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9화 〉급강하 (49/207)



〈 49화 〉급강하

소집 사흘 후, OSBF의 외교 사절단이 프로스트 노바를 향해 출발하였다. 현재 프로스트 노바에서 장기간 이루어지고 있는 전쟁에 외교적인 수단으로 개입할 목적을 바탕으로, 그곳에 상주할 외교관과 사제,기타 인원을 채운 수송선을 중심으로 그것까지 포함한, 도합 13척 규모의 선단이었다.

개중에 용병 어뢰정이 10척. 기함은 OSBF 구축함이었고, 한 척은 보급함에 나머지 한 척이 바로 그 호위 대상이었다. 어지간한 해적들은 꿈도 못 꿀 규모이며, 노릴 수 있는 규모라도 해당 해적단의 전투력을 총동원해야 하는 수준에 비해 얻는 것이 너무 적었다.

“그래도 소풍이 아니니까, 너무 긴장 늦추지는말고.”

“알았어요. 사고 안 칠게요.”

소녀가 여태까지 딱히 큰 사고를 친 적은 없었으나, 이제 자신의 것이 된 레일건을 쏴보고 싶어 안달하는지라 꾸준히 쪼아대는 유진이었다. 실제로, 이렇게 꾸준히 하지 않으면 어떤 사고를 칠지 모르는 일이었고.

- 각 함선, 대기권 강하 대형으로. 두 대륙이 우리 강하 시간에 맞춰 해당 영공을 말끔히 비우겠다 선언한 상황이므로, 식별 불가능한 물체가 보이면 곧장 요격하라.

“몽블랑, 알았다.”


프로스트 테라까지는 10광년이 채 안 떨어져 있어 금방이었고, 따라서 눈 깜짝할 사이에 도착하고 대기권 강하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대기권 강하라고 해서 결코 위험한 건 아니었으나, 어쨌건 마찰과 열로 인하여 큰 진동이 꾸준히 가해지므로 대형 유지는 신경 써야 했다.

사실, 굳이 대형을 유지할 필요는 없었다. 협의한 내용만 지켜진다면 딱히 요격할 필요도 없었고, 요격해야 할 필요가 생기더라도 굳이 대형을 이룰 이유는 없었다. 혹여 우주 전투함 사양의 어뢰정이 대여섯 기씩 몰려오는 거라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그냥 각기 대응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그럼에도 대형을 짜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OSBF의 위신을 위함이었다. 외교 관계 수립을 위해 직접 가서 대기권 강하를 하는데, 대형이 엉망이면 다 엉망으로 보이지 않겠는가.

[쿠르르르릉!]


“잘할 수 있어?”

“한두 번 한  아니니까. 대기권 강하도 질리도록 해봤으니 염려 마.”


몽블랑의 선체도 크게 울리기 시작했다. 대기권 진입도 부드럽게 하자면 얼마든지 부드럽게 할 수 있었으나, OSBF에서 굳이 이런 충격 형식의 대기권 강하를 고집한 탓도 있었다. 애초에, 추천받은 용병들만  이유가 이런 상황에서의 대형 유지를 보장하기 위함이었고.

어이, 그쪽! 대형이탈하지 말라고! 그, 몽블랑인가?


“몽블랑은 대형 유지 중이다. 다른데 알아봐라.”

- 그래, 몽블랑이 아니라 매버릭이군. 한두 번도 아닌데 이럴 건가? 자꾸 그러면 다음번엔 이쪽 의뢰 못 받을  알아라!

유진의 조종실력이 어디로 가는 건 아니었으므로, 몽블랑의 대기권 강하는 아주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도중에 다른 용병 어뢰정이 대형에서 이탈하던 것을 오해받아버렸으나, 그 정도는 별일이 아니었다.

그 지적당한 매버릭이라는 함선과 그 함선의 용병을 위해 변호를 해보자면, 사실 대기권 강하는 그렇게 만만한 작업은 아니었다. 특히 지금처럼 과격한 강하는, 마찰과 열로 인해 기존의 궤도를 유지하는 게 경험이 없으면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다. 경험이 없으면.

- 강하 완료까지 5, 4, 3, 2, 1, 완료.


[쏴아아아아!]


완료 신호에 맞춰서 반중력 엔진을 가동하자, 밀리면서 가열되었던 공기가 사방으로 퍼지면서 형용하기 어려운 묘한 기류를 만들었다. 마치 안개와 같은 흐릿함이 주변으로 작은 소용돌이 모양을 한  퍼져나가다 사라졌다.


밑에서 보기에는 대단한 광경이리라. 대형함  척조차 없는 구성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쇼라고 할 수 있겠다.


“몽블랑 보고. 예정된 지점에 착륙한다.”

그대로 착륙하면서도, 몽블랑은 작은 떨림도 없었다. 적어도 안에서 느끼기에는 그랬다. 마를렌이 준비해준 몽블랑의 성능 자체도  괜찮은 편이었으나, 그보단 유진의 조종 실력이 뛰어난 덕분이 더 크다.


“그럼 우린 여기에 이대로 있는 건가?”

“호텔로 가야지. 지상에서의 호위는 육전대가 하는 거니까.”

일단 그렇게 대기권 강하를 끝내 각자의 착륙지에 도착한 후, 다시 선단이 이륙하기 전까지 용병들에겐 딱히 일정이라고 할 게 없었다. 이후에는 구축함 보급함에 탑승해있던 OSBF의 군인들에게로 호위 역할이 넘어가게 되니까.


요컨대, OSBF는 그 10광년쯤 되는 짧은 거리에서의 호위와 대기권 강하에서의 위력 과시를 위해 열 척이나 되는 용병 어뢰정을 고용한 셈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그런 행동은 낭비라고 표현한다.


“이 역시 당장 보이는 비용 대비 효과만 보면 상당히 비효율적입니다. 하지만, 이후의 효과까지 생각한다면 달라지겠습니다.”

“어떤 효과 말하는 거야?”

“쉽게 말해 과시 효과입니다, 하빈. 이로써 프로스트 테라의 원주민들은, OSBF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게 될 겁니다. 그게 OSBF에는 여러 긍정적인 결과를 가지고 올 수 있겠죠.”

하지만 거기에 외교적인 이유가 끼면 많은 것이 달라진다. 어뢰정의 도장은 OSBF의 것이라 하더라도 형식이 다 제각기이므로, 용병 어뢰정이라는 걸 알아채기는 하겠지. 하지만 이런 일에  척이나 되는, 강하하면서 대형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이 있는 용병 어뢰정을 고용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위력이었다.

“원래 여기 고용되어 있던 용병들이 있었지? 호텔에  풀고 나면, 그치들과 한  만나봐야겠어.”


“정보 수집입니까?”

“그래, 정보 수집. OSBF가 개입한다고 해서 장기간 이어진 전쟁이 갑자기 끝나지는 않을 거야. 여차하면 여기서 의뢰를 받을 수도 있겠지. 그러면 누구 편에 드는  더 유리한지, 어느 쪽이 더 보수와 조건이 괜찮은지 정도는 파악해둬야 해. 지금 일정도 계획상으로는 열흘 일정이니까, 시간도 충분해.”


대기권 강하를 완료한 시점에서, 유진은 다음 의뢰로 이곳 프로스트 테라에서의 전투 임무를 받기로 마음먹었다. OSBF가 개입하기 시작한 시점에선 의뢰를 받기도 더 쉬울 테고, 그러면서 교전의 강도는 점점 약해질 것이면서, 전쟁에 직접 참여했다는 기록은  남을 테니 이득은 충분했다.


“그럼  같이 다니는 거죠? 아저씨?”


“그래. 짐 풀고 나면 다 같이 다닐 거다, 이 꼬맹아. 시간 남으면 괜찮은 장소 찾아서 장거리 사격도 해보고.”

“장거리 사격? 진짜죠? 진짜죠?”

“그래, 진짜지, 그러면 여기서 거짓말을 하겠냐. 일단 쏴 봐야 도움이 될지 아닐지 확실히 알 수 있을 거 아냐.”


소녀는 뛸 듯이 기뻐했고, 셀린과 애니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둘 다 의뢰의 중요성에 대해잘 파악했으며, 일단 용병이 된 이상 돈과 명성을 추구하는  기본적인 목표라는 것도 알고 있었으니까.

“짐부터 풀자. 호텔은 좋은 곳이야?”


“적당히 평균 이상은 된다는데, 그나마 우린 2인용  두 개만 쓰는 걸로  더 괜찮은 호텔로 배정받았어. 호화 시설까지는 아니어도 제법 훌륭한 곳이야.”

물론, 셀린에게는 그보단 머무를 호텔이 좋은 곳이라는 말의 반응이 더 좋았다. 군인으로서 별로 좋지 않은 잠자리에 대한 경험도 있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잠자리는 일단 편한 게 우선이었다.

“서비스까지 제공해주진 않습니다. 우리가 사비를 털어 신청하지 않는 이상은 말입니다.”

“그럴 돈은 없는데. 뭐, 꼼짝없이 사 먹어야겠네. 그렇지? 유진?”


“식비 쓰라고 주는 돈은 있으니까, 그 안에서 해결해야지. 좀 더 좋은 호텔을 잡은 부작용인데, 그 돈으로 룸서비스는 안 돼.”

귀찮음이 먼저인가, 아니면 잠자리의 질적 수준이 먼저인가. 잠깐이지만 아주 진지하게 고민한 셀린은, 그중에서 일단 후자를 택하기로 했다. 귀찮다고  못한 곳으로 숙소를 잡는  어디 말이 되는 일인가.


“밥 먹을 때마다 나가서 돌아다녀야겠네. 주변 맛집은 확실히 파악할 수 있겠다.”

“아니면 시켜 먹어도 되고. 룸서비스까진 아니어도, 배달은 올려주겠지.”


“호텔에서 배달 음식이요? 그거 어울리는 거야?”

“어울린다고는 할  없겠습니다, 하빈. 하지만 예산이 제한되어 있으니 어쩔  없는 사항이기도 합니다.”


의외로 날카로운 곳을  찌르고 들어오는 소녀였으나, 여기선 예산이라는 마법의 단어가 모든 저항을 분쇄하고 유진 일행의 행동 방침을 정했다.  벌러 와서 돈을 쓰는 본말전도를 벌일 수는 없었으니.

“아, 저기  온다.”

바깥을 주의 깊게 살피던 유진은, OSBF에서 수배한 렌터카가 착륙장으로 다가오는 모습을 가장 먼저 발견했다. 필요할 때만 부르고 나머지 시간에는 자유로운 행동을 허락받은 대신, 품위 유지의 의무와 함께 운전이나 식사 등은 제공하는 범위에서 알아서 하는 것이 조건이었다.

사실 그런 귀찮은 부분은 차치하더라도, 이번 의뢰가 전체적으로 소위 꿀을 빠는 의뢰이기도 했다. 알아서 하라고는 했어도 렌터카까지는 수배해주는 데다, 일부 자비를 써야 하는 부분조차도 사실 그렇게 많이 쓸 필요는 없었다.


“무장까지 다 허가받은 거 맞지?”


“맞아. 대놓고 들고 다니면 안 되겠지만, 길쭉한 거라도 여기에 넣고 다니면 들고 다녀도 되도록 허가가 나왔어.”

그러고선 꺼내는 것이,  봐도 ‘난 무기 상자입니다.’라고 말하는 듯한 길쭉하고 얇은 상자였다. 이른바 전술적 회색이라 불리는, 흔히 군용으로 쓰이는 회색으로 칠 된, 길이가 1미터를 좀 넘는  뼘 반쯤 두께의 상자.


“내가 이거 들고 다녀야 해요?”


“왜? 여기선 사격 연습하기 싫냐?”


“……들고 다닐게요. 씨이, 치사하게 진짜…….”


소녀는 잔뜩 불평하면서도, 낑낑거리며  상자에 자신의 레일건을 넣었다. 유진과 셀린, 애니는 쉽게 은닉할  있는 권총형 화기를 택한 것에 비해, 1미터가 넘는 길쭉한 화기를 택한 소녀의 자업자득이라 할 수 있겠다.

사실, 반쯤은 유진이 부추긴 탓이기도 하지만.


“어이, 뭐, 벌써 호텔로 가려고?”


그렇게 몽블랑에서 내려 렌터카로 향하는 도중에, 들어본 목소리가 그들을 불러세웠다.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돌아보면, 그곳엔 녹아버린 해골이라는 이름의 중무장형 어뢰정과  선원들이 있었다. 그중에서 유진 일행을 불러세운 건, 수장인 칼리.

“뭐, 여기 아는  있나?”

“죽이는 술집은 하나 알지. 왜, 앞으로 의뢰를 언제 같이하게 될지 모르는 사인데, 이 김에 친목  다져보자고.”


어쩜 이렇게 판에 박혀있나. 속으로 그리 생각하면서, 유진은 겉으론 웃으며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이쪽에 술이 말도 안 될 정도로 약한 사람이 있어서. 다음 기회에, 다른 걸로 다지지. 오늘만 날이 아니니까.”


“음, 내가 여기에 신세를 제법 많이 져서 말이야. 필요한 정보라면 적당히 제공해줄 수도 있는데 말이야.”

“말은 고마운데, 지금은 일단 쉬는 게 먼저야. 그리고 우리도 정보 수집도 못 할 정도로 무능하진 않고. 그쪽은  그래도 인원이 많으니, 신경 쓸  많지 않겠나. 아무래도 오늘은 날이 아닌가 봐.”

그러고선 일행을 이끌고 가차 없이 발걸음을 옮기니, 딱히 특별한 관계를 맺은 것도 아닌 쪽에서 뭔가 더 할  있을 리가 없었다. 품위 유지 조항에는 같은 용병끼리 마찰을 빚지 않는 것도 포함되어 있어, 이쪽이 원하지 않으면 억지로 끌고 갈 수는 없었으니까.


“저렇게 매몰차도 되나?”

“일단은. 애니가 사흘 동안 찾은 내용도 있고.”

렌터카에 타면서 셀린이 한 물음. 돌아오는 유진의 대답에, 셀린은 어느새 자연스럽게 조수석에 탄  뒤의 애니를 돌아보며 무슨 내용이냐는 듯 눈으로 물었다.

“녹아버린 해골이라는 용병 집단에 대한 정보입니다. 다른 용병으로부터 장비와 인원을 흡수한 전적이 꽤 있는데, 그렇게 흡수한 장비건 인원이건 장기간 남아있는 경우가 없었습니다. 그러한 사실을 나름대로 숨긴다고 숨겼습니다만, 보안은 제가 충분히 뚫을 수 있을 정도로 허술했습니다.”

“그런데도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는 놈들이야. 아예 관련 자료 자체를 처음부터 남기지 않았다고 봐야지. 적어도 네트워크 상으로는. 수상쩍은 것도 정도가 있지, 이 정도면 사실상 확정이야.”


그렇게 말하면서, 유진은 차량에 시동을 걸었다. 녹아버린 해골이라는 이름의 용병단이 있는 방향의 창을 힐끗 쳐다보는 일행의 표정은, 하나같이 좋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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