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화 〉침로복귀
인간이 조종한다면 저런 기동은 불가능하다. 아무리 중력이 없더라도 급가속, 급기동은 일반적인 기준 중력보다 더 큰 힘을 만들어내며, 그 어떤보조장비를 사용하더라도 생명체의 신체에 흐르는 피나 뇌의 움직임을 완전히 고정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고등 인공지능이라고?’
도달할 수 있는 결론은 그 정도. 바위와 얼음덩어리 사이에 난 공간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기동하면서, 이쪽의 의도를 파악해 움직이는 것은 단순한 인공지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문제는, 고등 인공지능이라는 게 우주 단위에서 이미 사장된 기술이라는 것.
- 하비에르! 장갑이 점점 깎여나가고 있다!
“아직 괜찮으면 기다려! 지금 우리가 상대하는 놈들이 사람이 아닌 것 같아!”
- 사람이 아니라니? 그럼 뭔데!
“인공지능! 인공지능일 거야! 어떻게 아직 살아남은 놈들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대체 왜 여기에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 말과 함께, 조종간을 확 돌리는 하비에르. 레이저 한 줄기가 조종석을 거의 스치듯 지나가면서, 기어코 전방 레이저 포탑 중 하나를 무력화했다. 대신 몽블랑의 레이저 포탑도 인공지능의 상륙정 하나를 긁고 지나갔으나, 치명타가 나오지는 않았다.
- 그게 말이 돼? 인공지능은 이미 300년도훨씬 전에 모두 말소됐어! 전쟁에서 우리가 이겼다고!
“우리가 아니라 연방이겠지!”
- 누구건 간에!
인공지능이라고 욕구가 없을 리가 없다.과거의 연방이 딱히 인공지능을 착취하거나 차별한 건 아니었으나, 사람이 그러하듯 사람의 지능과 감정이 담긴 인공지능 또한 그저 자기 할 일 하면서 적당히 잘 사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겼다.
하비에르와 셀린의 대화에서 나온, 300년도 훨씬 전의 전쟁이 바로 그 전쟁이었다. 연방이 몰락하기 시작하고, 반란군이 본격적으로 등장해 연방을 위협할 수 있을 정도가 된 계기를 제공한 전쟁.
단순히 전쟁만 있었다면 모를까, 이후 인공지능을 제거하는 것도 순탄치는 않았다. 그리고 그 인공지능들이 처리하던 많은 일들을, 인공지능보다 효율적이기힘든 사람이 처리하게 됐으니까. 연방의 몰락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고등 인공지능들은 치워졌지만, 그 이후로도 곳곳에서 하나씩 숨어있다가 들켜서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집중적으로 토벌되길 반복하면서, 완전히 없어졌다는 게 정설로 굳혀진 지가 벌써 수십 년.
“그런데 왜 하필 여기서! 지금!”
[쿠웅! 콰앙!]
고등 인공지능을 상대해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연방이 그들과의 전쟁에서 어떻게 승리했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더 드물지. 고등 인공지능을 상대할 때 필요한 건 의외성이다.
예를 들면, 방금 하비에르가 선체를 급가속하여 상륙정하나와 충돌, 거기에 당한상륙정이 방향을 잃고 바윗덩어리와 부딪혀 폭발하는 식으로.
- 방금 뭐한 거야! 후방 포탑이 나갔다!
“의외성을 발휘해봤지! 후방 포탑은 수동으로도 작동할 수 있으니까 직접 가서 움직여!”
- 아니, 여기도 대응할 게 있다! 후방 포탑은…… 야, 어디가!
그래도 한 명은 더 태우는게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과 동시에, 셀린이 그녀답지 않은 말투로 고함을 빽 내지르는 게 들려왔다.
설마. 하비에르의 머릿속으로 사람 잡는 두 글자가 스치고 지나갔다.
“꼬맹이가 뒤로 간 건 아니지?”
- 갔다! 아, 1번 엔진에서 냉각수 누출! 여기서 대응할게!
역시나. 소녀가 후방 포탑으로 간 게 틀림없었다. 장갑화에 목측이 아닌 센서를 통한 내부 화면으로 관측해서 쏘는 것이라 어지간하면 후방 포탑이 완파되지는 않겠으나, 조종에 좀 더 신경 써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은 마찬가지다.
할 수만 있다면 소녀를 콘솔에 두고, 셀린을 후방 포탑으로 보내는 게 맞겠는데. 당장 조종간을 내팽개치고 가서 잡아 올 수도 없는 거고, 손상에 대응해야 하는 상황에서 셀린이 그걸 두고 가기도 난감하다.
[지지지지직- 콰앙!]
그 사이, 몽블랑과 충돌 이후 바윗덩어리와 부딪혀 폭발한 상륙정의 잔해를 피하려던 또 다른 상륙정이, 아직 살아남은 레이저 포탑에 제대로 긁혀 엔진이 폭발하며 산산조각이 되었다. 이제 남은 건 하나.
어디에 있지. 조종간을 계속 이리저리 틀어 회피기동을 멈추지 않은 채 홀로그램 레이더를 살피는 하비에르. 그러나 주변에 워낙 장애물이 많은 데다, 방금 충돌하면서 뭐가 또 잘못됐는지 좀처럼 탐색이 되지 않았다.
“어디야, 대체…….”
- 뒤! 뒤에 있어요! 어, 이거 어떻게 수동으로 바꿔요? 안 움직이는데!
“오른쪽에 반짝거리는 게 있을 거야! 꼬맹아! 그 밑에 있는 버튼이 있는데, 그거 누르면수동으로 돼! 꼭 안 맞아도 괜찮으니까, 너무 막 쏘지만 마!”
- 알았어요! 아, 됐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소녀라도, 일단 포탑을 움직이면서 쏠 줄만 알면 견제는 될 것이다. 정확도가 부족하게나마 후방 포탑이 살아있는 상태와 죽어버린 것은 천차만별이니, 있는 게 낫다.
[다다닥! 다닥! 다다다닥!]
소리를 들어보면, 레일건은 적당한 수준에서 끊어 발사되고 있었다. 적어도 소녀가 발사를제어하긴 한다는 뜻이다. 그 정도면 됐으니, 이제 하비에르 쪽에서 방법을 찾아야할 때.
아마 저 상륙정은, 후방의 화력이 살아난 것으로 판단하고 보다 덜 위협적인 전방으로 진출하려 들 것이다. 본래라면 전방으로 진출하지 못하도록, 상륙정에게 치명적인 화력을 뿜는 후방 포탑의 사선에 계속 노출되도록 하는 것이 맞으리라.
하지만 후방 포탑은 소녀가 쥐고 있어서 명중을 기대하긴 어려웠다. 그렇다면, 도리어 순간적으로 정면을 노출하여 살아남은 정면 레이저 포탑이 일제 사격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겠지.
그 순간을 잡아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더 상륙정은 몽블랑의 정면으로 위치를 잡으려 했으므로, 도리어 저 상륙정이 바라는 방향으로 가는 셈이 되니까. 다만, 그 순간 어디로든 회피하기 어려운 지형을 잡아야 한다.
그리고 짧은 순간에, 하비에르는 그런 위치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 순간을 잘 잡아서 조종간을 틀 때까지 셋, 둘…….
- 잡았다! 잡았어요! 와! 그, 인공지능이니까, 저기 사람 없는 거 맞죠? 내가 사람 죽인 건 아니죠?
“뭐? 잡았다고?”
- 응! 잡았어요! 막 폭발했어요!
조종간을 급하게 틀려고 해던 하비에르는, 갑자기 들려오는 소녀의 목소리에 좌우간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초심자의 행운인가? 그것도 의외성이라면 의외성이겠는데, 자동 요격 시스템을 상정한 인공지능이, 처음 포탑을 잡아보는 소녀의 사격이 예상과 달라 허무하게 얻어맞고 폭발한 것일까?
혹시나 해서 선체를 반대로 돌려보니, 마지막 상륙정이 폭발한 흔적이 남아있었다. 일단은, 상황이 종료된 셈이다.
“셀린, 함선 상태는?”
- 냉각수 누출은 잡았고, 함선 정지하면 복구 드론 내보내서 장갑 복구하면 끝이다. 복구 드론은 모두 여섯대 탑재되어 있어.
“그러면 복구 드론 세 대만 내보내 놓고, 조종석으로 와. 꼬맹이 너도 오고.”
- 응? 어, 알았어요! 금방 가요!
아직 상황이 완전히 끝났는지는 모를 일이므로, 하비에르가 조종석을 비울 수는 없었다. 그러므로 둘이 와야 했는데, 셀린과 소녀가 동시에 도착했다. 셀린이 소녀를 기다렸다가, 동행해서 왔겠지.
“인공지능이 확실해?”
“아, 이것 봐봐.”
적당한 크기의, 소행성이라 부르기 충분한 바윗덩어리의 움푹 들어간 부분에 몽블랑을 잠시 붙여둔 상태에서, 하비에르는 녹화된 전투기록을 홀로그램으로 띄웠다. 개중에서 홀로그램 레이더를 확대하여, 하비에르가 처음 상륙정을 상대로 몽블랑의 후방을 들이댔을 때를 천천히 재생한다.
“……? 이게 어떻게…….”
“왜요? 저게 어떻게 되는 건데요?”
“저렇게 움직이면 배에 탄 사람들은 다 기절하거든. 조종사도 제대로 제어가 안 돼서, 저렇게 급박한 상황에서 딱 저만큼만 돌리는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야. 그런데 저 이후에도 움직이는 걸 보면, 내부에 있는 게 사람이 아니라는 거지.”
셀린이 몇 번을 재생하면서 확인하며 믿기 힘들어하는 사이, 하비에르는 소녀에게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그제야, 소녀도 되감아 재생되고 있는 그 장면을 보면서 입을 아 벌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인공지능은, 그……”
“일단 바탕은 컴퓨터지. 맞아, 인공지능은 사람이 아니야. 외우주의 보이드젤리는 생긴 게 해파리라도 자연 진화한 유기 생물체에 엄연히 문명을 이루고 있기에 사람으로 쳐주지만, 무기물에 그 기원이 인공이라 이름부터가 인공지능인 걸 사람으로 인정해주는 곳은 없어. 넌 사람 죽인 게 아니다, 꼬맹아.”
“휴, 다행이다. 쏘라고 해서 쐈는데, 정말 맞춰버리니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소녀가안도하는 미소를 지으며, 한숨을 내쉬듯 말했다. 확실히, 인공지능을 사람 취급해주는 장소나 조직은 없었다. 애초에 그렇기에 인공지능을 절멸할 수 있었던 것 아니던가.
문제는, 그렇게 절멸된 줄로만 알았던 인공지능이 여기서 갑자기 튀어나왔다는 점. 저 움직임 외에는 인공지능이라는 증거가 없었으나, 반대로 저런 움직임이야말로 인공지능이라는 확실한 증거였다. 인공지능이 양지에서 사라진 이후, 저런 움직임을 보였던 함선은 단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으니까.
당장조종실력이 남다르게 뛰어나다고 인정받은 하비에르조차도, 그런 식의 기동은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급하게 조종간을 꺾는다는 것도, 어디까지나 사람으로서 버틸 수 있는 수준을 유지한다.
어딘가에는 분명 그보다 더 훌륭한 실력을 지닌 조종사도 존재하겠지만, 하비에르는 그런 조종사라도 저런 기동은 할 수 없으리라 확신했다. 함선을 U자로 움직여 뒤집는데, 그 U자의 직선 간격이 매우 좁았다. 얼핏 보면 물리적으로 가능한가 싶을 정도로.
“그럴 땐 사람이라도 어쩔 수 없는 거야.”
“으음, 알긴 하는데, 지금은 아니라는 것만 생각할래요. 인공지능이니까 뭐, 생각도 감정도 없을 테니까요.”
“인공지능이라도 저 정도가 되려면 그 생각과 감정이 있는 인공지능이어야 하는데.”
“아? 그럼, 그냥 사람 아니에요? 자기가 생각을 하고, 감정을 느끼는데 어떻게 사람이 아닐 수가 있어요?”
소녀의 되물음은, 이미 300년 전의 연방 철학자들이 논쟁을 벌인 끝에 결론을 내놓은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 점에 대해선, 받은 교육의 질이 더 높은 셀린이 답한다.
“‘사람’을 정의하는 건 그 외형이나 내면이 아니라, 그 종족의 기원이다. 인류로 한정하더라도, 뇌 손상을 입어서 제대로 생각하거나 감정을 느끼기 어렵거나, 팔다리가 잘려서 완전한 불구가 되었더라도 사람이 아니라고 하지는 않지?”
“으음, 뭐, 그렇죠.”
“그건 같은 종족이라는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야. 그리고 그런 공감대의 근원은, 유기체 단위에서 함께 진화해온 역사적인 동질감이라는 거다. 반면 인공지능은,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거야.”
“하지만, 생각도 하고, 감정도 느끼면 뭐가 달라요?”
“그 기반이 달라. ‘사람’이 느끼는 건 진화 과정에서 생긴 자연물이지만, 인공지능은 그 사람이 만든, 생각과 감정의 흉내에 불과해. 야생에서, 포식자가 사냥감의 소리를 흉내 내는 것과 비슷하지.”
복잡해지는 설명. 소녀는 인상을 찌푸리는 모습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움을 드러냈으나, 그렇다고 여기서 더 깊게 설명할 여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일단 한 차례 인공지능을 물리치기는 했어도, 거기서 끝이라는 보장이 없었으므로.
“설명은 나중에. 판도라 스테이션으로 가면, 단말기 구해서 읽을거리는 넘치도록 넘겨줄 테니 지금은 좀 참아라, 꼬맹아. 셀린, 함선의 상태는 어땠어?”
“수리만 끝나면 교전하기 전과 차이가 거의 없다. 속행해도 괜찮다고 보는데.”
셀린은 그가 정말 물으려 했던 부분을 곧장 대답했다. 이대로 속행할 수 있는가. 재정비하고, 좀 더 숫자를 불려서 와야 하는 게 아닌가.
“하긴, 돌아갔다가 다시 오더라도, 들어올 수 있는 숫자는 한정적이겠지. 오히려 회피할 공간이 없어서, 장애물을 엄폐물 삼아 게릴라를 해오면 꼼짝없이 맞기만 해야 할 거야.”
게다가 시간도 더 걸려서, 각자 있어야 하는 곳으로 돌아가는데 더 오래 걸리기도 하겠지. 그 말은 내뱉지 않고 삼킨 하비에르는, 대신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내키지는 않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