드락이지.”

“야…. 적당히 좀…. 너무 세잖아….”

레드락은 우리가 Groovy Nation에 있을 때 같은 동아리원인 서희진이 들어간 밴드다.

실력도 출중하고 유명세가 꽤 있지만.

그래도 아직 완벽한 대중성을 겸비한 프로 밴드는 아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아마추어와 프로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많은 밴드들 중에서는 단연 최고의 실력을 겸비한 밴드.

이종인과 친분이 깊은 서희진이 거기에 있었고.

이종인은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Qrious에게 큰 라이벌이 생기게 되는 격이지만.

회사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꽤 재밌는 그림이 나올 것 같았다.

“그, 힘 좀 빼고 해.”

“싫어. 곡은 네가 더 잘 쓰잖아.”

“아니, 락은 네가 더 잘 하잖아.”

“아니, 그래도 유명세는 네가 나보다 더 많잖아.”

“아니지! 내가 직접 나가는 게 아니잖아.”

“야!”

“뭐!”

[염병들 하고 앉았네….]

“일단 도와는 줄게. 하지만 나도 봐주진 않을 거야.”

“흥! 해보시던가!”

“어쭈 그래 나도 진심 다 해서 한다!”

이종인은 내가 락을 작업하는 것을 돕겠다고는 했지만.

확실히 적정선을 지켜가며 움직일 것 같았다.

그러면서 진심을 다해 움직이겠다는 말.

왠지 재밌는 게임이 될 것 같았다.

* * *

우선은 메이지의 곡을 완성해야 했기에 이종인과 난 평화 협정을 맺었다.

며칠 동안 우린 곡 작업에만 매진했다.

“재희야 여기 코드 좀 봐줘.”

“수정 하게”

“응, 풀리는 느낌이 안 들어.”

“이럴 때는 SUS4를 삽입하는 게 좋아.”

“아, 맞다. 그렇지.”

“야, 이건 기본이야.”

메이지의 타이틀곡 편곡은 이종인이, 작곡은 내가 위주로 하는 중이었다.

“야, 여기 이거 뭐야”

“하프.”

“오오…. 느낌 미쳤는데”

“그치 다른 것보다 하프가 좋겠더라고.”

우린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꽤 잘 해내는 중이었다.

어느덧 곡 작업이 끝을 향해 달려가던 타이밍.

“으아! 종인아 나는 좀 내려갔다 올게.”

“어디 가”

“머리 좀 식히러 2층에.”

“어, 그래 난 작업 마저 한다”

“그래.”

요즘 난 2층 로비에 위치한 휴게실에서 멍하니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았다.

아무리 악마라도 3층에서 2층 소리를 듣는 건 무리가 있었으니까.

‘뭐 좀 들려’

[그거랑 관련된 이야기는 딱히 없네.]

‘오늘도 허탕인가.’

며칠 내내 휴게실에 앉아있는 날 보며 지나가는 직원들은 뭐하는 중이냐며 묻기도 했다.

연습을 해도 모자랄 시간에 그들은 내가 시간을 낭비하는 중이라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이 시간은 꼭 필요했다.

[어 이윤정 전화한다.]

‘EJ에서 온 전화야’

[그것까진 안 들려. 잠깐 조용히 좀 해봐.]

‘응.’

평소에도 이런 적이 많았다.

이윤정 팀장님께서 전화를 받으면 악마는 내게 조용히 해보라고 했고.

10초도 되지 않아 허탕이라는 말을 해주곤 했다.

우리가 기다리는 연락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다른 것 같았다.

악마의 침묵은 꽤 길게 이어졌고.

난 두근대는 심장을 부여잡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얼만큼의 시간이 지났을까.

악마가 입을 열었다.

[윤대웅 나간대.]

‘심사위원으로’

[응, 야 근데 단가 엄청 세게 불렀어. 작정을 한 모양인데]

‘오… 그래 출연료 얼마를 부른 거야’

[회당 천.]

“천!”

[여기 로비야 이 자식아….]

“헙!”

회당 천만 원.

10부작으로 기획된 그 프로그램에 전부 나가게 되면 총 1억이다.

대표님께서 작정하신 게 느껴지는 액수였다.

물론 회사를 운영하는데 1억이면 물론 많은 돈이지만 충분한 돈은 아니었다.

그래도 큰 액수에 내 입은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계획대로 되고 있으니까 하던 거 계속 하면 될 것 같아. 그리고 설희한테 슬슬 이야기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응, 지금 바로 연락 해봐야지. 좋아했으면 좋겠다.’

일이 잘 풀리고 있었다.

사실 예상하고 있는 일이었다.

윤대웅 대표님께서 그 프로그램에 나갈 것 같았고.

그렇기에 이종인에게도 말을 한 것이었으니까.

-한설희

난 곧장 설희에게 연락했다.

서로에게 좋을 이 소식을 알리지 않을 수 없었으니까.

* * *

밴드 오디션 프로그램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이미 관심 밖이었고.

겨울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관심이 없었다.

제대로 된 추위를 느낄 새도 없이 겨울은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올 겨울은 화려한 올해를 준비하는 것으로 다 써버렸다.

난 겨울을 참 좋아한다.

찬바람을 허파에 가득 담으며 겨울 공기의 냄새를 맡는 건 행복한 일이니까.

이번엔 곡 작업을 하며 집과 프로듀싱 룸에 틀어박혀 있느라 그럴 새가 없었지만 상관없었다.

겨울은 매년 돌아오지만 이번 겨울은 유일한 기회였으니까.

그렇게 끊임없이 준비를 하다 봄이 찾아왔다.

“컷! 아! 좋아요! 잠깐 쉬다 가겠습니다.”

가평에 위치한 한 뮤직비디오 세트장.

오늘은 메이지의 뮤직비디오 촬영이 있는 날이다.

당연히 타이틀곡 뮤직비디오 촬영이었기에 해당 곡을 작업한 나와 이종인은 촬영장에 대동했다.

뿐만 아니라 모든 A&R 팀이 함께했다.

확실히 사람이 많으니 검토되는 것도, 현장에서 변경되는 사안도 많았다.

그 동안 이런 일은 이종인과 A&R 팀에게 맡겨왔지만.

이번엔 그들뿐만 아니라 나도 의견을 낼 수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던 건 메이지의 뮤직비디오지만 나의 행보와도 깊은 연관이 있는 곡이니까.

촬영은 꽤 순조로웠다.

모니터를 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메이지의 연기는 완벽했다.

하루 빨리 이 뮤직비디오가 공개되고 대중들이 또 ‘노노뮤’를 외치길 바랄 뿐이었다.

그 탑스타의 음악에는 악마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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