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화 〉킬리만자로 (3/207)



〈 3화 〉킬리만자로

킬리만자로가 도착한 곳은 일명 판도라, 본래는 연방의 우주 스테이션이었다가 연방의통제력이 빠르게 축소되면서 버려진 장소였다. 거기에 한둘씩 밀수업자, 해적, 장물아비 같은 자들이 자리를 잡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용병들도 자리를 잡아 일종의 번성하는 중립 스테이션이 된 경우다.


애초에 주거 목적의 스테이션이었으므로, 내부 공간이 넓기도 했다. 다만 스테이션의 적정 수용량이 50만인데, 거기에 인원을 아주 꾹꾹 눌러 담았다 싶을 정도였으니 거주 인구만 백만에 달하게 되다 보니 다소 억지로 확장한 것도 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무지하게 복작거리는 스테이션이라는 말.

“킬리만자로, 전용 착륙장에 착륙 허가를 요청한다.”

- 귀환을 환영한다, 킬리만자로. 안 그래도  칼라마스가 기다리고 있다. 착륙하자마자 곧장 가보는 좋을 거다.


“거 참 고맙다, 관제탑. 빨리 착륙장이나 열어라.”

킬리만자로는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  목표물이 정확히 뭔지는 모르지만, 본래 확보해야 했던 2m 높이의 원통형 컨테이너가 화물칸에 없으니 실패였다. 관제탑에서 말한 그 잘 칼라마스라는 인물이 별로 좋아하진 않을 것이다.


당연히  의뢰인의 안 좋은 기분을 받아내는  킬리만자로의 선장이자  명의 리더인 하비에르의 몫이었다. 리더에겐 그 권한만큼 책임도 막중한 법.

“으,  작자는 정말 싫은데. 너무 인간을 좋아하잖아.”

“그래도 돈 주는 물준데요? 켈리는 의외로 순진하구나.”


“야, 이, 씨! 내가 니보다 언니거든? 자꾸 그렇게 버릇없이 굴래?”

아만다와 켈리는 툭하면 저렇게 싸우기 바빴다. 그럼에도 킬리만자로가 막장으로 치닫지 않을  있었던 이유는, 어디까지나  둘의 다툼이 사교적인 수준에서 머물렀기 때문이다.


“언니는 무슨. 나잇살 많이 먹으면 다예요? 에?”

“아니, 야! 너 일루 와, 임마! 와! 오라고!”

……아마 그럴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어떨지는 몰라도, 실제로 심한 싸움으로 발전한 적은 없었으니까. 당장 니키타와 하비에르가 그저 어쩔  없다는 듯 고개만 절레절레 내젓는 걸 보면 대충 알 수 있었다. 정말 심각해진 적이 있다면, 손 놓고 보고 있지만은 않을 테니까.

“자, 착륙 끝났다. 니키타, 엔진 점검하고 확인해줘.”

“알겠습니다, 선장. 잘 다녀와요.”

다른 승무원들이 킬리만자로를 격납고에 넣고 혹시 선체나 기능에 문제는 없는지 확인하는 동안, 선장인 하비에르는의뢰인이 기다리는 곳으로 가야 했다. 의뢰인은 관제탑과의 통신에서 드러났듯이 잘 칼라마스라 불리는 인물로, 사실을 미리 말하자면, 인류가 아닌 외계인이었다.


 스테이션, 판도라에서는 매우 흔한 일이다. 인간이 아닌 종족이 일하는 것. 연방이야 전성기 시절부터 순수주의를 우선 삼아 인류가 아닌 다른 외계종족을 탄압했지만, 현재 연방의 영향권 바깥에 있는 판도라 스테이션에서는 오히려 외계인이 없으면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정도였다.


“빌어먹을 크라케니아인…….”

하비에르가 킬리만자로에서 내리면서 씹어 뱉듯 말한 것처럼, 잘 칼라마스는 크라케니아인이었다. 이는 인류 중심의 연방에서 무턱대고 붙인 이름으로, 얼굴이 마치 문어처럼 생겼다고 해서 멋대로 붙인 이름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름을 붙일 당시에는 연방의 전성기였고, 연방이 망해가는 지금은 이미 그 이름이 정착되어 버렸는데. 크라케니아인 입장에서는 억울할 일이겠으나, 이미 바꿀  없는 부분도 있는 법이다.


“야! 이 새끼야! 거기 서!”

“지랄하네! 너 같으면 서겠냐!”

사실상 집이나 다름이 없는 임대 격납고에서 바이크를 끌고 길거리로 나오자, 곧장 추격전을 벌이는 두 남성이 그를 스치듯 지나갔다. 쫓기는 한 명은 청소년과 청년의 사이쯤 어디엔가 아슬아슬하게 걸쳐졌고, 쫓는 한 명은 중년과 장년 사이의 어디엔가 걸쳐있다.


[타탕! 타앙!]


쫓기는 한 명이 골목으로 방향을 꺾어 들어간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으로부터 경쾌한 총성이  차례 이어졌다. 쫓는 쪽에서 참지 못하고 총을 꺼내 쐈는지, 쫓기는 쪽에서 함정까지 유인했거나 아니면 직접 꺼내서 쐈는지는 모르겠다. 하비에르에겐, 별로 알고 싶지도 않은 일이었다.


[우우웅- 위이이잉-]


바이크의 엔진에 시동이 걸리고, 약 50cm쯤 공중으로 떴다. 하비에르가 그 위에 올라타자, 바이크는 거기서 50cm를 더 떠올라 1m쯤 붕 뜨게 되었다. 그 상태에서 손잡이의 엑셀을 당기니, 곧장 엔진이 울며 속도가 붙기 시작한다.

[씨이익-!]

“야! 운전 똑바로 해…….”

바이크가 스치듯 지나간 차량의 운전자의 말끝이 작아지는 것은, 그가 하비에르를 보고 위축되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저 하비에르의 바이크가 속도를 줄이지 않고 그냥  나아간 탓이었지.


스테이션의 도로는 그렇게까지 혼잡하진 않았다. 차폐막과 차폐벽 안쪽에 위치하여, 애초에 스테이션 내부 자체가 여러모로 답답한 모습이었다. 최하층부터 최상층까지 이어지는 판도라 스테이션에서, 정확히 중간에 있는 격납고 앞 도로는 그 어느 지위의 생활권에도 들어가지 않는 탓이다.

위로는 흔히 말하는 ‘부유층’의 지역이다. 그리하여 가장 위층에는 판도라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 산다는데, 그 얼굴을 본 사람이 없다시피 했다. 하지만 적어도 판도라 스테이션에 들어오는 물건 중 가장 값지고 희귀한 것들이 위로 올라가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반대로 아래로는, 당연히 보통 말하는 ‘빈민층’의 지역이 된다.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삶은 더욱 열악해지고, 스테이션의 구조는 점점 더 복잡해지며, 치안은 더욱 나빠지기만 한다. 판도라 스테이션 자체 치안대는, 밑으로 내려가다 보면 어떤 시점에선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아래로 내려가다 끝에 있는 최하층은, 위와는 다른 의미로 가본 사람이 없다. 별로 가고 싶어 하지도 않고, 쓸데없는 모험심에 가봤던 사람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돌아오지 않은 건지 돌아오지 못한 건지, 뭐가 옳은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비에르! 도착했나?”

“아,  칼라마스는 안에 있지?”


“그래, 기다리고 계신다. 애초에 착륙할 때 관제탑에서 이야기를 듣지 않았나?”

“아니, 어디 관제탑에서 들었던 이야기와 실제가 달랐던 적이 한두 번이어야지. 하여튼, 안에 있다니 그건  됐군.”


하비에르의 태도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한 문지기였지만, 그렇다고 그의 권한으로 여기서 뭔가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하비에르에게 해코지하면 다른 해적들, 용병들의 항의에 자기만 꼬리 잘리듯 버려질 테니까.


게다가 하비에르는, 판도라에선 나름대로 입지를 구축한 인물이었다. 의뢰 성공률도 성공률이지만, 그의 함선 킬리만자로처럼 아예 동체에 고출력 레일건을 박은 함선으로 그렇게나 훌륭한 모습을보이는 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이번 델 아스트로 습격 건도, 그가 아니었다면 훨씬  큰 돈을 주고 더 큰 배와 화력을 가진 다른 해적이나 용병에게 의뢰해야 했을 것이다. 아니면 작은 함선으로나마 아예 작은 함대를 꾸리고 있는 이들을 찾거나.

델 아스트로의 방어막과 장갑이 그렇게까지 대단한 수준은 아니었으나, 본래 킬리만자로 정도의 함선이 갖출 일반적인 무장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그게 바로 킬리만자로가, 그리고 그 선장인 하비에르가 특별한 이유다.

“오, 우. 하비에르가 왔, 군 그래 어떤가? 의뢰는 전부 완, 료한 건가?”

크라케니아인 특유의 공기가 픽픽 새는 듯한 말투. 처음 듣는 사람은, 그러니까 인간은, 거기서 느껴지는 생경함과 묘한 꼬임에서 혐오감을 느끼기 쉬웠다. 하비에르도 처음에는 그랬다가, 지금은 제법 적응한 상태.

“그 2m짜리 원통형 컨테이너를 찾긴 했는데, 우리가 확인했을 땐 이미 열려있었어. 델 아스트로에서 탈출 포드가 발사되어 나가기도 해서, 그 화물의 흔적을 따로 추적할 시간도 없었고.”


“이, 런. 하비에르도 실, 패하는 일이 있, 군. 정말 유감인, 데.”

잘 칼라마스는 실망감을 드러내는데 인색하지 않았다. 본래는 콧수염이 있어야  위치에 달린 얇고 가는 촉수들이 꿈틀거린다. 인간 기준으로는 대부분 징그럽다는 인상을 주겠고, 같은 크라케니안 사이에서는  사람이 화가  났구나 싶은 생각이 들게 하는 모습이다.

“어쩌겠어? 그쪽에서 제공해준 정보에 따라, 우린 아주 모범적인 초광속 항행으로 습격했다고. 그쪽이야 값비싼 정보를 제공했다고 하지만, 정작 거기에 목숨을 건 건 우리란 말이지. 만약 델 아스트로가 포탑이 아닌 기관포 공격을 가했다면, 킬리만자로와 나, 내 동료들은 그 자리에서 구멍 숭숭 난 채로 우주에 내던져졌을 거야.”

잘 칼라마스가 정보료로 얼마나 들였을지는 모른다. 그가 말해줄 리도 없고, 하비에르도 별로 알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여기서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그, 래. 그런 헌신은 중, 요하지. 그런, 데 결국, 실패했다는 말, 이잖나.”

“알아, 알아. 실패지. 그래서 선수금의 절반은 돌려준다고 말하려고  거야. 판도라의 관례상, 원래 의뢰 선수금은 실패하더라도 돌려주지 않는  알지?”

하비에르가 호구라서 이러는 건 아니었다. 그저 누가 누구의 뒤통수를 쳤다는 소식이 일상적으로 들려오는 판도라 스테이션에서, 자신의 뒤통수를  적을 가능한 한 적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뿐.

“크흠! 그렇, 게 해준다면, 나도 이해할, 수 있지. 괜히 사, 람들이 자네를 추천하, 는  아니었어. 좋네, 좋아.”


“그럼 그렇게 하지. 같이 일해서 좋았네.”


“나도 같, 이 일해서 좋, 았네.”

깔끔한 악수. 크라케니아인의 피부는 인간 기준에선 미끌거리면서 약간의 점액질까지 묻어 나오지만, 그런 것에 질겁할 거였다면 하비에르가 나름대로 이름이알려진 수준까지 오르진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잘 칼라마스와 하비에르는, 일이 실패했음에도 서로 웃는 낯으로 헤어질 수 있었다.


어쨌건 잘된 일이었으므로, 하비에르는 건물에서 나오자마자 손목시계형 단말기로 동료들과의 통신망을 열었다. 곧장 받는 건, 항해도를 작성하느라 함교에 있던 켈리.

- 어, 선장. 킬리만자로엔 아무런 이상 없어. 이제 연료 보충 마치고, 우리도 들어가서 좀 쉴게.

“좋아, 켈리. 이쪽도 무난하게 끝났어. 선수금의 반은 돌려주기로 했고.”

-반? 선장, 아니, 하비에르. 잘 칼라마스는 그렇게 잘 나가는 놈도 아니잖아. 그렇게 줄 필요가 있어?

선수금의 반을 돌려주기로 했다는 말에, 화상을 켠 켈리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연방 무장 수송선을 습격하는 일인만큼 선수금이라고 대충 주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 절반이라 하면 결코 무시할 수 있는 액수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그녀의 말처럼, 잘 칼라마스는 사실 그렇게까지  나가는 자도 아니었다. 잘 나가냐 못 나가냐 둘 중 하나로 구분하자면 잘 나가는 축에 속하겠지만, 그래도 거물인가 하면 고개가 절레절레 저어지는 정도.

“아, 진정하고 들어봐, 켈리. 대신, 우리가 가지고 화물 컨테이너 내용물에 대해선 아무 말도 없었어. 거기서 뭐가 나오건, 다 우리 거야.”

그가 그렇게 말하자, 켈리의 표정이 거짓말처럼 펴졌다. 펴졌다 뿐인가, 밝아지기까지 했다. 아무리 절반은 감자가 들어 있을 게 확실한 화물 컨테이너라 하더라도, 나머지 절반엔 뭔가 들어있어도 있을 게 아닌가.

비록 핵심 화물은 망실 되었으나, 그렇다고 1급 기밀 화물을 싣고 있던 연방 무장 화물선에 다른 게 아무것도 실리지 않았다는 것도 웃긴 일이었다. 과거의 전성기 시절이라면 모를까, 작금의 연방은 어떠한 행동을 하는 데 있어서 가성비라는 것의 우선순위를 꽤 높은 곳에 둬야 할 정도로 몰락했다. 화물선  척에 아주 중요한 화물 하나만 실었을 리가 없다.

- 정말? 아직  안 댔는데, 그럼 지금부터 까봐도 되겠네?

이럴  어린아이처럼 좋아한다. 이제 서른하나라는 나이를 알면 고개를 갸웃할 정도로, 종종 저렇게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평소의 성질머리나 좀 죽였으면 더 좋을 텐데. 하비에르는 그렇게 잠깐 생각하고,  생각을 금방 접어버렸다. 혹시라도 계속 생각하고 있다가, 자기도 모르게 입 밖으로 냈다간 그날부터 전쟁일 테니까.

“하나씩, 천천히 까봐. 혹시 추적장치 같은  있으면 바로 파기하고. 스테이션 자체로 추적 신호 발신을 걸러내긴 하지만, 혹시 모르니까.”

- 알았어, 선장! 이런 일 하루이틀 하나. 그럼 끊을 게! 야! 아만다! 니키타! 지금부터…….


거기서 통신이 끊겼다. 연방 무장 화물선이니,  안에 다른 건 몰라도 무기  종류는 들어있을 것이다. 수천 년을 사용해오던 화약식 개인화기 따위가 아니라, 레이저 공용화기나 어쩌면 함선용 병기가 들어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런  건졌다고 곧장 막 사용할  있는 건 아니다. 등록된 사용자만 사용할  있도록 만든 보안은 아만다가 뚫거나 우회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때마다 연방 패턴의 파장을 드러낸다면 적잖이 곤란한 일이 된다. 1급 기밀 화물과 함께 실을 정도의 무기라면, 어지간한 전문가라도 연방 패턴의 파장을 어떻게 바꿀 수는 없었다.


“음, 그럼 어디 보자…….”

직후, 하비에르는 곧장 단말기에 저장해놓은 목록을 열었다. 미리 분류해놓은 목록에서, 유난히 여자 이름이 많은 쪽을 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음을 정한 그는, 바이크에 다시 올라 익숙한 길로 운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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