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화 〉침로 변경
정말 아주 잠깐 들렀다가 나서는 정도로 빠르게 치고 빠졌기에, 연방이 하비에르를 눈치채지는 못했다. 거기에 입항할 때 인원이 하비에르 혼자가 아닌 네 명이었다는 게 제법 도움이 되었으리라는 점도 한몫했다.
그렇게, 몽블랑은 판도라 스테이션을 빠르게 벗어났다. 여전히 연방 함대가 통째로 정박하여, 판도라 스테이션 전체에 아주 강력한 압박을 가하는 상황이었으므로.
“아무리 연방이라도 전함까지 동원해서?”
“그만큼 중요한 일이라는 거겠지. 그래도 연방이니까 저게 되는 거야. 어쨌건 연방군 함대라면 기동 예비는 갖출 수 있을 테니까. 왜, 반란군 쪽에서 가르쳐주는 것과는 좀 다른가?”
“……조금.”
셀린은 여전히 기가 질린 듯한 모습이었다. 물론 반란군에도 운용 중인 전함이 있고 전체적으로 봤을 땐 연방의 전함 숫자는 답보 상태이며 반란군 전함은천천히라도 늘어나고 있었지만, 그 절대치가 있는 것이다.
당장 반란군에는, 저런 중립 스테이션에까지 전함을 파견할 여력이 없다시피 했다. 당장 저렇게 전함이 대놓고 정박했어도, 반란군으로서는 저보다 큰 규모의 함대를 동원해 저 함대를 기습하려면 정말 여러 문제가 생긴다. 중립 스테이션과의 관계부터 시작해서, 반란군 함대를 포착한연방 함대가 기동 예비를 투입했을 때의 문제까지.
“곧 죽어도 연방은 연방이야. 지금이야 점점 몰락해가고 있는 상황을 어떻게든 벗어나기 위해 별짓을 다 하고 있지만, 그마저도 연방이니까 가능한 거지.”
반란군이 인공지능을 제작한다? 거기까진 가능하다. 하지만 그렇게 운용하던 인공지능을 폐기한다? 그 수준이 떨어지고 지극히 수동적이라 아주 제한된 용도에서나 사용되는 중등 인공지능이라면 모를까, 거기에 자아가 들어가면서 성능과 불안정성이 폭증하는 고등 인공지능은 함부로 폐기할 수 없었다.
물론, 하비에르의 생각으로는, 이렇게 다섯이나 쓰다가 폐기하는 건 연방으로서도 아까워 죽을 정도였을 게 분명했다. 이후 운용은 별개로 치더라도, 일단 전함 다섯 척을 건조하여 전투 준비까지 마칠 예산 아닌가.
“다음 행선지는 어디입니까?”
“내우주와 외우주 사이의 어딘가에 있는 스테이션. 이전에 장거리 의뢰를 뛰면서 안면을 터놓았는데, 거긴 중립이 아니라 아예 다른 세력권이 장악하고 있는 곳이라 괜찮을 거야.”
“정확히 어디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올림푸스 스테이션이라고, 지역 군벌 영향권에 있는 곳이 하나 있어. 말 그대로 군벌 수준이라서, 용병들과 관계가 나빠지면 많이 곤란해지는 세력이라 일단 자리는 잡을 수 있지.”
[지이이익!]
애니의 집요한 물음에, 하비에르는 친절하게 설명까지 곁들여 말하곤 다음 초광속 항행을 시작했다. 이젠 소녀에게도 제법 익숙해진, 창밖의 완전한 칠흑.
“그러면 거기선 혁명군과 연락이 닿나?”
“아, 그럼. 오히려 거기 군벌을 통한 공식 요청으로 귀환할 수 있을 거야. 연방이나 반란군이나 그 부근엔 어지간하면 접근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마지막으로 봤을 땐 반란군이 제법 공들여서 관계를 구축한 곳이라고. 외우주에 가깝다 보니, 반란군 거점과도 가깝거든.”
“그때가 얼마나 전인데?”
“어, 그러니까, 한 4년쯤 전?”
애매한 기간이다. 확실히 외우주로 갈수록 반란군의 세력권이 더 많아지면서 강해지는 경향이 있고, 내우주와 외우주의 경계선쯤에 있는 스테이션을 점거한 군벌이라면 반란군으로서도 친목을 다지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그게 4년 전쯤이라면, 반란군이건군벌이건 선을 잘못 넘어서 사생결단 났을지도 모르는 기간이긴 했다. 사생결단까지는 아니더라도, 관계가 안 좋아진 정도는 가능했다. 다만 그렇게까지 확 변하기는 짧은 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었고.
결국, 셀린도 하비에르의 말에 일단 수긍할 수밖에는 없었다. 연방이 전함이 포함된 함대까지 동원하여 무엇인가를 찾고 있는 가운데, 그만큼 적절한 행선지도 많지 않았으니까.
“그럼 난 어떻게 해요?”
문제는 소녀였다. 1차 계획으로는 하비에르의 동료인 니키타에게 소녀를 맡기려고 했는데, 지금은 니키타가 어디로 향했는지조차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당장 소녀를 맡길 수 있는 곳을 찾기도 곤란했고.
“넌 당분간 같이 다녀야겠다, 꼬맹아. 저건 어디서든 내리기만 하면 되고, 셀린은 반란군과 연락만 닿으면 되는데, 넌 좀 곤란하네.”
어휴. 말하고 나서 한숨을 내쉬는 하비에르. 조잘거리기 바쁜 꼬맹이를 앞으로 더 데리고 있어야 한다는 부분도 있겠으나, 연방이건 반란군이건 그 정체만 알면 바로 달려들 실험체를 더 데리고 있어야 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도 있었다.
차라리 연방이나 반란군에게 들킨다면 다행이지, 그 중간에서 이득을 취하려는 다른 세력에게 들키면 훨씬 안 좋은 꼴을 보게 될 상황이다. 소녀는 그래도 넘겨지기 전까진 대우를 받겠지만, 하비에르에겐 가차 없겠지.
“응! 알았어!”
그런데 어째서인지, 소녀는 하비에르의 그 말이 상당히 기꺼운기색이었다. 당분간 용병과 함께 다니게 되었다는 말 어디가, 고작해야 열두 살, 신체적으로도 아직 미성년자티가 나는 소녀의 마음에 들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오히려 평범한 애는 아니기에 그런 걸까. 하비에르는 그렇게 생각했다.
“흐음…….”
그 모습을 보면서, 셀린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약하게 앓는 소리만 냈다. 소녀를 데리고 귀환하고 싶었는데, 저 모습을 보니 그건 이제 그른 일이라는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뭐, 어쩌겠는가. 사실 현상황에서는, 셀린 본인조차도 귀환하고 싶다는 초조함이 슬슬 들 정도였다. 원래라면 판도라 스테이션에서 곧장 귀환했을 텐데, 연방군 함대가 전함까지 동원해서 저러고 있었으니.
“아, 함선 수리는 하고 나왔어야 했는데.”
“어차피 전방 포탑 하나뿐 아닙니까? 얼마 걸리지도 않을 겁니다. 게다가 어차피 올림푸스 스테이션에 도착하면, 들어낼 상황 아닙니까.”
“아니, 뭐, 그렇긴 한데.”
쩝. 입맛을 다시면서, 함선의 상태창에서 유일하게 빨간 불이 들어와 있는 전방 좌측 포탑을 탐탁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거 하나 때문에 문제가 생길 일은 없겠으나, 일반적인 항해에서 노란색도 아니고 빨간색 불빛이 들어와 있는 꼴은 그냥 두고 보기 어려운 것이다.
뭐, 적어도 하비에르는 그랬다. 실제로는 한두 군데쯤 빨갛게 된 채로 돌아다니는 함선이 없는 건 아니었으나, 아무래도 포탑이 그러면 어떻게든 수리하는 법이지.
“곧 도착합니다. 여태 초광속 항해를 스물다섯 번 했습니다만, 올림푸스 스테이션까진 앞으로 몇 번이나 더 가야 합니까?”
“백하고도 서른아홉 번.”
“윽!”
애니의 물음에 정작 대답하는 하비에르는 별다를 게 없는 어조였지만, 소녀는 눈살을 찌푸리며 정말 싫다는 신음을 냈다. 하긴, 열두 시간이 넘도록 초광속 항행만 해댔지만, 앞으로도 거의 70시간이나 더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연한 말인데, 외우주까지의 경계로 향하는 길이다. 거의 50만 광년을 가야 하는 대장정이었으니, 그 정도 시간이 걸리는 게 맞았다.
[쉬이익!]
“하아, 그럼 잠깐 쉴까.”
“저, 그런데 그렇게 많이 가야 하면, 먹을 거랑 마실 건 충분해요?”
“충분해. 제대로 보충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충분히 한 번에 갈 수 있는 거리야. 뭐, 지겹긴 하겠지만, 문제는 없어.”
그 말에, 소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비에르와 당분간 함께해야 한다는 부분에선 어째선지 기분이 좋아 보였지만, 휴식 없이 계속 초광속 항행을 반복해야 한다는 사실엔 학을 떼는 느낌이었다.
뭐, 아무것도 없는 듯한 칠흑 구경도 한두 번이지, 벌써 수십 번은 봤다. 아무리 소녀더라도, 그렇게까지 봤는데 지겹지 않을 수가 없다.
“아, 그런데 내일부턴 D팩을 먹어야 할 거다.”
“윽.”
이번에 말한 것은 셀린이었고, 질렸다는 듯 신음한 건 하비에르였다. 식감도 말캉말캉하고 질척질척하면서, 맛도 꿉꿉한 그 D팩. 여기서 그 끔찍함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다름이 아니라 하비에르였다.
“어디 들렀다 가요.”
아직 그 D팩을 맛본 적이 없는 소녀였지만, 그래도 하비에르의 반응이나 말하면서도 별로 내키지 않는 듯한 셀린의 어조에서 상당한 불길함을 느낀 것이다.
확실히, 눈치는 빨랐다.
“필수적이지 않은 목적으로 다른 곳을 들리는 건 시간 낭비입니다. 식량이 아예 없는 게 아니니, 교대하여 쉬고 계시면 제가 초광속 항행을 속행하겠습니다.”
하비에르는 진심으로 갈등했다. 교대 인원도 있으니, 이대로 속행한다면 D팩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기간을 단축하면서 혼자서 빠져나갈 때보다 빠르게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D팩이라니, 그 끔찍한, 정말 배만 채우려고 먹는 음식을. 먹으면 배가 찬다는 것 외에는 모두 단점이며, 과연 이게 음식이 맞기는 한 건가 싶은 것을.
“어디 들러서 식료품만 보충하고 가지. 아니, D팩으로 연명하는 걸 피하는 일은 중대 사항이야.”
“하지만…….”
“하비에르의 말이 맞아. 그건 중대 사항이다.”
애니가 반론하려 했으나, 셀린이 잽싸게 그의 말을 받았다. 당장 추격자가 붙은 것도 아니고, 판도라 스테이션에서 정체가 드러나지도 않았다. 끔찍한 D팩을 피하려 어딘가 들를 여유는 있었다. 하비에르도, 셀린도,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았어도 그 부분에선 의견이 일치함을 서로 알 수 있었다.
“어? 어? 나, 나는, 찬성이에요! 식료품 보충!”
이미 D팩의 실체에 대해 눈치를 챈 소녀였다. 여기서 반대 의사를 내비칠 리가. 셋의 시선이 자신에게 모인 상황에서, 소녀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쳐 말했다.
“으음, 알겠습니다. 중대 사항이라니,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어쩌다 보니 네 명 모두의 의견이 다수결 형태로 정해졌다. 그러다 보니, 둘 둘로 갈렸으면 어떻게 정했을까 하는 생각이 하비에르의 뇌리를 스친다. 뭐, 이후에는 고민할 일도 없겠지. 금방 그렇게 수긍했지만.
“그럼 가장 가까운 곳이, 어, 의외로 이런 곳에도 뭐가 있군.”
그렇게 정해진 내용을 실행하기 위해 조종석의 콘솔을 조작하니, 꽤 가까이에서 신호가 잡혔다. 지정학적으로 딱히 의미가 있는 곳은 아니고 하비에르도 딱히 관심이 있던 곳도 아니라, 이중에선 우주를 가장 넓게 돌아다닌 그로서도 처음 보는 곳이었다.
“어디? 어떤곳인데요?”
“신호 이름이, 클리어 플래닛 포스트로군. 포스트면 상주 인원이 수천 명, 어쩌면 수백 명 단위겠지만, 그래도 식료품 보충 정도는 할 수 있을 거야. 오히려 다른 곳과 연락이 빠르게 닿지 않는다는 점에선 만약의 경우에도 안전하지.”
스테이션이라고 하면, 상주 인원이 최소한 수만 단위인 우주 구조물이다. 그보다 한 단계 낮은 곳을 보통 디포라고 칭하고, 그 밑이 바로 포스트, 상주 인원이 아예 없거나 극소수인 곳에는 세트라는 명칭을 붙인다.
고로 포스트라면, 작금의 하비에르 일행에겐 가장 적절한 수준이었다. 어쨌건 거래는 할 수 있을 정도에, 벌써 수만 광년 멀어진 곳으로부터의 소식이 바로 들어오지도 않을법한 장소.
“그럼 바로 가요!그, 기다려도 좋을 게 없잖아요? 그쵸?”
뭔가 또 신이 나서 외치는 소녀. 다만 나머지 셋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집중되자, 뒤에 이어지는 말은 다소 멋쩍은 듯 동의를 구하는 형태가 되었다. 하비에르와 셀린이 먼저 서로 마주 보고, 그 둘의 시선이 애니에게로 다시 모인다.
“좋겠습니다. 저는 안 되더라도, 잘하면 파비앙느 씨의 문제는 해결할 수 있겠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아무리소식이 닿지 않는다고 해도, 아직 내우주에 위치한 곳이다. 그 정도면, 당연히 연방이나 반란군 쪽에 소식을 넣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포스트의 목적이나 상태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하비에르의 정체를 밝히지 않고, 그저 조난되었던 셀린을 구해준 용병이라고만 밝히고 지나갈 수도 있겠지.
“음, 좋아. 만약 거기서 연락이 닿고, 할 수 있다면 기다리기까지 해야지.”
“굳이 초광속 항행으로 갈 거리도 아니니, 바로 출발하겠어. 아, 셀린은 꼬맹이한테 단말기, 이거 설정해줘.”
판도라 스테이션을 떠나기 직전 받은 현물 자산 중에서, 깔끔하게 초기화된 단말기를 건네주는 하비에르. 셀린이 답하려는데, 거기선 애니가 나섰다.
“이건 제가 하는 게 더맞겠습니다.”
“뭐, 니가 더 잘하긴 하겠지. 그래.”
그러면서, 주는 방향을 셀린에게서 애니로 바꾸는 하비에르. 셀린은 찜찜한 표정이면서도, 딱히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